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1<-- 트롤 토벌 -->
〈후방 보급대 소속〉 〈숲, 산 타격대〉
데보네이어(debonair) 가문과 하모니(harmony)가문 그리고 〈슈퍼브(superb)〉가문이 이 가장 먼저 〈옹달샘 숲〉에 도착했다. 그들은 피난민과 드낙의 개인 사병 2명을 만날 수 있었다.
〈래리 데보네이어(Larry Debonair)〉와 〈우브리 하모니(Ubry Harmony)〉, 〈랄프 슈퍼브(Ralph Superb)〉는 심기가 좋지 않았는데, 결국 모든 공을 독차지하는 것은 주력 방계 3가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드낙의 개인 사병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조금 흥미가 돌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피해가 많은 건가?’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순찰자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만 전해주었다. 〈옹달샘 숲〉은 이미 토벌이 완료되었고, 거기서 3일이나 멀리 떨어진 산에 있는 〈크놀 철광산〉에 대한 정보를 줬기 때문이다.
“전략을 왜 세운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군.”
래리 데보네이어가 짜증을 냈다. 명백한 공 가로채기였다. 〈선두 보급대〉가 가져야 할 공 이상을 탐했다.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철광산 토벌은 그들의 권리였지만 거리가 멀어서 총지휘관인 아크온 몽펠리에의 허락을 맡아야 했다.
‘당연히 못 받겠지.’
2일 뒤에 도착하는 후방 보급대다. 그때쯤 되면 이미 늦었다. 줘도 헛수고인 정보였다. 무엇보다도 〈크놀 강철검〉 때문이라도 70명에 불과한 타격대의 숫자로는 피해 없이 토벌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조잡해도 철은 철이다.’
특히 철제 무기를 생산하는 것을 보니 〈정예 몬스터〉가 있는 듯했다. 악마의 힘을 각성한 〈외눈 다크 트롤〉이 만들어내는 정예 몬스터는 격이 다른 몬스터였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여기에 있는 철광산이라면 저급한 철광산이오. 분순물을 말끔하게 제거하고 다시 만들지 않는 이상 형편없는 철만 생산될 것이오. 크놀들의 수준으로는 순철(純鐵)을 만들 화력이 없지.”
위협이 되지도 않다고 여겼다. 두 기사는 균일된 무늬를 가진 〈크놀 강철검〉을 자세히 보지 않고 넘어갔다. 자세히 봤다고 해도 탄소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므로 알 수가 없었다.
물결무늬가 좋다고 난리 치던 일본도는 깡통보다 못한 내구력을 지니고 있고, 비슷한 무늬를 지닌 다마스커스 강은 무시무시한 내구력과 탄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무늬가 모든 것의 척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허!”
〈크놀 철광산〉에 대한 판단을 뒤로한 그들은 길목마다 있는 부산물을 보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죽여댄 거야?’
부산물의 양도 많았지만, 뼈만 앙상한 것도 이상했다. 무슨 일이 이곳에서 벌어졌는지 매우 궁금해졌다. 천천히 부산물을 후방으로, 〈쌍둥이 성채〉로 보내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저물었다.
길목에 있는 부산물만 옮겼을 뿐인데도 양이 대단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숲에는 총 12곳에 달하는 고블린 부락이 있었고, 식량의 과도한 투입으로 인한 고블린 숫자가 대단히 많았다.
그 숫자는 1만에 달했다. 그 덕에 드낙은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조련술의 업(業)〉의 성취를 얻어냈고, 쥐에 불과하지만 일각수를 자신의 발아래 둘 수 있었다.
방패병 10명과 데보네이어 도끼수 20명, 하모니 중검수 10명, 슈퍼브 화살검수 30명.
총 70명의 병사들이 야영을 했다. 다음 날에 그들은 숲 내부를 정찰했다. 부산물 처리가 끝을 몰랐기에 그저 후방에 쌓아둔다고 끝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수송이 이루어질 때 다시 쌓아두는 작업을 하는 게 좋았다.
기사들은 3무리로 나누어서 숲을 정찰했다.
“그으, 그으으.”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자 〈랄프 슈퍼브〉가 옹달샘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그 소리의 원흉을 볼 수 있었다. 장대에 아래 구멍부터 입까지 뚫린 고블린 언데드였다. 수분이 많은 숲이라 온몸이 부풀어 오르고 퉁퉁 붓고 있었다. 수분 때문이다.
반면 시원한 탓에 부패는 대단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블린을 왜 효수를 했지? 공포감을 조성한 것인가?”
퍼걱!
고블린 좀비의 두개골을 부수었다. 옹달샘은 맑아 보였지만, 쥐의 시체가 둥둥 떠있어서 마시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시체를 건져서 땅에 버렸다.
“헉!”
다른 곳에서는 숨을 넘어갈 정도로 놀라기도 했다. 위에 대롱 걸려있는 고블린 시체가 언데드가 되었기 때문이다. 위협은 되지 않았지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밧줄을 끊어내 철푸덕하고 쓰러진 고블린 좀비의 골통을 후려팼다.
자연스럽게 불이 붙지 않았기에 매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체 기름보다 물이 많은 시체였다.
얼음 마법에 산산조각이 난 고블린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부락의 망가진 모습까지 확인했다. 그들은 그제서야 말도 안 되는 전공을 세운 〈선두 보급대〉를 부러워하고, 질투하게 되었다.
부산물만 따지면 1만은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속일 수도 없었기에 고스란히 전공으로 변할 것이다.
〈아크온 몽펠리에〉는 도착하자마자 산처럼 쌓여있는 부산물을 볼 수 있었다. 숲과 산을 타격하도록 꾸려진 부대는 보급부대나 다름없이 부산물을 옮기기 바빴다.
“이게 무슨 일이오?”
“〈선두 보급대〉가 지나친 일을 했소.”
상황을 전해 들은 아크온이 이마를 손으로 부여잡았다. 자연스럽게 데보네이어, 하모니, 슈퍼브 가문이 지닌 불만이 선선히 보였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크놀 철광산〉을 토벌해야 했다.
‘미치겠군.’
아크온이 혀를 찼다. 주제넘은 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놓고 뭐라 할 수는 없었다. 1만의 고블린을 때려잡았는데 책을 잡는다? 어려운 일이었다. 알게 모르게 은근히 눌러준다면 몰랐지만, 드낙 불파겐은 그렇게 누른다고 눌러질 사람도 아니었다.
“평야 타격대는 먼저 출발하시오.”
킨 가문, 노타블 가문, 보두앵의 잔여 중갑기병이 서둘러 출발 준비를 했다. 다급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누구도 비웃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들러리만 하고 끝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보급을 하는 수레가 오고 가면서 고블린 부산물을 처리할 것이오. 나머지 군대를 이끌고, 〈크놀 철광산〉을 토벌하러 가겠소.”
몽펠리에 가문의 병사들, 히터, 에크미, 제스트, 노타블 가문의 전차를 제외한 보병, 린파이크 가문의 잔여 장창병까지 상당한 규모의 병사들이 〈크놀 철광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300에 달했다.
“숲길을 만들면서 진행할 것이다. 못해도 마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넓혀야 한다.”
가장 먼저 그들은 길을 최소한으로 만들었다. 수풀과 풀, 나뭇가지를 쳐내어 숲길을 만들어야 했다. 〈크놀 강철검〉 때문에 수송할 짐마차가 오고 가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뽕을 뽑아볼 생각이었다.
550의 토벌대는 300이 크놀 철광산으로 갔고, 130은 평야, 120은 보급에 투입된 상태였다.
*
까악!
까마귀 카이야가 드낙의 위에서 소리를 한 번 지르고는 도노의 허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괜히 목 근처를 부리로 이리저리 비벼서 도노의 목을 정리하는 시늉을 했다. 영악한 까마귀가 카이야였다.
“몬스터네. 제법 무리가 되어 보이는데.”
드낙이 눈을 좁혀서 평야의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말로 달리면 하루? 이틀? 평지에서의 거리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곳에서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는지 안 오고 있는지도 몰랐다.
적당히 퍼져있는 점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드낙은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우리가 보이지도 않을걸.”
그 판단은 다른 이들도 비슷했다. 순찰자였다면 크게 경계심을 드러냈겠지만, 평야의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뿐이었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3km 내외로 도착한 몬스터의 무리를 맞이했다.
“밤새도록 달려왔네.”
어둠이 내려앉은 상태에서 몬스터의 움직임을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드낙은 태평했다. 몬스터의 숫자는 고작 50마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진흙돼지 마을(Mud pig Town)〉에서 기병이 드낙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중갑기병 10기에 경기병 20기였다. 못해도 2일 내에 드낙과 합류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본 드낙은 몬스터가 한 번은 자신을 칠 것이라고 직감할 수 있었다.
합류하기 전에 허리를 끊어먹겠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적의 원군은 자연스럽게 몬스터의 심기를 건드리기 충분했다. 등을 떠미는 짓이었다.
“하루 더 빨리 움직였으면 몬스터가 공격하지 못했지 않습니까?”
이스핀이 그런 정규병을 나무랐다. 하지만 드낙은 고개를 저었다.
“일부러 하루를 놓친 척한 것이겠지. 내가 여기에 있으니까. 몬스터에게 피해를 주라는 소리고.”
오만한 소리에 이스핀이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옹달샘 숲에서 드낙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목격했다. 비록 전염병에 대부분의 고블린이 죽었지만 드낙 또한 1천 마리 이상의 피를 자신의 손에 묻혔다.
‘익숙한 놈들인데.’
드낙은 3km에 있는 몬스터 무리를 보며 낯이 익었다. 그리고 이내 기억이 났다.
“〈펄발드(Fur Bald)〉를 상대해본 적이 있소?”
“예. 까다로운 놈들입니다.”
〈성기사 케이슨〉이 말끔하게 대답했다. 어디서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부 왕국에서 자주 보이는 놈들이 펄 발드였다.
머리를 보면 리자드맨과 혼동할지 몰랐지만 전혀 달랐다. 리자드맨보다 작은 150~160cm의 키를 지닌 것이 펄 발드였다.
‘〈버려진 영지〉에서는 멧돼지를 타고 다녔는데 여기 놈들은 야생마를 타고 다니네.’
그 덕에 펄발드들의 신장은 자연스럽게 높아 보였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인간을 흉내 내서 등자도 있었다. 유목민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짐이라는 것이 적었다. 아무래도 별동대인 듯했다.
그들은 드낙을 향해 오는 인간들을 매우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야의 장점이었다. 며칠 거리에 있는 적의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온다!”
드낙이 그렇게 말해도 딱히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스핀, 전방에 내가 〈솟구쳐오르는 빙산(Rising Iceberg)〉 마법으로 놈들의 돌격을 막겠다. 그때 좌우로 〈거인의 주먹(Fist of the giants)〉을 불러내서 조금이라도 적에게 피해를 줘라.”
“예!”
돌격만 막아도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었다. 고작 3명을 상대로 50마리가 쫓아온 것도 웃긴 일이었지만 상대는 〈정예 몬스터〉의 지휘를 받고 있는 펄 발드였다. 허리를 끊으라는 모종의 명령이 있었을 것이다.
‘좋지 않은데.’
드낙은 자신이 한 명령을 알고 있었다. 후방에 있는 본대는 〈크놀 철광산〉 토벌을 할 것이다. 드낙이 벌린 일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선두 보급대와 후방의 거리는 멀어졌고, 자연스럽게 허리가 약해지는 결과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평야의 적이 말을 탄 펄 발드라는 것은 좋지 않았다.
“키악! 빨래뿌!”
펄 발드들은 순식간에 양쪽으로 쭉 갈라져서 드낙을 포위하려는 듯이 움직였다. 전력으로 달리지 않으며 드낙의 일행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그 덕에 드낙은 방어 마법을 통해서 그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획 변경! 방어 마법으로 우릴 보호해, 이스핀!”
“예!”
드낙은 곧바로 대인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타격은 아꼈다. 놈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은 돌격하지 않았다. 원을 그리며 드낙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사방이 한 줄에서 두 줄로 헐렁하게 달리는 펄 발드들이 투창, 화살, 돌 등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스핀은 곳곳에 흙을 마법으로 퍼올렸지만 한계가 있었다. 마력이 동이 났기 때문이다.
“왜 3번 밖에 못써?!”
드낙이 일갈하자 이스핀이 어버버거렸다. 마력의 잔량을 꼼꼼하게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욱!
투창 하나가 그대로 성기사 케이슨의 흉갑을 꿰뚫었다.
“컥!”
케이슨이 크게 뒤로 넘어졌다. 서둘러 이스핀이 창을 뽑아주었다. 신성력이 터져 나오는 사이로 이스핀이 창의 촉을 확인했다. 무지막지하게 길쭉하고 피가 묻었음에도 날이 시퍼렇게 빛을 내고 있었다.
촉의 길이만 해도 손바닥 만했다. 못해도 10cm는 되어 보이는 투창촉이었다. 흉갑 따위는 종잇장에 불과했다.
“보통 창촉이 아닙니다!”
이스핀이 고함을 질렀다. 그의 외침은 말발굽 소리와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는 펄 발드의 괴성으로 묻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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