0329 <-- 트롤 토벌 -->
폭음이 산에 울려 퍼졌다. 공기의 떨림에 새들이 높이 날아올랐다.
“쿠아아아아아!!!!!”
잔뜩 성이 난 〈검은 무늬 트롤〉의 외침에 멧돼지가 새끼들을 이끌고 허둥지둥 산 아래로 내려갔다. 새끼 멧돼지 하나가 뒷발을 허둥지둥 놀리다가 앞으로 벌러덩 뒤집어져서는 조그맣고 토실한 배를 꿈실거리며 헐레벌떡 일어나서 어미를 따라갔다.
〈악마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검은 불꽃〉은 번지는 물리적인 불이 아니었다. 타오르면 타오를 뿐,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는 못했다. 그 덕에 산이 아직도 정상처럼 보였다. 매캐한 연기를 태우고, 흙마저 새까맣게 그을리기도 했지만 숲은 넓었다.
“까악!”
카이야는 소리 한 번 울면서 트롤의 뒤를 슉하고 지나갔다. 아슬하게 검은 불꽃이 허공을 태웠다. 식겁한 카이야는 두 번 다시 트롤에게 까불지 않고, 드낙이 말했던 대로 〈말을 탄 인간〉들이 거침없이 뛸 수 있는 고원지대를 찾으로 향했다.
산트롤이 자리를 잡은 산인만큼 제법 큰 산이었기에 반드시 있다고 여겨졌다. 도노는 주변을 달리며 드낙이 잘 싸울 만한 곳으로 리드했다.
트롤은 그것을 알아차렸음에도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인간 놈이!’
콰득!
손이 그대로 바위에 푹하고 들어갔다. 달리는 도중이었기에 거대한 운동량이 바위를 후려쳤다. 쩍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박힌 돌이 뒷부분부터 들어 올려졌고, 트롤은 유연성 높게 핑글 돌며 바위를 지렛대처럼 사용해서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려 순식간에 투포환처럼 내던졌다.
동시에 그렇게 던지면서도 속력을 늦추지 않았다. 달리는 트롤의 뒤로 돌이 숙하고 지나가서 드낙이 있는 곳에 정확하게 떨어져내렸다.
쾅!
굉음이 뭉툭하게 튀어나온 절벽을 박살 내고, 흙이 산사태처럼 일어났다. 자욱하게 일어난 곳에 검은 불꽃이 용암처럼 그대로 때려 박혔다. 한 타이밍 빠르게 드낙이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와서 비틀거리면서 달려나갔다.
순식간에 균형을 갖추고 다시 제 속력을 내는 드낙은 지나가면서 함께 뛰는 사슴을 볼 수 있었다. 투척 단검이 빛살처럼 쏘아지며 사슴의 목을 꿰뚫었다.
촤르륵···!
천천히 느리게 덮쳐오는 자잘한 흙과 자갈을 맞으며 드낙이 단번에 몸을 돌렸다.
쿠웅!
양 다리를 땅에 착지하며 트롤이 어느새 챙긴 나무로 땅을 찍었다. 드낙은 그 나무에 올라타는 기예를 보이며 그대로 질주했다. 트롤이 무릎을 올려 차면서 나무를 박살을 냈다. 비산하는 나무속에서 우악스러운 팔이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모기를 잡기 위한 손뼉치기가 아니라 그냥 작은 체구를 스쳐때리기 위한 넓은 타격면을 만든 것이다. 트롤만의 공격법이었다.
‘스치면 중상!’
드낙이 이것을 모를 리 없었다. 나무 파편 중에서도 굵직한 것에 발을 실으면서 트롤의 오른팔을 피하며 굵은 나무 파편을 박차며 반바퀴 회전하며 다리를 왼팔에 걸어서 회전시켰다.
흐르는 육중한 힘은 드낙을 타격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드낙은 빙글 돌면서 그 힘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며 타격음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킬 더 배틀〉이 아니었으면 그 힘의 균형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빙글 돌며 왼팔의 공격마저 피한 드낙의 몸은 트롤의 왼팔이 지닌 힘에 의해서 벼락처럼 바닥에 꽂혔다. 트롤의 힘을 완벽하게 자신의 운동에너지의 발판으로 삼은 것이다. 허벅지 사이로 떨어져내려 단번에 트롤의 후방을 점한 드낙이 롱소드를 두 번 휘둘렀다.
쉬이잉, 끼잉! 팡!
한계치까지 휘둘리며 탄성적으로 역으로 움직인 〈강철이 흐르는 강(Steel flowing river)〉이 섬뜩한 소리를 냈다. 드낙은 몸을 반바퀴나 회전하면서 아예 제대로 힘을 실었다.
정적인 상태에서 굉음(轟音)을 낼 수 있는 극강의 검술 실력을 지닌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일격을 만들기 위해서 드낙은 못해도 자신의 신체를 180도는 전체적으로 회전해야 했다.
드낙의 검이 트롤 무릎의 뒤, 오금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피가 터져 나오며 힘줄이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그 속에서 드낙은 혀를 내둘렀다.
‘이걸로도 안 부서져?’
무릎 관절에 흠집 하나 난 것이 전부였다. 아래턱의 내구력만 강한 것이 아니었다. 트롤의 뼈는 엄청난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드낙은 서둘러 몸을 구르며 튕겨지듯이 도망쳤다.
〈검은 무늬 트롤〉이 일대를 〈검은 화염〉으로 일소했기 때문이다. 이글거리는 검은 화염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거 백병전으로는 못 잡겠는데.’
드낙은 세파리아스의 조언을 상기했다. 그는 분명 ‘패다 보면 뒤진다.’라고 말했고, ‘너도 손쉽게 할 수 있을 거다. 못하면 기사 접어야지.’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덩치 또한 〈구울 묘지기〉보다 작았기에 재생력으로 인한 장기전만 생각하면 된다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 개새끼가? 또 자기 기준으로 말했네. 아, 개빡치네.’
수풀 속에 숨은 드낙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대로 빠지기도 뭣했다. 뭐라도 하나 성과를 가져가야 했다.
“크아아아!!!”
트롤은 주저앉지 않았다. 절뚝거리면서 계속해서 움직여서 드낙을 찾았는데,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격렬함이었다. 그런 거친 움직임 속에서도 새하얀 뼈가 드러난 무릎 뒤쪽에 있는 드낙에게 의해 말끔하게 살과 피, 힘줄이 날아간 곳에 힘줄이 다시 돋아나고, 생살이 거품처럼 쏟아져 나왔다.
드낙과 트롤은 장장 5시간을 드잡이질을 하고 서로 몸을 뺐다. 드낙은 어둠을 틈타서 카이야가 말해준 고원지대 3곳을 탐방하고 산을 내려왔다.
트롤의 피와 흙먼지로 가득한 드낙이 모닥불의 불빛으로 들어오자 경계를 서던 병사가 크게 몸을 들썩하며 놀랐다. 멀쩡한 전신갑주의 형태를 보고 겨우 당황하지 않고, 경례를 할 수 있었다.
“드, 드낙 기사님을 뵙습니다!”
“씻을 물은 있나?”
“예! 아, 안내를···”
“됐다. 경계에 임하라.”
드낙이 지나가자 도노가 뒤따라갔다. 카이야는 별말 없이 드낙의 어깨에서 잠자고 있었다. 물을 엎어 쓰고, 피를 씻겨낸 드낙은 기사들이 허둥지둥 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만나기 싫은데.’
드잡이질을 했는데, 큰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낙은 기사들이 자신을 쫓아오듯이 방문한 것을 통해 이들이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엄청난 굉음이었지.’
‘멀쩡한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부상자를 보살피며 불구가 된 병사 몇몇을 완전히 치료하기 전까지는 전투에 나서지 않고 있는 〈성기사 케이슨〉도 시간을 내어서 드낙을 찾아와서 몸 상태를 살피고 싶어 했다.
산 높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검은 연기와 때때로 높이 피어오르는 검은색의 불기둥은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
“몸이 괜찮아 보여서 천만다행이오.”
모두 훈훈하게 멀쩡한 드낙의 모습을 보며 걱정한 티를 팍팍 냈다. 그중에서 에녹 히터는 드낙이 피를 씻겨내며 벗어둔 파이룬 전신 갑주의 표면을 눈으로 꼼꼼하게 훑었다.
‘싸운 거 맞나? 흠집 하나 없네.’
찰스 린파이어도 전신갑주에 관심을 가졌는데, 스웬슨 보두앵 경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이미 그는 평지 전투에서 드낙의 괴물 같은 실력을 봤기 때문이다.
400마리와 싸우면서 단 한 번,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없이 완벽함을 보여준 것이 드낙이었다. 그 어떤 일류도 실수는 하게 된다. 경기에서 다섯 번 적과 부딪친다면 그중에 1번은 실수를 하게 되어있다. 프로의 싸움은 실수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지.’
떼로 몰려드는 상황 속에서 뒤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보이는 드낙의 움직임은 기사이기에 더욱 공포로 다가온 것이다. 괜히 스웬슨 경이 악몽에 시달린 것이 아니었다.
“놈의 오금을 찔렀는데도, 뼈에 흠집 하나 난 것이 전부였소. 불까지 통하지 않는 놈을 상대하려면 제법 준비가 필요할 것 같소.”
“그, 근접전을 하셨소?”
나무를 뜯어내고, 바위에 손을 박아 넣어 달리면서 단번에 던져대는 트롤이었다. 그 유연함은 인간에게 있어서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 상대로 일격을 먹인다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인간의 공간인지능력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에 간합 싸움도 잘하는 것이 트롤이었다. 기감 또한 뛰어나서 기습도 잘 안 통하기도 했다.
“날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아니오? 트롤 토벌이 그렇게 힘든 것이오?”
드낙이 어리둥절해했다. 자유기사도 눈에 한 방을 먹였기 때문에 드낙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순식간에 알아챈 에녹 히터가 헛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나온 지 1년도 안 되었다는 것이 정말인가 보오. 〈자유기사 이실레아 브릴리언트〉를 말하는 것이라면 한참 잘못된 이야기요.”
“투검(投劍)과 쌍수(雙手)의 비전을 지닌 명문가가 브릴리언트 가문이 아닌가. 특수 장검과 다양한 한 손 검을 사용하면서도 투척도 잘 하니, 트롤의 카운터라고 할 수 있소.”
드낙은 그건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투검을 한 적은 있어도 그것이 그 가문의 아이텐티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극찬을 하는 것을 보니, 예상보다 브릴리언트 가문의 위세는 상당한 것으로 보였다.
“그 정도였소? 흠···”
‘그렇게 대우를 받지 못하던데.’
하지만 그 정도는 납득할 수 있었다. 개 같은 현실 아닌가? 자유기사는 훌륭한 도구에 불과했다. 명예를 좇아서 어떻게든 성공하려는 자들이었다. 이용하기에 딱 좋았고, 그들이 출세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게 이득이었다.
‘드낙 경이 〈검은 무늬 트롤〉과 맞격돌이 가능하면 발 하나 붙여도 될 것 같다.’
기사들의 계산기가 두들겨졌다. 홀로 붙어서 무승부라면 자신들이 가세하면 따놓은 당상이었다.
“우리도 돕겠소.”
그 말에 드낙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아크온이 오기 전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물론 스웬슨 경은 여기서 또 다른 두 기사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했다.
“돕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이번 트롤 토벌에 대한 공은 드낙 경의 것이 아니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트롤을 토벌하고 싶소. 다른 경들의 생각은 어떻소?”
‘스웬슨 경이 자꾸 왜 저러지? 평지전투 이후로 사람의 태도가 저렇게 변해도 되나?’
“우리야···”
“직접적으로 트롤과 부딪칠 수 없으니, 드낙 경의 공이 아니겠소?”
스웬슨 경이 크게 웃었다. 두 기사는 표정이 굳어졌지만 금방 풀었다. 보두앵이 단단히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
〈남부 왕국 서부 지역〉
낙엽이 진 숲에서 검은 이끼가 서로 엉겨붙으며 빠르게 증식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길의 양옆으로 타고 흘렀다.
숲 깊은 곳에서는 입이 틀어막힌 인간이 벌벌 떨면서 살이 쑥쑥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지에 들러붙은 얇지만 수백 개가 넘는 길쭉한 거머리 같은 것이 득실거렸다. 검은색에 반들반들하고 밟으면 금방 찢길 정도로 무른 몸을 지닌 〈검은 거머리〉는 꾸역꾸역 검은 이끼를 생산했다.
“으흐흡···흐흡···”
사지가 결박당한 채 눈물과 콧물을 질질 짜는 산적이 그 모습을 보며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순식간에 살가죽도, 뼈도, 피도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 자신의 산적 동료를 보며 울부짖고 싶었지만 재갈이 물려서 무엇 하나 말하지 못했다.
“그릅.”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수〉 〈쇠사슬 괴인〉이 트림을 하면서 한 손으로 단숨에 대기하고 있는 산적 하나의 목을 움켜쥐어서 검은 거머리가 득실 거리는 곳에 던져 넣었다. 검은 거머리가 짓눌러 죽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나올 것이다.
이 구덩이는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구덩이였다.
신장이 2미터에 달하는 〈마수 쇠사슬 괴인〉은 마신의 충직한 종자였다. 그들은 던전에서 마신의 힘으로 이 세상에 도착한 마수였다. 마신장을 따르며 오직 이 세상을 마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인 자들이었다.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전투 지능이 뛰어나고 복잡한 명령도 수행할 수 있었다. 상호 교류가 아니라 일방향 통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수는 비단 쇠사슬 괴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적들을 잡는데 동원된 〈마수 약탈자〉들도 수십이 숲에 있었다. 그들은 탁월한 척후병이었다.
녹슨 무기를 사용하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성한 곳 하나 없고 때때로 몸의 균형 밸런스가 맞지 않고 꼽추 등의 결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광기에 물든 눈은 그들이 인간의 형태를 한 〈마수〉임을 잘 보여줬다.
“으흐흑···”
재갈에 물린 입에서 울음소리가 퍼져나갔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서부에 퍼지는 검은 이끼는 〈키메라 보급로〉의 기본이 되고 있었다. 한 번 확장되고 나면 생명체를 사용하지 않고, 대지의 힘으로 양분을 끌어올려 식량을 생산해내는 〈키메라〉였다.
순찰자들은 이 〈키메라 보급로〉를 깨닫지 못했다.
마수들은 이미 서부를 침략하며 땅따먹기를 시작했고, 그것에 밀려서 후퇴하기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정규군이 결성되기 전까지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또 겨울이 시작되면 마수들이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기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6149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 : 어때요, 참 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