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7 <-- 기어오르는 발바룽 -->
“결론만 말하자면, 매복을 통해서 기습을 가하여 그 전투에서 놈들의 숫자를 줄인 후에 곧바로 진격하여 섬멸하자는 것이오.”
“우두머리를 놓칠 수 있지 않겠소? 정예 몬스터가 가장 중요한 타겟이오.”
드낙에게 있어서 〈정예 몬스터〉야말로 가장 중요한 놈이었다. 놈의 간악한 짓거리를 봤기 때문에 검은 문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놈은 가장 후방에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잡는 것은 어려울 것이오. 오랜 추적으로 잡아야 할 놈이오.”
랄프의 말에 드낙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공을 탐하는군.’
랄프는 그런 드낙의 기색을 단번에 잡아냈다. 에오윈 가문에서 얻을 것이라곤 솔직히 〈혈통〉 하나뿐이었고, 그렇기에 차녀를 첩으로 들이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그것은 보상이라기에는 솔직히 약했다.
자식을 많이 놓는다는 가정하에 몇몇 불파겐의 흔적이 있는 자식은 또 에오윈 가문의 품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일이었고, 〈피의 무게〉를 따지자면 불파겐이 더 무거웠다.
‘원하는 것은 에오윈 가문이 버려진 영지에 조금이라도 정착하는 것인가. 모를 일이군.’
불파겐의 피를 원하는 가문은 많았다. 하필 그중에 작은 힘을 지닌 자신의 가문을 원하는 것은 기이했다. 랄프는 그 의중을 살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낙이 벌이는 일은 모두가 구렁텅이로 들어갈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 또한 망할 수도 있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그가 공적을 원한다면 스스로 위험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드낙 경이 그렇게 우두머리의 목을 원한다면, 홀로 후방에 기습하여 목을 따는 것은 어떻소? 병사들의 사기도 크게 커질 것이오.”
대놓고 사지로 들어가라는 소리였지만 드낙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신갑주를 단단히 믿고 있었고, 무엇보다 〈헤드스 하이에나〉들은 중대형 몬스터도 아니었다. 자신을 죽일 수단이 없다고 판단했다.
“자세한 작전을 알 수 있겠소?”
“그전에 지금 전투를 할 수 있는 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야 하오. 그래야 상세하게 결정할 수 있소.”
정규병이 10명.
민병대로서 지금도 훈련과 노하우를 맨투맨으로 받고 있는 장정이 20명.
드낙의 개인사병(순찰자) 2명.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가 4명.(드낙, 이스핀, 안젤리카, 랄프)총 36명이었다.
“안젤리카, 민병대의 수준은?”
“지키는 것은 잘하지만, 밖으로 나가서 싸우기에는 부족해.”
지키는 것과 뛰쳐나가 싸우는 것은 크게 달랐다.
“지원자를 받아야겠다.”
“시민을 동원하자는 소리야?”
“헤드스 하이에나를 죽일 절호의 기회야. 이대로 굶어죽는 것보다는 나가서 싸우는 것을 선택할 거야. 직접 싸우는 것도 아니고, 계곡 위에서 투척만 잘하면 되니까.”
“그곳에서 훈련한 사람은 정규병뿐이야. 큰 피해가 생길 거야.”
“더 많이 죽는 것보다는 나아.”
남매가 의견을 칼같이 날카롭게 교환하는 것을 보며 드낙은 두 사람의 역량을 살필 수 있었다. 군사학을 놓았다고 말하는 안젤리카는 지금 상황에 필요한 군사지식을 벼락치기 했기 때문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군사학 버렸다며. 말이 되냐고.’
공부의 효율이 달랐다. 똑같이 하루 벼락치기를 해도 시험 결과가 크게 다른 것과 비슷했다.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똑똑한 자들이 많은지 드낙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아는 것만으로도 수재(秀才)라고 불린다. 드낙은 하나를 알면 내일 하나를 까먹는 범재였다. 다만, 전투에 있어서는 수재와 비등했다.
육체의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유목민의 거친 유전자는 무(武)를 쌓아올리는데 최고의 그릇이었다.
“결론이 뭐요?”
드낙이 시간이 아까워서 말을 잘라내며 난입했다. 3일이나 지났기 때문에 밖에 나가 싸운다면 빨리 나가야 했다. 어중간한 순간에 적이 쳐들어오면 봇물 터지듯이 무너질 것이다.
“시민을 동원해야 하오. 물론 지원자에 한해서.”
많은 지원자가 나올수록 좋았다. 강제로 그들을 동원하는 일은 나중에 큰 업보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던 이스핀이 눈을 반짝였다.
‘시민들을 다루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저 모으기만 모으면 되었다. 협박하지 않아도 협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스핀이었다. 그의 덩치는 뒷골목 깡패라기보다는 내성을 지키는 근위병처럼 덩치가 있었다.
“제가 한 번 설득해보겠습니다. 최대한 많은 지원자를 뽑아내겠습니다.”
“그럼 안젤리카와 함께 가시오.”
랄프는 당연히 이스핀을 신뢰하지 않았고, 신용하지도 않았다. 안젤리카를 붙였다.
“못해도 50명 이상은 모아야 한다.”
랄프가 안젤리카에게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향할 곳은 〈갈림길 골〉이오. 사족보행을 하는 헤드스 하이에나들은 성채를 공략하기 위해서 한 번은 골짜기로 내려와야 하오. 메마른 구멍길에서 출발한다면, 갈림길 골을 반드시 지나쳐야 하오.”
네발로 깎아내려가는 계곡의 절벽을 내려가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 막힘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드낙이 그 부분을 짚었다.
“우두머리는 영악하고, 간교하오. 내 사병들은 정찰과 수색에 재능이 있는 자들이니 그들을 시켜서 놈들이 내려갈 구조물을 만들었는지 확인해보겠소.”
흔쾌히 그 의견은 받아들여졌다. 돌다리도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했다. 그 정도로 그들이 상대하는 적은 영리했다.
“기습과 매복을 위해서는 물자를 준비해야 하고, 그것을 이송하오.”
시선이 안젤리카에게 모였다. 그녀만큼 실시간으로 현재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드낙은 애초에 안젤리카가 하고 있는 〈성채 현황〉을 굳이 자신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분위기만 살핀 것이 전부였다.
귀찮았기 때문이고, 이미 남이 하고 있는데 자신이 손을 대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수성을 위해서 돌은 충분해요. 문짝마저 뜯어서 〈불장작〉으로 쓸 수 있을 거예요. 그만큼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퍼져나가고 있어요. 랄프 경께서 중상을 당한 채 성채로 도망쳤기 때문이죠.”
“끄흠.”
안젤리카의 말에 랄프가 헛기침을 했다. 그만큼 그는 무리하게 정찰 행위를 했고, 5명의 정규병을 죽음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향후에도 계속 그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천을 돌에 말아서 불을 붙여 돌을 던질 수도 있어요. 헤드스 하이에나들은 공격을 잘 오지 않고, 저희를 말려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기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기름 또한 충분했다.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서 말뚝부터 투척용 나무 단창까지 많이 보유하고 있어요. 그것을 계곡 위로 가져간다면 용이하게 쓸 수 있을 거예요."
훌륭했다. 또한 안젤리카는 웃으면서 다른 것에 대해서도 말했다.
“성채에 박혀서 살아서 오물이 많이 모였어요. 분명 헤드스 하이에나들은 그 지독한 악취에 정신을 못 차릴 거예요.”
오물까지 무기로 쓸 생각을 했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원거리 수단이 충분히 많이 적재되어있음을 확인한 랄프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가만히 듣던 드낙이 우려를 표했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 않소?”
랄프가 늦게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드낙이 안젤리카의 군략이 그럴듯해서 믿어주며 기다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타이밍이 안 맞을 공산이 매우 컸다.
“놈들의 시선을 끌고, 전진을 막아야 하오.”
“허나, 병사들을 여기서 더 잃을 수는 없소.”
랄프의 반대에 드낙이 손사래를 쳤다. 그는 잔머리 하나는 잘 돌아갔다. 영악한 놈을 상대하는 법도 많은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기도 했다. 〈천재 무너뜨리기〉는 식상할 정도의 클리셰였다.
‘똑똑한 놈은 시야가 넓은 법이지.’
전형적일 정도의 상대였다. 드낙은 놈을 상대로 시선을 어떻게 끌지 벌써부터 여러 개를 생각할 수 있었다.
“나에게 맡겨주시오. 시간도 벌고, 놈이 기습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들겠소.”
호언장담까지 했지만 누구도 불파겐의 그런 간계를 믿지 않았다.
“설명을 해주시오. 드낙 경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서로가 할 생각을 알아야 앞일이 편한 것 아니겠소?”
“맞아요. 특히 저희는 성채를 버리고, 앞에 나가서 매복을 걸어야 해요. 조금만 서로 생각이 다르면 큰일이 날 수 있어요.”
도저히 불파겐이 지략과는 상관이 없어서 걱정스럽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싸우지 않고, 시선을 곳곳으로 돌리게 만들 생각이오. 예를들면 엉뚱한 곳에 불을 내서 연기를 자욱하게 만들다던가, 동물 시체를 곳곳에 버려서 썩은 내에 정찰하게 만들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오. 또 하루 종일 봉화대에 불을 붙이거나 성채를 정찰하는 놈들을 죽여서 시야를 차단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오.”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되려 주춤할 것이 분명했다. 허접했지만 확실하게 며칠은 통할 방법이었다.
“그럼 이것으로 끝내겠소.”
“피를 대지에 뿌리며 죽어갈 헤드스 하이에나들만 보면 끝이오.”
병실에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회의가 그렇게 끝이 났다. 성주인 발그는 물자의 이송을 감독하러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안젤리카와 이스핀은 지원자를 뽑으러 대저택의 지하로 향했다. 이끼와 버섯으로 연병하고 있는 시민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대로는 모두 굶어죽고 말 것이다! 지금 기사가 4명인 상황을 백분 활용하여 헤드스 하이에나의 간악한 짓을 역으로 지혜롭게 이겨 나가야 한다!”
“계곡 위를 점령하고! 성채를 뛰어넘어 여자를 해하고, 집에 불을 지를 생각으로 가득 찬 더러운 몬스터의 골통에 돌을 던질 지원자를 찾는다!”
“함정을 파고 덫을 놓는 일이다! 근접전은 정규병과 기사가 할 것이다!”
“질문이 있다면 성실하게 대답해주겠다!”
이스핀의 외침에 장정들이 너도나도 질문했다. 전신갑주도 입지 않은 이스핀은 새로운 인물이었기에 거침없이 질문할 수 있었다.
지원자는 무려 100명이나 나왔다. 〈애송이 시절〉을 보내고 있을 것 같은 청소년 나이대의 남자도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그를 거부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지만, 신체는 이미 성인이나 다름없었다.
‘좋다, 좋아!’
이스핀이 예상보다 2배나 되는 인원을 모으자 크게 좋아했다.
그날, 저녁의 어두움을 틈타서 순찰자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밖을 나섰다. 그들은 성문을 통하지 않고, 그림자가 진 어두컴컴한 곳에서 밧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우리도 준비하자.”
안젤리카와 랄프는 계곡 위를 점령한 소규모의 헤드스 하이에나를 소탕하며 게릴라를 펼칠 생각을 가졌다. 시간은 정찰병들이 가장 힘들어할 새벽녘으로 삼고, 준비를 마친 채 잠깐이라도 잠을 자러 갔다.
드낙은 착착 서로 맡은 임무를 다하는 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에오윈 가문의 기사 두 명이 정찰병력을 제거하고.’
‘나와 이스핀이 엉뚱한 곳에 불을 지펴서 십여 명이 야영한 흔적을 만든다.’
‘시체를 방치해서 먹기 위해서 죽인 것이 아닌 것을 보여주고.’
‘밤낮없이 타오르기 시작한 봉화대의 검은 연기를 보겠지.’
판단은 〈기어오르는 발바룽〉에게 달렸다. 하지만 그런 고민과 생각을 하는 것. 그 자체가 드낙의 노림수였고, 지연전이었다. 이미 발바룽은 그 현상을 보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드낙의 목표는 완수한 것이었다.
“이스핀, 준비되었냐?”
“예. 부싯돌도 충분히 챙겼습니다.”
“우리도 가자. 갈 길이 멀다.”
전신갑주로 무장했지만, 검은색의 누더기를 걸친 두 사람은 능숙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 계곡의 깊은 곳을 지나 엉뚱한 곳으로 향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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