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4 <-- 기어오르는 발바룽 -->
검은 꿈에 들어가자마자 드낙은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합격술에 휘말린 그 상황 자체가 세파리아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놈.”
“뭐?”
“귀까지 먹었느냐? 고작 다섯 마리에게 쥐어터지고 네가 그러고도 기사냐?”
드낙이 눈을 감으며 분을 삭였다. 세파리아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후의 배분을 끌어당겨서라도 3배는 빨리 움직여서 죽였어야지. 넌 너무 체력의 배분을 중시하는 면이 있어. 상황에 따라서 변하기도 변해야지.”
“그럼 우두머리를 못 쫓았겠지.”
“놈은 무너진 통나무를 건너기도 전에 목이 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
‘말은 겁나 잘해요.’
“입으로 하는 전투를 누가 못 해?”
“그럼 내 말이 거짓이라고?”
드낙은 뒷머리를 긁었다. 자신이 못 잡았던 〈언데드 구조물〉인 구울 묘지기를 토벌한 것이 세파리아스였다. 그것도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말이다. 물론 뒤를 안 보는 그 육체 운용법은 겁쟁이 드낙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세파리아스가 단거리 선수라면 드낙은 장거리 선수였다.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랐고, 모든 면에서 차이가 존재했다.
씨부렁거리는 세파리아스를 뒤로하고, 드낙은 검은 문을 찾았지만 그것 대신에 검은 연기에 휩싸인 채 모습을 드러내는 〈기어오르는 발바룽〉을 보고는 순수하게 놀랐다.
‘허, 내가 이 녀석의 찌꺼기를 먹을 정도로 이 녀석이 강하다고?’
영악함으로만 따지면 기사조차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 발바룽의 머리였다. 놈은 드낙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잘 부탁한다.”
“허. 몬스터가···”
“휴머노이드 종족은 본래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건 알지만.”
찝찝함을 느꼈다. 종족이 다르기 때문에 느껴지는 이질감이었다. 놈의 찌꺼기가 자신에게 들어온다는 것이 거북했다. 하지만 대놓고 그것을 입 밖에 내놓기에는 그 감정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너는 보다 더 본능적으로 기병 병과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탈것을 다루는 능력 또한 마찬가지로 증가할 것이다.”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헤드스 하이에나는 태어나자마자 기병의 속성을 지닌 놈들이었다. 그 본능이 드낙에게 흘러들어온다면 드낙은 인간 중에서도 천부적인 기병 대장의 재능을 가지는 것이고, 기승 능력이 본능적으로 뛰어나게 되었다.
“약간의 지능 상승과 영악함 또한 극소량 증가할 것이다. 크게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발바룽의 말에 세파리아스가 큭큭거렸다.
“짱돌에 맞고 죽지 않는 놈인데, 어련할까.”
극소량. 약간. 그런 단어에 드낙은 눈을 찌푸렸다.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아니, 나 정도면 평균인데.’
공짜폰 살 때도 할부원금을 물어보는 사람이 극소수인 것처럼, 드낙의 지능 정도면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두 놈이 비꼬는 것처럼 말하자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대가문 두 개도 못 다루는 놈이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기분이 나빠? 웃기는 놈일세.”
“시끄러. 확씨!”
드낙은 성을 냈다. 그럴 즈음에 기계 소리가 나며 〈검은 여과기〉가 드낙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얀 물이나 먹자.’
무조건 3배 빠르면 다 죽일 수 있다고 단호박처럼 말하는 대영웅과 말을 섞는 것은 고역이었다. 바닥 인생을 살지 않은 금수저처럼 두 사람 간의 간격은 대단히 멀었다. 머리가 좋아서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간 사람이 수포자를 보는 기분과 비슷했다.
그릇을 만지자 환상이 그를 덮쳤다.
‘악!’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의 치통이 드낙에게 느껴졌다. 오른쪽의 4번째 어금니가 송곳니처럼 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턱 근육이 보다 더 발달하는 것이 보였다. 또한 송곳니라고 하기에는 그저 조금 사람 이보다 날카롭게 변한 것뿐이라 그렇게 이질적일 정도로 티가 나지도 않을 정도였다.
〈하이에나의 열육치(裂肉齒)〉
뼈를 부수어 먹는 이빨, 생살을 가르는 송곳니.
‘이런 씨.’
드낙은 어처구니없음을 느꼈다. 형편없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턱 근육이 발달되고, 날카롭게 어금니 중 한쪽이 송곳니처럼 조금 발달하는 것이 전부였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드낙이 하얀 물을 받아마셨다. 딱히 부작용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밧줄이나 그런 것을 잘 끊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첩보물 하면 이빨이지.’
묶인 상태에서 이빨로 밧줄을 물어뜯는 모습! B급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었지만 드낙은 그런 상상을 하며 하얀 물을 꿀꺽했다.
그다음에는 흑마법을 수련했다. 〈간략화〉를 위해서였다.
‘〈인비저블 쉴드(Invisible Shield, 보이지 않는 방어막)〉.’
흑마법 중에서도 흑마법으로 보이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어 마법이었다. 마력의 소비에는 검은 불꽃이 일어나지만 시동이 걸리고 난 다음에는 그저 투명한 보호막이었다. 이를 이용하면 투구가 벗겨져도 순식간에 머리를 보호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드낙의 재능은 〈변종 키메라 포낙서스〉의 찌꺼기를 먹었음에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인비저블 쉴드의 간략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또 등한시한 것도 있었는데, 좋다고는 느끼고 있어도 당장 전신갑주에 보호되고 있으니 게으름을 피웠다.
당장 돈이 많은데 급하게 야간 택배 상하차에 지원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상황은 언제나 변하는 법이지.’
드낙은 그 교훈을 생각하며 열심히 수련을 했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수련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검은 꿈의 또 다른 장점이었다. 물론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다음날 동이 트기 전의 새벽부터 시민들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서. 배가 고픈 이들은 헤드스 하이에나의 고기와 내장을 얻기 위해서.
헤드스 하이에나의 가죽은 겨울에 요긴하게 쓸 수 있었기에 가죽 또한 필수였다.
“성문을 열어라!”
한여름에도 밤에는 선선한 기후를 지닌 남부 왕국이었기에 가을의 새벽은 쌀쌀해서 겨울처럼 옷을 둘둘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피가 마른 옷도 제법 있었는데, 신경 쓰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고, 시대였다.
짐마차와 인력거가 주르륵 성문을 지나기 시작했고, 포션을 풀어 몸이 성한 정규병 10명이 그들을 관리했다. 2명씩 5조를 이루고 있었다. 에오윈 가문과 드낙, 이스핀 그리고 순찰자 2명 또한 함께하고 있었다.
시체를 수습하고, 가족을 찾으면 병사들이 준비한 길고 새하얗지만 조금 거친 천을 주면 가족은 그것을 손수 둘렀다. 온갖 새들과 짐승에게 의해서 시체가 훼손된 경우가 있었지만 얼굴은 뜯어먹히지 않았다.
팔이나 허벅다리를 주로 먹은 것.
그렇게 〈갈림길 골〉의 그늘진 곳에 천에 말린 시신이 하나 둘, 쌓여갔고 늦은 아침이 되어서는 시체 수습이 끝이 났다. 워낙 척박하고 위험한 곳이었기에 〈조용한 계곡 성채〉에는 지역신전이 존재해도 사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쌍둥이 성채에 있는 지역 신전의 타락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했다. 암버섯처럼 퍼져나가있는 상태였다. 케이슨은 눈이 퉁퉁 부어있었는데, 전투에서도 그렇게 신성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살려냈지만 결과적으로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또한 밤낮없이 찾아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이야기하는 부모.
파랑새를 잃은 약혼자의 서러움.
불알친구를 잃은 친구들의 주정 속의 울부짖음.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눈물이 안 날 때까지 울었기 때문이다. 케이슨은 잠 한숨 자지 못했다. 그는 그 상태로 나무로 된 향로에 향을 피우며 시체를 돌아다니며 넋을 위로하고 있었다.
도축 작업은 그러는 사이에도 진행됐다. 털가죽은 빠르게 상하기 때문이었다. 가죽부터 벗겨내고, 내장은 염장을 위해서 세척하기 위해 따로 모아놓고 고기는 두툼하게 베어내어 훈제할 준비를 하듯이 줄에 묶었다.
“모두 모이시오!”
해가 질 무렵에 제법 큰 규모의 화장식이 시작되었다. 케이슨 성기사가 모든 것을 주도했다. 성주조차도 목례를 하며 장작, 마른 풀에 놓인 죽은 이들을 위해 고개를 숙였다.
정치적 쇼라고 할 수 있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런 쇼도 못하는 잡것들도 많기 때문이었다.
“시민 벨리스는···”
케이슨은 바짝 마른 입술로 가족들에게서 들은 희생자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그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에 몇몇 지인들이 나서서 그에 대해서 말하는 시간도 가졌다.
횃불이 어둠을 밝힐 무렵에 이번 전투에 희생된 모든 이들이 케이슨의 입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입으로 말해졌다.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달려갔다네~. 피처럼 붉은 깃발을 양손으로 잡고, 저 먼 곳으로 우리를 위해서 달려갔다네~.”
조용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이 지펴지고 하루 종일 타오를 것이다. 많은 이들은 잠을 자지 못했다. 성주는 그들에게 많은 술을 베풀었다. 〈갈림길 골〉에 술내음이 퍼져나갔다.
드낙은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았다.
전쟁은 다수를 위해서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행위로 보였다. 하지만 이 전투가 없었다면 조용한 계곡는 평화를 되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에는 경제다. 궁수 100명만 있었어도 이런 꼴은 안 났다.’
적을 격퇴할 힘이 있었다면 100명의 궁수가 있었다면, 시민이 동원되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드낙은 금화와 은화의 양이 국력이라고 외쳐댄 중상주의를 무너뜨린 〈국부론〉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살았던 드낙의 생각은 이곳의 사람들과는 현격하게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을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곧 경제(經濟)야말로 인류를 살릴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의 상념은 드낙에게 매우 귀중한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이곳에서 야영을 하고,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불이 사그라들었다. 아직 미련을 못 버린 이들은 꽃을 꺾어 재만 남은 곳에 놓았다.
되돌아가는 과정 중에 드낙은 안젤리카로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다.
“알겠소. 마음은 괜찮소? 많은 시민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지 않소.”
드낙의 말에 안젤리카는 입술을 조금 떨었다. 무인으로 커왔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죽은 전투는 처음이었기에 그녀의 마음은 크게 심란했다.
“괜찮아요. 배려 감사합니다.”
이스핀은 안젤리카가 돌아가자 드낙에게 말했다.
“마음씨가 참 곱지 않습니까? 좋은 아내가 될 겁니다. 제 약혼녀처럼요.”
“그런 말 어디 가서 하지 마라.”
“예.”
드낙은 이스핀의 대답을 들으며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듣는 이는 없었다.
“전 제 약혼녀를 만나야 해서··· 거기 집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습니다.”
“정말로 할 생각이구나.”
“그럼요. 그런 여자, 좀처럼 만나기 힘듭니다.”
이스핀의 말에 드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곧 귀족이 될 이스핀이었다. 자신의 곁에 머물고 있고, 비전의 전수에 전신갑주까지. 그는 확실하게 계단식으로 사회적 계급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생뚱맞게 평민과 결혼이라니.
“알아서 해라. 결혼식에는 나도 참가할 테니.”
“약혼식은 이곳에서 하고, 결혼식은 호수 마을에서 할 생각입니다. 도렌이 없는 결혼식을 제가 어떻게 합니까?”
“하하하.”
드낙이 보기 드물게 크게 웃었다. 이스핀이 도렌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다시 조용한 계곡 성채로 돌아온 드낙은 〈에오윈 대저택〉에서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사실상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논하는 자리였다. 상견례라고도 할 수 있었다.
“첩이라지만 드낙 경은 불파겐의 후예가 아닌가.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네.”
성주 발그가 가장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먼저 말했다. 드낙이 가장 듣고 싶어 한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한결 편합니다.”
드낙이 성주를 높이 올리자 발그가 미소를 지었다.
“결혼식은 지금 북부를 강타한 폭풍이 잠재워지면 했으면 하네만···”
그 말에는 드낙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장은 약혼식만 하고 싶습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라···”
“그렇지. 자네가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하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큰 무리 없이 드낙의 마음대로 진행됐다. 드낙 또한 그렇다고 막 나가지는 않았다.
바로 다음 날, 드낙은 〈쌍둥이 성채〉로 다시 향했다. 에오윈 가문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배웅을 해주었다.
“갔다 올게.”
드낙의 말에 안젤리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드낙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조심히 갔다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휘유~.”
뒤에서 이스핀이 휘파람을 불었다. 경박한 짓에도 모두가 웃었다.
‘다시 쌍둥이 성채로.’
========== 작품 후기 ==========
5859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