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8 <-- 트롤 토벌 -->
〈성기사 케이슨〉을 따라 하루를 숲을 넓게 돌아다니며 고블린을 사냥, 그들의 규합을 한 번 더 방해했다. 고블린들은 전방, 후방 상관없이 적에게 당한 고블린들의 소식을 들어야 했다.
동시에 다시 한 번 인간의 생존력이 빛을 발했다. 화전민처럼 마을의 수준이 낮은 곳에는 생존자가 없었지만 〈숲 마을〉은 달랐다. 바위틈에 만든 식량 저장 창고에 생존자들이 있었다.
“사, 살았다!”
“중립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케이슨은 더러운 그들을 껴안았다. 어두컴컴한 동굴에 황금빛이 터져 나오며 지친 이들의 신체를 회복시켰다. 힘이 없고 꼴딱꼴딱 숨소리가 넘어가던 아기의 불규칙적인 호흡도 안정되었다.
그 기적과도 같은 모습에 눈물을 흐르는 이들이 많았다. 극적인 순간일 수밖에 없었다. 오물의 악취가 진동하는 식량 창고에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많은 고블린들을 처리했으니, 돌아가는 길은 쉬울 것이오. 먼저 가시오. 난 고블린들의 시체를 이용해서 공포감을 조성하겠소.”
드낙의 말에 케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력의 힘으로 활력이 살아난 사람들은 드낙을 아니꼬운 눈으로 봤다. 성기사에게 존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약자인 그들은 그저 불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힘이 없으면 〈용서〉라는 이름으로 불천지 원수에게 복수조차 못하는 것이 민초(民草)였다. 드낙은 그들의 눈에서 느껴지는 불운함을 느꼈지만 우습게 여겨졌다.
‘새끼들.’
투구를 조금만 돌려도 눈을 까 내리는데 짜증이 날 리가 없었다. 그저 귀엽게 느껴졌다.
피난민들은 케이슨과 함께 수풀로 사라졌다. 안내는 카이야를 붙여줬다.
찍찍!
새들을 통해서 보호를 받는 〈회색 동굴쥐〉들은 숲을 자신의 집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불과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도 개체가 유지된다는 것은 쥐들에게 있어서 폭발적인 개체 수 성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드낙이 고블린을 죽이면서 그의 〈조련술의 업(業)〉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평범한 쥐를 수천 마리나 부릴 수 있었다. 그것은 이내 떼가 되었고, 드낙을 알게 모르게 따라다니며 고블린 시체를 뼈조차 갉아먹으며 형체도 없이 만들었다.
오직 고블린의 손뼈와 두개골만 남았다.
‘시체를 남기면 더 공포스럽겠지만, 별 수 없지.’
언데드까지 튀어나오면 말 그대로 외통수가 될 수 있었다. 피해야 할 일이었다. 시체를 매달고, 장대를 꽂아 넣어 척추를 분지른 다음에 곧추세웠다. 그것만으로도 언데드가 되어도 척추가 분질러졌기에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드낙이 점심시간 이후에 꾸준하게 죽인 고블린을 정리하며 만나는 고블린 첨병(尖兵)까지 싹 쓸어버리자 그 효과는 어제보다 더욱 증폭되어서 나타났다.
“이게 대체! 무슨 이런 일이!”
고블린 주술사가 벌벌 떨었다. 죽음의 구름이 숲을 덮쳤다. 점괘(占卦)를 치려고 피운 모닥불은 피우자마자 마치 생나무를 태운 것처럼 검은 연기를 토해내더니 이내 불이 꺼져버렸다.
반듯한 돌로 된 넓은 단상에서 이루어진 일이었기에 〈진흙발 숲고블린 부락〉의 모든 고블린들이 그 기괴하기 짝이 없는 광경을 마주해야 했다.
“바짝 마른 장작에서 어떻게 저런 검은 연기가···”
“숲에는 괴물이 있어! 이 숲을 버려야 해!”
“크놀 놈들이다! 놈들이 식량을 미끼로 우리를 신의 제물로 삼으려 하고 있다!”
곳곳에서 소리가 토해져 나왔다. 고블린 주술사가 치렁치렁 거리는 뼈로 된 긴 머리 장식을 쓴 채 지팡이에 불꽃을 만들어서 한 번 휙 하고 쓸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시끄럽다! 어느 놈이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거냐!”
그가 만들어낸 주술 불꽃에 다른 고블린들이 침을 꼴딱 삼켰다. 〈주술 도기〉는 모두 크놀들과 식량으로 교환했기에 여기 있는 고블린들은 주술에 대한 경외심이 더 대단해져 있었다.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도 주술 물품을 사용하고 안 하고의 차이였다.
“음···!”
고블린 주술사가 무게를 잡았다. 그리고 해결책을 말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덜덜덜 떨기 시작하며 거칠게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켁! 케케겍!”
눈이 까뒤집어지면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껑충껑충 뛰었다. 불씨만 남은 모닥불에서 검은 연기가 더욱 피어 올라왔다. 그것은 해골의 모습마저 만들었다.
익숙한 고블린 주술사의 목소리가 아닌 가래가 들끓는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 안으로 나가도 죽는다! 죽음의 구름이 이 숲에 퍼뜨려졌다! 무슨 짓을 해도 죽을 수밖에 없다! 죽어라! 죽어! 크, 크케케케!”
왈칵!
고블린 주술사가 피를 토하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고블린들이 사타구니를 긁었다. 고름이 터져서 주르륵 피와 고름 그리고 투명한 물집물이 허벅지 안쪽을 타고 흘러내렸다.
드낙의 저주는 확실하게 이 숲의 고블린들에게 부여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연결된 점괘를 치려고 한 고블린은 2일 동안 중첩된 드낙의 주력을 버틸 수는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것은 버틸 수 없었다.
방향성 없는 주력.
〈원시 주술〉의 위험함은 무작위 효과라고 여겼지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왜 〈원시 주술〉이라 불리며 많은 주술사들이 그런 주술법을 포기했는지, 그 이면에 가려진 무시무시한 원령들의 감정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 덕에 점괘로 드낙과 주력이 붙었던 고블린 주술사는 끔찍하게 빙의가 되어서는 피를 토해내며 고꾸라져야 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며칠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터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고블린 내부에 분쟁이 크게 일어났다. 영주 노릇을 하던 고블린 주술사가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공포감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숲을 떠나야 하는 고블린과 이곳에 남아 사태를 관망하려는 고블린으로 나누어졌다.
그 원흉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용맹한 고블린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술로 고블린 부락을 이끌던 고블린 주술사가 저딴 꼴이 났는데 버틸 놈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떠나려는 자도 다시 되돌아왔다. 곳곳에 죽어있는 죽음의 향기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더 이상 숲은 〈숲 고블린〉의 편이 아니었다.
마치 검은 안개에 끼인 것처럼 음울하고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북북.
고블린이 사타구니를 긁었다. 〈원시 저주술〉에 의해서 이 숲의 고블린들은 모두 성병에 걸린 것처럼 성기에 고름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끔찍한 저주였다. 오직 주술사 고블린만 멀쩡했다.
또 건장한 고블린은 그나마 좁쌀만 한 것에 그쳤다. 하지만 착실하게 저주의 정도는 깊어지고 있었다.
상황이 악화되면 악화될수록, 혼란하면 혼란할수록 빛을 더욱 뿜어내는 것이 흉성(凶星)이었다. 불길한 징조도 자연히 곳곳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횃불이 꺼지거나, 바람이 안 부는 방 안에서 바람 소리가 크게 들리거나 온갖 일들이 고블린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물이 많은 땅이었기에 〈원시 저주〉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고 있었다. 잠자고 있던 원혼들도 주력을 힘으로 삼아 고블린의 등에 들러붙었다.
*
숲에 들어선 지 3일째, 이제 반나절 안에 숲을 벗어나는 〈선두 보급대〉는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선두 보급대〉의 상황은 하루가 달리하고 시시각각 변했다. 그들을 이끄는 기사들은 찝찝한 기분에 휩싸여있었다.
‘오늘은 아예 조용하군.’
고블린들이 죽어나자빠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불파겐의 힘이 이 정도라고? 믿을 수 없군. 마법도 사용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무인이 보일 수 없는 즉효성이었다. 숲 하나를 소수 인원으로 평정한다? 말이 쉽다. 화살이 지근거리에 부딪쳐도 마법에 실패하는 것이 마법사였다. 하지만 그런 마법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거 차라리 드낙 경을 돕는 것이 더 나았을 수도 있소.”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것이오? 후방에 있는 타격대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고 있지 않소.”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것 아니오?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것이오.”
드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좋게 끝나지 않았다. 그만큼 드낙이 홀로 쌓아올린 전공은 시작부터 그들과 크게 차이가 나버렸기 때문이다.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판단이 크게 잘 못되었구나.’
직접 목격하지 않았기에 마음속으로 내심 드낙을 과소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 같지 않은 모습만 들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니. 얼척이 없다.’
벽이 보이면 밧줄로 넘어가거나 돌아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냥 부수고 지나가는 격이다. 불파겐이라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400년 전이었기에 불파겐에 대한 역사만 알았을 뿐, 그들의 무력은 서술된 글로 입으로 전해질뿐이라서 체감도 힘들었다.
공룡이 몇 미터니 뭐니라고 생각하다가 현실에 튀어나온 격이었다.
크게 후회했다. 또한 아크온이 왜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주력 방계만 〈선두 보급대〉에 집어넣었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그냥 따라만 가라는 것이었다.’
근데 그러지 않았다. 아크온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이다. 더군다나 아크온은 차남을 밀어주는 보두앵 가문, 삼남을 밀어주는 린파이크 가문, 자신에게 붙은 히터 가문을 적절하게 밀어준 것이다.
‘알고 있는데도, 하지만 정작 드낙의 방식에 따라가지 못했다.’
‘누가 따라가겠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나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했다. 그들은 때를 놓치고 만 것이다.
병사들 또한 휴식할 때면 드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병사 하나가 손가락을 꼽으면서 말했다.
“첫날에는 700마리. 둘째 날에는 400마리. 셋째 날에는 공격 하나 없어. 이게 말이 돼?”
“미쳤다. 미쳤어. 혼자 영지도 지킬 수 있겠네.”
병사가 따로 필요가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숲 하나를 혼자서 3일 만에 토벌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고블린들이 틀어박히면서 3일째에는 습격 하나 받지 못했다. 기껏해야 침을 질질 흘리면서 정신이 나간 고블린이 잡힐 뿐이었다.
“히익! 히이익!”
정신이 나간 고블린은 조금만 건드려도 격렬하게 반응을 보였다. 공포로 물들어서 정신이 돌아버렸다. 그걸 보며 모두 질릴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에는 악신을 믿는 게 아닐까? 그 정신 나간 고블린 봤잖아. 사람이 그렇게 고블린의 정신을 붕괴시킬 수 있겠냐고.”
“불파겐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온갖 추측이 오고 갔다. 하지만 정작 진실은 몰랐다. 대신 이야깃거리는 넘쳐났다. 감탄 또한 이어졌다.
태평한 행군 끝에 숲을 벗어난 그들에게 광활한 평야가 펼쳐졌다. 길을 따라 지평선에 토성(土城)이 뿌옇게 보였다.
“〈진흙돼지 마을(Mud pig Town)〉. 멀쩡한 것을 보니, 아직은 버티고 있나 보오.”
“자유 기사라도 있지 않겠소? 이런 상황에서 어디에서나 보이는 자들이 아니오.”
기사들은 서로 몇 마디를 나누었다. 저곳으로 향해서 진지를 한층 더 두텁게 만들고, 마을 내부에 보급을 적재할 굴을 파거나 집을 증축시켜야 했다.
〈선두 보급대〉가 휴식을 취하고, 평야로 향하기 시작했다. 햇빛이 그들을 비추는 것과 반대로 그들의 뒤에 있는 〈옹달샘 숲〉은 극명하게 어두워 보였다.
========== 작품 후기 ==========
5241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흉성 + 원시 저주술 + 수원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