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299화 (298/1,239)

0299 <-- 기어오르는 발바룽 -->

〈동부 엘프(Eastern Elf)〉

〈칼와 엔다(Calwa Enda)〉

위원회의 결정이 났다. 모든 것이 명확해질 때까지 그 어떤 엘프도 남부 왕국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결정이었다. 〈파르카 헤루카르모(Parka Herucalmo)〉는 절망한 표정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의 힘을 지닌 존재와는 다른 엘프 도시와의 정보 협력 속에서 계단식으로 올라가듯이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파르카는 엘프들 사이에서 큰 영향력이 없었다.

독특한 의견과 생각이 있었기에 〈위원회〉의 1인이 될 수 있었지만, 사실 엘프 위원회는 가장 말단이나 다름없었다.

〈진짜 결정〉은 지금까지도 살고 있는 늙은이들이 내리는 것이었다. 1만 2800여 년을 살아온 파르카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년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그의 고민은 점점 더 흉흉한 빛을 내는 흉성(凶星)에게로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살성(殺星)의 간격이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더욱 깊어졌다.

‘흉성의 업은 악운을 주지만, 동시에 그 악운을 헤쳐나가며 더 많은 피의 업을 쌓을 수 있게 해준다. 놔두면 놔둘수록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탄생할 것이다.’

파르카는 그 과정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폭풍의 요람(Cradle of the typhoon)〉의 막대한 마력 동력으로 이루어지는 감시망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럴 줄 알았다면 엘프를 개혁하는 생각 따위 하지 말걸.’

그는 요주인물이었다. 소위 말썽꾼이었고, 다른 엘프보다 감시가 두터웠다. 이 넓은 도시는 파르카 헤루카르모에게 있어서 감옥밖에 되지 않았다.

“제기랄.”

엘프답지 않게 거친 감정을 토해낸 파르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에 다시 활기가 가득 들어찼다.

‘기분 나쁘지만 그들과 접촉해봐야겠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딱 맞는 말이야.’

그는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열등한 놈들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용할 만했다.

계곡 위에서의 3일 동안의 작업 중에 추락해서 죽은 시민은 6명이나 되었다. 안전 수칙을 말해도 안전 장비가 없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들은 용맹한 시민의 시체를 서둘러 예를 다하여 성채로 옮기기도 했다.

높은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조심해도 한순간에 훅 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136명 중에 6명이 전투 시작 전에 죽음을 맞이했다.

신발이 미끄러워서.

발을 헛디뎌서.

짐을 옮기는데 신경을 쓰다가 체중의 균형이 무너져서.

온갖 실수가 있었다. 그러한 과정 끝에 모든 준비를 마친 〈길림길 골〉에서 시민은 50걸음이나 뒤에서 숨죽인 채 가만히 있었다. 이스핀 부대장이 도착하면서 시민들의 실수를 염려하여 조금 뒤로 물린 것이다.

가장 일선에는 정규병과 민병대 그리고 에오윈 가문의 사람 3명이 흩어져서 배치되어있었다. 성주는 오른쪽 계곡 위에 있었고, 에오윈 가문의 남매는 왼쪽 계곡 위에 있었다.

이스핀은 성주와 함께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나이차가 심해야 서로 세력이 달라도 성주의 말을 들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오윈 가문의 생각이었다.

드낙은 계곡 위에 없었다. 몰래 계곡 아래의 틈 사이를 파내고, 안에 몸을 욱여넣었다. 제법 큰 곳이었지만, 굴 속의 어두운 그림자는 드낙의 모습을 완벽하게 가렸다.

입구에 마른 풀이 놓이자 완벽했다. 작정하고 수색하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색감 자체가 자극적이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지나갈 수 있었다.

‘기습이 시작되면, 통나무들이 떨어질 것이다.’

후방으로 도망치는 것을 막을 것들이었다. 물론 다 막지는 못할 것이다.

사족보행을 하기 때문에 거친 경사로도 올라갈 수 있는 것이 헤드스 하이에나였다. 들짐승 위에 사람의 상체가 있는 것이었기에 더욱 균형을 잡기 편했다.

상체를 그저 앞으로 숙이는 것만으로도 체중이 앞으로 쏠려 미끄러지거나 떨어지지 않았다.

‘방해와 교란 그리고 혼란만 주면 된다.’

후방이 가로막혔나라는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에 대한 생각. 그것은 곧 우두머리조차 혼란에 빠지게 만들 것이다.

온갖 원거리 수단이 떨어져내릴 때, 드낙은 우두머리의 목을 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의 마법까지 사방팔방에 퍼진다면 드낙은 100% 후방에 있는 우두머리와 조우할 수 있었다.

오직 그 시간을 위해서 드낙은 좁은 굴에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기어오르는 발바룽〉의 행동력은 대단했다. 3일 동안 인간에게 농락당해 시간을 허비한 만큼 총력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가 지기도 전, 오후 3시경에 모습을 드러냈다.

‘놈이다.’

성주, 〈발그 에드윈〉의 눈이 매서워졌다. 척 봐도 다른 헤드스 하이에나와 체격부터 다른 자가 가장 후방에서 우월한 체격을 지닌 헤드스 하이에나 정예병 다섯에 둘러싸인 채 느긋하게 길을 걷고 있었다.

시민들이 앞으로 다가와서 돌을 집어 들고, 기름먹인 천이 둘러진 장작에 불을 붙일 준비를 했다. 모두 성주의 소식을 기다렸다.

놈이 함정을 지나고 20걸음이나 더 가서야 발그가 단번에 바닥에 놓아둔 양손 도끼를 집어 들었다. 햇빛의 반사 때문에 들킬 것을 염려해서 병사들 대부분이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있었다.

콱!

밧줄이 단번에 끊어지며 큰 통나무 십여 개와 온갖 큰 돌이 계곡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람들의 우레와도 같은 함성소리가 계곡을 크게 울렸다.

“우와아아아아!!!!!”

화르르!

불이 붙은 장작이 아무렇게나 던져지고, 크고 작은 돌들이 떨어져내렸다. 서로 부딪쳐서 그냥 계곡을 굴러떨어질 뿐인 돌도 있었다. 오물 통을 힘을 모아서 굴리는 자들도 있었다. 오물 통은 반쯤 가서 뚜껑이 열리면서 사방으로 쏟아졌다.

끼기긱!

병사들은 활을 당겼고, 제법 투창에 재능이 있고 체격이 있는 병사들은 나무창을 들어 올렸다. 그들의 살상률이 이번 전투에서 가장 중요했다.

“활을 든 놈들부터 노려야 한다!!!”

곳곳에서 지휘를 하는 에오윈 가문의 사람들과 이스핀의 목소리가 흥분이 번지기 시작한 군중과 병사들을 통제했다.

“기, 기습이다!”

헤드스 하이에나들이 크게 당황했다. 그건 발바룽 또한 마찬가지였다. 후방마저 통나무들 때문에 막혔고,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있었다. 그리고 발바룽은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을 느꼈다.

‘뭐지?’

혹한의 겨울에 굴에서 빠져나와 바깥의 바람을 맞이했을 때와 비슷한 바람이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발바룽의 눈에 얼음 때문에 하체가 얼음으로 뒤덮이고 있는 헤드스 하이에나들이 보였다.

그들은 숨 쉬는 것조차 괴로운지 끔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체에 들러붙은 얼음과는 별개로 튀어나온 얼음 송곳에 아랫배가 찔리며 피가 줄줄 새어흐르다가 그대로 얼어버렸다.

꽈자장!

흉측하게 얼음에 뒤덮인 신체가 파편이 되어서 사방으로 퍼져나가 다른 헤드스 하이에나의 털을 자르고, 피부를 긁으며 지나갔다.

짐승의 가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차하는 결빙 구역(Crossing Frost Zone)〉의 3차 효과는 주변에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우아아아아!”

핏물에 하이에나의 하체가 박살 나서 상체만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헤드스 하이에나의 골통을 발로 부수며 그 피를 전신갑주에 물들게 하며 먼지를 뚫고 드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롱소드는 가만히 놔둬도 죽을 헤드스 하이에나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넘겼다.

욕심! 탐욕! 검은 꿈과 업을 쌓기 위한 드낙의 고집이 느껴지는 행위였다.

그렇게 목을 자르면서도 〈킬 더 배틀〉의 효과로 드낙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느려진 체감 때문에 베어 죽일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뇌로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강철을 두른 전사다!”

경악하는 헤드스 하이에나와는 다르게 발바룽은 오히려 거대한 대적자(對敵者)를 마주하며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본거지와 고작 5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는 곳에 똬리를 튼 것이 발바룽이었다. 그의 심장은 위기 속에서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런 대범함이 그에게는 있었다.

‘단기 돌격이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하하!!”

사지에 몰린 발바룽이 호탕하게 웃자 주변에 있던 헤드스 하이에나들이 침을 삼켰다. 먼지와 흙 그리고 장작이 타며 내는 검은 연기 때문에 텁텁했다.

“싸워라! 동족들이여! 인간들은 올라가는 것을 힘들어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내려가는 것보다 올라가는 것이 쉽다!”

두 다리를 지닌 인간은 올라가는 행위를 힘들어했다. 몸 자체가 길쭉하기 때문이다. 반면 다리가 4개인 헤드스 하이에나는 올라가는 것이 장기였다.

“인간들의 숫자는 우리보다 적다! 가라! 가서 모든 인간을 죽여라!”

“크아아아!!!”

기습을 당했지만 헤드스 하이에나들이 다시 전의를 돋우며 날뛰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드낙은 〈교차하는 결빙 구역(Crossing Frost Zone)〉을 두 번 더 쓰고, 〈솟구쳐오르는 빙산(Rising Iceberg)〉으로 한쪽 면을 아예 막아버리고 진로를 확보해 무식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그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발바룽이 엄선한 5마리의 정예 헤드스 하이에나들이었다.

그들은 C자형으로 된 긴 지팡이를 왼손에 쥐고 있었고, ㄴ자형의 독특한 형태의 칼을 가지고 있었다.

유례없는 영악함을 지닌 발바룽은 이미 철을 녹여 무기를 만드는 수준을 홀로 쌓아올렸던 것이다. 인간 마을 하나를 습격한 대장간에서 만든 것이라 모방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두 가지의 무기는 〈강철의 인간〉을 죽이기 위한 도구였다. 오직 그 두 가지의 무기를 숙련한 것이 5마리의 덩치가 가장 큰 헤드스 하이에나들이였다.

“가라! 가서 너희들이 토하면서 수련한 합격술을 놈에게 보여주어라!”

발바룽은 결코 멍청한 자가 아니었다. 에오윈 가문의 기사가 보여준 무위를 결코 모르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인 〈외눈 다크 트롤〉조차도 강철을 두른 기사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그런 그가 기사에 대한 대항책 하나 없이 이 전투에 나섰다면 그는 헛똑똑이였다.

“우리는 하나다!”

끝이 C자형으로 깎은 나무 지팡이를 들어 올린 헤드스 하이에나가 소리치자 다른 헤드스 하이에나들도 고함을 질렀다.

‘놈은 우리들의 존재를 모른다. 한 방에 모든 것을 끝낸다.’

그들은 가장 먼저 마법에 살아남은 15마리의 헤드스 하이에나들을 마법받이로 사용했다.

헤드스 하이에나들은 기본적으로 체고가 인간보다 높았기 때문에 드낙은 근접한 헤드스 하이에나들 때문에 시야가 많이 가려져 있어서 다섯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반면 발바룽은 드낙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고함을 지르며 〈우두머리〉가 이곳에 아직 있음을 어필했다.

‘질척거리는 놈들! 마법으로 순식간에 죽인다!’

영악한 우두머리였기에 도망칠 공산이 컸다. 네 발 달린 놈을 드낙이 쫓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희망적인 개소리였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고, 가장 쉬운 길이었다.

공짜하면 현대인이었다. 패가망신해도 공짜가 최고라고 외치는 것이 현대인이었다. 드낙은 지름길을 보고 그냥 지나칠 사람이 아니었다. 대머리가 되더라도 공짜를 외칠 사람이 박호훈이었다.

콰자작!

교차하는 결빙 구역이 두 번 연거푸 생기며 질주할 공간을 만들었다. 드낙이 그곳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우두머리는 내 것이다!’

그리고 다섯 마리의 암살자가 드낙을 향해서 노도와 같이 몰려들었다. 영악한 발바룽이 직접 만들어낸 최고의 암살자들이었다. 기사를 죽이기 위해서 단련한 그들의 손가락은 마치 기사처럼 특징적인 굳은살이 베여있었다.

“건방진 놈들! 비켜라!”

드낙이 고함을 지르며 그대로 뛰어들었다. 전신갑주를 앞세우며 놈들의 형편없는 무기가 자신에게 결코 피해를 주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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