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2 <-- 트롤 토벌 -->
〈에녹 히터(Enoch Heater)〉이 입술에 침을 묻히며 말을 시작했다.
“후방이 두꺼운 이유는 병사는 병사끼리 호흡이 잘 맞기 때문이오. 반면 기사는 툭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소. 그래서 이렇게 병사들의 배치가 크게 상이한 것이오. 방패병 1줄이 끝인 것이오.”
드낙이 말을 적당히 받았다.
“적이 전방을 노리기 쉽다고 여길 수도 있으니···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고.”
“맞소. 자연스럽게 무용을 드러낼 수 있고! 자연히 병사들의 사기가 커지면 전투의 기세는 그대로 엎어지게 되어있소. 기습을 해도 그 이득이 역으로 뒤집히게 되는 것이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적은 두 가지 선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 두 가지의 선택은 적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유연함으로 여기기 쉽지만, 보급 방어군이 내어준 선택지였다. 어디를 선택하던지 덫이 있었다.
또한 후방을 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세상은 머릿수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자연히 뒤가 안전했다. 후방을 안전하게 만든 것이기에 더욱 좋았다.
‘뛰어난 전술이다.’
특히나 시각적으로 병사가 집중된 후방과 병사가 적지만 기사가 있는 곳이라 자연스럽게 두 가지의 선택지를 적의 지휘관은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그로도 제대로네. 상대의 생각을 찌를 수밖에 없다.’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에 가장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게 전술.’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림이 그러졌다. 드낙은 절로 입에 미소를 지었다.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노림수는 병사를 노리게 만드는 것이오?”
생각을 하다가 드낙이 에녹 히터에게 물었다. 에녹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 또한 노림수 중에 하나였다.
“맞소. 정확히는 〈정예 몬스터〉의 전술을 역으로 노리는 전술이오. 기사 다섯이 괜히 전방에 집중된 것이 아니지. 봐도 두 번 생각하게 만드는 진형이오.”
그 말을 들은 드낙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기만술까지 섞여있는 것이 선두 보급대의 진형이었다. 딱 정예 몬스터의 영악함을 이용하는 전술이었다.
‘살아있는 전술.’
책에서 죽어있는 전술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상대할 놈들을 생각한 활어(活魚)처럼 펄떡 뛰는 전술이었다. 맞춤형 전술인 셈이다.
거기에 〈정예 몬스터〉만 생각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본능을 앞세우는 놈들도 대처가 가능했다. 그리고 정예 몬스터가 복잡한 생각으로 많은 병사 쪽으로 군세를 깊게 찌른다면, 기사는 측면을 공략하여 허리를 끊어버릴 것이다.
‘정확히는 드낙 경이 그렇게 하겠지.’
에녹 히터가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드낙은 몰랐지만 이 진형은 맹장(猛將)의 기질이 다분한 드낙을 이용하는 전술이었다.
무려 선두 보급대의 기사들이 모두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전술이었다. 짧은 고민조차 없었다.
‘〈닥치고 방어 전술〉. 이 전술의 핵심은 드낙에게 있다.’
병사를 크게 후방에 집중시킨 것도 사상률을 줄이기 위함이다. 전방? 불파겐의 정신 나간 돌진에 부딪친 적병이 1겹에 불과한 방패병을 공격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일반인이 최홍만이 날뛰는 현장에 뛰어드는 격이다. 그럴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붙어서 버티기만 하면 불파겐이 와서 다 쳐죽일 것이다.’
그게 이 전술의 진짜 목적이었다. 〈너가와도 불파겐이 다 죽여 전법〉이었다. 그만큼 〈드낙 불파겐〉의 명성은 상당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게실리안 파이룬부터 아크온까지 쟁쟁한 자들이 그의 무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고블린 라바 기병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단기돌격한 이야기는 지금도 병사들에게 술안주로 사용되고 있을 지경이었다.
미친짓은 언제나 남자의 마음을 흔들기 마련이다.
드낙은 그것도 모른 채 초보적인 수준의 전술을 조금조금 자신의 마음속에 쌓아나갔다. 훌륭한 강의였다. 알맹이는 쏙 뺏기 때문에 더더욱 다양한 전술론을 이야기해서 드낙의 눈을 속였다.
모두 헛소리는 아니고, 전문가의 실전적 지식이 바탕이 되었다. 물론 가상의 적이 등장했기에 대부분이 그 상황에서만 유용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드낙의 형편없는 전술지식에 살을 붙여주고, 근육을 대어주고 뼈를 받쳐주었다.
〈히터 가문 보급전술 초급〉을 획득한 기분이 들었다. 군사학을 기본적이지만 그래도 바탕은 쌓았기에 에녹 히터의 말을 드낙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12시간의 강행군이 있고, 야영지가 만들어졌다. 길을 중심으로 곳곳에 모닥불이 지펴지고, 보급 수레가 장애물 역할을 했다. 무기는 언제든지 쥘 수 있도록 곁에 두는 병사들은 확실히 군기가 잡혀있었다.
“주변 정찰을 나가십니까?”
드낙은 남들보다 확실하게 체력이 높았고, 피로도 회복도 빨랐다. 그는 아무리 피곤해도 평상시에는 4시간의 수면도 필요 없을 정도로 대단한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벌써부터 나갈 준비를 했다.
이스핀이 걱정하면서 물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드낙이 웃었다.
“너 안 데려갈테니까, 네가 맡은 바 임무에만 열심히 해라. 다른 사람들 하는 것도 보고, 많이 배워라.”
“옙.”
바로 대답하는 모습은 얄미웠지만 드낙은 그것조차 웃어넘겼다. 자신의 부하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마냥 귀엽게만 느껴졌다. 뭔가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특히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구하러 왔을 때는 사실 충격적이었다.
‘뒷골목 깡패의 피비린내 나는 의리인가.’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 이스핀은 한 가족이 된 사람에게는 한없이 좋은 녀석이었다. 남들에게는 어떻게 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그 차이를 드낙은 그때 진정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이대로만 가자. 이스핀아.’
“으르르.”
도노가 으르렁대며 드낙의 다리에 몸을 비비며 지나갔다. 뒤에서 다가온 병사가 딱딱하게 굳었다.
“물지 않는다.”
“예? 예! 가시기 전에 〈스웬슨 보두앵(Swenson Baudouin)〉경께서 자신의 기사 마차에 방문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알았다.”
드낙은 곧바로 기사 마차로 향했다. 문을 노크하기도 전에 마차 문이 열리며 스웬슨 경이 내려왔다.
“늦은 밤에 정찰을 나가다니, 많은 이들이 귀감으로 삼을 것이오. 그 강철과도 같은 체력은 대체 어디로 오는지 궁금할 지경이오.”
드낙을 칭찬하면서 손에서 막대기 하나를 꺼냈다. 중간은 유리로 되어있었는데, 그 안에 찰랑거리며 액체화가 진행된 마력이 보였다.
“마법 아이템이오?”
“〈솟아오르는 빛막대기(Rising light Stick)〉라는 것이오. 견습 마법사들이 마력으로 만들어낸 빛 속성을 체감하고, 익히는데 자주 사용하는 것이지.”
드낙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효과는 별것 없소. 던지면, 밤하늘을 빛으로 가득 물들게 할 것이오.”
“위험할 때 쓰는 것이오? 그럼 나한테는 필요가 없는데.”
드낙이 농담을 하자 스웬슨 경이 웃었다. 드낙이 혁대에 꽂아 넣었다. 선두 보급대에는 종군 마법사가 없었다. 대신 병사들의 방패와 무기, 갑옷에는 마법 문양이 새겨져서 달빛이 비칠 때마다 푸르게 빛이 조금 나왔다.
순찰자 두 명이 따라나서려고 했지만 드낙이 거절했다. 그의 속력은 이제 순찰자들이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드낙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쌍둥이 성채〉에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숲은 〈옹달샘 숲(Small spring forest)〉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하루를 더 가면 〈콩과일 마을〉과 〈과수원 산〉이 나타난다. 과수원 산을 지나면 그때부터 평야가 시작되었다.
산과 평야, 숲이 다양하게 있는 곳이 〈멜마론(Melmaron) 영지〉의 특징이었다.
숲으로 들어간 드낙은 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수원(水源)이 풍족한 숲이었다.
‘이런 곳을 개발을 안 하다니, 신기하네.’
농업용수를 위해서 저수지를 대량으로 만들어야 하는 〈버려진 영지〉에 비하면 말 그대로 개꿀 농업 지대였다. 목재를 위해서 숲으로 남겨두는 듯했다. 전투 요새인 쌍둥이 요새는 장작 또한 중요한 자원이었다.
“모여라! 모여! 거지 같은 새끼들아! 말 좀 들어라!”
익숙하게 고블린 어(語)가 드낙에게 들려왔다. 도노는 코를 킁킁거렸지만 고개를 갸웃했다. 고블린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신갑주를 입고 있었음에도 드낙은 귀신같이 조용하게 움직였다.
〈십년일보(十年一步)〉 능력이었고, 노하우였다. 자신이 못 가진 노하우가 이미 체득(體得)이 되어있었다.
남부 왕국 특유의 밤바람이 불어오며 드낙의 몸이 수풀과 맞닿아서 내는 소리도 겹쳐들려왔다.
드낙은 옹달샘에 모여서 나뭇잎을 뜯으며 씹고 있는 고블린 무리를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이 있는 곳이 고지대였기에 들킬 염려가 없었다.
‘숫자는 고작 15마리뿐이네.’
용병 시절이었다면 죽이려고 머리를 팽팽 돌렸겠지만 지금의 드낙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더 정보를 모을 겸 귀를 기울였다.
“빨리 가자! 부락을 살리려면 인간의 코를 베어 와야 한다!”
“맞다! 지금 어두울 때가 최고다!”
“아직이다! 달이 크게 기울었을 때에 가야지 인간들이 더 피곤하다!”
제법 생각을 할 줄 알았다. 〈숲고블린〉은 벌거벗어 있지는 않았고, 나뭇잎과 넝쿨로 이루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웃기는 차림새였지만 체취를 나뭇잎 향과 나무냄새로 지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나뭇가지나 잎을 입으로 항상 씹고 있어서 입 냄새조차도 잘 나지 않았다. 주변에 물이 많아서 습관처럼 손을 씻고, 발을 담그고 마시는 모습도 보였다.
몇몇 숲 고블린들은 저급한 수준의 도기를 옆에 두고 있었는데, 손을 집어넣어서 미꾸라지같이 작은 물고기를 날것으로 뼈째 씹어서 먹기도 했다.
‘진흙 냄새.’
드낙이 투구를 조금 벗어서 냄새를 맡았다. 말끔하게 투구를 통해서 지워졌기에 드낙의 코는 다른 냄새를 확실하게 맡을 수 있었다.
‘부락이 살려면 인간의 코를 베어 와야 한다고? 고블린이 용병처럼 굴려지나 보네.’
이번 정예 몬스터는 또 희한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드낙이 도노에게 속삭였다.
“옆으로 돌아가서 혹시나 도망치는 놈이 있으면 죽여.”
도노는 대답 대신에 드낙의 손에 이마를 부딪치며 비빈 다음에 빠르게 사라졌다. 머리를 아래로 낮추고 냄새를 맡으면서 조용히 이동했다. 물론 바람이 자신을 지나 고블린에게 가지 못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다수마법이 깡패다.’
드낙이 깨우친 것이 있다면, 적을 죽이든 못 죽이든 파이룬 가문의 전신갑주에서 사용할 마법은 단 하나 뿐이라는 점이었다.
“〈교차하는 결빙 구역(Crossing Frost Zone)〉.”
오한이 서리고, 옹달샘의 표면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으에취!”
민감한 숲고블린 하나가 재채기를 하며 얼음이 발부터 뒤덮는 것을 보고는 기겁했다.
“흐어억!”
“적, 콜록!”
침까지 바짝 얼게 만들기 때문에 소리를 거칠게 지르려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목이 바짝 마른 것처럼 수분이 얼어버리자 텁텁한 목 때문에 고함을 지르지 못하고 고블린 대장이 기침을 했다.
그 덕에 드낙은 성공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푸확!
피가 튀고, 하체가 얼어붙은 고블린들이 드낙에게서 멀어지려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한 놈의 목이 달아나며 〈킬 더 배틀〉이 시작되었고, 넘어지는 사이에 드낙의 왼주먹이 고블린의 턱을 날려버렸다.
턱을 맞은 고블린은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끄악!”
곳곳에 튀어나온 추가적인 얼음 송곳이 주변에 가득하자 쉽게 덤벼들지도 못했다. 고블린 대장은 그 속에서도 독침을 쏘기보다는 도망칠 궁리를 했다. 하지만 한 번의 검격으로 두 마리~세 마리를 격살하는 드낙은 그 누구에게도 시간을 주지 않았다.
용케도 다수 마법의 구역 밖에 있던 고블린이 어버버하다가 몸을 뒤로 돌렸는데, 얼음 파편이 깨어지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꽈자작!
“끕!”
허벅지를 비롯해서 등판까지 나무와 넝쿨이 부수면서 박히면서 도망치던 고블린이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그의 체중으로는 얼음 파편의 충격량을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벌떡 일어나서 도망쳤다.
“컹!”
나무의 그림자에 가만히 서있던 도노는 고블린이 자신의 앞을 지나가자마자 뒤를 덮쳐서 목을 물어 머리를 털었다.
“꺼, 꺽.”
피를 철철 흘렸지만 도노는 끝마무리를 하지 않았다. 한 발로 등을 짓누른 채 고개를 들어 혀로 주둥이에 묻은 피를 핥았다. 얼려진 신체가 박살이 났지만 피부만 터져나가 울면서 이를 악물고 도망가는 고블린이 도노의 눈에 들어왔다.
슬쩍 도노의 눈이 드낙에게로 향했다.
드낙은 한 놈을 묶고 있었다. 생포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도노가 빛살처럼 달려나가 몸통 박치기를 했다. 다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고블린이 그대로 옆으로 패대기쳐졌다. 고블린이 소리를 지르면서 손을 버둥거렸다.
도노의 아가리가 고블린의 뱃가죽과 함께 내장을 물어뜯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탈력감을 느낀 고블린이 헛바람을 내뱉으며 과호흡 증세를 호소했다. 무기조차 버리고 도망간 고블린의 최후였다.
고블린 12마리가 드낙의 검에 그냥 죽어버렸고, 1마리는 밧줄에 꽁꽁 묶였다. 2마리는 도노에 의해서 가볍게 죽음을 당했다. 내장이 뜯겨진 고블린은 기어가다가 도노에 의해서 목이 물어뜯겨 뒤늦게 죽어야 했다.
========== 작품 후기 ==========
6163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9월 정산금액입니다. 10월달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서야 올리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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