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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96화 (29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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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안젤리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많은 일에 성공을 거둔 드낙 불파겐이 결국 성질을 못 참고 뛰쳐나오려고 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불파겐. 성질 급한 건 시대를 지나서도 여전하네.’

귀족들이 명예보다는 이권을 외치던 과거 시대의 잔여물과도 같은 변덕스러움이다. 자신의 약조를 깨기 위해서 자신부터 부르는 것을 보니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두려워···’

그런 변덕을 눈앞에서 꾸짖기에는 그가 지닌 사자의 갈기털이 무서웠다. 전신갑주를 운용할 줄 아는 안젤리카 또한 기사였지만, 그녀는 드낙이 무서웠다.

전신갑주를 운용해보지 않은 자들의 눈에는 모든 기사가 똑같은 기사로 보일 것이다.

그 강인함은 인간을 초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사도 격이 천지 차이고, 실력이 천차만별이었다. 괜히 대단한 기사는 〈고위 기사〉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기사에도 격차가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련에서 이스핀이 드낙에게 수많은 대련을 가졌음에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이유 또한 실력 차이가 대단히 크기 때문이었다. 이스핀의 수준은 이제서야 이류 무인의 수준으로 어디 가서 자유기사라고 말하도 다닐 정도는 되었지만, 남들에게 자신 있게 자신을 〈기사〉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아가씨.”

그녀와 오래전부터 함께 했던 수행원인 〈볼준〉이 안색이 나빠진 채 그녀를 불렀다.

“장남이 정신을 잃었는데, 아가씨라니. 드낙 경의 인물들에게는 그런 호칭은 말하지 말아라.”

“예. 조심하겠습니다. 그것보다 이대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는 분명 밖으로 나가서 싸우자고 할 겁니다. 소문대로 불파겐은 들짐승의 피가 흐르는 게 분명합니다.”

“그를 설득해볼 참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안젤리카는 드낙에게로 갈 수가 없었다. 긴박한 상황에 장남 〈랄프 에드윈(Ralph Edwin)〉가 정신을 차렸다는 소식이 대저택 곳곳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몽펠리에가 지급한 포션을 먹었기에 상처는 모두 회복되었기에 깨어나기만 기다렸는데, 근 1주일 만에 눈을 뜬 것이다.

‘기회다!’

안젤리카가 볼준에게 말했다.

“가서 드낙 경에게 오빠가 깨어났다고 전해라. 그리한다면 하루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예!”

볼준이 허둥지둥 빠른 걸음으로 대저택의 복도를 걸어갔다. 안젤리카는 병실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는 아버지인, 성주 발그 에드윈이 있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장남의 말에 발그는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사람은 언제나 실수하는 법이다. 너는 지금까지 잘해주고 있어.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는 것이지. 사과는 되었다. 지금 성에 불파겐의 후예가 와있다. 몬스터는 더는 걱정이 아니야.”

“드낙 경이? ······ 그렇다면 서둘러 그를 이곳으로 오게 해주십시오. 긴히 할 말이 있습니다.”

발그가 반대했다.

“안정을 취해라.”

“아니요. 아주 중요한 정보가 있습니다. 지금 말해야 합니다. 그 범(虎) 같은 자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안젤리카가 궁금해서 말했다.

“어떤 정보이길래? 드낙 경은 지금 오고 있어. 제가 볼준에게 오빠에 대한 일을 말하라고 지시했고.”

“호랑이에게 날고기를 던져주면 어찌 되느냐?”

랄프의 말에 안젤리카가 대답했다.

“군침을 흘리며 뛰어들겠지···?”

랄프가 웃음 지었다.

“공명심에 눈먼 자가 불파겐이다. 그는 이제 개발되고 있는 토지도 버린 채 여기까지 온 자다. 공을 세우기 위해 눈이 벌겋게 되어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실익을 챙기고, 그 자는 전면에 서서 공을 세우면 된다. 그게 끝이다.”

안젤리카가 지금 있는 일을 말하자 랄프가 되려 드낙을 칭찬했다.

“다른 가문의 지원을 받고 근근히 살아가는 가문과의 약속 때문에 3일이나 가만히 지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몰락한 가문이 우리보다 낫다는 거야?”

“무섭게 비상하고 있지. 아버지께 들었다. 하찮은 용병 놈이 전신갑주까지 얻었다며?”

“다 헛소문이야. 자신을 용병이라고 말하는 이스핀 또한 몰락한 가문의 자유기사겠지. 그걸 믿어?”

안젤리카가 표독스러운 눈을 하자 발그가 서둘러 두 사람을 말렸다. 현실적인 랄프와 에오윈 가문에 대한 애정이 깊은 안젤리카였다.

똑똑똑.

“들어가도 되오?”

자신이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알 수 있었다. 드낙이었다.

“들어오시오.”

발그가 말하자 문이 열리며 드낙이 들어갔다. 성주와 안젤리카에게 눈을 마주치며 목례를 했다. 거침없이 중앙으로 비집고 들어와 랄프를 드낙이 바라보았다.

“괜찮소?”

“탈력감이 좀 심한 것뿐이요. 그것보다 다시 와주어서 고맙소. 에오윈 가문을 돕는 것은 사실 이후의 일에 큰 도움이 안 될 것인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것이냐.”

발그가 랄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겼더니 아들 녀석이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낙에게 너무나도 솔직했다.

논공행상에 있어서 에오윈 가문을 돕는 것은 크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오윈 가문이 지닌 것은 그저 쌍둥이 성채의 전력적 요소를 수호하는 가문일 뿐이었다.

그 외의 영향력은 전무했다.

누가 무엇을 했느냐도 중요했지만 누가 도움을 받아서 논공행상에 어떻게 도움을 주느냐도 중요한 정치적 포인트였다. 몽펠리에는 드낙을 크게 우대할 것이지만, 랄프는 자신들의 가문이 드낙에게 무엇도 해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다.’

드낙이 눈치를 보다가 발그 또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며 드낙의 눈치를 보자 솔직하게 폭탄선언을 내뱉었다. 주제를 바꾸는데 충격적인 발언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여긴다면, 안젤리카를 제 첩으로 받아들이고 싶소.”

“예?!”

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벽에 기대며 귀를 기울일 준비를 하던 안젤리카가 휘청거리며 깜짝 놀랐다. 발그 또한 의자에서 일어나서 엉거주춤했는데, 그만큼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소?”

드낙은 이미 수십 번 이 상황을 시뮬레이션했다. 항상 겁쟁이였던 드낙은 사람 관계에 있어서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하고 그 문제에 부딪치는 것을 즐겨 했다. 그가 뛰어난 상상력을 지닌 것은 현대인이기도 했지만, 겁이 많아서이기도 했다.

동생을 데려간다는 소리에 왜라고 묻는 것은 드낙의 예비 답안지에 나와있는 것이었다. 드낙이 거침없이 입을 놀렸다.

“이런 척박한 곳에서 기약 없는 때를 기다리며 상처 입은 날개가 다시 언젠가 날아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진정으로 새로운 땅으로 오는 것이 어떻소.”

“버려진 영지를 말하는 곳이오? 인구도 무엇도 없는 곳 아니오.”

“몽펠리에도 없고, 파이룬도 없소. 그대들은 역사가 있지 않소? 목줄이 채워진 것보다 자유가 더 필요한 것 아니오?”

그렇게 물으면서 드낙은 도주로도 만들었다. 그것은 드낙을 위한 도주로이기도 했고, 에오윈 가문의 거친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방파제이기도 했다.

“물론 에오윈 가문 전체가 오라는 것은 아니오. 그 정도의 큰 움직임은 몽펠리에의 이목을 끌 수 있기 때문이오.”

“그래서 첩인가.”

“그렇소.”

침묵이 가라앉았다. 당사자인 안젤리카는 오빠와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랄프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시간을, 시간을 주시오.”

“헤드스 하이에나의 우두머리의 목이 떨어지는 날에는 줘야 할 것이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에오윈 가문이 진정으로 있어야 할 곳은 불파겐의 영지임을 말하고 싶었소.”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행한 행동이었지만, 몽펠리에 가문에 다양한 영향력을 지닌 유력 가문을 버리고, 굳이 이런 한적한 곳에서 공을 세우려고 온 드낙은 순식간에 자신의 원래 목적은 〈에오윈 가문〉인 것처럼 행동했다.

랄프가 많은 힌트를 그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태세전환은 그의 변덕처럼 재빨라서 누구도 그 위화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떤 대우를 받을 수 있나요?”

안젤리카가 당돌하게 드낙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발그가 서둘러 그녀의 손을 잡으며 호통을 쳤다.

“무례하다!”

“첩으로 들어가는데 이 정도 자격도 없나요?”

드낙은 발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를 진정시켰다.

“전신갑주 하나만 입고 와도 이미 순위권이오. 불파겐의 영지에서 곧바로 강력한 영향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오.”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깔끔하게 매듭지어지지 못했다. 어색한 상황에서 랄프는 자신이 가진 정보를 풀었다. 사실 급한 것은 드낙과 안젤리카의 결혼이 아니었다. 힘들 때 찌른 드낙의 간교함이 돋보일 뿐이었다.

“정찰에 나가서 오직 나만 살아돌아서 왔소. 그 정도로 나는 깊숙이 계곡을 수색했소.”

드낙은 조용히 랄프의 말을 들었다.

“놈들은 비가 오면 물이 차오르는 〈메마른 구멍길〉에 살림을 차렸소. 그곳이 놈들의 본진이요.”

“저, 정말이냐! 여기서 고작 5시간 거리가 아니냐!”

발그가 화들짝 놀랐다. 생각보다 적이 엄청나게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랄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입니다. 아버지. 놈들이 계곡 성채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빠르게 대처가 가능한 것도 본진이 그만큼 가깝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발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완전히 놀아났다.

“어째서 그렇게 가까이 있는 놈들을 모르셨소?”

“비가 오면 물로 길이 막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 어느 놈이 살림을 차리겠습니까? 허를 찔렸습니다. 역시, 우두머리 놈은 보통이 아닙니다. 충격적일 정도의 전략입니다.”

차가운 뱀이 허리를 감는 듯한 감각을 그제서야 드낙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서늘하고 간사한 뱀의 전략이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심장이 차갑기에 할 수 있는 짓이었다.

‘무시무시하군.’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가도 드낙은 금방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가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쳐들어가서 하나도 남김없이 목을 따버립시다.”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랄프가 드낙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오. 지형이 험해서 지정된 길목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오.”

올라간다는 말에 드낙이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 그만해도 계곡 성채에서 위에 있는 상대에게 호되게 두드려맞았기 때문이다.

적이 있는 상황에서 아래에서 위로 간다는 것이 얼마나 죽을 맛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하지만 놈들의 본거지다.’

새끼든 어미든 닥치는 대로 쳐죽일 기회였다. 흉포한 기세에 안젤리카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짐승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그것은 금방 사라졌다. 드낙이 자신의 탐욕을 뒤로 미루고, 다른 이의 생각을 구하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랄프 경의 생각은 어떻소? 단기전이 좋겠소. 지금처럼 적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소?”

“드낙 경이 없었다면 장기전을 노렸을 것이오. 놈들은 인간의 피맛을 봤고, 기사가 도망치는 광경마저 보았기 때문이오. 우두머리는 부하들의 기세가 최고조에 오른 이 시점을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이라 보오.”

“하지만.”

랄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드낙 경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소? 단기전을 노려 놈들을 쳐죽여야 할 때요.”

안젤리카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우리들이 지닌 병사의 수는 정규명은 이제 10명밖에 안 돼요. 민병대는 20명이고요.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병사는 30명에 그중에 제대로 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사〉는 10명 밖에 안 돼요.”

다리를 공사하다가도 숙련되지 않으면 굴러떨어져서 죽는 것이 인간이었다. 간단한 작전조차 이해하지 못해 고꾸라지는 것이 사람이었다. 간단한 작전조차 공격적이고 능동적이라면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민병이었다.

“나에게 생각이 있소.”

랄프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발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나만큼 이 조용한 계곡의 지형을 잘 아는 자가 있었습니까?”

“은퇴했지만, 노련한 순찰자조차 너를 대단하다고 칭찬해주었다.”

랄프가 안젤리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군사학을 놓아버렸잖아.”

드낙이야, 랄프의 생각을 알고 싶었기에 랄프가 그에게 눈길을 주기 전에 대답했다.

“빨리 말해보시오. 어떻게 할 생각이오?”

========== 작품 후기 ==========

5715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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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핀이 자유기사와 동급인 이유는 실력 때문이 아니라 체급 때문입니다. 기술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체급으로 발라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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