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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20화 (319/1,239)

0320 <-- 트롤 토벌 -->

〈기어오르는 발바룽〉은 드낙이 가진 개체의 힘을 믿었다. 그건 〈검은 꿈〉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드낙의 성장 방향, 판단의 근거, 발전을 위한 길은 모두 검은 꿈을 감안하고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그 길은 필연적으로 피의 길이며, 패(覇)의 길이었다.

반면 세파리아스는 으뜸 중의 으뜸인 자리에서 고꾸라진 적이 있었다. 귀족 연합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적이 강대하면 강대할수록 뭉칠 수밖에 없는 것이 귀족들이었다. 그렇기에 검은 꿈을 추구하더라도, 정도껏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 〈버려진 영지〉의 기반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세파리아스에게 있어서 경제와 성장은 다른 가문들을 통해서 얻어내야 했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귀족들의 파벌에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해야 함을 주장했다. 똑같은 망나니지만 수틀리면 아이를 죽이는 것이 드낙이라면, 적어도 아이는 살게 하는 것이 세파리아스였다.

물론 무기를 든 소년병은 가차 없이 죽인다. 전사이기 때문이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궐기한 민병이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지금 명백하게 나타났다.

완전히 두 패로 갈려졌다. 하지만 둘 모두 근거가 확실했다. 그래서 드낙은 갈피를 못 잡았다. 장고(長考) 끝에 드낙은 차근차근 정리하여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판단한다.”

“지랄하네.”

세파리아스가 경박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낙을 앞에 두고 점잖을 떤다는 것은 성자(聖者) 정도는 되는 사람이 와야 했다.

“음··· 리스크가 적은 세파리아스의 말이 지금 나에게 더 좋은 게 아닐까. 뭔가 큰 그림을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귀족 연합〉을 위하는 일이기에 자연스럽게 뭔가 있어 보였다. 반면 발바룽은 검은 꿈이 전부였다.

“검은 꿈으로 계속 성장해야지. 이런 기회가 적다는 것은 잘 알 텐데?”

발바룽의 말에 드낙의 귀가 팔랑거렸다.

‘확실히. 검은 꿈 존버는 우선순위 0순위 아닌가?’

게임을 통해서 수치와 능력치에 맹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드낙이었다. 검은 꿈의 능력은 현대인을 환장하게 만드는데 특화되었다고 말해질 정도였다. 실패 확률이 90%임에도 일단 강화하고 보는 것이 현대인이었다.

그 심리는 드낙을 크게 흔들어놓았다.

“귀족들의 반작용을 감당할 수 있겠냐? 좋게 좋게 하자.”

세파리아스는 화술을 바꾸어가며 드낙을 설득했다. 하지만 결국 드낙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검은 꿈은 드낙에게 그러한 것이었다. 대신 드낙 또한 〈큰 그림〉을 좋아했다.

대계(大計).

이름만 들어도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이 바로 큰 그림이었다.

“후방 타격대를 이용해서 함께 가면 되잖아. 서로 공도 나눠먹고. 일석이조지.”

드낙의 해결법에 세파리아스가 이마를 쳤다. 감탄해서가 아니었다.

“그 의도를 다른 놈들이 모르겠냐? 상대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서로 이득으로 보였지만 결코 아니었다. 귀족은 보통내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숲에서의 전공과 크놀 철광산 토벌을 합치면 드낙이 윗줄에 있는데 도와줄 리가 없었다. 자신들에게 이득이라도 결국 전공 1위는 드낙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건 평등하지 않았다.

이 말을 들은 드낙이 어처구니없어했다.

“아니, 공평하지 않잖아.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결국 다 플러스잖아?”

욕을 뱉고 싶어질 정도였다. 공적 순위 1위를 못하니, 도와주지 않는다니.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귀족 사회였다. 적당한 공의 나눔. 승리자가 여럿인 상황이 귀족이 원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현재 군대의 모습도 지휘관의 교체도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단 찔러봐야지.”

“평야에서 공을 안 먹는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발바룽의 말에 세파리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를 더 양보하면 얼추 맞겠지.”

드낙은 눈을 부라렸다.

“큰 마을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정예 몬스터〉가 있을 텐데. 그걸 포기하면 도긴개긴이잖아."

세파리아스는 혀를 찼다.

“그러니, 욕심내지 말고 평야로 간 〈선두 보급대〉를 쫓아가라는 거다. 여기서 얻어낸 전공을 후방 보급대는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두 보급대는 모르지. 그렇기에 오히려 평야로 가는 것이 너에게 이득이다.”

1만이 넘는 고블린이 드낙의 손에 죽어 나자빠졌다. 후방 보급대가 잘린 손뼈와 두개골을 본다면 드낙을 견제하려고 발악을 할 것이다. 그에 반해 선두 보급대는 소식이 늦을 것이니, 드낙이 평야 전투에서도 손을 댈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드낙이 직접 의견을 나누다 보니 순식간에 의견이 좁혀졌다. 무식한 소리 때문에 발바룽과 세파리아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기 때문이다. 화나서 더 좋은 의견을 내는 것이다. 머리에 채찍을 맞은 것처럼 머리가 잘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론은 전공을 말하지 않고, 바로 평야에 가는 게 좋다는 거고. 하지만 오히려 그것도 나중에 반발이 있지 않을까?”

“남들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해야지. 순찰자들에게 후방 보급대에게 〈크놀 철광산〉에 대한 정보를 주면 더 반발할 수 없을 것이다.”

세파리아스의 말에 드낙이 고개를 연거푸 끄덕였다. 확실히 좋은 처세였다. 드낙은 결국 평야로 가기로 결정했다. 전공으로 삼을 손뼈와 머리는 그냥 대중없이 쌓아둔 채로 가야 했다.

시간 때문이었다. 그래도 후방 보급대가 알아서 받아들일 것이다. 고블린의 손뼈는 마법사들이 즐겨 찾는 것이고, 두개골은 주술에 대한 견습 마법사들의 좋은 수업재료였고, 마법 재료로도 쓸 수 있었다.

돈과 병사들의 눈 때문이라도 드낙이 버려둔 부산물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순찰자로 정보를 내어줄 테니, 그럴 수도 없었다.

‘완벽하군.’

드낙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꿈에서의 회의를 마친 드낙은 그다음 문제에 봉착했다.

‘쥐들이 너무 많다.’

옹달샘에 둥둥 떠있는 쥐의 시체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이대로는 문제가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결하는 방법이었지만 시체가 문제가 되었다.

‘서로 잡아먹게 만들면 되잖아. 나 좀 천재인 듯.’

드낙은 쥐들이 서로를 잡아먹도록 명령했다. 마치 콜로세움의 검투사들처럼 〈회색 동굴쥐〉들은 서로를 쥐어뜯고, 물어뜯어 먹었다.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드낙의 일행은 평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낙 또한 식량을 조금 챙겨온다고 자리를 비우는 척하면서 콜로세움을 열었다.

‘싸움을 붙여놓고, 새나 몇 마리 잡아서 가야겠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회색 동굴쥐〉들은 서로를 잡아먹고 잡아먹고 잡아먹었다. 그 끝에 가서는 11마리의 〈회색 동굴쥐〉만 남았다.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곳곳에 상처가 있는 회색 동굴쥐 11마리는 죽은 동족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쥐들이 싸움을 붙어서 시체 때문에 서로를 보지 못해 드낙의 명령을 끝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크기는 점점 커졌고, 회색털은 갈색으로 이내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끝내 그들의 이마에 작은 뿔이 튀어나왔다. 쥐 주제에 〈일각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덩치는 고작 진돗개에 불과했다.

〈핏빛 쥐(Bloody rat)〉 11마리를 본 드낙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왜 이렇게 된 거야?”

진돗개만 한 놈들은 살도 포통포통하게 쪄서는 두 발로 서서 앞발로 머리를 긁었다. 몇몇은 땅을 파고 머리만 쏙 내밀기도 했다. 호흡하면서 터질듯한 볼살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일단 따라와.”

드낙이 머리를 긁었다. 일각수의 야수는 죽여야지 마땅하지만 이들은 드낙의 명령을 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남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에 숨어서 천천히 날 따라와. 배고프면 벌레나 먹고.”

핏빛 쥐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땅을 파서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가끔 지상 위로 올라가서 드낙의 냄새를 맡고 다시 쏙 들어갔다. 때때로 배가 고파지면 나무 위를 타고 가서 새알을 먹거나, 알을 품고 있는 어미새의 목을 물어뜯어서 포식을 했다.

그들은 체구는 작았지만 이미 몬스터나 다름없었다. 다행이라는 점은 인간과 인간에게 우호적인 동물은 건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드낙 때문이었다.

“이제 평야로 가면 될 것 같소.”

드낙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표정이 밝았다. 드낙은 자신이 조련한 쥐들을 멀리 흩어지도록 명령했다고 말했고, 피난민들은 적당한 식량을 받은 채 길에서 지낼 것이다.

후방 보급대는 빠르게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고, 이 숲에는 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위협이 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또한 순찰자 2명 또한 생존자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크놀 철광산〉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함이었다.

시야를 가리는 숲을 지나 드넓은 평야를 보는 일행들은 모두 작게 감탄하거나 숨을 크게 들이쉬며 평야를 구경했다. 저 길 멀리 큰 마을 하나가 뿌옇게 보였다.

‘이미 선두 보급대는 큰 마을에 도착했구나. 서둘러 가야겠다.’

드낙이 발걸음을 빨리했다.

철냄새가 가득 풍기는 철광산은 통로마다 개구멍처럼 구멍이 뻥뻥 뚫려있었다. 크놀들의 출입구였다. 허투루 보다가는 순식간에 앞뒤로 공격당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똬라라! 똬르락!”

깡! 깡!

리듬을 타며 의미없는 추임새를 놓으며 노동요를 부르는 크놀들이 열심히 곡괭이질을 했다. 곡괭이는 섬뜩할 정도로 철광석을 퍽퍽 캐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양질의 곡괭이였다.

무게중심이 광석을 캐기에 적합해서 크놀이 초보 광부였음에도 척척 철광석을 덩어리째 캐냈다. 일을 하는 크놀들을 지나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향하면 밑으로 깎아내려져가는 절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땅! 땅! 땅!

규칙적인 망치소리가 절벽 밑으로 들려왔다.

화르으으으!!

때때로 불길이 치솟는 소리가 굴 속에 울려퍼졌다. 절벽에 서면 뜨거운 열기가 엄청난 바람을 통해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 거대한 동공의 천장은 뻥 뚫려져 있었다. 절벽의 옆으로는 아슬아슬한 비탈길이 쭉 내려가고 있었다.

부글부글!

동공의 바닥에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광로가 있었다. 〈초대형 용광로〉는 800평이나 될 정도로 거대했다. 그곳에는 철이 녹아서 붉은 물이 되어있었다.

“목탄 지나간다! 목탄 지나간다!”

크놀 노동자들이 수레를 끌고와서 목탄이 든 자루를 꺼내서 계단 위로 올라갔다. 초대형 용광로는 마치 중탕되듯이 놓여져 있었고, 그 용광로를 중심으로 6개의 〈바람구멍〉이 존재했다.

“흐이아!”

“하이아!”

그곳에는 작대기 하나에 묶인 밧줄을 양옆에서 번갈아가며 좌우로 잡아당기며 돌리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작대기 밑에 고정된 프로펠러 같은 것이 바람을 크게 내어 용광로 안으로 유입시키고 있었다. 압도적인 화력은 이 6개의 바람 구멍때문이기도 했다.

와르르!

그 바람구멍을 조금 지난 곳에는 석탄이나 목탄을 넣을 구멍이 존재했다. 그곳으로 올라서서 자루에 든 목탄을 쏟아냈다. 불길이 확 솟아났다가 줄어들었다. 식겁을 한 크놀 노동자들은 허둥지둥 내려갔다.

“부어! 부어!”

“기운다아아!!! 그만!”

용광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밧줄을 쥔 크놀들이 수십마리가 넘었다. 녹은 철은 흐르면서 굳어져갔고, 그것을 긴 망치로 땅땅 쳐서 낱개로 만든 뒤에 집게로 집어서 대장장이들이 가져가서 그대로 두들겼다.

두들기는대로 형태가 무너지고, 뚝뚝 끊겼다. 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물렀다. 엄청난 화력 때문에 불순물이 모조리 날아갔기 때문이다. 탄성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순철(純鐵)이었다.

무르디 무른 이 순철로 된 철괴는 저급한 철로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단단하고, 탄성이 있는 진짜 강철로 만드는 것은 〈정예 몬스터〉의 몫이었다.

다른 크놀보다 3배는 큰 〈두드리는 타당타〉은 순식간에 저급한 철의 탄성을 순철에 녹여냈다. 온갖 무기가 그의 손에서 완성되어졌다.

서슬퍼렇게 물든 날은 날카로웠고, 무른 순철과 뒤섞인 철의 단단함과 탄성이 규칙적으로 분배되어있어서 줄무늬가 여러곳에 일관되게 만들어져 있었다.

가장 완벽한 강철이었다.

수많은 무기가 〈크놀 철광산〉에서 생산되어졌고, 크놀의 무리는 그것을 자신들의 주인이 있는 던전으로 옮기고 있었다. 인간과는 다른 보급로였다.

그 과정은 끊없이 진행되어졌다. 무수히 많은 무기 그리고 종종 정예 몬스터를 위한 강철로 된 판금 방어구가 제작되어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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