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1 <-- 트롤 토벌 -->
부들부들 떠는 애크미(acme) 가문을 보며 데보네이어(debonair) 가문은 아예 하모니 가문까지 싸잡아서 욕했다.
“중검수(重劍手)가 아무리 뛰어나고는 하나 고작 10명으로 무엇을 하겠소? 특히 선두는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대검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 말에 하모니 가문이 즉각 반박했다.
“그럼 도끼수를 데려온 건 옳은 일인가? 짐수레라도 장작으로 패려고 온 건가!”
“말이 심하시오!”
“그쪽도 만만치 않소!”
서로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킨 가문은 그런 하모니 가문을 보며 혀를 찼다.
‘호로상놈의 가문이 어딜 끼려고 드나?’
“수틀리면 가족도 죽이는 놈들을 어찌 믿겠소? 하모니 가문은 후방 담당이 적절하다고 보오.”
“언제 적 일을 아직도 꺼내시오? 모두가 이해한 일이오.”
시끌시끌.
아크온이 목소리가 점점 커져서 분간조차 하기 어렵게 되자 손을 들어 올려 손뼉을 쳤다. 몇 번을 치자 좌중이 조용해졌다.
“진정들하고, 목이라도 축이시오.”
약 3분 남짓의 침묵 뒤에 다시 이야기가 시작됐다. 특히 이런 시장 바닥 같은 분위기를 〈왕족 제퍼 플래티넘〉은 아주 좋아했는데, 분열된 몽펠리에의 정치 상황이 그를 즐겁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파벌 싸움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서로를 물고 뜯었다면 이제는 파벌로 뭉쳐서 의견을 부딪쳤다.
〈스웬슨 보두앵(Swenson Baudouin)〉은 정론을 이야기했다.
“길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기병이오. 우리 가문은 철기(鐵騎)를 20기 데려왔고, 그들을 지원할 경기(輕騎) 또한 20기를 보유하고 있소. 길게 늘어진 보급로를 확실하게 최소한의 인원으로 지킬 수 있소.”
그의 손이 데보네이어 가문의 기사에게 향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몽펠리에의 차남편에 서서 온갖 이권을 빨아먹고 있었다. 당연히 가족이었다. 적어도 지금 상황으로는.
“방패병과 도끼수의 조합은 상당하고, 데보네이어 도끼수는 유명하기까지 하오. 이렇게만 짜도 선두는 승승장구할 것이오.”
그 말에 〈찰리 린파이크(Charlie Linpike)〉가 코웃음쳤다. 미친 소리였기 때문이다. 기병은 결코 보병보다 많아서는 안 되었고, 1/3의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 최고였다. 보병은 항상 기병의 3배를 유지해야 했다.
그게 정석이었다. 방패 없는 창은 적을 많이 찌르지 못하는 법이다.
“보병 30에 기병 40이 스웬슨 경의 눈으로는 정석으로 보이는 것 같은데, 다시 군사학 책을 읽으셔야 할 것이오. 기병 40은 얼어 죽을 40이요. 아까 보급로가 얇다는 것을 보지 않으셨소? 기병 20도 동원하지 못할 길이오!”
“길게 만들면 되지 않소.”
“기병을 위해서 보급 인원을 늘리자는 소리를 말하는 게 정상인가!”
“어차피 적재를 위해서 큰 마을로 향해야 한다면, 쭉 이어지는 것이 정답 아닌가!”
두 곳의 큰 마을에 보급 진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들어서 바로 보두앵에서 반박을 쏘아붙였다.
히터 가문과 노타블 가문은 조용했다. 애초에 방패병만 데려온 히터 가문은 호위에 적합하지만, 빠른 토벌이 불가능했기에 선두에 설 수 없었다. 한 번 치안을 확보한 곳을 차순으로 보급대를 이끄는 것이 좋았다.
노타블 가문의 경우에는 전차를 10기 보유하고 있었기에 평지에서나 활약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슈퍼브와 제스트 가문은 애초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만 차지하고 말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그나마 슈퍼브 가문의 화살검수는 근접전과 원거리전에서 뛰어난 보병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선택될 가능성이 높았다.
싸움은 보두앵과 데보네이어, 킨 가문 그리고 린파이크와 애크미, 하모니 가문으로 두 패로 나누어졌다.
“스웬슨 경, 기병이 많은데, 차라리 경기병만 동원하고 만족하는 게 어떤가?”
“보병의 보조를 하는 경기병이 세상 어디에 있소? 차라리 킨 가문의 궁기병을 선두에 서라고 하십시오. 철기까지 섞는다면 금상첨화 아니오?”
그 말에 단박에 린파이크가 훼방을 놓았다.
“보병이 기병 따까리요? 병사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소?”
아크온이 중재를 놓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공을 논함에 있어서 위아래는 없는 것이다. 결론을 내기 전까지는 아크온의 말에도 한 마디는 해야 했다. 나중에 가서 공을 얻을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언제까지 싸우는 거야.’
드낙은 그 모습을 보며 질릴 정도였다. 1명이라도 더 선두에 서려고 하는 모습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이미 귀족들은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가문을 빛낼 순간은 이곳에서 승리하는 자가 얻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힐끗 본 아크온이 속으로 웃었다. 드낙의 질린 표정이 너무 웃겼기 때문이다. 귀족답지 않은 자였다. 그렇기에 그런 행보를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그만들 하시오!”
몽펠리에의 파벌싸움을 좋다고 구경하던 〈왕족 제퍼〉가 나섰다. 해도 너무했기 때문이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칼까지 뽑으려는 진한 분위기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만큼 날이 선 논쟁이었다.
모두가 조용해졌지만, 분위기에 깜짝 놀라서 중재시킨 것일 뿐이라 대책이 없었다.
“아크온 경! 그대가 정리하시오. 다만, 불만이 나올 수 있기에···”
잠깐 고민하다가 제퍼가 말을 이어나갔다.
“일주일마다 선두의 지휘권을 교체하시오.”
웅성거림이 커졌지만, 아크온이 손으로 분위기를 진정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위아래로 천천히 흔들자 다시금 조용해졌다.
“이렇게 말싸움만 하다가 하루가 저물 수 있으니, 내 임의대로 정하겠소.”
아크온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흔들었다.
“선두 지휘관의 7일마다의 교체는 아주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하오.”
그 말에 제퍼가 의자 뒤에 몸을 뉘며 미소를 지었다.
“스웬슨 보두앵 경과 찰리 린파이크 경 그리고 에녹 히터 경이 번갈아가면서 하시오. 다만 지휘관 교체의 기간을 5일로 줄이겠소. 아무래도 지휘관이 3명이다 보니 로테이션을 한 번 돌려도 보름이 넘는 건 아닌 것 같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2명의 지휘관을 군대에 놓고, 하루씩 돌아갈 때도 있었다. 지휘관의 능동적인 교체는 일반적이었다.
“최대한의 보병! 최소한의 기병! 이게 보급대의 기본이오. 하지만 이번 일은 평범하지 않소. 〈정예 몬스터〉의 존재 때문이오. 그렇기에 그들을 타격할 〈타격대〉 또한 존재해야 하오.”
“선두 보급대에는 기병 30, 보병 70으로 짤 것이오. 기병에는 보두앵 가문과 킨 가문이 알아서 잘 배분하시오.”
“다음은 보병인데, 보급대를 보호하는 데 있어서는 방패병과 장창병을 넣는 게 최고요. 린파이크 가문의 장창병과 몽펠리에 방패병 그 외에 몇몇 가문의 병사들을 차출하겠소.”
이에 데보네이어 가문의 기사 〈래리 데보네이어(Larry Debonair)〉가 소리를 높였다.
“타격대의 구성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오.”
“타격대는 보급대의 바로 뒤에서 2일 거리를 두고, 운용할 생각이오. 선두에서 방어전을 펼치고 난 다음에 적을 타격하는 것이오.”
보급부대를 노리고 그 전투에서 적에게 사상자를 내었을 때, 적을 타격하는 임무였다.
“숲에서 기병을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첫 번째 큰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기병과 전차의 사용은 타격대에서는 없을 것이오.”
그 말은 반대로 평지에서의 전투는 기병 전력이 다 해 먹겠다는 소리였다.
“데보네이어와 하모니 가문에 슈퍼브 가문까지 산과 숲의 타격대고, 평지의 경우에는 노타블 가문의 전차병과 보두앵 가문의 철기 그리고 몇몇 추가 인원을 구성에 맞게 갖추고 싶소.”
아크온이 목을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머지는 후방 보급대로 배치하겠소.”
서로 가야 할 곳이 정해지자 배분이 시작되었다. 특히 가장 불만이 많아야 할 가문은 히터 가문이었음에도 가볍게 넘어갔다. 히터 가문은 아크온에 줄을 놓았기에 이번에 공을 못 세워도 양보했기에 다른 이권을 그에게서 받을 수 있다는 약조가 사전에 약속되었다.
그렇기에 굉장히 조용했고, 고분고분했다. 반면 애크미 가문은 말 그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설마 가야 할 길이 그렇게 얇고, 산과 숲이 험난할 줄은 몰랐다.
장궁수로는 후방 보급대와 함께 안전하게 가고, 평지에서 진지를 지키는 일에 쓰일 수밖에 없었다. 노타블 가문의 경우에는 전차로 평지에서 몬스터를 쓸어 담을 생각에 유쾌하게 넘어갔다.
그 속에서 조금 조정이 일어났다.
선두 보급대에 소속될 수 있는 킨 가문의 궁기병은 보급로와 험지를 이유로 그냥 아예 평지 타격대로 빠져버렸고, 후방 보급대에 속하게 되었다. 대신 선두 보급대의 기병 서른 자리에 보두앵의 중갑 기병 10기와 경기병 20기가 배치되게 되었다.
산과 숲 타격대는 그대로 이루어졌다.
평지에 보두앵 가문의 남은 중갑기병 10기가 배치되며 자연스럽게 후방 보급대에 배속되었다. 나중에 큰 마을을 만나면 산과 숲 타격대와 교체될 것이다.
“잘 부탁드리오.”
특히 슈퍼브 가문의 〈랄프 슈퍼브(Ralph Superb)〉 경은 데보네이어 가문과 하모니 가문에게 직접 발걸음을 옮겨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잘해줘야 활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애크미 가문의 기사 〈포스터 애크미(Foster Acme)〉가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같은 궁수지만, 장궁수가 아닌 단궁을 사용하며 버클러(소형 원형방패)와 숏소드를 부무장으로 지닌 슈퍼브의 화살검수들은 어디서든지 적당한 활약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대단한 활약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병과에 발을 걸쳤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정리가 이루어졌다. 그 공은 마치 〈왕족 제퍼〉의 것으로 여겨졌는데, 지휘관의 교체라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퍼 님, 덕분입니다. 사실 3일은 논할 줄 알았습니다.”
“3일이나? 말도 안 되오. 하루면 족한 것을. 하하.”
‘지독하구나. 공 하나 먹으려고 같은 방계라도 이 정도일 줄이야. 정말로 북부는 형편없군!’
실무를 겪어도 왕족이라서 우대받으며 온실 속에서 실전을 거쳐온 제퍼였다. 북부 귀족들은 모두 한통속이었다. 물론 그 속에서도 제퍼에게 손을 비비며 이득을 취한 귀족들이 많았지만, 여기서는 또 달랐다.
아크온에게 미리 언질을 받았기에 전과는 또 다른 태도를 보였다.
‘지금 공을 줘야지, 길을 잘 들인다.’
피비린내 나는 북부 귀족들에게 제퍼는 그저 강력한 힘을 지닌 〈애송이〉에 불과했다. 말과 상황으로 그에게 공적을 내어줌으로써 마법사를 이끌고 선두에 서겠다는 미치광이짓을 하지 않도록 사전에 막았다.
“내가 없으면 싸움만 나겠소. 후방에서 두루두루 봐야겠소.”
“옳은 말씀입니다. 총지휘관은 항상 뒤에 있는 법입니다.”
정치적으로 공을 세웠다고 생각한 제퍼는 종군 마법사들의 의견대로 후방에 남겠다고 원탁회의에서 말했고, 많은 귀족들이 제퍼를 추켜세워주었다.
그렇게 선두 보급대가 출발했다. 그 속에는 드낙 또한 있었고, 이스핀을 비롯하여 2개 가문의 기사가 있었는데, 자신의 가문 병사는 없었지만 에녹 히터 경이 선두 보급대에 함께하게 되었다.
기사 전력만 다섯 명이었다. 그들이 앞에 함께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위세가 대단해졌다.
‘경험을 주라니. 아크온 님의 말을 그대로 이행해야 하나?’
그중에서 〈에녹 히터(Enoch Heater)〉는 투구 속의 마법시야를 통해서 드낙을 곁눈질로 보며 고민에 빠졌다. 더 이상의 공부가 필요 없어 보이는 것이 드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크온 몽펠리에는 에녹에게 드낙을 항상 곁에 두고 사소한 것이라도 이야기의 주제로 삼으라고 했다.
말 그대로 교육을 시키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명령이었기에 에녹 히터는 내키지 않으면서 드낙의 옆에서 수다쟁이처럼 이것저것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드낙은 그것을 귀 기울여서 들었다. 특히나 〈보급대의 진형〉은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들을 가치가 있었다.
“보시오. 후방은 병사로 두껍게 만들고, 전방은 가늘게 했소. 기사가 있기 때문이지만 굳이 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 않소?”
“왜 그렇소?”
드낙의 물음에 에녹 히터가 말을 이어나갔다. 이 전술은 오직 드낙을 백분활용하는 전술이었지만,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교묘하게 다른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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