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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10화 (309/1,239)

0310 <-- 트롤 토벌 -->

드낙이 이곳에 온 지 5일 만에 〈원탁회의〉가 개최되었다. 모든 준비가 거의 다 끝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상석은 당연히 종군 마법사를 이끌고 온 〈제퍼 플래티넘(Zephyr Platinum)〉이 앉았다.

마법사 전력은 세월이 걸려야 얻는 것이기에 그런 전력을 10명이나 끌고 온 백금 왕가는 자신들의 위세를 명명백백히 했다. 특히 몽펠리에는 왕가에 직위를 받은 가신이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기 쉬웠지만 봉신제는 그렇게 쉽게 말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왕이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대표자에 불과했다. 그 힘의 우열은 전쟁으로 가려내는 것이었지만 백금 왕가는 불파겐 사태 이후 전쟁다운 전쟁을 수행하지 않았기에 귀족과 왕가의 힘이 정말로 어느 정도인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자연히 일반적으로 왕의 가신인 남작가의 사람으로서는 상석을 양보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진행은 아크온이 맡았다. 위명을 떨친 것으로 보자면 이곳에 누구도 〈고위 기사〉인 버팔로 나이트의 명예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나마 따라잡는 기사가 있다면 〈청혈기사(Blue blood Knight)〉가 유일했다. 그는 무려 〈언데드 건축물〉을 홀로 토벌했기 때문이었다.

각 가문의 호위병 2명과 문인 1명이 들어왔기 때문에 쌍둥이 성채의 3층, 〈알고레스의 대전〉은 북적북적했다. 특히 깃발을 들고 있는 비무장 상태의 병사도 가문마다 1명씩 추가로 있었기에 인원이 대단했다.

그들을 배경으로 다양한 모습과 형태, 길이조차 다른 깃발들이 놓인 채 큰 원탁에 대표자들이 앉았다. 자리는 반드시 정해져 있었고, 드낙의 위치는 상석에서 가장 가까운 오른쪽이었다.

좌의정 다음에 우의정이듯이 3위에 달하는 대우를 해주었다. 거품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백금 왕가와 몽펠리에 덕분에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불편하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절로 꽂혔다. 드낙은 이스핀을 대동하고, 순찰자 하나만 더 데리고 있었다. 깃발조차도 없었다.

저벅.

드낙의 걸음에 걸거치는 자들은 너도나도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드낙은 이곳에 있는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왜 이렇게 다들 일찍 온 거야. 괜히 어그로만 잔뜩 끌었네.’

아침해가 뜨면 오라고 해서 왔는데, 자신이 가장 꼴찌였다. 자연스럽게 높은 곳에 앉아있는 〈제퍼 플래티넘(Zephyr Platinum)〉의 눈에 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대부분이 무인(武人)임에도 드낙을 피하는 모습은 양 떼 속의 늑대나 다름없었다.

“사자의 갈기와도 같은 저 붉은 머리카락을 보니, 어렸을 적에 역사를 배우면서 꿈꾸었던 기사가 현실에서 보이는군. 꿈에서 뛰쳐나온다고 이렇게 늦었는가?”

웃음소리가 조금 나왔다. 그만큼 백금 왕가의 입장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불파겐의 후예는 낮도깨비나 다름없었다.

“아침해가 뜨면 오라고 해서 그렇게 했을 뿐인데, 이리 될 줄은 몰랐습니다.”

드낙의 정중한 말과 함께 창에서 아침 햇빛이 크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햇빛에 제퍼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권했다. 드낙은 그제서야 자리에 착석했다. 바로 앞에 아크온이 보였는데 그가 윙크를 했다.

드낙은 미소로 대답해주었다.

사람들의 대부분 시선은 드낙의 붉은 머리카락에 고정되어있었기에 아크온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시선을 끌어모았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에게로 옮겨졌다.

“모두 쌍둥이 성채에 오래 있어서 엉덩이에 좀이 쑤셨을 것이오. 오늘 이렇게 큰 회의를 열게 된 것은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오.”

아크온의 뒤에 있던 수행원이 긴 양피지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들인 아크온이 조금 읽고, 다시 고개를 사방으로 천천히 움직이며 말했다.

“가장 문제였던 것이 도로의 상태였소. 특히나 멜마론 영지는 산지가 많은 곳은 도로가 끔찍하고, 몇 없는 평지를 경유하는 곳만 길의 상태가 좋소.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단단한 산(Hard Mountain)〉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항상 문제가 제시되었소.”

이것은 원탁회의이기도 했지만 보급을 준비하는 이들을 높이 띄워주기 위한 논공행상의 현장이기도 했다. 전투를 하러 가는 이들은 그전에 그들의 검이, 그들의 발걸음이 적에게 닿게 해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언제나 있어왔다.

종군 마법사들의 바퀴 강화. 질 좋은 목재를 구해온 상단에 대한 이름이 거론되었고, 그 일을 추진한 가문 또한 아크온의 입에 걸렸다.

물론 10에 8은 몽펠리에의 역량이었다. 드낙은 그것을 들으며 진실로 〈명문가〉의 역량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문으로도 전투 하나는 해결할 정도네.’

못해도 몽펠리에의 피가 흐르는 이들의 숫자는 1천 명이 넘었다. 그들 모두를 관리하고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몽펠리에 가문은 1천 명의 가족을 지닌 자들이었다. 드낙은 진정으로 그들이 모든 분야에 진출해있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라워했다.

“이러한 준비가 이제 끝나가고, 멜마론 영지로 향해야 하오.”

아크온이 긴 양피지를 다시 수행원에게 옮기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짧은 순간일 뿐이지만, 드낙은 조금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큰 회의에 참석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크온의 말을 뒤로 벌써부터 내정적으로 공을 세운 이들이 짤막하게 소감을 말했다. 마지막에 가서는 멜마론 영지 출신의 사람들이 그곳에 대한 기후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문인의 입을 통해서 이루어진 정보에 불과했다. 하지만 탁상공론이 아니라는 점에서 드낙은 잘 집중하여 들을 수 있었다.

“산이 거친 곳은 그 덕에 매우 조용할 때도 있습니다. 서로 산의 반대편에 살기 때문입니다. 큰일이 아니면 산을 넘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보급로 이상의 치안을 담당하는 것보다는 산의 한쪽 면만, 도로에 해당하는 면만 토벌을 진행하면 치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오.”

많은 이들이 수긍하는 눈치였다. 홀로 있지만 큰 산이 많은 멜마론 영지의 경우 도로와 인접한 산의 한 면만 처리해도 도로의 치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곧 늦가을입니다. 활동성이 많을 수 있지만, 그렇기에 산 한쪽 면을 토벌하면 그곳에 남은 자원을 다른 면에 있는 것들이 먹기에 도로까지 내려오지 않을 겁니다.”

자연히 계절에 대한 것도 이야기해졌다.

“멜마론 영지는 호랑이가 많습니다. 때문에 항상 야영을 할 때에는 장애물을 설치해두십시오. 큰일 날 수 있으며 혼자서 다녀서는 안 됩니다.”

호랑이에게 물리면 순식간이었다. 체구가 조금 작은 300kg짜리 하마조차 물어서 끌고 가는 놈이 호랑이였다. 괜히 호환(虎患)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이의 도움이 있어야지만 살아날 수 있었다.

문인이 뒤로 빠지자 아크온이 뒤에서 준비하고 있다가 다시 나왔다. 그는 양피지를 하염없이 읽다가 문인의 목소리가 끊기자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일단 전체적인 그림은 이곳에서 2일 거리와 6일 거리에 큰 마을과 평야가 있소. 그곳에 거점을 마련하여 보급을 축적한 뒤에 겨울이 시작될 즈음에 단단한 산으로 향하여 트롤을 잡아낼 생각이오.”

길이 넓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다행이라면 큰 마을이 두 곳이었기에 목책을 이용하여 보급을 안전하게 적재할 수 있었다.

“아니, 그대로 진격하면 될 것인데, 한 달하고 보름이나 걸린단 소리요?”

아크온의 말에 왕족인 〈제퍼 플래티넘(Zephyr Platinum)〉이 반문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밖에는 벌써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45일이나 더 있어야 하는 것은 이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크온이 깍듯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드낙의 눈에는 책 잡히지 않으려는것처럼 보였다

“상황 말이오?”

“예. 저희들이 상대하는 몬스터는 〈외눈 다크 트롤〉로 평범한 트롤과는 궤를 달리하는 악독한 존재입니다. 사악한 흑마법사들의 실험으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놈이지만, 스스로 우리를 부수고 뛰쳐나온 몬스터입니다.”

그 뒤로는 〈악마의 힘〉이 퍼지며 생긴 북부의 괴이한 일들이 아크온의 의견을 뒷받침했다. 듣는 내내 암울한 북부의 배경이 이야기돼서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드낙 스스로 적당한 영지에서의 풍족한 삶을 꿈꾸기 때문이다.

“〈정예 몬스터〉는 계속해서 태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외눈 다크 트롤로 향하는 길은 고난의 길이 될 것입니다.”

“음. 그렇군. 그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오. 단단한 돌다리에 서서 적장을 상대해야 하는 법이지.”

실패 없는 토벌을 위한 기반을 위해서 45일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드낙은 답답함을 느꼈다. 하루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도 갈 수 있는 현대인 아닌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통해서 하루 생활권으로 묶여있었다.

지구촌의 소식을 곳곳에서 바로바로 들을 수 있었고, 인터넷 강국이었기에 광속으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덕에 드낙은 〈45일 진공 작전〉을 좋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병력이 전방으로 향할 수는 없소.”

아크온이 마지막 안건을 올렸다. 그 말을 기다리듯이 주변의 기세가 달라졌다. 보급로는 한정되어있다. 그렇기에 사용할 수 있는 병사도 정해져 있었다.

〈멜마론(Melmaron) 영지〉의 길은 형편없었기에 100명의 보급대를 운용할 수 있었다. 가느다란 길이었다. 자연스럽게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결정하기 전에 자신의 가문이 선두에 서야 할 이유를 먼저 듣겠소.”

드낙이 가장 먼저 선수를 쳤다. 목소리와 기세가 워낙 대단해서 드낙이 입을 열기 직전의 순간에 주변이 쥐새끼가 찍찍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대영웅과 쟁쟁한 고위 기사 그리고 앞날이 창창한 지휘관 때문에 무색하게 느껴진 드낙 또한 영웅적인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까지 오면서 수없이 강력한 자들을 상대했소. 이런 내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누가 설 수 있겠소? 크게는 〈구울 묘지기〉라 불리는 언데드 구조물부터 작게는 고블린 수백 마리까지 지금까지 이곳에 오며 토벌한 괴물들은 이루 말할 수 없소.”

아크온이 주변을 훑었다. 반박하는 이가 있어야 맛이 있는데 모두 조용히 드낙과 아크온을 번갈아가며 볼 뿐이었다. 그제서야 아크온이 드낙을 받쳐주었다. 사실 몇 대라도 맞을 줄 알았는데, 모두 불파겐의 이름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자격이 있소. 홀로 라바들에게 뛰어들어 죽음을 무릅쓰고 병사들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모습을 내가 직접 봤기 때문이오.”

그 무용담은 벌써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심지어 그 때문에 목숨을 구함 받거나, 전투를 쉽게 치른 병사들은 드낙을 〈트루 블러드(眞血)〉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믿고 따를 진정한 혈통은 불파겐이라는 소리였다.

그만큼 드낙은 민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드낙이 고꾸라지면 사라질 힘이었지만 드낙은 아직까지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것은 눈덩이처럼 불어 가고 있었지만 귀족 중에 그것을 진정으로 무섭게 여기는 자는 드물었다.

“버팔로 나이트가 추켜올려주는 자를 누가 내려깎겠는가?”

〈왕족 제퍼 플래티넘〉까지 그렇게 말하자 드낙이 자리에 앉았다. 이미 선두에 서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드낙만큼 저돌적인 자가 없었기에 어디서든 앞에 설 자가 드낙이었다.

다른 가문들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런 눈치싸움도 잠깐이었다.

‘드낙 불파겐이 앞에 서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공이 굴러서 발밑에 떨어진다.’

앞뒤보지 않고 그가 달리는만큼 자신들이 편함을 잘 알았다.

‘반드시 옆에 서야 한다.’

“저희 애크미 가문은 가장 강력한 장궁수를 보유하고 있소. 병사가 오르지 못할 곳을 타격할 수 있기에 활용도가 굉장히 높고, 힘든 싸움도 쉽게 풀어갈 수 있소!”

“무슨 소릴! 겁쟁이 같은 궁수로 몬스터를 어찌 상대하나! 수풀에 숨으면 그 목에 화살이라도 꽂지도 못할 것을! 야습이면 더할 것이고! 도끼가 최고지! 데보네이어 가문이야말로 선두에 마땅히 서야 하오!”

“뭐라?”

순식간에 대전이 시끄러워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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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에 퇴근 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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