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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03화 (302/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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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후에 〈메마른 구멍길〉에 있는 새끼와 암컷들을 모조리 죽였다. 드낙과 늑대들, 전투 수행이 가능한 민병대가 향한 것이다. 정규병의 경우 〈갈림길 골〉의 정리를 맡았다.

그제서야 싸움이 끝났다. 하지만 상처뿐인 전투였다.

모두가 대승이라고 말했지만, 드낙의 피에 절은 모습을 마주하며 안젤리카 에오윈은 흐느껴 울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복잡한 기분의 랄프 에드윈은 드낙의 앞에서는 침울함을 보였지만 정규병과 사람들의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명예로운 전투를 우리가 승리로 가져왔다며 이 전투의 좋은 면만을 떠들어대었다.

“우리의 승리다! 인간의 승리다! 적은 우리보다 3배 많았음에도 그들을 전멸시켰으니, 대승 중의 대승이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살아남았고, 그들과 함께했기에 우리가 승리했다!”

“몬스터들은 모조리 죽었다! 다시 이 계곡은 평화가 온 것이다! 우리가 쟁취해낸 것이다!”

그 모습에는 바닥을 기며 살려고, 살아보려고 버둥거리는 절박함이 있었다. 안젤리카는 드낙을 보며 왈칵 눈물을 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굴었다. 한 번 울고 나니 마음이 진정된 듯하다.

홀로 단기 돌격하여 후방을 크게 휘저은 드낙의 공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고, 그 모습을 본 많은 이들이 드낙에게 마음을 기대고 있었다.

“으흐흑.”

처음 보는 자들도 드낙의 앞에 엎어지며 10년 지기 친구를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들은 그렇게 좋은 것만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아픔을 최대한 나누려고 했다. 드낙 또한 거기에 참가해야 했다.

현대인의 감성은 남의 감정을 잘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수많은 문화를 맛보면서 생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환영했고, 저녁에는 우는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에오윈 대저택〉은 밤에도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피해 보고가 그제서야 이루어졌는데, 혹여나 다른 곳으로 새어나갈 까봐 오직 중진들만 모여있었다. 랄프가 양피지의 피해 보고서를 읽어나갔다.

“정규병 10명 중 사망자는 없고, 중경상자만 아홉이오.”

나쁘지 않았다. 전쟁과 전투 그리고 훈련도가 높았기에 자기 몸 간수는 할 줄 알았다. 대부분이 눈먼 투창이나 활에 맞아서 생긴 부상이었다.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죽어야 하는 상처도 정규병 차림새를 하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먼저 치료를 받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민병대 20명 중 사망 5명, 중상 10명, 도망 5명이오.”

도망이라는 소리에 이스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이 도망치지 않았기에 그는 탈주병에 대한 흉악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그 탈주병, 개자식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드낙과 홀로 전장에 깊이 들어간 이스핀은 자신의 공 때문에 대범하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랄프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 거친 말에도 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드낙의 왼팔이었다.

“그들은 민병대요. 열다섯 명이라도 도망치지 않고 싸운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봐야 하오.”

돈을 먹은 용병도 아니었다. 이스핀이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자 다음으로 넘어갔다.

“가장 피해가 큰 것은 전투에 자원했던 시민들이오. 100명 중에 30명이 죽고, 50명이 경중상에 20명이 도망쳤소. 도망친 자들 중에서 죽거나 다친 이들은 그 수에서 제외했소.”

거진 전투가 시작되고 헤드스 하이에나가 들이닥쳐 올라오자 거의 30%가 도망을 치다가 죽거나 크게 다쳤다. 혹은 성공적으로 도망을 쳤다. 하지만 나머지 이들이 자리를 지켜주었기에 전투가 유지된 것이기도 했다.

지형의 이점도 있었다. 특히나 안젤리카가 있었던 곳에는 탈주병도 적었는데, 여자가 도망치지 않고 선두에 있는데 남자가 도망갈 수가 없었다. 반대로 안젤리카 에드윈이 지휘관 곳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남자란 동물은 어쩔 수 없었다. 전투 속에서도 그러한 면모가 여실 없이 드러났다.

잠깐 침묵이 나돌았다.

성주 발그 에드윈이 그 침묵을 깨뜨렸다.

“피해가 많지만, 드낙 경이 우두머리를 죽였고, 헤드스 하이에나 암수를 모조리 죽일 수 있었소. 놈들은 다시 한 번 재기를 꿈꿔도 이번처럼 대단하지는 못할 것이오.”

박멸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내일 새벽에 시민들을 이끌고 가서 헤드스 하이에나를 수습해야 하지 않겠소?”

드낙 또한 능숙하게 〈이득〉에 대한 말을 꺼냈다. 시민들의 시체로 쌓아올려 손에 닿은 이득이었다.

“새들이 뜯어먹겠지만, 숫자가 많으니 내일 새벽에 가도 충분히 많은 자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랄프도 동참했다. 헤드스 하이에나의 가죽이다. 잿물로 무두질을 하면 훌륭한 가죽으로 재탄생되었다.

내장은 염장을 하고, 고기는 훈제를 하여 보관을 하면 되었다.

회의실에 활기가 돋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장례는 화장을 할 생각이오. 〈갈림길 골〉에 준비를 해서 한 번에 태울 것이오.”

“새하얀 천을 많이 동원하여 예를 깔끔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

드낙의 말에 발그는 아깝다는 눈치를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원한 시민이 그렇게 죽어나갔다. 그 정도도 하지 못하면 불만이 쌓일 수 있었다.

선후 순서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사람 시체를 모으고, 그다음에 도축을 진행. 해가 지기 전에 장례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진행 과정을 모두 확인하며 드낙은 연신 듣기 바빴다. 대부분의 과정은 성주가 빠르게 진행했다.

그날 밤에 드낙은 방에서 휴식하며 오늘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그러다가 침대에서 일어나 결국 불을 켜고, 양피지를 배낭에서 꺼내 펜을 들었다.

‘기사는 송곳이 아니라 가시 달린 방패.’

얻은 교훈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선공을 하더라도 번개처럼 빨리 끝내야 하는 것이 기사였다. 그렇기에 비전이 있는 것이었다. 비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말 그대로 한 방에 적을 골로 보내기 위한 수법이 비전이었다.

전신갑주는 그 한 방의 결실을 맺기 전까지 인간을 지켜주는 방패였다. 그런 방패로 적을 패면 드낙처럼 한순간에 적이 근접하여 병뚜껑을 따뜻이 투구를 벗기고, 관절기를 걸지도 모른다.

‘불길 속에 뛰어들기 전에 물만 엎어 쓰고 뛰어드나? 방화복에 산소통까지 짊어지고 들어가는 거지.’

드낙은 다양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런 능력들보다 다분히 뛰어난 전신갑주의 마법이 있었다. 그것을 전력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 컸다. 또한 죽이기 위해서 다수 마법을 잘 사용하지 않은 것도 큰 실수였다.

‘발만 묶어도 큰 이득인데, 무엇이 그리 아쉽다고 생각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어리석었다.

‘강자의 의미. 그것은 그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전신갑주를 입고 있어도 날뛰지 않았다. 늑대인간을 상대함에 있어서 항상 병사와 함께했다. 선두에 섰지만 병사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곳까지 나오지 않았다.

강자 또한 한순간에 훅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불파겐 그 자체라고 여겼을지도 몰랐다. 괜히 부끄러워졌다. 드낙은 세파리아스가 무식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자신 또한 무식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꼬리에 불붙은 황소처럼 뛰어놀았기 때문이다.

‘항상 전력을 다해도 불확실한 것이 전쟁이고 전투다. 싸움은 병가뭐상사라고 하잖아.’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무장에겐 승패는 항상 있는 일이므로 패배에 낙담하지 말고 승리에 취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무리 잘난 무장이라도 고꾸라질 수 있다는 것.

결국 승패란 누구도 알 수 없는 법이었다.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모든 준비를 다하여도, 병력 차이가 심해도, 대단한 장군을 앞에 두고 맞서더라도 결국 승패는 모르는 법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성채라도 역풍으로 화공에 크게 당하게 되면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가기 십상이었다.

‘기병의 무서움!’

드낙은 또한 장창으로 쉽게 보던 기병에 대해 새롭게 느꼈다. 보병으로 능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놈들의 장점을 이번에 엿볼 수 있었다. 그저 돌진력 하나만으로도 보병을 압승할 수 있는 힘이 기병에는 있었던 것이다.

‘짱돌의 불합리함.’

활보다 강력한 충격력을 지닌 것 같았다. 드낙은 그게 불편하게 다가왔다. 더 쓰기 힘들고, 구하기 어려운 활이 보통 더 강해야 옳은 소리인데, 돌팔매질이 더 강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양피지에 자신이 깨달은 바를 쓰고, 세 번을 연거푸 읽은 드낙의 눈은 새파랗게 벼려져 있었다. 자신이 있는 이 위태로운 위치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난 언제라도 고꾸라질 수 있다.’

넘어질 수 있고, 죽을 수도 있었다. 전신갑주는 만능이 아님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한 행동이 세파리아스와 다름없는 운용법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분노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 세파리아스는 여포였다. 힘을 숭상하고, 세상에 도전했다가 태산에 무너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면전에 대고 그런 말은 못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여기며 적당히 가려들었다.

그런데 자신은 소(小)불파겐이었다. 빌어먹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애들 먹여살리고, 가난한 애들에게 밥 굶을 일 없게 한다고 말하는 기부단체의 말을 듣고 꼬깃꼬깃한 몇 천원 줬는데 그 돈을 모아서 해외에서 크루즈 여행을 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이었다.

‘오늘부터 난 달라질 거다.’

검은 연기가 〈기어오르는 발바룽〉의 눈앞에서 흘러 지나갔다. 발바룽은 거대한 존재감 앞에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서 주변을 살펴도 그 존재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를 도와라. 날 부활케할 인간이다.”

“예!”

발바룽은 오직 그 말밖에 내뱉지 못했다. 몬스터인 자신이 왜 인간을 도와야 하느냐라는 질문조차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 기분은 전신이 쇠사슬에 묶인 기분보다 더 갑갑했다. 가슴 또한 텁텁해지고, 더부룩해졌으며 때때로 아득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수십 미터 높은 곳에서 투명 유리에 선 기분.

그가 누구인지, 어떤 자인지 몰라도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을 거부하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이 세상의 창조주다. 너는 내 아들이다. 그저 그를 돕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너의 존재의 찌꺼기는 그에게 흡수될 것이고, 그가 쌓아올리는 업은 나의 찢긴 모든 것을 다시 재건할 것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습니까?”

벌벌벌 떨면서 말을 했기에 발음이 엉망진창이었고, 호흡도 망가져서 응얼거림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존재는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넌 내가 부활하는 날에 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이다. 더 강한 육신을 가지고, 더 뛰어난 오성을 지닌 채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지금 너의 모든 기억을 가진 채로 지금 너의 그 정신을 고스란히 새로운 육체로 옮겨줄 것이다.”

달콤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유혹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 존재의 말에는 무한한 신뢰감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발바룽은 검은 연기가 자신을 잠식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가 지켜야 할 일, 해야 할 일에 대한 당부가 몇 가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또한 자신과 대화한 그 존재가 누구인지도 알 수 있었다.

인신들에게 배신당한 상신(上神).

선과 악을 양손에 쥐고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존재.

인신(人神)이나 인간과 교류하는 모든 만물을 자신의 울타리 안에 넣은 따스한 신.

‘신이시여!’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신을 찬양하지 않은 발바룽이 신을 찬양했다. 그 신은 자신을 다시 부활하게 해준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환희에 찬 발바룽의 얼굴이 검은 연기가 뒤덮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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