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7 <-- 트롤 토벌 -->
〈공포 확장 전략〉의 수립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성기사 케이슨〉의 부탁 또한 이루어졌다. 그는 이 〈옹달샘 숲〉에 있을 생존자를 찾고 싶어 했다.
“화전민, 숲마을, 곳곳에 작은 마을들이 많을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드낙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이스핀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고블린이 이렇게 득실거리는데 사람이 살아있겠습니까? 성기사님.”
깡패 시절, 사제 덕분에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함 받았음에도 이스핀은 적대적이었다. 지금 그가 믿고 따르는 것은 드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드낙에게 시답잖고, 성공률도 높지 않은 일에 매달리게 하는 건 웃기지도 않는 개잡소리였다.
그래도 말을 높여서 말하기는 했다.
“이스핀 호위기사. 내 걱정을 해줘서 고맙다. 하지만 케이슨 성기사는 이 목적을 위해서 이곳에 남아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그럼··· 도와주시는 겁니까?”
“카이야를 숲에 순찰을 하도록 하겠소. 사람의 흔적이 있다면 새벽에 나가서 수색을 해봅시다.”
케이슨이 연거푸 감사하다고 말했다. 드낙은 그런 그를 말렸다. 그에게 있어서 〈남부 왕국〉의 신전에 많은 귀감이 되는 케이슨은 반드시 영입해야 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바닥을 향상 바라보는 케이슨의 가치관은 신전이 세속화되는 속도를 늦출 것이다.
그게 드낙이 케이슨을 계속 대우해주는 이유였다. 케이슨 영입 욕심은 다분히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그의 영지에 세속화되었음에도 신의 힘을 휘두르는 사제들이 지랄을 떠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드낙 님. 체력이 남아도십니까? 몸을 조금 챙기십시오.”
이스핀이 불평했다. 드낙이 웃으며 말했다.
“나보다 강철 체력이 어디 있다고. 걱정하지 마라. 힘들면 알아서 쉴 테니.”
쪽잠을 자도 남들과는 전혀 다른 피로회복 속도를 지닌 것이 드낙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이 실행되었다. 순찰자가 수작질을 벌이기 위해서는 숲에 있는 고블린들을 처리해나가야 했다.
자연히 드낙과 도노 그리고 이스핀이 먼저 전투를 벌여야 했다. 곳곳에 고블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핀은 후방을 담당했고, 도노는 드낙의 측면에서 지원을 해주었다. 1번에 1킬을 반드시 챙기는 도노는 어엿한 전투 일원이었다.
키아악!
숲을 울려 퍼지는 고블린의 고함소리는 다른 고블린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드낙은 양팔이 잘려나간 채 고함을 지르는 고블린을 오히려 놓아주었다.
“허미, 시발.”
그 모습을 본 이스핀이 욕을 내뱉었다. 저 행동이 무엇을 불러일으킬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고함을 제법 몇 번 지르던 고블린이 그대로 무릎에 힘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피가 달려서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다.
입에서 피와 침이 뒤섞인 묽은 것이 질질 흘려나오며 부르르 떨더니 죽어버렸다. 사타구니에서 오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항문의 힘이 풀린 것이다. 그 냄새는 숲고블린을 끌어모을 것이다.
드낙은 팡 소리가 나게 하며 롱소드에 묻은 피를 입자처럼 터트려 깔끔하게 치워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묘기와도 같은 행위였다. 그의 찌꺼기를 받았기에 불파겐 비전의 숙련도는 매우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었다.
드낙의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는 비전 숙련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엘라스티쉬 제스트렁(Elastisch Zerstorung, 탄력적인 파괴)〉의 〈완숙(Master)〉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거 야크트(Oger Jagd, 오우거 사냥)〉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는데, 엘라스티쉬 제스트렁은 가장 많이 사용한 비전인데도 세파리아스처럼 굉음(轟音)은 만들어낼 수 없단 말이지···’
평타에 섞을 수 있는 게 탄력적인 파괴였다. 가장 많이 사용한 비전이기도 했다. 애초에 롱소드 자체의 특성과 맞물리기 때문에 쓰기도 편했다. 불평하는 드낙이었지만,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과 함께한 지 1년도 안 되었음에도 불파겐 최강의 비전을 벌써 마스터하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기사들의 평범한 비전과는 달랐다. 보검(寶劍) 〈강철이 흐르는 강(Steel flowing river)〉이 없다면 쓰다가 검이 부러지는 것이 엘라스티쉬 제스트렁이었다.
“키아악!”
수풀을 튀어나오며 동족을 구하기 위해 그대로 용감하게 드낙을 덮치려든 고블린의 두개골이 그대로 반쪽이 났다.
쩍! 푸솨아악!
드낙은 힐끔 본 것이 전부였다. 그만큼 그의 전투력은 자신보다 낮은 상대로 할 때 빛이 났다.
고블린 시체가 한자리에 40구가 도넛의 형태로 뭉쳐있었다. 그걸 본 순찰자 2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걸음조차 움직이지 않은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하군.’
반면 케이슨은 덤덤했다. 〈성기사 케이슨〉은 순찰자들의 보호를 맡았다. 진지를 만드는 병사가 있다면, 그런 병사를 대신해서 경비를 서는 병사가 있기 마련이었다.
“독부터 풀자.”
그들은 전날 드낙이 챙겨온 마른 독버섯과 자신들이 오면서 찾아낸 독초를 꺼내들어서 그대로 돌로 빠르게 다졌다. 동시에 피로 조금 물든 옹달샘에 풀었다. 수원이 워낙 풍부한 곳이라 이렇게 독초를 뿌려도 3일을 못 가고 완화되거나 정화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드낙 불파겐이 하는 짓을 보니 3일 내에 숲은 공포로 찌들어갈 것이다. 또한 그들은 약속대로 옹달샘의 북쪽에 함정을 만들었다. 간단한 덫이었다. 위로 향하고 있는 나무 송곳을 땅에 박은 게 전부였다.
‘신발이 없는 고블린은 끔찍할 거다.’
북쪽에만 한 것은 약속이기 때문이다. 아군이 함정에 당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었다. 순찰자들은 옹달샘마다 그렇게 독과 함정을 설치했다. 때때로 밧줄 함정도 만들었다. 걸리면 꼼짝없이 나무 위에 매달려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다.
챱챱, 까삭.
작업을 하는 순찰자의 귀로 뭔가 갉아먹는 소리가 들렸다. 질척거리는 것을 앙 무는 소리였다.
‘신경 쓰지 말자.’
드낙의 혈통의 힘이었다. 그렇게 설명을 받았기 때문에 애써 무시했다. 〈회색 동굴쥐〉들이었다. 그 숫자는 고작 10마리 밖에 안 되었지만 서서히 숫자가 증가하고 있었다. 드낙이 쥐가 들락거릴만한 구멍에 말을 하고 다니며 숲에 있는 쥐들을 닥치는 대로 카리스마로 휘어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찍찍!
해질녘이 되었을 때에는 쥐만 200마리가 넘었다. 그들은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쥐를 보호하기 위한 올빼미를 다섯 마리나 조련한 드낙이었다. 다른 새들이 쥐를 먹으려고 하거나, 도마뱀 혹은 뱀이 다가오면 올빼미들의 날카로운 발톱에 다굴 당해서 그대로 죽어야 했다.
해질녘이 되어서야 구역 소탕을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드낙과 이스핀은 고블린 시체를 효수하기 시작했다.
푹!
항문에 장대를 놓아 몸 깊이 찔러 넣은 다음에 땅에 단단히 꽂아놓고, 덩굴에 목을 감겨 두툼한 나뭇가지에 걸어 올렸다.
손뼈와 머리만 가져온 가죽 자루에 담고, 나머지는 한데 모아서 탑을 만들었다. 피냄새에 쥐들이 알아서 먹을 것이다.
‘생각보다 〈조련술의 업(業)〉의 기능이 뛰어나다.’
쥐들이 드낙의 명령을 찰떡같이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손뼈와 머리는 길에 놓였다. 이것 또한 살점만 새들이 뜯어먹을 것이다. 쥐들은 건들지 않을 것이다.
이날 죽인 고블린의 숫자는 물경 500마리에 달했다. 수거한 〈크놀 강철검〉은 28자루였다. 첫 전투에 400마리를 죽인 것에 비하면 시간 대비 끔찍한 수준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빈나무 굴뚝〉이 만들어진 조금 언덕진 굴 속에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드낙은 그 속에서 빠르게 수프를 만들고, 설거지까지 대충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뜨거운 물로 가을 숲의 추위를 밀어내고, 달구어진 돌을 흙 밑에 깔고 모두 잠을 청하기 바빴다. 그 사이에 드낙은 케이슨과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성력(神聖力)〉을 통해 남들과는 다른 육체 회복도를 지닌 케이슨은 부상자가 없는 상태에서는 인간 좀비나 다름없었다.
“카이야가 몇몇 곳을 확인했소. 내일은 고블린들을 적게 죽이더라도 광범위하게 돌아다니며 고블린을 사냥해 혼란을 가중시킬 생각이오.”
케이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눈에는 희망이 보였다. 인간은 흙을 먹어도 물만 있으면 장기간 생존이 가능했다. 특히 〈옹달샘 숲〉은 수원이 풍부해서 땅만 파도 졸졸 흐르는 물을 만날 수 있었다.
‘가능성이 있다.’
“일찍 자두시오. 동이 트기 전에 출발해서 해가 뜰 때 마을 한곳에 도착해야 하니.”
“알겠습니다. 드낙 경께서도 체력을 보존하십시오.”
드낙이 드러눕자, 케이슨은 기도를 올리며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성력을 부여해 축복을 내려주고 남들보다 더 늦게 잠에 들었다. 물론 카이야와 도노에게도 기도를 하고, 축복해주었다.
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쳤다. 막대한 숫자의 고블린을 잡았음에도 여과기에는 하얀물 하나 없었고, 검은 문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고블린을 죽인 모든 것이 조련술의 업으로 향하기 때문이었다.
“할 말 있는 사람?”
드낙이 손을 들며 말하자 세파리아스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흰여우 세린은 고혹적인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오늘도 별들의 위치를 안 봤지? 습관을 좀 들었으면 좋겠어. 점성술사는 부지런해야 해.”
“아는 게 적은데 봐서 뭐 해?”
흰여우 세린은 지금 당장 봐야 할 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가을은 토성과 수성이지. 토성과 수성의 간격이 좁으면 고블린들이 더 날뛸 거야. 반대면 소극적으로 변하겠지. 내일 광범위하게 간다며? 물론 오늘의 전투로 고블린들이 방방 뛰었겠지만, 별자리를 보고 결정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네~.”
“황도 12궁보다는 페가수스자리가 지금 더 효력이 강해. 그러니 황도 12궁을 볼 필요는 없어. 때가 아니야.”
‘때가 아니라니, 사이비 패턴 같은데.’
그다음에는 〈기어오르는 발바룽〉이 한 마디 했다.
“킬 더 배틀 있잖아. 쥐를 죽이고 시작하면 더 이득인 부분 아닌가? 가죽 주머니에 쥐새끼를 담고 다닌다던가.”
그 말에 드낙이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꼼수 중에 꼼수 아닌가? 엄청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왜 지금까지 그걸 몰랐지?’
“머리가 돌이네. 돌이야. 그래서 내 짱돌에도 안 죽었구나.”
발바룽이 충격적인 표정을 짓는 드낙을 보며 허탈해했다. 저런 돌대가리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다. 드낙은 남은 시간을 흑마법 〈인비저블 쉴드(Invisible Shield, 보이지 않는 방어막)〉의 간략화를 위해 수련하며 보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난 드낙은 벌써 앉아서 눈을 감은 채 새벽 기도를 하고 있는 케이슨을 볼 수 있었다. 신앙이 정말 대단했다. 그렇기에 저렇게 어린 나이에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직 시간도 안 늦었습니다.”
드낙은 자신도 모르게 존대를 했다. 그만큼 케이슨은 다른 이의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성기사였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존대를 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건 나이와도 무관했고, 명예와도 상관없었으며, 직위와 신분을 막론하고 똑같았다.
이번에 이렇게 폐허가 되었을 화전민과 숲마을을 찾아가는 일도 그러했다.
자비(慈悲).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케이슨은 가지고 있었다. 반면 드낙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낮았다. 그가 동행하는 이유, 케이슨을 도와주는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일이었다.
화전민은 말 그대로 초전박살이 되어있었다. 움막은 기울어져 있고, 오두막은 새까맣게 불에 타버렸다.
바퀴가 부서진 짐수레에는 마른 피가 가득했다.
손에 채이는 것이 인간의 조각난 신체였다. 빨래를 널었을 빨랫줄에는 얇고 짧은 인간의 힘줄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생존자는 없었다.
케이슨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조각나고 훼손되었으며 분실된 시체들을 한데 모아 땅에 묻어주었다. 그 사이에 드낙은 화전민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두 번이나 꼼꼼하게 살폈다.
별 소득이 없자, 가죽 주머니에 넣어둔 〈회색 동굴쥐〉를 꺼내들어서 죽여보았다. 〈킬 더 배틀〉은 활성화되었지만 아쉽게도 약 2초에 불과했다. 죽이는 상대에 따라 지속시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 수 있었다.
항상 연속적으로 죽여서 킬 더 배틀이 시작되면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못 쓰겠네.’
가장 문제는 준비시간이었다. 쥐는 활동성이 빠르기 때문에 항상 가죽주머니를 묶어둬야했다. 거기서 꺼내는 시간을 생각하면 있으나 마나였다. 선쿨이 2초인데 지속도 2초. 아무도 쓰지 않을 것이다.
드낙이 가죽 주머니에 담아놓은 쥐들을 풀어주었다. 그들은 시체를 찾아 빠르게 내달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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