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2 <-- 기어오르는 발바룽 -->
드낙은 이스핀을 대동하고 서둘러 〈기어오르는 발바룽〉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크아앙!”
헤드스 하이에나의 하체 머리가 으르렁거렸고, 위에 있는 상체 머리는 날카로운 눈으로 단창을 투척하고, 검이나 창 따위를 휘두르고 찔러대었다. 곳곳이 적이었다.
두 사람은 그런 곳으로 뛰어든 것이다.
괜히 이스핀이 튀자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 속에서 오늘 깨달은 교훈을 몸소 체득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1+1=2가 아니다.’
후방이 이스핀 때문에 든든한 드낙은 더욱 높은 살상률을 보여주었다. 드낙은 하나의 방패를 더 든 것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팔은 두 개였지만 사람은 함께함으로써 팔이 네 개일 수도 있었다.
이스핀은 드낙에게 방패가 되었다.
“끄릅!”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싸우는 드낙은 맹위를 떨칠 수밖에 없었다. 하체 하이에나가 허벅다리를 물어도 상관없이 롱소드로 뱃가죽을 찌르고, 머리채로 헤드스 하이에나의 상체 머리를 잡아서 그대로 박치기를 해서 두개골을 함몰시켰다.
퍼석!
덤벼오는 놈의 창을 주먹으로 후려쳐 부러뜨리고, 하체 머리를 무릎으로 가격해서 피떡으로 만들었다. 휘청거리는 하에이나의 상체 머리가 드낙의 검에 깔끔하게 허공을 날았다.
단 1합도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드낙은 전진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났다. 상황을 다시 한 번 인지하고, 그제서야 활동했다.
‘큰 착각이었다. 기사는 황소도 아니고, 부러지지 않는 송곳도 아니다.’
세파리아스의 그림자 때문은 아니다. 전신갑주에 대한 맹신 때문이었다. 그것은 오늘 산산조각이 났다.
‘기사는 가시가 돋친 방패일 뿐이다.’
방패는 공격용으로 쓰일 수 있지만, 본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적의 무기를 막고, 역공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드낙은 방패를 공격용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큰 착각이었다.
전신갑주를 잘못 운용했다. 인간이 그 나약한 몸을 방패에 숨기고, 상대에게 역공을 가해 비전으로 단칼에, 적이 대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죽이게 해주는 것이 전신갑주였다.
‘그 어떤 공격도 막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런 방패를 높이 들어 적을 후드려 패니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은 방패를 휘두르며 적을 후려패다가 생긴 실수였다. 치명적인 실수였고, 드낙은 죽을 뻔했다.
‘거칠게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처럼.’
‘다시 뒤로 물러나며 줄어드는 파도처럼.’
뒤로 물러나며 주변 상황을 인지한 드낙이 다시 노도와 같은 기세로 튀어나가 헤드스 하이에나를 격살했다. 그의 롱소드는 창을 피해 정확하게 턱을 잘라내며 탄력적으로 휘어지더니 그대로 역으로 튕겨지듯이 움직여 눈을 그었다.
“크아아악!”
피가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도 드낙은 뒤로 물러나며 좌우에서 공격해서 들어온 헤드스 하이에나들이 서로 부딪치게 만들었다.
“큭!”
완급조절. 후방에서 버티는 이스핀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도 드낙에게 여유를 부여해줄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순식간에 여섯 마리를 쳐죽인 드낙은 악다구니를 쓰며 4마리에게 사정없이 맞고 있는 이스핀을 도왔다. 기병의 특성을 지닌 헤드스 하이에나들은 상대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스핀에게 있어서는 곤욕이었다. 계곡 위에서 놈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곱절은 힘에 부쳤다.
여섯 마리를 죽일 때보다 더욱 빠르게 4마리를 죽일 수 있었는데, 모두 이스핀을 공격하는데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옆구리를 찌르고, 뒷목을 잡아당겨 손가락으로 목젖을 푹 찔렀다. 쿨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몸에 경직이 온 헤드스 하이에나의 목을 손쉽게 따버린 드낙은 차례대로 측면으로 들이닥쳐 4마리를 쓸어버렸다.
“놈이 넘어갔습니다!”
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왔지만 놈의 그림자가 무너진 통나무를 홀로 넘어가자 이스핀이 소리쳤다. 주변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이건 못 쫓는다.’
다시 한 번 말하는 이스핀의 의견에도 드낙은 자신의 결정을 뒤로 물리지 않았다.
“쫓는다! 따라와!”
“예!”
바로 대답했지만 투구 속의 이스핀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벌써 포위되어서 한 번 당한 것이 드낙 아닌가? 왜 이렇게 나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런 경험을 얻었기에 더욱 자신이 있었다.
이스핀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안전해졌는지, 전투와 싸움이 얼마나 쉽게 이루어지는지 깨달았다.
통나무를 올라가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거칠기 짝이 없었고, 무거운 전신갑주 때문에 통나무가 미끄러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강철 전사를 죽여라!”
헤드스 하이에나가 간헐적으로 달려들기도 했다. 드낙은 돌을 투척해서 놈들의 머리통을 맞추고, 다시 통나무를 기어올라갔다. 매우 느렸기에 이스핀은 놈을 놓쳤다고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에이씨. 그래도 믿자.’
한 번 숨을 고른 이스핀은 욕을 하면서도 마음을 고쳐잡았다. 드낙과 함께해서 결과적으로 나쁘게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스핀이 기세를 올려 열과 성을 다하기 시작했다.
드낙은 통나무를 넘어서 주르륵 내려와서 바닥에 착지했다. 무너진 통나무들의 반대편에 들려오는 소란이 줄어들었다. 이스핀까지 드낙이 미리 미끄러진 곳으로 비교적 쉽게 따라오자 드낙은 천천히 걸으면서 귀를 기울었다.
“······”
“······”
이스핀 또한 조심스럽게 드낙을 따라왔는데, 그때 드낙의 귀에 늑대의 하울링이 들려왔다. 이스핀 또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발성이었다.
“도노!”
이스핀이 손뼉을 치자 드낙이 순식간에 숲으로 들어갔다. 그건 이스핀도 마찬가지였다. 요새 잘 안 보인다더니, 만약을 대비한 덫이 되어있었다.
*
하울링이 퍼져나가자 〈기어오르는 발바룽〉이 내달리면서 주변을 훑었다. 매우 가까이서 울려 퍼진 하울링이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들짐승이 달리는 발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휙!
바로 코앞에서 수풀에서 튀어나와서 다른 수풀로 들어가는 갈색 늑대 때문에 발바룽이 급히 달리던 것을 멈추었다. 동시에 곳곳에서 갈색 늑대 4마리가 튀어나왔다. 한 놈이 뒷다리를 물자 발바룽이 고통을 느끼고 급선회했다.
하지만 늑대는 앞니로만 물었기에 손쉽게 주둥이를 뗄 수 있었고, 발바룽이 공격할 건더기가 없는 곳으로 물러나며 피 묻은 이빨을 혀로 핥았다.
그 모습에 발바룽이 양손에 쥔 창을 쥐며 한 놈에게 달려들었지만 늑대는 그대로 꼬리를 내보이며 도망쳤다. 수풀이 워낙 우거진 곳이라 그렇게 사라지면 정확히 공격할 수가 없었고, 헤드스 하이에나보다 움직임이 재빠른 것이 늑대였다.
‘이런 씨!’
발바룽이 창으로 자신을 크게 보호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늑대들은 계속해서 꼬리와 뒷다리, 옆구리를 물려고 했다. 거기에 신경이 가있으니, 제대로 달릴 수도 없었고, 때때로 모습을 보이며 쫓는 4마리 외에도 갑자기 수풀에서 세 마리가 추가로 튀어나와서 도약하여 발바룽을 노렸다.
창으로 도약한 갈색 늑대의 목을 찔렀지만, 깊게 들어간 창 때문에 창 하나는 손에서 놓고 말았다.
“크윽!”
낭패한 기색의 발바룽은 창 하나를 휘두르며 결국 멈추어 섰다. 빠르게 늑대를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드낙과 이스핀이 자신을 노린다는 생각을 못 했다.
통나무를 넘기 전에 지지부진한 놈들의 진행을 봤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두머리를 죽여야 한다.’
낑낑거리며 세액 거리는 창에 맞은 늑대가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헤드스 하이에나에게 늑대는 손쉬운 상대였다. 우두머리는 눈에 확 띄었는데, 새하얀 털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방에 단단히 자신을 보면서 때때로 짖기도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며 늑대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발바룽과 눈이 마주치자 가만히 엉덩이를 땅에 내리면서 여유를 부리기도 해서 도발하기도 했다. 그가 달려들 기색을 보이자 그제서야 도노가 일어나서 어슬렁거리면서 발바룽의 주위를 돌았다.
‘영악한 놈이다. 달려드는 늑대의 숫자를 줄이고, 처리하는 게 좋다.’
갈색 늑대의 숫자가 줄어들면 직접 나서거나 늑대를 물릴 것이다.
“켕!”
창에 얻어맞고, 꼬리를 물다가 머리에 창의 끝부분이 찍히기도 했다. 창날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았다. 깊게 박히면 너도나도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피해를 누적시켜서 늑대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 좋았다.
“컹컹컹!”
좌우에서 계속 이리저리 움직이며 간을 살랑살랑 보며 짖는 늑대 때문에 발바룽은 극히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수세에 몰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꼬리 물기〉 〈좌우 교란〉 거기에 발바룽이 도망을 치며 늑대들의 공격성을 돋을 때마다 〈몰이〉를 위해서 옆을 스쳐 지나가며 튀어나오는 늑대들까지.
‘못해도 10마리는 있다!’
수풀에 숨은 늑대들이 가장 발바룽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밖에 나온 늑대의 숫자는 고작 4마리~6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도노는 결코 평범한 늑대가 아니었다. 그는 그간 배운 것이 많았다.
다양한 늑대 무리를 보면서 배운 것도 있었다.
철컹!
철소리가 들려오는 소리가 발바룽의 귀에 명확하게 들려왔다.
‘그 상황에서 날 추격한다고?! 이럴 때가 아니다!’
“크아아아!!”
발바룽은 고함을 지르며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에 뭐가 물면 창으로 후려패면서 질주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금방 무너졌다. 늑대들이 인간의 편을 들어서 자신의 등에 올라타고, 다리를 물고 늘어졌고, 창으로 손쓸 도리가 없이 많이 들러붙었고, 결국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흙을 씹으며 발바룽이 침을 탁 뱉으며 일어났다. 늑대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기에 서둘러 도망가려 했지만 싸늘한 분위기의 살기가 번뜩거리는 새하얀 털을 지닌 덩치 큰 늑대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인간에게 조련되었구나. 들짐승이 울타리 안에서 살아서 뭐하냐? 비켜라!”
발바룽의 말에도 도노는 이빨을 드러냈다. 다른 늑대보다 긴 저 이빨은 발바룽에게 경계심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그 새하얀 이빨보다 빨리 〈교차하는 결빙 구역(Crossing Frost Zone)〉이 발바룽을 덮쳤다.
후욱.
차가운 공기가 주위를 가득 매웠고, 새하얀 입김이 그 입에서 튀어나왔다. 얼음이 네 개의 발에 들러붙으면서 하체를 뒤덮었다. 얼음을 창으로 깨부쉈지만 얼음 송곳이 곳곳에 튀어나와서 발을 옮기기가 힘들 지경이 되었다.
“우오오오!”
드낙이 고함을 지르며 수풀에서 튀어나왔다. 등 뒤로 거대한 얼음 독수리가 나뭇가지와 수풀 그리고 나뭇잎을 찢어발기며 허공으로 솟아올라왔다. 그것을 본 발바룽이 얼음 송곳에 발이 찍히고, 몸이 찔려도 달리기 시작했지만, 얼음 독수리에 하체의 뒷부분이 말끔하게 부딪쳐서 피떡이 되었다.
충격으로 몇 미터나 날아가 나무에 부딪친 발바룽이 손으로 땅을 더듬었다. 재빨리 도착한 드낙은 놈의 손부터 잘라냈다.
“그르릅···”
피거품을 내뱉는 발바룽이 부르르 떨었다.
서걱!
그의 목이 날아갔다. 드낙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죽은 발바룽을 보며 하체 머리까지 잘라내고는 도노를 칭찬했다.
“녀석, 잘 했다!”
“컹.”
도노는 짧게 대답하며 드낙의 피 묻은 다리에 몸을 비비며 지나갔다. 새하얀 털에 피가 묻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에 드낙이 미소를 지었다.
카이야가 도노의 머리에 내려앉아서 까악 거리자 도노가 성을 내며 머리를 털었다. 다시 카이야가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았다.
이스핀이 다가와서 말했다.
“드낙 님. 아직 전투가 끝난 게 아닙니다. 서둘러 돌아가서 헤드스 하이에나의 잔당들을 죽여야 합니다.”
드낙은 그 말을 듣고 서둘러 되돌아갔다. 지금이 최고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엉금엉금!
무너진 통나무 언덕을 넘어 헤드스 하이에나의 뒤통수를 찌르는 일은 드낙에게 있어서 가장 보람찬 일이었다. 소란 때문에 앞만 보고 있는 헤드스 하이에나는 드낙의 상대가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드낙은 남은 마력을 모조리 사용하여 〈교차하는 결빙 구역(Crossing Frost Zone)〉을 여섯 번 사용해서 계곡 곳곳에 얼음 송곳이 튀어나오게 해서 위에 상대하는 사람들에게 공간적 여유를 내어주었다.
승기가 단번에 기울었다.
전투는 그렇게 끝이 났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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