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2 <-- 트롤 토벌 -->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야생마를 탄 〈펄 발드(Fur Bald)〉들은 진형이라는 것도 없었다. 서로 간격이 헐렁했고, 개개인들이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저 떼처럼 몰려온 경기병이나 다름없었다.
슈욱! 텅!
무식한 충격량을 지닌 투창이 드낙의 등판을 후려쳤다. 전신갑주를 관통하지는 못했다. 미끄러져서 휘어져 바닥에 꽂혔다. 마법적 처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른 방어구와는 다르게 미끄러지기 쉬웠다.
‘섬뜩하다.’
하지만 드낙은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화살이었고, 투창은 정교하게 조준을 했다. 돌팔매질 때문에 성기사 케이슨은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표적이 하나 줄어든다는 것은 다른 표적에게 자연스럽게 일점사가 이루어지게 만들었다.
몽펠리에의 보급 전신갑주는 그럼에도 단단함 하나만큼은 놀라웠다. 이스핀은 균형을 잃고 엎어지기도 했지만, 전신갑주는 그런 형편없는 이류 자유기사를 완벽하게 보호했다.
“〈얼어붙은 표적 독수리(Frozen Target Eagle)〉.”
꽈자작!
얼음 독수리가 솟아올라 2기의 펄 발드를 피떡으로 만들었다. 피가 얼어 날카롭게 변해 주변으로 터져나가며 3기의 펄 발드가 피해를 입었지만 전투 불능에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반들반들한 머리와 도마뱀의 꼬리를 빼면 전신이 털로 뒤덮인 펄 발드였다. 선천적으로 냉기에 대한 저항이 있었고, 얼음 파편은 날카로워도 질량이 낮았다.
털 안으로 쑥 들어가서 가죽을 조금 긁는 게 전부였다. 피조차 나오지 않았다.
“까리악!”
펄 발드들은 발악을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드낙은 이득을 취했다. 사실 이들을 막으려면 그냥 얼음 방어 마법을 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을 죽이기 위함이다.
스웜 전술을 펼치는 펄 발드들은 결코 드낙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올가미처럼 둥글게 묶어놓은 밧줄을 팽팽 돌리는 것도 한 번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전투 중에서 가장 피해가 서로 적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얼음 독수리에 죽어도 2~3마리가 전부였다. 워낙 스피드가 빠르고, 멀리서 돌았기에 얼음 구역을 수십 번 사용해야지 이 일대를 뒤덮을 수 있었다. 다수 마법은 많은 공간을 사용하는 기병에게 타격을 주기 매우 힘든 마법이었다.
30분 동안 모든 투창(투사체)를 소모한 펄 발드 별동대가 빠졌다. 드낙은 고작 20기를 마법으로 죽였을 분이었다. 살아남은 야생마들이 터덜터덜 평야에 우두커니 서있었고, 바닥에는 펄 발드의 시체가 있었다.
“퉷!”
‘싸움 X같이 하네.’
가장 답답한 전투였다. 호쾌하게 달려들지 못해서 사상자가 극한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스핀은 전신갑주를 입고 있었지만 몸 곳곳에 멍과 피멍이 들어서는 골골거렸다. 충격이 모두 전신갑주에 흡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흉갑조차 종잇장처럼 뚫어버리는 투창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 어떤 방어구도 100% 충격 흡수는 불가능했다.
“휘익!”
휘파람을 불며 능숙하게 살아남은 5필의 말을 드낙이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벼락같이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아니, X발. 그냥 〈조련술의 업(業)〉으로 말들을 통솔했으면 되었잖아?’
드낙이 가진 능력 중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초월적인 힘이 바로 〈늑대의 왕관〉과 〈조련술의 업〉이었다. 두 가지는 기적과도 같았고, 대마법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특히나 조련술의 업은 고블린 1만 마리를 죽인 업으로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드낙이었다. 일각수를 지배하고 있음에도 그 일각수가 진돗개 수준일 뿐이며 쥐이기 때문에 경각심도 가지지 못했다.
“몸을 돌보시오.”
케이슨은 이스핀을 살폈다. 그는 끙끙 소리를 냈다. 그의 방패는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그만큼 놈들의 투창이 대단했고, 힘이 좋았고, 명중률이 상당했다.
드낙의 경우 〈투우(鬪牛)의 중갑운용 노하우〉 능력도 존재했기에 전신갑주의 운용이 제법 있었다. 등판에 몇몇 맞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격을 흘러냈다. 마법을 통해서 〈킬 더 배틀〉이 발동된 것도 컸다.
가장 노출이 심했던 드낙이 멀쩡한 것을 보며 이스핀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미 전부터 느끼던 것이었지만 오늘은 더 심했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구나.’
전신갑주를 가지면 자연스레 만족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스핀은 결핍감을 느꼈다. 끝없는 노력을 쏟아부을 텅 빈 우물이 이스핀의 앞에 보였다. 그건 때때로 절망처럼 보이기도 했다.
투창을 수거했다. 쓸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투창의 촉은 양질의 품질을 지니고 있었다. 화살 또한 마찬가지였다. 적당히 밧줄이 묶어서 놔두었다. 주변이 돌들로 가득해서 자리를 옮겨서 〈진흙 돼지 마을〉에서 오고 있는 원군을 기다렸다.
“어마어마한 양 아닙니까?”
근육으로 단단히 뭉쳐진 야생마는 크지는 않았지만 힘이 대단했다. 평야를 내달리다 보니 자연스레 지방보다 근육이 많았다. 그 덕에 펄 발드들의 투창, 화살은 상당한 양이었다.
화살 중에는 깃이 없는 것도 있었는데, 이런 걸 잘도 쏘았다. 궁술에 조예가 있다는 뜻이었다.
드낙은 오늘의 전투 경험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놈들을 일망타진할 생각을 가졌다.
“오랜만이오!”
〈스웬슨 보두앵(Swenson Baudouin)〉이 선두를 서고, 30기의 기병을 이끌고 드낙의 앞에 당도했다. 중갑 기사는 대부분이 나무로 된 라이트 렌스를 여럿 보유하고 있었다. 경기병들은 검과 방패 그리고 활을 지니고 있었다.
“펄 발그들과 전투를 경험해보셨소?”
드낙은 거침없이 말위에 올라타며 능숙하게 말을 몰았다. 그 모습에 스웬슨이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투구 속에 가려져서 그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투구는 항상 쓰고 있었다.
“당연한 소리를. 놈들은 〈큰 마을〉을 함락시키려고 계속해서 기웃거리고 있소.”
“강하게 후려치지 않는 것을 보면 지연전 아니오?”
스웜 전술은 장단점이 극명한 전술이었다. 외곽을 약탈하기에는 좋았지만, 방비가 이루어진 곳을 뚫는 게 힘든 전술이었다. 그들이 큰 마을을 아직 함락시키지 못한 이유기도 했다.
이 평야 곳곳에 무리가 떠돌아다니고 있을 것으로 추측됐다. 스웬슨은 그 말을 듣자 그럴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지도 모르오. 보급대를 습격하기 위해서 미리 평야를 점령하는 것에 그쳤을지도.”
길을 따라 〈진흙 돼지 마을〉에 드낙은 도착할 수 있었다. 노획한 투창과 화살을 병사들이 받아서 빠르게 목책 위로 옮겼다. 곳곳에서 지하에 식량 창고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고 있었는데, 땅을 퍼올려 물과 섞어 진흙으로 만든 뒤에 목책과 집 곳곳에 쏟아붓고 있었다.
“왜 저렇게 하는 것이오?”
드낙의 말에 스웬슨이 짧게 대꾸했다.
“놈들이 화공을 한 적이 있어서. 계속해서 공격 수단이 늘어나고 있소. 그 때문에 집 3채가 타오르기도 했소.”
드낙은 다른 기사들과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대부분 피곤함이 가득했다. 펄 발드의 공세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는 어느 정도 입었소?”
“서로 원거리 사격전만 해서 그리 대단하지는 않소. 무서운 투창도 위로 쏴야 했기에 부상자만 있을 뿐이오.”
〈성기사 케이슨〉은 병자들을 보살피고 싶다고 말했고, 병사 하나가 곧바로 안내해주었다. 성기사와 사제는 선두 보급대에 소속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토벌은 이제 시작이었다.
드낙이 합류하자 새로이 〈원탁 회의〉가 열렸다. 회의를 주도한 것은 스웬슨 보두앵 경이었다. 평야에서의 점유율을 두고 펄 발드와 앞으로 싸워가야 했기 때문이다.
“펄 발드들은 3일~5일의 간격을 쉬고, 내리 3일을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되돌아가고 있소. 큰 마을의 목책 내구력을 깎아먹고, 우리를 서서히 죽여나가겠다는 방법을 쓰고 있소.”
〈찰리 린파이크(Charlie Linpike)〉가 이야기를 받았다.
“실제로 펄 발드들의 공성 실력은 나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소. 화공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증거요.”
모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까맣게 탄 집을 보면 섬뜩하기도 했다. 가을이었기에 바람이 크게 불고, 밤낮으로 역풍이 간간이 찾아와서 때만 잘 맞으면 지옥도가 펼쳐질 수 있었다.
무리하게 땅을 파내며 진흙을 투입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병사들의 피로도는 계속 누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강고한 성이라 할지라도 화공에 내부가 타오르고, 성벽에 적병이 드잡이질을 하면 버티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본대의 숫자는 몇입니까?”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소. 매번 올 때마다 20~30기씩 많아지고 있소.”
상식적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수비를 통해서 이득을 내야 했다. 하지만 펄 발드들의 무기의 질이 매우 높아서 공성전에서 펄 발드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수 없었다.
버티기 바빴다. 인간의 장점이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크놀 철광산〉. 그걸 먼저 무너뜨렸어야 했소.”
드낙이 크게 아쉬워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이렇게 평야에 나왔지만 정답은 〈크놀 강철검〉에 있었다. 생각보다 조밀한 보급이 저들에게 있었다. 말 그대로 인간과 몬스터의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외눈 다크 트롤〉은 만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드낙은 철광산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기사들을 위해 간략하게 이야기해주었다.
“··· 다행이라면 후방 보급대가 어떻게든 그 철광산을 토벌할 것이라는 것이오.”
“문제는 그렇게 되면 허리가 가늘어지기 때문에 놈들과 평야에서 한 번은 싸워야 한다는 것이오.”
소수의 병력으로 보급대가 평야에 나올 것이다. 그곳에서 진흙 돼지 마을까지는 3일.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펄 발드가 후려칠 시간이 되었다. 평야에서의 시야는 대단히 넓었기 때문이다.
이에 드낙이 빙긋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말들에게 겁을 주어서 적들이 말에서 낙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믿고 출병하시지요.”
그 말에 기사들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드낙이 지금 당장 훈련된 말에 탄 기병을 낙마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좋소. 한 번 보여주시오. 수십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오.”
드낙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오.”
보두앵 가문의 경기병이 능숙하게 말에 올라탔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미 12년 이상을 자신의 애마와 함께한 베테랑 기수였다.
“와아아악!”
드낙이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가까이 있던 이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사람 같지 않은 성량이었다.
“히힝!”
“억!”
말이 크게 몸을 들어 올렸고, 기수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정말 무식한 짓이었다. 동시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소리를 지른 것으로 훈련된 말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훈련말은 야생마와는 달랐다. 소리를 지른다고 말이 귀신 본 것처럼 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혈통〉으로 〈마법〉으로 여겨졌다.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드낙을 상대로는 기병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블린 종족〉이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을 〈초월의 힘〉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검은 꿈〉의 기능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의 붉은 머리카락을 〈스웬슨 보두앵〉이 바라보았다.
‘불파겐 가문이 지니고 있는 혈통의 힘이 아니다. 수백 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해서 혈통을 더욱 개량한 것인가?’
고꾸라진 명문가는 수백 년 동안 칼을 갈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런 가문의 후예가 걸어온 길은 빈틈투성이였다. 자연스럽게 그 행보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가문의 마지막 후예라는 것도 거짓일 수 있다.’
괴물을 키워낸다는 것은 수많은 인간의 힘이 필요했다. 불파겐 가문의 부흥은 이미 이루어져 있을 수도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남부 왕국의 목에 칼을 대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용하기 쉬운 모습도 그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연히 불파겐에게 정치적 입지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도 큰 힘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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