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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05화 (304/1,239)

0305 <-- 트롤 토벌 -->

드낙이 다시 쌍둥이 성채에 며칠 걸려서 도착했을 때, 그곳은 전과 크게 변해있었다.

붉은색의 삼각기.

푸른색의 깃발.

초록색의 길게 늘어진 얇은 천.

크기도 길이도 색상도 다른 형형색색의 깃발들을 휘날리며 천막의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하나의 야영지가 있었고, 그런 야영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 수만 해도 10개가 넘었다.

길목 곳곳에서 경기병과 철기가 보였고, 짐마차가 늘어선 갓길에는 짐꾼들이 상체를 벗은 채 포대를 나르고 있었다. 바람막이의 밖에서는 부유한 상인이 청렴해 보이는 문인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와.’

수많은 이들이 결집한 모습은 드낙의 눈을 호강하게 만들었다. 그 이색적인 분위기는 신선했다. 또한 새하얀 복장의 사제들의 모습도 언뜻 보였다.

“드낙 님! 저길 보십시오! 쌍둥이 성채의 꼭대기 말입니다!”

이스핀이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만했다. 스스로 발광하는 푸른색의 마력 구체가 달처럼 쌍둥이 성채의 꼭대기에 모습을 드러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드낙은 이곳에 마법사들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아크온 몽펠리에가 말했던 〈종군마법사(從軍魔法師)〉는 한 명이 아닌 듯했다. 그 마력은 주변에 때때로 빛무리를 흐트려 터트렸는데, 느긋하게 걸어가는 드낙 또한 그 빛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간파? 조사? 그런 쪽의 마법이네.’

드낙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마력을 운용할 줄 알았기에 마력으로 짜아올린 마법의 영향을 받자마자 그 용도를 알 수 있었다. 마치 X우론의 눈처럼 작용하고 있었다. 물론 그 적용에 있어서는 빛무리를 흘려보내는 것이라 그 역량은 한참이나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대단한 수준이다.’

파직!

“엇!”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스파크가 튀면서 드낙에게 달라붙는 빛무리가 소멸되었다. 오우거의 붉은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마법 저항의 힘은 생각보다 많은 범위에 다양하게 상시작용되는 힘이었다.

드낙이 지나가자 병사들과 민병대 그리고 자유기사와 용병들의 시선이 모였다. 기사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는데, 쌍둥이 성채 내부에서 지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됐다.

“정지! 드낙 경을 뵙습니다! 최소한의 검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외성문을 지키는 병사가 깍듯하게 말했다. 드낙에 대해서도 잘 아는 눈치였다. 단 한 번의 방문으로도 드낙의 특징이 문서화되어 구두로 퍼졌기 때문이다.

“조용한 계곡 성채의 일을 해결하고 도착한 참이다.”

“매우 빨리 끝내셨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병사는 그렇게 말하며 몇 가지를 더 물었다. 다른 병사는 짐을 매우 조심스럽게 뒤졌다. 그런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검문을 받는 이들은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크게 나무라지 못할 것이다.

나무란다고 해도 소란을 피우면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아크온 몽펠리에였다. 전시에서 병사, 그것도 정규병을 핍박하는 방계가 있다면 효수될 것이 분명했다.

“내성은 바로 통과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맙다.”

이스핀은 까딱 목례를 하며 지나갔다. 순찰자들은 손으로 공손한 제스처를 하며 고개를 적당히 숙이고 지나갔다. 도노는 그런 것 없이 그냥 지나가버렸고, 카이야는 괜히 가슴을 크게 드러내며 병사의 앞에서 갑자기 까악하고 울었다.

성격이 지랄맞았다.

“헛!”

병사가 깜짝 놀랐다.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것이 조류였기에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몸은 새하얗지만 성격은 장난기 많고, 독수리의 꽁지털을 쪼는 걸 즐기는 까마귀다웠다.

외성 지역에는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이 들어왔기에 그만큼 경제가 크게 활성화되었고,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이곳이 〈전투 요새〉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성벽의 한쪽 공터에는 익숙한 것이 많이 있었다.

‘기사 마차다.’

현대에 리무진이 있다면, 판타지 중세에는 기사 마차가 있었다. 다른 마차보다 현격하게 덩치가 크고 긴 놈이었다. 그게 10대나 좌르륵 나열되어있었다.

드낙의 눈길은 다시 내성벽 근위병에게로 향했다.

“드낙 경을 뵙습니다! 검문은 받으셨습니까?”

“그렇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쌍둥이 성채의 1층에는 시녀들이 많았는데, 그녀들은 잡담을 나누다가도 드낙의 일행이 보이자 순식간에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시녀가 몸소 나서서 드낙에게 말을 걸었다.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드낙 불파겐 님이 맞으시지요?”

“그래.”

드낙의 말에 드낙의 일행 수만큼 시녀가 한 걸음 더 나와서 1:1로 붙었다.

“개인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물론 모든 분들의 개인실은 붙어있는 곳입니다. 가시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으셔도 됩니다.”

모두 잠자코 시녀들을 따라갔다. 특히 이스핀은 시녀의 가슴에 눈이 고정되어있었다. 고분고분한 것이 입을 털면 어찌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더러운 짓을 하지는 않았다.

쌍둥이 성채에 있는 버팔로 나이트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또한 드낙이 몽펠리에에 매우 큰 관심과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하는 눈치였기에 괜한 문제를 일으키려고는 하지 않았다.

‘어, 엉덩이가···’

이스핀이 스스로 자신의 뒷목을 후려치며 천장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곧 죽어도 자식 번성을 위해서 성욕을 풀자는 마인드를 지닌 게 이스핀이었다. 그는 훌륭한 동물로서의 수컷이 가지는 생태계적 유전자로 발생된 본성이 매우 뛰어났다.

반면 드낙은 입술에 침을 묻히며 생각에 빠져있었다. 가끔 딴 길로 혼자 가서 그를 가장 앞에서 안내하던 시녀가 땀을 뻘뻘 흘렀다. 특히 드낙이 가면을 벗고, 생각에 빠져서는 사과를 해버리자 호흡이 가빠지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영향이 큰 사람이 신분제 사회에서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것은 아랫사람에게 그냥 무서운 일이었다.

2층의 계단에서 아크온과 드낙이 서로 마주쳤다.

“정말 빨리도 왔군!”

“이렇게 짧은 순간에 많이도 변했던데.”

두 사람은 악수를 하며 서로 어깨를 부딪쳤다. 철소리가 났다. 그들은 곧바로 5층에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드낙은 이스핀만 대동했고, 아크온에게는 두 명의 성채 근위병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5층은 몇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모든 방이 아크온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문인들이 몇몇 복도에서 양피지를 펼친 채 서로 비교하는 것이 드낙의 눈에 보였다. 아크온은 그중에서도 문이 잠겨진 곳의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양피지의 냄새와 기름냄새가 풍겨왔다. 도서관 냄새와는 크게 달랐다. 뭔가 향기롭지는 않고 그냥 지독했다. 냄새가 강렬했지만 악취라고는 하기 힘들었다.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어땠나?”

“쉬웠지.”

괜히 허세를 부렸다. 특히 세파리아스의 성화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아크온은 그 말에 솔직히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맹장(猛將) 기질이 다분해서 이번에는 고생 좀 할 줄 알았는데. 헤드스 하이에나는 보통 놈들이 아니거든. 근데도 쉬웠다니. 이거 놀랍군.”

‘찔리네.’

찔리면서도 드낙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포커 페이스는 현대인의 기본 소양이었다. 변변찮은 취직도 못하고 잠깐 했던 인턴 시절 보고서의 오탈자로 자존심을 짓밟던 놈에게도 싫은 표정 안 짓는 것이 한국인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밖에 병사들이 많던데.”

“주변 영지나 방계 쪽에서 온 병사들이지. 주변 안정화를 끝내고 온 병력들이다. 지금 이 사태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공적자들이지.”

그들의 발 빠른 움직임은 곧 그들의 재능과 실력, 역량이 뛰어나다는 소리였다. 말 그대로 호랑이들의 집결이었다. 남들보다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한 영지에서 보내온 병사들과 기사였다.

현시점의 상위 공적자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드낙 또한 있었다.

“에오윈 가문은 동행하지 않았나? 그들 또한 전신갑주가 있어서 큰 도움이 될 텐데.”

아크온의 말에 드낙이 그제서야 의문을 가졌다.

전신갑주를 지닌 기사가 3명인 에오윈 가문이었다. 그렇게 강한 면모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몽펠리에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쌍둥이 성채의 한쪽 방위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왜 안 온 거지?’

안정화가 이루어졌기에 성주나 안젤리카가 남으면 되었다.

“무슨 말이 없었나? 아니면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그 말에 드낙이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아··· 나를 위해서구나.’

본래는 에오윈 가문이 와야 했지만 그들은 이 자리에 끼지 않았다. 불파겐이 자신들의 외척이 되는데 그 공을 나눠가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용한 계곡 성채〉 주변에서 발생한 정예 몬스터의 토벌은 오롯이 드낙의 공으로 오게 된 것이다.

만약 랄프 에오윈이나 발그 에오윈이 욕심을 가졌다면 안젤리카가 그럴싸한 구실을 가지고 동행했을 터였다. 그것을 하지 않은 것은 드낙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문가의 면모였다. 자신들의 배려를 굳이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드낙은 그것을 몰랐다. 많은 이들이 모를 것이다. 자신을 배려해도 그 배려를 인식하지 못하는 면이 강했다.

자신이 힘든 것만 기억할 뿐이었다. 내가 행복한 것만 기억할 뿐이었다.

“······”

드낙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마치 비를 펑펑 맞으면서 집으로 가고 있을 때, 모르는 사람이 우산을 씌워주며 저 앞 버스 정류장까지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같았다.

간질간질.

드낙이 헛기침을 하면서 마음이 간질거리는 것을 털어냈다.

“사실은 에오윈 가문의 여식을 첩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어. 아주 좋은 여자더라고.”

“···!”

폭탄선언에 아크온의 눈이 커졌다.

“뭐?”

“왜?”

드낙이 되려 반문하자 할 말이 없었다. 첩이기 때문이다. 정실을 들이기 전에 첩을 들인다고 말했으니 오히려 에오윈 가문에 실례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몽펠리에나 파이룬 가문에게 결례를 범한 것도 아니었다.

두 가문의 여식은 적어도 정실 후보에는 들었기 때문이다.

급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아니, 여자를 그렇게 멀리하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야?”

“마음이 동해서.”

“그래?”

아크온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드낙이 생각보다 쉬운 남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주제를 돌렸다. 이미 지난 일이고, 계속 그 주제로 이야기해봤자 드낙은 거부감만 느낄 것이다.

그의 판단이다. 왈가불가하면 드낙의 생각을 짓누르겠다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10명이나 되는 기사가 왔고, 수십 명의 자유기사가 민병대를 이끌고 왔다. 종군 마법사들도 도착했고, 용병들도 고용했지.”

“진전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겠지?”

드낙의 말에 아크온이 씨익 웃었다. 시원한 미소였다.

“트롤 놈이 숨어들어간 곳의 위치를 파악했다. 우리는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

“위치는 정확히 어딘데?”

“〈멜마론(Melmaron) 영지〉의 〈단단한 산(Hard Mountain)〉. 멜마론 영지에서 조금 오지에 있어. 마을이 적어서 보급이 가장 문제인 상태지.”

아크온이 지도를 보여주었다. 멜마론 영지에는 길이 동서남북으로 있었는데, 도로에 인접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 있는 산이었다. 정확히는 서북쪽으로 몽펠리에 영지에서 7일 거리에 있었다.

드낙이 눈을 찌푸리자 아크온이 웃음소리를 냈다.

“웃을 일이야? 엄청 멀잖아.”

“이 정도도 희망적이다. 사실 10가문 중에 7가문은 그냥 침입을 안 받아서 온 것이고, 나머지 3가문은 운으로 정예 몬스터를 잡았다. 아직도 북부는 한창 전쟁 중이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지금 가진 것으로 트롤을 잡아야 해.”

아크온의 말에 드낙은 순수하게 놀랐다가도 이내 납득했다. 자신만 해도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또한 〈기어오르는 발바룽〉은 검은 꿈에서 〈검은 문〉이 되지 않고, 드낙에게 찌꺼기를 내려줄 정도의 강력한 개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놈과 비슷한 것들을 운이라도 죽이고 온 세 가문이 궁금했다.

“그 가문이 어디 어디야?”

이에 아크온이 마치 자신의 자식들을 소개하듯이 기분 좋게 입을 열었다.

“모두 몽펠리에의 방계지.”

보두앵(Baudouin) 가문.

린파이크(Linpike) 가문

히터(Heater) 가문

몽펠리에의 주력 삼방계라 불리는 큰 방계 가문이었다. 운이라고 아크온이 말했지만 운을 잡을 실력과 역량이 있는 가문들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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