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4 <-- 트롤 토벌 -->
“키아아악!”
끔찍한 소리를 내뱉는 고블린이 야영지 밖에 득실거렸다. 어둠 속이었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블린의 군세는 수백은 족히 넘었다. 그 속에서 병사들은 하나 되어 버릴 곳은 버리며 단번에 병력을 집결했다.
“키케켁!”
버려진 마차 위에 선 고블린 대장이 〈크놀 강철검〉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성취감을 느꼈다. 다른 고블린 또한 보급 마차에 손을 대며 곡물가루를 한 줌 주워 먹고 히히덕거렸다.
통솔이 되지 않는 난잡한 고블린 군대의 모습이 역력했다. 산만한 군대였다. 하지만 숫자가 워낙 많았기에 병사들은 한곳에 결집했다.
뒤처진 자는 없었다.
정규군의 훈련도는 무서울 만큼 높았다. 낙오자는 그들에게 없는 단어였다. 모든 인원이 일정 수준에 닿아있었다. 객체의 열등함은 훈련으로 말끔하게 지워졌다. 거기에 제각각 하는 일이 다 달랐음에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하나의 결과는 만들어냈다.
“흐으응!”
체격이 큰 병사가 말 힘 없이 마차를 조금 들어 올렸다. 다른 병사도 돕고 있었다. 순식간에 적절한 방향으로 마차가 움직였다. 체격이 작은 병사는 장작을 곳곳에 던져서 시야를 확보했다.
허둥지둥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병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뒷짐을 지고 있는 병사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야습이었고, 기습이었기에 방어구에 내장된 마법을 미리 사용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위협이 되지 않음에도 마음이 조급했기 때문이다.
“〈충격 마탄(Impact Magic bullet)〉!”
주먹만 한 탁한 백색의 돌같이 생긴 것이 포물선을 그렸다.
퍽!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나무 투구가 시원하게 박살 나며 두개골이 함몰된 숲고블린이 단궁 화살을 찾다가 그대로 무릎부터 힘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코가 깨어졌지만 꿈쩍도 안 했다.
즉사였다.
“누가 마음대로 마법을 사용하는가!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 방패병은 마차를 방패막이로! 장창병은 창부터 세워라!!”
마지막 불침번을 막 교체 받은 〈에녹 히터(Enoch Heater)〉가 고함을 질렀다. 그의 명령은 말끔하게 퍼져나갔다. 현대라면 엄청난 딕션이라며 칭찬이 자자했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깔끔하게 전파가 되었다.
그때 나무 위에 올라간 고블린들이 곤봉으로 나뭇가지를 후려패고, 시야를 확보했다. 단번에 단궁을 쏘기 시작했지만 찔끔찔끔 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덕에 큰 피해는 입지 않았고, 도리어 인간들의 통일된 힘을 맛봐야 했다.
“나무에서 사격!! 나무 위쪽에서 사격!”
방패병이 악을 질렀다. 전방에 있는 그는 그저 맞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마차 사이에서 고블린이 뛰쳐나올 것 같았다.
“후방 장창병, 투창 준비!”
“우!”
통일된 고함 소리에 마차 건너편에 있는 고블린들의 기세가 움찔했다.
“발사!”
“악!”
나무에 수십 개의 투창이 쏘아졌다. 위에 있던 고블린 서너 마리가 꼬치가 되어서는 땅으로 떨어졌다. 밑에서 마차 어디를 습격할지 가늠하던 고블린 대장의 머리가 추락하는 고블린에 부딪쳐서 깨어졌다.
“켁!”
나뭇가지를 부수고 힘을 조금 잃은 투창은 포물선을 급격하게 그리며 떨어졌다. 땅에 박히기도 했지만 달리던 고블린들을 섬뜩하게 만들기도 했고, 무릎에 그대로 투창이 박혀서 고통에 울부짖는 고블린도 있었다.
“끄아아아아!!”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눈물을 찔끔하며 고블린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릎에 박힌 눈먼 투창을 움켜쥐었지만 별다른 힘을 주지 못했다. 조금만 당겨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온다!”
“막으앗!”
고블린들이 뒤로 후퇴해서 자리를 잡은 인간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방패병은 고블린들과 드잡이질을 했고, 장창병들은 필요 이상의 고블린이 진입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괴이한 것은 고블린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죽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곳곳에서 기사들이 병사들을 통솔했다. 물론 선두에서 고블린을 도륙했다.
“버텨라! 고블린들의 단궁은 보잘것없다! 마차를 통해서 아무렇게나 쏴야 하고, 투창과 화살로 단궁수를 죽이고 있다! 버텨라, 버텨! 적의 숫자가 많다!!”
적의 숫자가 워낙 많게 여겨졌고, 확실한 숫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들은 쉽게 근접한 고블린을 죽이지 않았다.
“헉헉! 케엑···”
고블린이 방패를 두들기다가 침을 질 흘러냈다. 고개가 푹 숙여졌는데, 현기증마저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무 곤봉 따위로 체격이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상대를 타격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꺽!”
자신이 아니라 뒤에 있는 팔팔한 고블린이 장창에 의해서 팔이 찔리며 옆으로 휘청거렸다. 장창수들은 철저하게 두 번째, 세 번째 고블린을 노렸다.
“겨우 이게 끝이냐! 더 덤벼! 고블린 새끼야!”
방패수들은 고블린이 숨을 고르려고 할 때마다 고함을 지르며 방패로 몸을 때렸다. 그때마다 고블린이 밟힌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건 모두 인간들의 전술이었다.
방패병의 앞을 지친 고블린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더욱 안전한 것이고, 장창수는 2열, 3열의 팔팔한 고블린을 노렸다.
병사를 철저하게 제어가 가능하고, 이런 고도의 전술을 소화할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 동시에 선두에 선 기사는 고블린을 죽여서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장창수와 기사가 적을 죽였고, 방패수는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고기 방패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선두 보급대에 소속된 기병 30명 또한 후방에서 말을 보호하며 활을 쏘고 있을 지경이었다.
시야가 크게 제한된 상황에서 기병을 운용하는 짓은 미친 짓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들이 이렇게까지 방어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는 고블린의 숫자를 알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우오오오오오!”
황소와도 같은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것을 가까이에서 들은 병사들이 화답하듯이 소리를 질러대었다. 고블린에게 둘러싸인 푸른 갑주를 입은 기사가 질주했다.
팡!
그의 가죽 주머니에서 가루가 퍼뜨려졌다. 밤바람을 타고, 고블린이 있는 쪽으로 가루로 된 독이 퍼져나갔다. 〈하찮은 독제조〉에 불과하지만, 〈웅퉁한 쌍버섯〉을 말리고 빻아서 만든 가루독이었다.
구역질을 유발하는 독이었다.
드낙은 그런 가루독이 든 가죽 주머니를 10개나 혁대에 가지고 있었다. 한 쪽 구역을 토벌하고 질주할 때마다 하나씩 터트려서 후방 고블린을 무력화 시켰다.
‘다수를 상대할 땐, 독이 마법보다 강하다.’
구역질을 유발하는 하찮은 가루약이라도 전투에서는 극독이나 다름없었다. 전투 인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드낙은 그런 가루약을 흡입해도 이상이 없었다. 초월적인 해독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주 또한 이미 퍼뜨렸다.’
고블린을 대상으로 한 의문의 〈원시 저주〉는 이미 이 일대에 퍼졌다. 그게 무슨 효과인지는 몰랐지만, 주력이 바닥났다. 효과는 천천히 일어날 것이다.
“끼긱!”
고블린이 마차를 넘다가 갑자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손에 살점과 피가 묻어 나왔다. 하지만 고블린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긁다가 장창에 찔려서 쓰러졌다. 간헐적으로 〈뒷머리 간지럼증〉을 호소하는 고블린이 있었다.
“꾸에에엑!”
사방에 고블린이 득실거려서 공격도 못한 채 앞의 고블린을 밀고 있던 고블린이 코를 벌름거리다가 구역질을 했다. 다른 숲고블린도 마찬가지였다. 드낙의 가루독은 순식간에 고블린들의 활력을 착실하게 빼앗아갔다.
“〈교차하는 결빙 구역(Crossing Frost Zone)〉.”
드낙은 자신이 있는 곳에다가 다수 마법을 사용했다. 고블린들이 덤벼오다가 오한을 느끼고 움츠러들고, 느려졌으며 얼음이 발밑을 타고 오르자 발등에 불이 붙은 것처럼 펄떡거렸다.
바닥이 얼음으로 뒤덮여갔기에 오래 발을 디딜 수도 없었다. 신발이 없는 것이 고블린들이었다.
쉬이익!
동시에 강화 마법인 〈액체 파도(liquid Wave)〉가 뿜어졌다. 전신에서 뿜어졌는데, 단번에 얼음가루가 되어서 드낙의 주위를 안개처럼 만들었다. 안개보다 무거웠기에 빠르게 가라앉았지만 가까이 있는 고블린들은 눈을 찌푸렸다.
얼음가루 때문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타고난 전사인 오크가 아니었기에 전투 상황 속에서 이물질이 드러오면 바로 눈을 감아버렸다.
〈과열 신체(Overheating Body)〉 때문에 오한 속에서도 드낙은 막힘없이 움직여서 굼떠지고 얼음 송곳에 찔려서 아무것도 못하거나, 발바닥이 시려서 엉거주춤하고 미끄러져서 넘어져 상처가 곳곳에 생긴 고블린들을 손쉽게 죽였다.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80마리의 고블린의 목이 따이며 얼음 구역에 고블린 시체만 가득했다. 그걸 마차 위로, 마차 사이로 보고 있는 병사들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드낙이 다시 구역 밖으로 뛰어가며 독가루가 든 가죽 주머니를 팡하고 터트렸다. 가루가 밤바람을 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역을 정리하듯이 움직인 드낙 홀로 400마리가 넘는 고블린을 죽였다. 장창수는 200마리를 죽이거나 다치게 만들었고, 기사들은 100마리의 고블린을 죽였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에 전투 불능에 빠진 고블린 또한 50마리를 넘어갔다. 투창에 죽은 고블린은 적었지만 부상을 당해 오도 가도 못한 채 울부짖기만 울부짖었다.
전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역시.’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완벽한 전술이었다. 다수 마법을 마법사처럼 난사하는 드낙은 남부 왕국에서 극히 드문 존재였다. 전체 마법사 숫자가 1000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전투에서 마법사는 볼 수가 없었다.
마법사로 키워지지 않은 마력 사용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얼음을 밟고 다니며 드낙이 도망치는 고블린을 추격해서 30마리를 더 죽이고 돌아오는 동안 병사들은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1차적으로 천막으로 덮여있어서 피 때문에 보급을 버리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대단한 무위였소.”
스웬슨 보두앵, 찰리 린파이크, 에녹 히터. 선두 보급대에 배치된 기사들은 하나같이 몽펠리에 방계 주력 3가문이었다. 노골적인 배치였지만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못했다. 그들이 드낙을 크게 대우해주었다.
“이번 전투의 일등 공신이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오.”
드낙은 가볍게 수긍하고 넘어갔다. 아니라는 소리는 못했다. 실제로 800여 마리의 고블린 군세 중 반을 홀로 박살을 냈기 때문이다. 다른 기사는 마력 충전을 아티팩트를 통해서 해야 했지만, 드낙은 달랐다.
‘파이룬 가문의 전신갑주의 성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
마력을 공급하는 마력로가 대단히 두껍게 느껴졌다. 전의 〈72년식 전신갑주〉는 마력 충전에도 시간이 걸렸지만, 파이룬 전신갑주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 같았다. 72년식이 추석의 귀향길이라면, 파이룬 전신갑주는 그 반대편 차선을 질주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뻥 뚫리는 기분!
‘이래서 명품, 명품거리는구나.’
더 탐이 났다. 파이룬 가문의 대장장이나 마법사를 죽이면 그 기술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생각만으로 그쳤다. 드낙은 겁쟁이이기 때문이었다.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것이 드낙이었다.
병사들은 동이 트기 전부터 일어나 작업을 개시했다. 기사들 또한 그 자리에서 야외에 자리를 만들어 회의를 시작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군막에 고블린들이 던진 오물로 쓸 수가 없었다.
“〈주술 도기〉도 없는 고블린이었지만 무시무시한 숫자였소.”
“땅을 뒤덮은 고블린 시체가 널려있는 것을 보니, 진형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소.”
위태위태했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그런 숫자를 고블린들이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인간들은 효과적으로 고블린을 저지했고.
“나무 곤봉 따위로 정규군을 막으려 하다니, 웃기는 소리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방패병을 나무 곤봉으로 잡는다? 그것도 용병이 아닌 정규병을? 〈버티기〉만으로는 8시간을 힘을 주며 버틸 수 있는 지구력이 있는 것이 〈정규 방패병〉이었다.
오직 시민을 위해 살아가기로 맹세한 것이 남부 왕국의 정규병들이었다. 그들은 끝없는 수련이 강제된 삶을 살고 있었기에 은퇴해도 현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놈들의 노림수는 보급대에게서 승리를 따는 것이 아니오.”
드낙은 여기서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고블린을 죽여야 해.’
“시간을 벌기 위해서 고블린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오.”
찰리 경과 에녹 히터 경은 서로 인수인계를 받으며 드낙의 노림수를 얼핏 들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해를 하지 못하는 스웬슨 경에게 드낙은 〈크놀 강철검〉을 보여주며 짧게 설명했다.
다른 기사들도 도왔기에 무리 없이 납득할 수 있었다.
“매번 보급대가 500마리 이상의 고블린을 감당하는 것보다는 철저하게 짓밟아야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드낙의 말에 다른 기사들은 난색을 표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45일 진공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드낙의 말대로 하면 뒤처질 것이고 그 책은 오롯이 자신들이 짊어져야 했다. 말 그대로 드낙이 말하는 것은 그저 오지랖에 지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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