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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09화 (308/1,239)

0309 <-- 트롤 토벌 -->

〈마들린 제스트(Madeline zest)〉는 익숙한 듯이 종군 마법사가 있는 곳에 드나들었다. 그들을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쌍둥이 성채〉의 내성을 지키는 성채 근위병들이었음에도 거리낌 없었다.

아크온에게 그들을 막을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것을 통해서라도 백금 왕가에게서 재력을 받으면 결국 북부가 살찌는 것이었기에(정확히는 제스트 가문) 놔두는 면도 있었다.

놔둔다고 해서 철저하게 귀로 엿듣고 보고를 올리라고는 언질을 해두었기에 마들린 또한 안심하고 드나들 수 있었다. 서로에게 잘해서 믿음이 있기 때문이고, 역사가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 가문은 역사를 맹신하는 면이 컸다. 오래 함께 해오면 앞으로도 오래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바보들이지.’

마들린 제스트는 그런 것에서 벗어나있었다.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귀족 사회의 폐쇄적 움직임은 가장 가문이 약한 제스트 가문의 일원인 마들린에게 혐오감만 주었다. 그는 박쥐처럼 살아가도 기반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자였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몽펠리에의 방계도 아니었기에 아크온에게 보고서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사 은함〉을 하나 받은 상태였다. 왕가와 몽펠리에 사이에서 이득을 모두 취한 것이다.

제스트가 만난 것은 왕족은 아니었다. 그들을 만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그 희소성이 왕족들의 가치를 더 높였다.

“마들린 제스트 님을 뵙습니다.”

마법사가 앉아있다가 서둘러 일어나서 고개를 푹 숙였다. 평민 마법사 출신에다가 종군 마법사로 동원된 마법사는 기반도 뭣도 없는 놈이었기에 자연히 깨갱하고 기기 바빴다.

“네 이름이 뭐더라?”

“〈몬 엘톤(Mon Elton)〉입니다.”

“성도 없는 놈이 엘톤은 무슨.”

“···몬입니다.”

“그래, 몬. 오늘도 그분께서는 날 안 만나시겠다고 하시던가?”

“예. 저에게 말씀을 전하시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마들린이 신경질적으로 귀걸이를 잡아당겼다. 눈치를 볼 사람이 없으니 절로 습관이 나왔다. 귀걸이가 걸린 귀에서 피가 조금 새어 나왔지만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힘을 줘서 고통을 즐겼다.

“이유도 말 안 하시니, 이거 답답하네.”

“그분의 생각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마들린은 한숨을 몇 번 쉬다가 이내 몬 엘톤에게 정보를 풀었다. 드낙에 대한 것이었다.

“한 번 만나 뵙고 싶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가 직접 찾아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애초에 관심이 없는 듯했어. 이미 400년 지난 일 아닌가? 그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면, 북부부터 후려쳤을 것이다.”

나무라는 시어머니보다 옆에서 말리는 척 가슴에 대못을 박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었다. 끝까지 자신의 편을 들어준 12 가문 또한 개박살이 났기 때문에 원한은 북부 가문에게 더 있었다.

칼을 들게 만든 놈보다 그 칼로 자신을 죽인 놈의 얼굴이 더 선명한 법이다.

몽펠리에와 함께했기 때문에 백금 왕가의 의심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몽펠리에와 드낙의 관계성은 굳어지기 직전이다. 트롤 토벌 전에 왕가 쪽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그건 그분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

마들린 제스트는 그것을 끝으로 빠져나갔다. 그의 뒤통수를 보며 몬 엘톤은 증오의 감정을 숨겼다.

‘개 같은 귀족 놈들.’

몬 엘톤은 〈제퍼 플래티넘(Zephyr Platinum)〉과의 알현을 가졌다. 그리고 그가 말해준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쯧.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불파겐의 후예에게 독약을 먹이다니. 아주 개새끼구나.”

그는 독살 사건을 통해서 드낙과의 연결을 감히 추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어떤 놈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범인은 몽펠리에일 뿐이었다. 그 독주의 수준도 저급해서 드낙은 독살을 당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미리 선수를 친 격이다. 더욱이 주동자 또한 빠르게 잡아들여서 지하감옥에 수감해버렸다. 발 빠른 대처로 드낙에게 호감을 얻기도 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별 수 있나. 트롤 토벌 후를 노려야지. 이 상황에서 더 나아가면 서로만 경계하게 된다. 시간이 필요해.”

현명한 판단이었다. 결국 종군 마법사와 함께 온 왕족 제퍼는 아무런 성과를 내기가 어려워졌다. 그가 한 것이라곤 최대한 자세하게 보고서를 작성하여 메시지 마법을 통하여 저 멀리 있는 왕국으로 정보를 송신하는 것뿐이었다.

하루 종일 마력을 쏟아붓고 유지해야 했지만 쌍둥이 성채의 〈전쟁 마법〉은 그것을 가능케 해주었다. 대단히 고도의 거대한 마법 장치였다. 물론 엘프나 제국이 보기에는 코웃음칠 정도에 불과했다.

그저 마력만 끌어모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러가라.”

“예.”

몬이 뒷걸음치며 방을 나갔다. 예절의 예를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메시지 마법진을 유지하는데 5시간을 보내고 겨우 교대를 받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다른 이들보다 더 오래 있게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중년 마법사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인자하게 마법진에 올라섰다. 몬은 개의치 않으며 돌아갔지만 로브의 그림자에 가려진 그의 눈은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다.

달칵.

방으로 돌아온 몬은 쉬지도 않고, 바로 침대 밑에 있는 구리 상자를 꺼냈다. 구리 상자에는 구리 냄새는 물론이고, 향수의 향내가 굉장히 진하게 났다. 코로 그것을 킁킁 맡았다.

코가 벌름거리면서 콧구멍에서 길쭉한 지네 다리처럼 좀 굵은 것이 삐져나와서는 자물쇠 안으로 들어갔다.

잘그락. 잘그락. 철컥.

특수 제작된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나자 몬 엘톤이 상자에서 얼굴을 떼고 그것을 열었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물고기 시체가 잔뜩 다져진 것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벌레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이었고, 사마귀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밑에는 지네의 몸이었다. 지네의 몸의 아랫배에는 눈동자가 있었고, 입도 그 옆에 있었다.

〈키메라〉 〈사마귀 입(Mantis Mouth, MM)〉은 온갖 감시와 검색, 검열이 이루어지는 이 세상에서 흑마법사들의 소통 수단 중에 하나였다. 흑마법이 아니라 〈키메라〉를 통해서 마력을 연결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검은 불꽃〉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이점이었다.

전기줄처럼 땅 지하로 이어진 지네의 몸을 통해서 교신이 이루어지고, 연결이 끊기더라도 마력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흑마법은 〈악마의 힘〉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검은 불꽃〉을 통해서만 발현되기 때문에 평범한 마법사로 보여도 흑마법사의 가능성이 존재했다.

“어둠은 항상 존재하며, 그림자는 가장 밝은 곳에서 가장 선명하다. 우리의 뜻은 이루어지리라. 모든 것의 절멸(絶滅), 세상의 새로운 시작을 통하여 우리는 창세의 신이 될 것이다.”

그 말을 하고, 수십 분이 지나서 사마귀 입이 벌러덩 뒤집어졌다. 눈이 느리게 움직이고, 입에서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일어났다.

1시간이 더 지나서야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상황은?”

“혼란 그 자체입니다. 귀족들은 왕족에게 콩고물을 먹으려고 하고 있고, 몽펠리에는 방관하며 최소한의 행동만 취하고 있습니다.”

“불파겐의 후예와 백금 왕가는 앞으로도 경계할 것입니다.”

“북부 가문과 백금 왕가의 불화는 불파겐이라는 장작을 통해서 더욱 타오를 것입니다.”

“흐. 서로 살기 바빠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마스터 게페락스.”

“···마신장(魔神將)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수많은 던전에 있는 군세를 일으킬 보급을 적재 중이다. 우리는 그 보급품을 증가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고. 이것을 통해서 마신장을 제어해볼 생각이다.”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부 왕국이 멸(滅) 해야 흑마법사의 도시가 들어설 것 아닙니까?”

“그건 나중의 일이다. 오크 쪽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나? 순찰자 놈들이 극성이라 그곳에 있던 하수인이 모조리 죽어나자빠졌다.”

혼란에 빠지면 흑마법사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남부 왕국의 순찰자〉들이었다. 안쪽이 혼란스러우면 자연히 보급이 끊기기에 그들의 활동 영역이 국경선이 아닌 자국 영토로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숨어도 들키고, 도망쳐도 잡히고, 돌아가도 덫에걸려 발목에서 피를 흘렸다.

흑마법사의 하수인들에게는 기사보다 순찰자가 더 두려운 존재였다. 작은 머리털만으로도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평범함과는 다른 그 행동거지에서 경계심을 갖는 것이 순찰자라는 존재였다.

“들은 것이 없습니다.”

“알겠다.”

연결이 끊겼다. 사마귀 입은 미친 듯이 썩은 물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몬 엘톤은 상자의 뚜껑을 덮고, 깊은 곳에 밀어 넣었다.

아크온 몽펠리에가 보기 드물게 으르렁거렸다. 보고를 올리는 문인이 고개를 괜히 숙였다. 그만큼 이번 일은 그에게 있어서 충격으로 다가왔다.

“놈들이 아주 작정을 했군. 독살을 시도하다니.”

“주동자를 잡았지만 용병들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독은 시중에서도 얻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지하감옥에 있는 놈들을 공개처형해라. 돈을 탐하려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따로 시키실 것이 있습니까?”

아크온이 고민했다. 독살 사건으로 쌍둥이 성채는 매우 민감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 민감한 분위기를 그는 이용해야 했다. 치안을 바로 세울 명분으로 삼기에도 좋았다.

“잡도둑도 잡아서 엄벌을 내려라.”

“바로 광산 징역에 노역하도록 조치를 내리겠습니다.”

문인이 나가자 아크온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무시무시하구나.’

망설임 없이 독주를 그냥 보내다니. 백금 왕가의 행보는 기괴망측했다. 드낙이 몽펠리에와 파이룬에게 붙자마자 사실 볼 것도 없다고 여긴 것이 분명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허. 이렇게 한 방을 먹다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꼼짝없이 당했기 때문이다.

만약 드낙이 죽었다면, 그것으로 허망하게 대계(大計)가 무너졌을 것이다. 이 대계의 맹점이 드낙임을 백금 왕가는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간담이 서늘하군.’

드낙이 독내성이 있는지는 몰랐다.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이야기가 안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혼란스러웠고, 증인들 대부분이 이스핀이 천장에 대고 독주를 뿜는 것과 빵에 구멍이 숭숭 뚫려 들어간 것에 대해서 말했다.

그 외에도 아크온은 다양한 정황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당연히 〈쪽지〉였다. 그게 진짜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정상이 만나기 전에 온갖 사람이 오고 가는 것처럼, 실제로 당사자가 만나서 얼굴을 크게 붉히는 일은 적었다.

이 세상에서는 용병을 통한 쪽지가 주류였다. 까막눈인 용병이었기에 내용을 알기도 힘들었다. 날림체로 쓰면 더 좋았다.

“감시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나?”

“예.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고 있습니다. 드낙 경께서는 찾아오는 사람만 받고, 스스로 찾아 나서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런 쪽에 욕심이 없나보군.”

“힘이 있어서 그렇지 않겠습니까?”

“불파겐의 역량이 있으니 급하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건 아닐 거야. 그는 용병질까지 하면서 가문을 먼저 세우겠다는 야망이 있어. 그 야망의 크기가 적은 것이겠지.”

북부 가문으로 만족하겠다는 뜻이다. 적당한 관계만 추구하고 공격적으로 정치적 위치를 높이 잡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실로 아크온을 만족하게 만들었다.

“외척 개입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또한 중요 방계와 일반 방계를 통해서 몽펠리에의 외척이 되는 드낙의 반응이 보고서에 한데 모여졌다.

〈신경질을 내며 귀찮아함. 짧게 그럴 생각이 없다고 바로 넘어감.〉

〈자꾸 묻는 것에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음. 차라리 사업 얘기나 먼저 꺼내달라고 스스로 주제를 돌림.〉

〈외척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피곤함을 느끼는 기색이 역력함.〉

〈거리가 멀다는 핑계를 댐. 손이 달달 움직이며 술을 찾는 것처럼 보였음.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름.〉

하나같이 드낙이 몽펠리에의 외척으로서의 욕심이 없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사건건 몽펠리에의 일에 발을 담그기보다는 방관하는 것을 원하는 투였다.

‘흠. 오히려 이렇게 되면, 〈버려진 영지〉에 대한 토지권을 무료로 드낙에게 안 줘도 되겠는데.’

불파겐이 외척이 되는 것만큼 털이 곤두서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드낙이 이렇게 신호를 보내면 차라리 드낙에게서 이득을 받아서 버려진 영지의 갈기갈기 찢긴 토지권을 북부 귀족들이 모아 무료로 주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그에게서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드낙이 호구긴 호구지.’

불파겐이나 기득권 치고는 사람이 착했다. 그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다수를 이끄는 사람은 그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이해는 해도 공감까지 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는 군주는 나라를 이끌지 못한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가 되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망치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때려죽일 강단이 있어야 했다. 그게 남부 왕국의 현 상황이었다.

드낙의 관심을 〈버려진 영지〉에 완전히 귀속되기 위해서 〈버려진 영지의 토지권〉은 훌륭한 수단이었고, 은혜였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드낙이 이미 가지고 있다면 공짜로 줄 필요가 없었다.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은 가문과 가문의 일에 있어서 치워놓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정치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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