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6 <-- 트롤 토벌 -->
숲 고블린의 부락은 폐쇄된 곳이 꼭 필요했다. 동굴, 언덕 밑굴, 바위틈 등등 파낼 수 있는 곳이라면 파내서 공간을 만들어서라도 구석에 숨는 것이 고블린의 거주지 습성이었다.
“부락을 노리기보다는 숲에 있는 고블린부터 몰아넣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순찰자가 의견을 냈다. 〈고블린 부락 공략〉보다는 나무반, 고블린반인 이 상황을 변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블린을 몰아넣어야 했다. 자신들의 부락으로 도망치게 만들어야 했다.
“강력한 공포를 조성해서 부락에 몰아넣고, 몰살시키는 겁니다.”
드낙이 턱을 문질렀다.
‘좋은데?’
자신이 생각한 부락 공략은 시기상 너무 빨랐다. 순찰자의 말대로 일단 숲에 공포감을 조성하고, 그들을 몰이해서 한 곳에 모아놓은 다음에 죽이는 것이 좋았다. 똑같은 공간이라도 밀집된 고블린이면 단시간에 많은 수를 죽일 수 있었다.
이스핀이 드낙의 표정을 읽고는 곧바로 의견을 싹하고 요령 좋게 집어넣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고블린이 숲에서 활동을 하는 게 힘들어지면 〈선두 보급대〉는 고블린을 적게 만날 것이고, 자연히 드낙 님의 공이라 생각할 겁니다.”
그 말에 드낙이 단번에 눈을 반짝였다. 확실히 그러했다. 지금 당장 고블린 부락으로 쳐들어가면 확실하게 고블린을 빨리 대량으로 쓸어 담을 수는 있지만, 〈선두 보급대〉가 드낙의 공을 체감하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반면 숲에서 활동하는 고블린을 죽이면서 곳곳에 공포감을 조성한다면, 선두 보급대는 숲을 벗어날 때까지 급격하게 줄어든 고블린 전투 빈도수, 인원으로 드낙을 대단하게 여길 것이다.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내다니.’
드낙이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현대인의 풍부한 상상력은 명확한 조건 속에서 수를 읽는 것이 매우 뛰어났다. 정답은 뻔했다. 순찰자의 말을 듣는 게 좋았다.
“좋네. 이걸로 가자.”
드낙이 단번에 자신의 전략을 접어버리자 순찰자는 물론이고 성기사 케이슨조차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 모습에 드낙이 웃었다.
“제가 고집이 있어도 저보다 더 좋은 의견을 거부할 정도는 아닙니다.”
‘거부했는데.’
선두 보급대, 아크온의 전략을 무시하고 단독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드낙이었다. 드낙을 막기에 다른 3가문의 기사들은 명예와 힘이 부족했다. 드낙에게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조언과 설득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었다.
무력으로 번지면 당연히 드낙의 승리였기 때문에 주먹을 휘두르지 못한 것이다.
망나니처럼 드낙이 탈선해도 바로잡을 길이 없었다. 이스핀은 그렇기에 드낙이 이번처럼 미친 지랄병이 도져서 단독으로 고블린 수백 마리를 잡는다고 해도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말이 안 통할 때는 정말로 안 통하는데, 이럴 때는 순식간에 태세를 바꾸네.’
괴짜 같은 성격이었다.
“그럼 함정부터 시작해서 고블린을 공포로 물들어갈 것들을 만들어야겠네.”
드낙의 반말에 케이슨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사실상 그는 드낙의 용맹한 결정에 크게 감탄하고 있었다. 〈옹달샘 숲(Small spring forest)〉은 많은 작은 마을이 있었고, 세금을 내지 않는 화전민도 있었다.
그들의 생사도 확인하고 싶었다. Under + stand. 항상 바닥에서 이해하는 것이 〈성기사 케이슨〉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원이 많기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것처럼, 고블린이 득실거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 생존자는 반드시 있다고 생각했다.
“함정을 만들어 고블린들이 숲에서도 조심하게 만들어 이동 속도를 줄이겠습니다.”
“길 근처 옹달샘에 독을 풀어 선두 보급대를 노리는 고블린들의 상태가 안 좋도록 만들겠습니다. 동시에 고블린은 물자원을 비축하려면 멀리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고블린을 효수하여···”
수많은 고블린 공포 수단이 만들어졌다. 드낙은 당연히 고블린을 죽여서 숲을 공포로 물들이겠다는 심플한 방법을 들고 나왔다. 다른 이들은 선택하기 힘든 방법이었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한데··· 그렇게 고블린 시체가 방치되면 언데드가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이스핀의 말에 드낙이 아차 싶었다.
‘언데드가 있었지!’
방치된다면 반드시 고블린 언데드가 나타날 것이다. 이건 안 좋았다.
“시체 처리···”
700구가 넘는 고블린을 순식간에 하나 모여 기름 주머니와 장작을 놓고 불을 지른 선두 보급대와 드낙은 달랐다. 인력부터 크게 차이 났다. 100명의 건장한 남자는 엄청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
모두 시체 처리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 드낙의 눈에 쥐가 한 마리 멀뚱멀뚱 자신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이리 와봐.”
〈조련술의 업(業)〉! 고블린 수백 마리를 죽이면서 그제서야 기능하기 시작한 카리스마는 쥐를 순식간에 드낙에게 복종하게 만들었다.
“신기하네요. 말 한마디에 쥐가 말을 듣다니.”
혈통으로 여기는 케이슨을 보며 드낙이 웃으며 말했다.
“혈통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거다!’
*
“커억!”
흑마법사, 〈키메라의 알파던〉이 바닥에 처박혔다. 목이 꺾이고, 피부가 찢겨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목뼈가 보여야 하는 곳에서는 촉수가 튀어나와 꿈틀거렸다.
〈흑마법사 게페락스〉는 사색이 된 채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흑마법사는 결코 무인(武人)이 아니었다. 그들은 음모를 꾸미는 마법사였다. 바로 눈앞에서 바닥에 패대기쳐진 것만으로도 몸이 뭉개지며 바닥에 피가 흥건해지는 광경에 똑바로 대처를 할 수 없었다.
결코 적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흑마법사의 고쳐지지 않는 약점이기도 했고, 많은 마법사가 가지는 전투력 역량의 부족함이기도 했다.
“게겍···”
알파던이 뭐라고 지껄였지만 충격에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위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대마신(大魔神) 성현(Sung Hyun)〉을 신앙으로 삼으며 〈마수(魔獸)의 신(神)〉에게 희생물을 바치며 힘을 받는 〈마신장(魔神將) 오우거(Ogre) 발라쿠(ballakeu)〉의 숨결이었다.
코끼리의 호흡을 곁에서 처음 들으면 조금 오싹하고 무섭기도 한데, 오우거는 더했다. 특히나 평범한 오우거보다 더 큰 발라쿠의 체구는 15미터에 달했다.
오우거 중에서도 오래 살며 수많은 희생양을 대마신에게 바친 발라쿠는 마수들의 장군이며 대마신 성현의 장군말 중에서도 특출난 장군말이었다. 대마신의 힘 덕분에 발라쿠는 9미터를 채 넘지 못한 육체를 15미터까지 늘릴 수 있었다.
거대한 던전에서 피떡이 된 채 충격으로 빌빌거리는 키메라의 알파던 그리고 딱딱하게 굳어있는 흑마법사 게페락스를 내려다보던 마신장 발라쿠가 아빠 다리를 하며 주저앉았다.
큰 바람이 느껴졌다.
“너희 흑마법사들은 항상 문제야.”
“무, 무슨 말씀이신지···”
쿵!
발라쿠가 주먹으로 땅을 내려치자 먼지가 크게 피어오르며 바람이 게페락스를 지나갔다. 게페락스가 엉망진창으로 뒹굴었다. 바닥이 깊게 패어있었다. 단순한 모래였기에 다행이지 돌로 된 바닥이었다면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으, 으윽···”
게페라스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면서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개잡놈의 새끼가, 힘만 세다고 해서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느냐? 난 다른 오우거와는 다르다. 문헌만 보고 찾아왔겠지. 가볍게 봤지?”
“······”
푸에엥!
발라쿠가 코를 하나 막고 코로 바람을 내어 콧물을 바닥에 철썩 토해냈다.
새하얀 백발에 새하얀 수염을 하고 있는 발라쿠는 늙은 오우거로 보였지만 전투력은 끝없이 높아지고 있었다.
인간과는 다르게 털은 빛바래도 육체는 끝없이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우거는 항상 현재가 최고의 전성기였다. 죽기 전까지 무조건 과거보다 강한 것이 〈마신장(魔神將)〉이었다.
대마신 성현의 은총이었다. 수많은 차원에 마수들을 부흥시키는 것이 그의 야망이었고, 던전은 대마신 성현의 영토였고, 그곳을 지키는 영주가 오우거였다. 그런 신의 챔피언이 늙는다는 것은 웃기는 소리였다.
하지만 발라쿠는 확실하게 늙어있었다. 그 괴이한 모습을 봤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놈은 다른 오우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키메라 보급로〉를 대가로 너희들을 받아주었다. 아닌가?”
“맞습니다···”
“그걸로 장난질한 것도 사실이겠지?”
“결코 아닙니다!”
쏴아악!
발라쿠가 메마른 모래를 손가락으로 퍼서 그대로 퍼부었다. 게페락스가 모래 파도에 휩쓸려서 버둥거렸다.
“어푸, 어헉.”
버둥거리며 〈간략화〉된 마법으로 겨우 빠져나온 게페락스의 주변에서 검은 불꽃과 유황내가 났다. 하지만 진땀이 빠진 게페락스가 몸을 가누지 못했다. 육체가 감당하기 힘든 충격량을 지닌 채 밀려온 모래 파도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구력. 차 안에 있어도 뒤에서 들이박은 차 때문에 밖으로 나오며 현기증이나, 충격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과 같았다. 금방이라도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주, 죽는다.’
게페락스의 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려왔다.
“빨리 말해라. 여기서 죽으면 억울하지 않느냐. 너희들을 그냥 책하러 왔는데, 그 세 치 혀 때문에 죽으면 무슨 꼴이냐.”
“마, 맞습니다.”
게페라스의 턱 밑으로 식은땀이 한 방울 떨어졌다.
“크흐흐.”
그 애처로운 모습을 보며 오우거 발라쿠가 웃었다. 주변 공기가 웅웅 울렸다. 게페락스의 고막이 버티지 못하고 피를 흘러냈다.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인상을 찡그리며 귀를 막는 게페락스가 서둘러 방어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오우거 발라쿠는 그것을 가만히 놔두었다.
아등바등 거리는 것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형편없는 저 모습을 보라!’
“빠른 시일 내로 키메라 보급로를 만들어라. 한겨울에 남부 왕국을 친다. 그곳에서 마수의 땅을 만들어 세상을 물들게 만들 것이다.”
중립신의 파편으로 잉태되었지만 이후 대마신을 믿게 되며 강력한 종족이 된 오우거는 목표의식이 확고했다. 중립신은 죽은 신이고, 대마신 성현은 살아있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탈력감에 게페락스가 덜덜 떨면서 억지로 말했다. 발라쿠는 느긋한 걸음으로 사라졌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게페락스에게서 멀어졌다. 게페락스는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아냈지? 오우거의 역량이 생각 이상이다.’
“옛날 오우거가 아니다. 퀘애액! 퉷!”
몸을 추스른 〈키메라 알파던〉이 입에서 피를 쏟아내고, 침을 뱉었다.
“오우거가 똑똑해진 이유를 알고 있다고? 그럼 왜 진작···”
“피떡이 되고 깨달았다!”
소리를 지른 알파던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박박 긁었다.
“대마신의 은총을 한계 이상으로 받아낸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늙은 것이고, 그릇이 줄줄 새고 있을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게페락스가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말에 알파던은 고개를 돌리며 푸념했다.
“모르지. 대마신이 이 차원계에서 얻고 싶은 게 있나? 오우거가 가질 힘이 아니야. 퉷!”
알파던이 피가 뒤섞인 침을 계속 뱉었다. 게페락스는 영문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다시 한 번 장난질을 한다면 정말로 죽는다는 소리였다.
‘도망? 오우거의 손을 피할 수는 있어도 마수의 손을 피할 수는 없다.’
모든 면에서 몬스터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것이 던전의 마수였다. 더군다나 그들은 마신장을 우두머리로 두고 있다. 죽으라고 하면 죽을 정도로 오우거의 카리스마는 광폭했다.
‘남부 왕국이 멸망한다. 겨울에 쳐들어오는 마신장의 군세를 어떻게 인간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잘 된 것일 수도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대마신이 이 세상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 대단한 힘의 집중은 아니었지만, 마신장 하나의 그릇을 깰 정도로 한계치로 힘을 쏟아부었다.
그 비밀이 게페락스는 궁금해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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