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7 <-- 트롤 토벌 -->
다그닥.
드낙과 기사들만 앞서서 나갔다. 평야의 끝, 산길의 시작인 곳에는 한 무리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의 의사는 없어 보였고, 오히려 환영하는 눈치였다.
흉갑을 입은 채 장비를 제법 갖춘 평범한 인상의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기세가 제법 단단한 바위와도 같은 것을 보니 자유기사로 보였다.
“제 이름은 〈바림 도르시안(Balim Dorsian)〉입니다. 어디에서 오는 토벌대입니까.”
가장 선두는 가장 주인공이 되지 못한 〈찰리 린파이크(Charlie Linpike)〉였다. 그가 〈자유기사 바림〉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팔로 나이트의 토벌대다! 이곳의 저항군인가?”
“예. 맞습니다. 〈약초 용병단〉 9명과 〈콩과일 마을〉의 민병대 30명을 이끌고 있습니다.”
바림은 능숙하게 자신의 병력 현황을 말했다.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산에서 사는 마을이었기에 동원 가능한 병력이기도 했다. 추수할 것도 적었기에 가을에도 남자들이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다행이군.’
큰 마을이라서 살아남은 〈돼지 진흙 마을〉과는 다르게 산골 마을의 경우 생존할 수 없다고 여겨졌는데, 살아서 저항군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희망적이었다.
이곳에서의 전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곳에 있는 정예 몬스터는 무엇인가?”
가벼운 질문이었다. 희망찬 기대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바림 도르시안은 폭탄을 떨어뜨렸다.
“〈검은 무늬 트롤〉이라는 놈이 이 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홀로 뛰쳐나와 몬스터든 인간이든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죽이는 잔혹한 놈입니다.”
그 말에 찰리 경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트롤이라고?!”
그 외침이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하지만 병사들의 동요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시체 언덕의 기사〉가 있었다. 오히려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들은 산길 초입에서 벗어나 평야에 야영지를 새로이 했다. 영역 동물인 트롤 때문이었다. 상당한 병력 수였기에 트롤은 이미 낌새를 알아차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대책 없이 산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트롤은 일반 기사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했다. 제법 악명을 떨치거나 토벌에 실패한 트롤의 경우 산군(山君)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실레아가 토벌에 실패했어도 토벌 중 눈 내부에 철조각이 여럿 박혀서 실명을 하게 했기에 산군이라고 불리지는 못했다.
이실레아 또한 도주에 성공했고, 트롤은 재생 불가능한 상처를 얻었다. 그렇기에 서로 무승부라는 셈이다.
신체의 재생과 동시에 이물질이 밖으로 나오는 것은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덕에 한 번 신체 내부에 이질물이 들어가면 트롤의 전투력은 급격하게 꺾이는 게 보통이었다.
“와.”
민병대들은 분위기가 있는 정규병들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하나하나가 베테랑이었고, 신참조차도 군기가 잡혀있어서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대장, 보두앵의 철기들입니다.”
“나도 눈이 있다. 씨발, 제대로 된 토벌대다. 몽펠리에가 칼을 빼어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겠는데.”
“다른 가문들이 치안 확보하는 와중에 벌써부터 여기까지 오다니. 미쳤는데요?”
“그러니 명문이지. 북부의 다룬 가문과는 다르게 돈도 많을 테고.”
〈약초 용병단〉은 산을 다니며 약초를 취급하기 때문에 소문에도 밝았다. 상인들과 직접적 교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3년, 5년, 10년 된 약초를 취급하기 때문에 다양한 영지를 다니는 용병단이었다.
지금은 자유기사에게 고용된 몸이었다. 물론 트롤과 싸우지는 않았다. 그저 마을 사람들의 수호였다. 정규병 또한 민병대와 용병대를 보고 속으로 코웃음쳤다.
궁수, 창병, 검수, 농기구를 든 민병대는 말 그대로 잡탕의 무리였다. 용병들 또한 소수로 움직이기 때문에 병과가 통일되지 않아 아무렇게나 섞여져 있었다. 결코 강군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쪽으로 옮겨라!”
“예!”
병사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원탁회의를 위한 테이블을 조립했다. 그곳에 자리를 잡은 기사들은 바림을 위해서 통성명을 했다. 하나같이 쟁쟁한 가문이었고, 드낙이 자신을 소개할 때는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이스핀이라고 합니다. 드낙 님의 호위 기사입니다.”
“성이 없소?”
“예.”
“허···”
‘귀족도 아닌 비천한 핏줄 놈에게 전신갑주를? 어처구니가 없군.’
성씨조차 없는 이스핀을 보고는 탄식까지 했다. 주제에 맞지 않게 전신갑주를 지니고 있었기에 본심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드낙이 불편하게 기침을 하자 이내 이스핀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하오. 보기 드문 일이라서··· 무례를 용서해주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하하하.”
‘개새끼가. 전신갑주도 없는 놈이. 신분 믿고 깝죽거리네?’
이스핀이 웃어넘겼지만 배알이 꼴렸다. 호수 마을에서 축하 속에서 성씨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당장은 평민인 이스핀이었다. 아주 제대로 성을 하사받게 해준다고 드낙이 말했기에 꿋꿋이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드낙 님은 결코 자신의 부하를 저버리지 않는다. 한없이 자신의 부하에게는 따스하신 분이시다. 호수 마을로 돌아갈 때, 나는 귀족이 된다.’
누구 맘대로? 드낙 불파겐 마음대로였다. 남부 왕국의 공인받은 작위는 아니겠지만, 성을 얻는 것은 불파겐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했다. 더욱이 〈버려진 영지〉에서만큼은 이스핀 또한 귀족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드낙이 정계에서 어떤 대우를 받느냐에 따라 밖에서도 대우를 받을 수도 있었다.
이스핀은 홀로 칠주를 하사받았기에 드낙의 광신도가 되어있었다. 이런 굴욕은 드낙이 말하는 약속과 보상에 비하면 오히려 즐길 수 있는 고통이었다.
“우리는···”
찰스 린파이크가 토벌대의 간략한 이동을 말해주었다. 자세한 내막은 몰랐지만 그림은 그려질 것이다. 몽펠리에에서 시작된 토벌의 흐름이다. 잔가지로 다른 가문이 발을 댈 수 있겠지만, 앞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콩과일 마을의 상태를 말해보시오.”
“마을은 파괴되었고, 굴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트롤은 산의 정상에 있는 굴에 똬리를 틀었습니다. 몇몇 절벽에서 산을 살피기도 합니다.”
“생존자는 몇이나 되오?”
“180명입니다. 죽은 사람은 20명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면 양호한 일이었다. 산을 타고 흐르는 계곡물 덕분이었다. 물고기가 많았고, 양식을 위해서 작은 둑을 많이 만든 덕분이었다. 개구리 또한 많았고, 뱀도 자연스럽게 많았다.
산임에도 풍족했다. 비록 콩을 심을 뿐이지만 계단식 농장도 있었고, 산 전체에 과일나무가 많은 것이 〈콩과일 마을〉이 있는 산이었다.
그 때문에 트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기도 했다. 풍족한 산이기 때문이다. 먹음직스러웠을 것이다.
“걸리는 게 있다면 몬스터도 공격한다는 것인데. 두 눈으로 본 것인가?”
“예. 평야에 있는 펄 발드를 씹어먹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혹 부족하십니까?”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증거를 봤으니 충분하오.”
“〈검은 무늬 트롤〉의 특징은 무엇이오?”
“악마 같은 놈입니다. 〈검은 불꽃〉을 사용하며 불에 대한 내성이 대단합니다. 기름으로 붓고, 불을 질렀는데도 살아남았습니다. 살이 질기기도 질기고, 말 그대로 괴물입니다. 몇 번 함정에서 살아남고 나서는 잘 걸리지도 않습니다.”
속사포처럼 정보를 쏟아냈다. 그것을 능숙하게 들으면서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디로 연거푸 토벌에 실패한 경험 많은 트롤이라는 소리였다. 거기에 〈흑마법사〉의 증거이기도 한 〈악마의 힘〉인 〈검은 불꽃〉을 사용하기까지 했다.
“너무 커 버린 놈이군.”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싸움을 못하는 놈이기도 하오.”
수비가 아닌 공격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또 마이너스였다. 인간에게 좋은 이점이 속속 사라져갔다. 결론은 토벌 불가능이었다.
“피해 없이 잡아내려면 고위 기사 둘은 있어야 하오.”
〈에녹 히터(Enoch Heater)〉는 그렇게 말하며 드낙을 바라보았다. 다른 한 명은 당연히 〈아크온 몽펠리에〉였다. 두 사람이 모여야 피해 없는 토벌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놈이 무리를 끌고 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오. 아무래도 실패작 같은데.”
악마 싸이클롭스의 피를 각성한 트롤에게서 태어난 놈이다. 모든 것이 불안정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무리를 이끌지 못한 성격이 된 것일 터였다. 혹은 도망자가 된 것인지도 몰랐다.
수많은 추측 속에서도 드낙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이 말할 기회를 노렸다.
아크온과의 공동전선? 생각도 안 했다.
‘드잡이질 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트롤의 장점은 재생력이었지만 그건 지구력이 아니었다. 재생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장기전은 트롤의 장기로 여겨지기 쉽지만 그건 큰 오해였다. 트롤은 활력마저 재생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음···드낙 경?”
드낙이 기세를 접을 줄 모르자 스웬슨 보두앵이 그를 불렀다. 집중이 깨진 드낙의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부르셨소? 트롤을 토벌할 생각에 그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소.”
작게 웃음 짓는 그 모습을 보며 모든 이들이 침을 삼켰다. 혼자서라도 트롤을 토벌할 기세였기 때문이다. 불파겐의 이름은 알아도 드낙에 대해서는 모르는 〈자유기사 바림〉이 그를 만류했다.
“놈은 보통 트롤이 아니오. 다른 트롤보다 크기도 클뿐더러, 악마의 힘조차 휘두르고 있소. 검은 무늬에서 타오르는 검은 불꽃이 사방팔방으로 불똥이 튀기는데, 버틸 재간이 없소.”
그 말을 들은 기사들이 신음소리를 냈다. 초월의 힘이 담겨있는 검은 불꽃은 전신갑주를 입고 있어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낙은 군침이 돌았다. 침을 꼴딱 삼켰다.
‘트롤 거기에 검은 불꽃까지.’
물론 검은 불꽃은 기대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피해야 했다. 하지만 트롤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생명력의 종족이 바로 트롤이었다. 드낙이 그 능력을 얻으면 죽기도 쉽지 않았다.
*
“찍찍!”
배가 부풀어 오른 〈핏빛쥐〉가 출산을 했다. 빛 하나 없는 곳에서 양수가 터져 나오며 작고 무른 뿔을 지닌 새끼 쥐들이 튀어나왔다.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혀로 핥아서 새끼들의 젖은 몸을 마르게 하며 혀에 있는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었다.
“끼이. 끼이.”
새끼 쥐들은 숨통이 트이자마자 작게 소리를 냈다. 보통 쥐보다 컸다. 그 숫자는 30마리가 넘었다. 암컷들이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했기 때문에 새끼 쥐들의 숫자는 대단히 많았다.
그런 새끼 쥐들 중에는 뿔이 없는 새끼 쥐는 없었다. 하지만 그 뿔의 크기는 매우 작았다. 큰다고 성장하지도 않았다. 업(業)으로 생성되는 것이 뿔이기 때문이다.
더 깊은 굴에서는 수컷 〈핏빛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찍찍! 그, 분은 우리의 빛이다!”
드낙을 찬양하기도 하고.
“그분을 도와야 한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가 어둠에서 암약하기를 원하신다.”
지금 상황을 돌파하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핏빛쥐들은 능숙하게 인간의 말을 했다. 밤마다 들려오는 것이 인간의 말이었다. 10일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지닌 것이 〈핏빛쥐〉들이었다. 괜히 〈일각수〉가 아니었다.
덩치도 진돗개 수준에 불과한 핏빛쥐들은 영악함이 있었다.
“숫자를 늘려야 한다.”
그중에서도 당연히 대장질을 하는 핏빛쥐가 있었다. 엄격하고 근엄하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뒷짐을 진 핏빛쥐였다. 이름은 아직 없었고 그저 〈대장쥐〉라고 불리는 핏빛쥐였다.
드낙이 별 신경을 안 썼기에 핏빛쥐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핏빛쥐들이 드낙의 의도를 너무나도 잘 캐치해서 드낙에게 전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드낙이 핏빛쥐들에 대해서 까맣게 잊으며 〈검은 무늬 트롤〉을 잡아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들의 숫자는 삽시간에 11마리에서 41마리로 늘어났다. 그중에 30마리는 〈일각수〉라고 부르기에는 형편없었지만, 쥐라기엔 거대했다.
“불이라는 것도 재미나던데. 그 어떤 고기도 맛있게 변하게 하는 소금도 내가 훔쳐 왔지.”
그중에서 한 마리의 핏빛쥐는 부싯돌을 탁탁 부딪치며 굴에 불을 피우기도 했다. 모두 눈부시다며 바로 꺼버리려고 했지만 소금을 뿌리고 피를 제거한 두더지를 굽는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며 군침이 주르륵 떨어졌다.
야생의 생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먹던 핏빛쥐들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맛있는 냄새였다.
〈대장쥐〉는 입에 기름이 범벅한채로 큰 선언을 했다.
“두더지 양식장을 건설하고, 지하에서 찾은 돌소금을 가득 모아라!”
모든 쥐들이 찍찍거리며 대장쥐의 선언에 옹호했다. 모두 입가에 두더지의 기름으로 가득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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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