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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07화 (306/1,239)

0307 <-- 트롤 토벌 -->

드낙이 도착한 날에는 누구도 드낙을 찾아오지 않았다. 여독을 풀기 위함도 있었고, 아크온 몽펠리에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아크온은 또한 성채에서의 개인실에서 드낙을 내성에 있는 빈집을 하나 내어주었다.

오직 드낙을 위한 선물이었다. 고용인은 자신의 가문이 부담한다고까지 했다. 당장 내일부터 그곳으로 짐을 옮겨야 했다.

‘이럴 거면 왜 여기까지 온 건지. 미리 해주면 좋지.’

드낙은 황당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에 내일 점심까지는 찾아오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 사이에 판단을 미리 내려놓으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파이룬 가문은 오지도 않았던데.”

드낙은 그렇게 말하면서 쉽게 여겼다. 귀족 10가문만 상대하면 그만이었다. 그중에 몽펠리에 소속의 방계만 8개였기에 쉬운 일로 여겨졌다. 그날 밤은 쌍둥이 성채의 개인실에서 보냈다.

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쳤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드낙은 그곳으로 걸어나가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뭘?”

세파리아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미 그는 드낙이 자신의 제안을 팬티까지 벗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북부 귀족으로서의 완전한 귀환, 그것을 드낙은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까, 북부만 잡아도 되는 것 같아서.”

“이 새끼가, 또 줏대 없이 귀를 팔랑 팔랑거리네? 넌 신념이 없냐?”

세파리아스의 욕질에 드낙은 어깨를 으쓱했다. 화도 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신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었다.

대나무처럼 똑 부러진 선비가 줄줄이 목이 날아가는 것이 역사였다. 그들 덕분에 삼시세끼를 먹을 수 있다고 해도 그는 개인일 뿐이었다. 사회의 작은 부품도 안 되는 찌꺼기 인생.

그런 사람에게 신념을 요구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달라져야 했다. 그도 알고 있었다.

모순되게도, 그렇기에 드낙은 다시 딴마음을 가진 것이기도 했다. 그의 고민은 그러한 고민이 있었기에 더욱 팔랑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싹이 튼 대나무 잎처럼 바람에도 휙휙 휘청거렸다.

그 〈싹〉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사실 크게 차이가 나 보이지는 않았다. 시간만이 해결해줄 것이다.

“내가 한 대로 하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테니까. 많은 사람들이 죽겠지.”

“그래서 네가 죽을 테냐?”

세파리아스의 신랄한 물음에 드낙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건 아니고.”

세파리아스가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드낙의 본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쓰면 뱉고, 달면 먹는 가장 인간 같은 놈이었다.

“위선자의 삶을 살려면 일찍 때려치워라. 넌 그 가면을 1년도 못 쥐고 있을걸? 쉬운 일이 아니다. 피 묻은 주먹보다 피를 숨기는 웃음이 힘든 법이다.”

착한 짓 하는 것도 고행이었다. 왜냐하면 짓이라고 해도 정말로 착한 일을 하고,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세파리아스에게 있어서 드낙은 그럴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드낙의 시선이 발바룽에게 향했다.

〈기어오르는 발바룽〉은 제법 간단하게 상황을 종결시켰다. 영악하다는 것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드낙의 팔랑거리는 귀만큼이나 선택지를 탁탁 던져놓았다.

“남부 왕국에 분쟁을 일으키고, 개인의 안위를 살피는 것.”

“홀로 힘들고, 북부 귀족과 함께 전쟁을 준비하는 것.”

“둘 모두 거기서 거기 아닌가? 결국 싸움은 피할 수 없다. 장소와 환경만 다를 뿐이다. 주체가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주역은 똑같아.”

그렇게 말하며 발바룽이 드낙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이 흐름은 모두 불파겐의 이름이 만든 것이다. 이 상황을 피하려면 제국으로 망명해.”

“무슨 그런.”

드낙이 그렇게 말했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발바룽의 말을 곱씹기 바빴다.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의 말처럼 사실 이미 흐름은 드낙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바뀌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발바룽의 말이 맞다.’

드낙은 자신이 높은 곳에 서있는 것처럼 시야가 탁 트이는 것을 느꼈다. 그저 몇 마디에 불과한 말이었지만 상황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는 발바룽의 지능은 매서웠다. 뭣이 중헌지 알고 있었다.

‘불변의 조건.’

백금 왕가는 북부 귀족의 영향력 감소를 원하고, 이내 완전한 의미로의 중앙집권국가가 되고 싶어 한다.

그것을 부수거나 바꿀 수 없다면 소용이 없었다. 결국 전쟁은 발발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개판이 나는 게 좋네.’

오직 드낙만을 생각했을 때였다.

적어도 전면전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도 전쟁보다 길게 이어질 것이다. 드낙이 하는 것만큼 변하게 되기 때문에 드낙이 판단할 것도 많았다. 선택의 폭이 많다는 것은 드낙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개판인 상황 속에서도 줄기를 하나씩 잡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원래대로 가는 게 오히려 낫다. 그것을 잘 판단하든 못하는, 나에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나도 일단 살고 봐야 하는데, 남들은 무슨.’

드낙은 자신이 잘 판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조언을 구할 사람들을 믿을 뿐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몽펠리에든, 파이룬이든 다른 가문이든 상단이든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제국으로 불파겐의 후예를 찾도록 보낼 거야.”

“상황이 이지경이 되니, 그제서야 날 챙기는 거냐? 쯧쯧. 속 좁은 놈. 바닥이 그리 좁아서···”

세파리아스가 질색했다. 드낙도 성을 냈다.

“해줘도 지랄! 안 해줘도 지랄!”

성을 내고 나서 드낙은 아빠 다리를 하며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누워서 앞으로에 대해서 일어날 일들을 상상했다. 이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침부터 드낙 일행은 다시 내성의 저택에 짐을 가져다 풀었다.

“벌써부터 대기줄이 보이는데요.”

이스핀의 말에 드낙이 짐을 나르다 말고 대문을 바라보았다. 문을 두드릴 생각도 없이 우두커니 서있으면서 긴장한 티가 역력한 상인들이 보였다. 용케도 내성까지 들어온 것을 보니, 귀족과 연줄이 있는 상인들로 보였다.

“기사나 왕족은 안 보이네.”

드낙의 말에 이스핀이 동의했다.

“선두 경쟁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네요.”

신기한 일이었다. 상인들을 받아줄 수밖에 없는 것은 이야기만 들어도 재물을 선물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문제가 될 리가 없었다. 이것은 선물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고리대금도 아니었다.

“저는 질 좋은 털가죽을 취급하는 상인입니다. 필레온 상단의···”

그저 잘 봐달라는 말 한마디만 하고 가는 상인도 있었다. 그 상인은 은화가 가득 든 목함을 하나 건네주었다. 무게가 묵직해서 이스핀이 그것을 받으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드낙은 하나하나 자신의 손으로 이름과 상단 그리고 준 재물의 양을 적어놓았다. 그것을 보는 상인들은 굉장히 좋아했는데, 일부러라도 품에 있는 보석이나 반지를 추가로 내어놓기도 했다.

‘흐흐. 꿀이다. 꿀!’

이렇게 꿀같은 상단이 있는가 하면, 본격적으로 청탁을 하는 상인도 있었다.

“헤헤. 제가 사람 장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합니다. 불파겐의 도로 사업에 노동력을 크게 싸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드낙이 눈을 반짝이며 상체를 앞으로 내보이며 관심 있는 척을 했다.

“그래? 생각하고 있는 게 무엇 있는가?”

“겨울이 오면 쏟아져 나오는 게 부랑자 아니겠습니까? 1명을 인부로 쓰신다면 2명을 무료로 내어드리겠습니다.”

“좋은 결과를 기다리게.”

드낙은 그렇게 말하며 노예 상인이 주는 목함을 받아들였다. 이스핀이 싱글벙글했다. 상인 또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인들은 그렇게 드낙의 반응이 낚여서 온갖 것들을 선물로 내어주었다.

하지만 드낙은 당연히 그런 청탁을 받아도 실행할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확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더라도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었다.

막대한 선물을 받은 드낙은 돌아갈 생각에 흐뭇해졌다. 아크온 몽펠리에가 준 저택은 곳곳에 선물이 쌓였고, 그가 보내온 근위병으로 보호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한 것이 틀림없어.’

하루의 여유를 드낙에게 주기까지 했다. 희희낙락한 드낙은 다음 날부터 조금 분주해졌다. 상인들에게서 드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자유기사들이 하나둘씩 엉덩이를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항상 온화한 분위기로 희망적인 말을 하는 드낙의 평가를 박하게 준 상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날 찾아오셨소?”

드낙의 말에 자유기사 세월을 10년이나 한 〈벨 블루언〉은 거침없이 대답하며 호탕함을 보여주었다.

“출세할 길이 있기 때문이오. 불파겐의 후예는 오직 당신뿐이고, 그대가 받을 땅은 광활하오. 버려진 영지는 옛적에는 〈동부〉라고 불리기까지 했소. 그 광활한 땅에 자유 기사 하나 장원을 못 가지겠소?”

드낙이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실제로 버려진 영지의 크기는 대단했다. 인구가 대단히 적을뿐이었다. 또한 많은 역량을 쏟아부어야 했다. 혼자서 할 일은 아니었다.

다양한 자유기사들이 왔고, 드낙은 그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지 않았다. 드낙이 원하는 것에 충족하는 이들에게는 확답을 주었다.

드낙이 그들을 원할 때에 필요한 조건은 확실했다.

세력이 남아있을 것. 작은 마을이라도 구성할 수 있는 가문의 사람들이 있어야 했다.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건 목장일, 목공을 비롯해서 기술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고위 기사를 배출한 적이 있어야 했고, 작고 보잘것없어도 혈통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되는 자유기사는 극히 드물었다. 특히 3번째가 가장 많은 탈락률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 조건을 말하지는 않았다. 지독하게 이기적인 조건들이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드낙은 혈통의 맛에 중독되어있을 정도였기에 더욱 철두철미하게 분별했다.

자유기사들의 방문이 끝나자 그다음 날에는 귀족들이 그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드낙에게 딱히 원하는 것이 없었다. 드낙에게서 무언가를 받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갑소. 린파이크 가문의 장남, 찰리 린파이크(Charlie Linpike)요. 그대의 명성은 익히 들어보았소.”

훈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술 한 잔 걸치며 드낙과의 관계만 쌓고 담백하게 돌아가는 린파이크 가문의 장남이 있는가 하면, 드낙과 간단한 대련을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히터 가문의 에녹 히터(Enoch Heater)요! 불파겐과 서로 부딪쳐보고 싶었소. 내 어릴 적의 꿈이고, 상상이 오늘 이루어질 수 있게 해주시오!”

히터 가문이 사용하는 방패는 독특했다. 하체가 휑하게 비는 높이가 짧은 마름모 방패를 지니고 있었다. 카이트 쉴드의 밑 부분이 날아간 방패는 독특했다. 하체 방어구가 허술하면 바로 다리에 상처를 입었는데, 전신갑주를 입었기에 걱정이 없었다.

“웃!”

체급이 드낙보다 좋은 에녹 히터는 불같이 뛰어들었지만 되려 드낙에게 힘으로 밀리자 경악했다. 덩치는 큰데 부딪치는 족족 물러나자 상대가 되지도 못했다. 체급이 낮으면 덩치라도 작거나 민첩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비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대련은 50합 전후로 끝을 맺었다. 두 사람은 서로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악수를 했지만 드낙은 웃었고, 에녹은 찌푸렸다.

‘에녹 경은 단순해. 호흡하는 게 절로 보여. 불파겐이 말했던 일류 무인의 〈흐름〉을 적용시키기에 좋아.’

기술이 낮은 것도 아니고, 덩치가 작은 것도 아닌 에녹은 되려 드낙에게 있어서 가장 손쉬운 상대가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폐활량이 큰지 호흡하는 습관이 큰지 그게 너무 잘 보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사 가문이 드낙을 방문해 관계를 쌓았다. 그들 또한 선물을 가져왔기에 드낙은 순식간에 떼돈을 벌었다. 로또 당첨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기득권층이 경제를 지배하고 있었다.

은화가 잔뜩 들어간 작은 목함만 해도 50개가 넘었다. 목함 하나당 800~1200개의 은화가 들었기에 〈은화 목함〉만 보더라도 500억을 받았다. 이것을 한 번에 버려진 영지에 풀면 경제가 개박살날 것이기에 모든 돈을 풀지는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 파산할 걱정은 없었다.

“제스트 가문에서 왔습니다.”

순찰자가 드낙이 있는 집무실에 들어오며 말했다. 드낙은 금방 기억해냈다.

‘보병 9명을 데리고 온 가문 아닌가.’

운칠기삼이라는 말처럼 운 하나로 이 토벌에 한 다리를 걸친 가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 가문은 콩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들여보내라.”

“예.”

달칵.

제스트 가문에서 온 기사는 기사답지 않았다. 세련된 푸른천이 허리에 감겨 있었고, 전신갑주는 세련되었다. 그의 귀는 귀걸이까지 있었고, 태양처럼 밝은 금발은 절로 시선을 빼앗았다.

미공자라고 부를 정도의 미남이었다.

“마들린 제스트(Madeline zest)라고 합니다.”

그는 드낙에게 존대를 썼고, 목소리 또한 착 가라앉고, 매력적이었다.

“반갑습니다. 존대를 하시는 분은 기사 중에서 처음 봤습니다.”

그 말에 마들린이 눈웃음을 지으며 드낙을 손을 편채 부드럽게 가리키며 말했다.

“제 앞에도 계시는군요.”

“하하.”

드낙이 웃었다. 제스트는 그것을 보고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같이 웃어주었다. 철저히 계산적인 공감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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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내일은 휴재를 하겠습니다. 이유는 말씀드리기 곤란한 가정사라서···기쁜 일이라면 공유하고 싶지만 ^^;; 내일 저녁에는 한 편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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