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4 <-- 트롤 토벌 -->
평야에서의 전투는 서로 패를 다 까고 시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크게 달랐다. 병과를 숨기기가 쉬웠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평야를 침략한 몬스터 군대는 망루도 없었다. 평야 밖으로 나온 인간 군대 또한 몬스터 군대의 자세한 병과를 확인하는 것은 요원했다.
자연히 기병에 가려진 보병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더욱 서로 거리가 멀다면 말이다. 하지만 드낙의 경우는 달랐다.
〈까마귀 카이야〉는 영악했고, 능숙하게 흙바닥에 대충 그림을 그렸다. 딱딱 포인트가 있었기에 능히 적의 군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허. 이거 몰랐으면 크게 당할 뻔했소.”
그 신기한 광경을 보는 〈스웬슨 보두앵(Swenson Baudouin)〉이 감탄했다. 뛰어난 정보력이었다.
전력이 두 배나 다름없었다. 그걸 몰랐다면 낭패를 봤을 것이다.
적은 기병 500으로 여겨졌는데, 실상은 달랐기 때문이다. 말 없는 〈펄 발드(Fur Bald)〉들이 가득했다. 족히 1천의 군세였다. 드낙은 절로 고블린 군세와 붙었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 호쾌함.’
다시 한 번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적은 전면전을 생각하고 왔기 때문이다. 부딪쳐온다는 것은 드낙이 활약할 판을 만들어주는 것과 같았다.
‘전신갑주에 있는 마력을 모두 써야겠군. 그래도 승세를 잡을 수 있을지.’
〈에녹 히터(Enoch Heater)〉가 인상을 찡그렸다.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병 60에 보병 100으로 1천과 부딪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적이 기만술을 걸었기 때문이다.
“보병을 숨기다니, 지독한 놈들이오. 완벽하게 당했군. 안 그렇소?”
특히 카이야가 소용이 없었던 것이, 1일씩 차이를 두면서 적의 군세가 모였기 때문이다. 정찰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졌음에도 적이 날을 맞추어서 차별적으로 합류했기 때문에 함정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전장이야. 적 지휘관이 평야의 특성을 잘 알아.’
적보병이 합류한 것은 격돌 하루 전 날이었고, 이미 평야 타격대와 함께하고 있는 보급대와 자신들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마을로 가려면 3일이 걸렸고, 돌아간다면 마을에 있는 보병들은 전멸할 것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지 패배만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영악해도 보통 영악한 것이 아니었다. 평야에 대한 전략적 시점을 가지고 있었다. 몬스터로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이걸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500과 1000은 확실하게 달랐다. 두려움도 컸다. 하지만 이미 때가 지났다. 남은 것은 각오를 다지고 적과 맞서는 것뿐이다.
“한 방 승부요.”
드낙이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쥐었다. 놈들의 기병을 확실하게 박살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련술의 업(業)〉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았다.
“내일 정오에 싸움이 시작될 것이오. 놈들은 야습보다는 확실한 승부를 원할 것이오.”
변수가 많은 어둠보다는 시야가 잘 확장된 낮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수가 많기 때문이다.
“중갑기병은 중앙돌파를, 경기병은 살아남은 적기수를 활로 잡아야 할 것이오. 전차는 킨 궁기병의 호위를 받아 측면을 지나 보병을 처리해야 할 것이오.”
그들의 전술은 복잡하지 않았다. 보두앵의 중갑기병이 드낙과 함께 중앙을 칠 것이다. 보두앵의 중갑기병은 합류를 했기 때문에 20기가 되어있었다. 이 정도면 한 번의 돌파는 가능했다.
자연스럽게 보두앵 경기병은 좌익을 맡았고, 킨 궁기병은 노타블 전차를 후방에서 활약을 할 것이다. 물론 좌우익은 중앙 중갑기병의 진형보다 100걸음 떨어진 채 한발 늦게 투입될 것이다.
“중갑기병이 돌진하기 전에는 활을 쏘면 안 될 것이오. 관심은 철기(鐵騎)에 집중되어야 하오.”
조금이라도 적이 드낙에게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중갑기병대의 후방에는 보급대를 이끌던 보병들이 뒤따르고 있기도 했다. 드낙이 난전으로 만들면, 보병이 기병에 합류할 것이다.
“전세는 열악하지만, 우리는 적들의 예기를 꺾을 수 있소.”
기사들이 지닌 〈다수 마법〉. 그것은 몬스터들에게는 없는 파괴적인 행위였다. 드낙이 실패해도, 일전(一戰)을 벌일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전신갑주에 있는 마법 덕분이었다.
전열을 피떡으로 만들고, 후방은 시체에 주춤할 것이고 그때 중기병이 들이닥치면 적은 두 갈래로 찢길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법을 감당하기에는 펄 발드는 주술사가 없었다.
있다고 해도 전쟁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열에 열이 그렇다. 대부분 강제로 보내도 꽁꽁 숨어서 인챈트나 거점 방어에만 배치되는 게 보통이다. 또한 책임자 외에는 거의 다 평민 마법사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마력의 축복은 피를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푸르륵!”
두 진영이 서로를 보며 마주 섰다. 평야였기에 숨을 곳 따위는 없었다. 있다고 해도 미리 작업을 해두지 않았으므로 서로 안심하고 있었다.
가장 선두는 드낙이 있었고, 스웬슨 보두앵은 그런 드낙의 조금 뒤에 위치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드낙을 계속해서 주시할 것이다. 그러기 위한 전투였다. 그가 이렇게까지 나온 이유는 다분히 드낙의 위세 때문이었다.
너무 튀어나오면 정에 맞기 쉬운 것처럼, 강한 힘은 다른 이들의 경계를 받기 좋았다. 그건 기사도 다를 바 없었다.
다그닥.
철그럭.
중기병들이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30기에 불과한 중기병은 펄 발드에게 너무나도 적은 숫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옆구리에 렌스를 파지하고 있었기에 보통 이상으로 조밀하게 진형이 붙어있어서 매우 적어 보였다.
〈재빠른 갈리악〉이 코웃음쳤다. 반들반들한 머리와는 다르게 전신이 검은 털로 뒤덮여있었다.
“여기까지 온 것이 신기할 정도로 적은 숫자다! 하하하!”
펄 발드들의 기세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기병으로 그대로 부딪치고, 보병이 투입되어 싸우면 그냥 이기는 싸움이었다. 죽음에 대한 감각이 무딘 것이 몬스터들이었다. 또 흉악한 본성은 전사로서의 천성적 재능이나 다름없었다.
‘마법을 쓰는 강철을 두른 전사라고 해도 한계는 있는 법이지.’
인간은 몬스터와 다르게 기사에 대한 믿음, 명성, 시민에 대한 병사들의 정신훈련, 훈련으로 거듭된 자신감, 전술적, 전략적 연전연승을 통한 높은 경험치로 이곳에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악!!!!”
드낙이 고함을 내질렀다. 평야가 떠나가도록 컸다. 달리던 펄 발드들의 말들이 주춤하는 모습에 〈재빠른 갈리악〉이 조금 뒤로 물러났다.
“히힝!”
“이거 왜 이래?”
‘미친?’
드낙을 경계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펄 발드들의 진형이 중앙 쪽에 몰리게 되었다. 좌우익에는 불과 100마리도 없었고, 헐거워졌다. 보병은 논외였다. 아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서 그냥 달리는 말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바람은 인간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펄 발드들은 인간들이 일으켜 세운 흙먼지가 자신들에게로 오자 시야가 어지러워졌다. 자연스럽게 사거리가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났다.
언제 쏴야 할지 몰랐다.
‘분간이 안 가네.’
투창을 쥔 펄 발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보통이라면 소리를 통해서 적과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었겠지만, 무려 천이 넘는 싸움터였다. 거기에 기병이 500이니 말발굽 소리가 지진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청각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민감하면 민감할수록 둔감해지는 것이 빨랐다. 인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펄 발드처럼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이 베테랑 기수들이었다. 애초에 라이트 렌스로 무장해있는 중갑기병들은 투척할 수단도 없었다. 왼손은 방패를 들고 있었다.
휘휙! 쉬익! 터덩!
투창이 땅에 꽂히거나 방패에 맞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적었다. 상대의 모습이 흙먼지에 가려졌기 때문이고, 바람이 역풍이라 실제로 던지는 힘에 비해서 멀리 가지 못했다.
중기병들은 방패를 지니고 있었기에 투사체에 한 기도 다치지 않았다. 투창이 방패에 박힌 중기병은 방패를 버렸다. 길게 덜렁거리는 투창이 박힌 방패를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덜렁거리는 투창 때문에 방패의 가드가 훅 내려가고 달리는 말을 지렛대처럼 방해할 수 있었기에 바로 버려야 했다.
〈스웬슨 보두앵(Swenson Baudouin)〉의 목소리가 보두앵 기수들의 귀에 들려왔다.
“보두앵 가문을 위하여!”
“우!”
“이 땅을 위하여!”
“우!!”
“북부를 위하여!”
“아!!!”
“차지이이잉!”
“우와아아!”
모두 충격을 대비하며 고함을 내지르며 기세를 단단히 뭉쳤다. 날카로운 창이 되었다. 창을 던질 듯이 보이는 펄 발드 기수들이 그들에게 보였다. 하지만 그들 뜻대로는 되지 않았다.
‘지금이다!’
드낙이 고함을 질렀다. 중기병들의 돌진에 맞춰서였다.
“그아아아아!!!!”
드낙은 펄 발드들을 보자마자 고함을 내질렀다. 〈조련술의 업〉을 통한 명령은 그저 기세와 의도만으로 충분했다.
“푸히히힝!”
조련된 지 오래되지 않은 야생마들은 서로 양옆으로 움직이며 엉망으로 부딪쳤다. 갑자기 말머리가 들어올려져 멈추는 말도 있었다. 뒤에서 달리던 말과 뒤엉켜서 쓰러졌다.
“헉!”
갑자기 옆으로 움직여서 낙마하는 펄 발드도 있었다.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기민하게 판단하는 것은 베테랑도 힘든 일이었다. 넘어진 펄 발드의 머리를 걷어차고 말이 지나갔다.
또한 다른 기사들이 〈다수 마법〉을 사용해서 사방을 폭격했다. 화염구가 허공을 지나가며 불똥을 우수수 쏟아내기도 했고, 드낙의 얼음 구역도 측면에 나타났다. 날카로운 바람이 폭풍처럼 불어와서 사정없이 할퀴었다.
마법의 태풍이 한 번 불고, 중기병들이 혼란스러운 펄 발드 기병들의 진형으로 뛰어들어갔다. 펄 발드가 정신없는 와중에도 창을 찔렀다. 하지만 그전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콰직!
전방에 있는 펄 발드의 가슴이 뻥하고 라이트 렌스에 꿰뚫렸다. 동시에 렌스가 순식간에 꺾여나가며 보두앵 기수의 손에서 놓아쳤다. 기수는 기병용 검을 들지 않고, 나무로 된 라이트 렌스를 꺼내들었다. 돌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늘 높이 솟아올려진 새로운 라이트 렌스가 천천히 내려지며 그 사이에 옆구리에 능숙하게 끼웠다. 무리해서 세우지 않고, 천천히 내리면서 끝에 가서 옆구리에 있는 고정대를 이용해서 단번에 앞으로 겨누었다.
그 사이에 세 마리의 말에서 낙마한 펄 발드가 마갑에 둘러싸여진 말에 부딪치며 나뒹굴었다. 검을 휘두를 새도 없었다. 서로 엉겨 붙으며 쓰러지고 뒹굴면서 흙먼지가 가득했다.
오직 한 방향으로 끝없이 중기병이 내달렸다. 그리고 중기병 기수의 앞에 창을 든 펄 발드의 보병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쉬익!
허리를 틀면서 힘을 주며 라이트 렌스를 그대로 투척했다.
퍼버벅!
“끄윽?!”
경무장을 하고 있는 펄 발드였다. 털은 화살에는 강했지만 180cm의 라이트 렌스에는 무력했다. 단번에 하나의 렌스에 3마리의 펄 발드가 관통되어서 꿰였다.
퍽!
시체를 말이 부딪치며 지나갔고, 기수들이 기병용 검을 빼어들었다.
“죽어라!”
서걱!
“케엑!”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찔러오는 창 하나 없었다. 렌스 투창 때문에 선두의 3열까지 박살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4열에 있는 펄 발드 보병은 중기병을 보지도 못했다. 앞에 있는 몸에 꿰인 채 벌벌 떨며 죽어가는 동족 때문에 시야가 많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보다 2배는 높은 곳에 있는 중기병들은 보병을 거침없이 썰었다.
완벽한 돌파였다.
“크아아!! 인간 놈!”
창이 마갑을 두들기고, 때때로 기수를 위협했지만 결코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기세가 대단해도 만용에 불과했다. 중기병의 검에 목이 달아나거나, 팔이 잘렸다.
“끄아아악!”
중기병들이 보병진을 꿰뚫고 평지를 내달리며 기수를 돌렸다. 말들이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전력으로 질주했기에 숨이 매우 거칠어져 있었다.
“기병에 원거리 무기를 전부 쥐여줬나 보군. 보병들이 창 하나만 들고 있다니.”
기수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정보를 나누었다. 난전을 위해서 동원된 펄 발드 보병은 투척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만약 있었다고 해도 렌스 투창 때문에 중기병에게 위협이 될 거리에서 던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피해 확인!”
“부상자 전무!”
“보두앵 경이 없습니다!”
“드낙 경 또한 없소!”
낙오는 아니었다. 그 스웬슨 경이 낙오? 베테랑 기수들은 코웃음쳤다. 숨을 고르기 위해서 벗었던 투구를 다시 썼다. 다시 한 번 돌파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라이트 렌스가 천천히 내려갔다. 능숙하게 옆구리에 끼고, 고정대에 튕겨 요령 좋게 앞을 겨누었다.
두두두두.
펄 발드 보병의 뒤통수가 중기병에게 보였다. 그리고 흙먼지를 지나며 바람의 태풍이 펄 발드에게 날카로운 상흔을 남기며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다수 마법〉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3명의 기사가 닥치는 대로 마법을 터트리고 있었다. 드낙이 적기병을 무력화시킨 것만으로도 이미 전투는 끝이 나버렸다.
500기의 기병을 홀로 무너뜨린 것이다. 보병 500마리를 감당하지 못할 기병들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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