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2 <-- 쌍둥이 성채 -->
“두 가문이 너에게 뭘 해줬는지를 가장 먼저 비교해야지. 그리고 더 잘해준 놈을 정실로 결혼을 하고, 덜 잘해준 놈을 첩으로 둬야지.”
“결혼은 최대한 나중으로 하고 싶어. 지금 상태로 한다면 끌려다닐 수밖에 없잖아?”
드낙의 철없는 말에 세파리아스가 반박했다. X도 모르는 놈이 바로 드낙이었다. 결혼은 상대와의 안전한 거래를 위한 필수 코스나 다름없었다. 그러지 않은 자와의 거래는 항상 비슷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당연히 드낙과 다른 두 가문은 그럴 수 없었다. 드낙은 지나칠 정도로 불균형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거래를 할 상대로서의 자격이 없었다.
“몽펠리에든 파이룬이든 그들은 조급해할 수밖에 없다. 트롤 토벌 직후 어찌 되었건 너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
“음··· 그리고 나서는?”
“아이를 낳아야지. 못해도 3년 내에 양쪽에 2명씩은 낳게 해줘야 한다.”
“······”
드낙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했다. 여자 손이라고는 엄마 손밖에 모르는 것이 드낙이었다. 살기 위해서 버둥거리며 경력을 쌓기 바쁜 나날을 지냈다. 그에게 있어서 여자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고, 애초에 쳐다도 봐서는 안 되었다.
돈이 없으면 말을 거는 것조차도 서로에 대한 불행으로 여겨졌다. 십 년이 넘는 체념은 지금까지 이번 생까지 좀먹고 있었다.
“너도 불파겐의 적발을 얻었으니, 머리카락이 가장 붉은 놈을 〈불파겐의 후계자〉로 두고, 다른 놈은 아내들에게 줘버려라.”
“줘버리라니?”
“아내들이 아무리 잘 나가도 불파겐의 영지 안에서 세력을 일구기에는 보이는 눈치가 있지 않느냐. 그녀들의 후계자가 있다면 방계라도 성 하나는 먹어야 하니 두 가문에서 지원을 더욱 확실하게 해줄 것이다.”
세파리아스가 검지를 올리며 빙긋 웃으며 말했다.
“외척세력을 만들어야지, 네가 살고, 영지가 산다.”
‘미친 것 같은데?’
드낙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또 생각했다.
‘또라이 아냐?’
스스로 외척을 만들겠다는 세파리아스의 의견은 미친놈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미친 게 틀림없었다. 드낙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그렇게 10년만 지나면 〈버려진 영지〉는 다시 〈불파겐 영지〉가 될 것이다. 완전한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
“겉만 멀쩡하지만 속은 시작부터 썩어 들어간 거 아니야?”
세파리아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정도 리스크는 감당해야지.”
드낙이 눈을 감았다. 뭔가 마음속에서 들끓어 올랐기 때문이다.
“후우우···”
‘진정하자. 드낙. 원래 이런 놈이야.’
남들은 도박을 뛰어넘어 목숨을 건 한 판 승부였지만, 세파리아스에게 있어서는 그저 〈크게 한탕〉 벌이는 것에 불과했다.
그 격차를 드낙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남부 왕국〉에서 태어난 다섯 흉성(凶星)의 주인이 이 세상을 대혼란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아직 몰랐다. 점성술의 수준이 낮았다. 엘프의 역사서에서조차도 다루어지는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인간이라는 종족에서 탄생한 최강의 개체였다.
그때 이후로 엘프는 마법에서 별의 힘으로 연구 과제를 옮겼던 과도기도 거쳐야 했다.
‘세파리아스의 생각은 이거다.’
정실과 첩을 합당한 근거인 실질적인 도움의 정도를 가려내어 확실하게 판가름하여 두 가문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불만이 겉으로는 나올 수 없었다. 상대보다 못해준 것은 자신들이니까.
그다음에는 순풍 산부인과를 찍고, 혈통이 가장 좋은 자식은 불파겐 가문의 적통이 되고, 나머지는 아내들에게 맡겨진다.
자연스럽게 방계로 성장하라는 뜻이나 다름없었으니, 본격적으로 양쪽 가문의 힘이 아내를 통해 자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영향력의 유입은 폭발적으로 〈버려진 영지〉의 성장을 촉진시킬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영지〉는 10년 내에 〈불파겐 영지〉로서의 면모를 가지게 된다.
‘성공하기만 하면 훌륭하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의 성공 스토리였다.
문제는 외척으로 폭망한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었다. 특히 명성황후의 경우에는 천하의 둘도 없는 개 같은 외척세력이었다. 드낙은 그것을 공부해서 안 것은 아니었다. 공립 학교의 역사 선생님이 괴짜여서 침을 튀기며 설명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옳은 역사관〉에 미친 선생은 그때에는 괴짜로만 보였다. 수능에는 나오지 않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문제가··· 문제가 너무 많은데, 감당이 가능하겠어?”
“반란은 안 일어날 것이고, 넌 간도 두 개고··· 괜찮을 것 같은데?”
세파리아스가 태평한 소리를 했다. 드낙이 세파리아스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독살이나 암살이 이루어진다는 소리잖아? 아니야?”
“맞는데? 근데 안 죽으면 그만이잖아.”
“아! 아!”
드낙은 갑자기 왼쪽 어깨 근육이 뻐근해졌다. 끔찍한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너무나도 화가 나서 육체가 버틸 수가 없었다.
“미친놈이! 그걸, 그걸 말이라고 해?”
“아니, 그럼 여기서 더 어떻게 빨리 성장하냐고.”
“천천히 성장하면 되잖아!”
“그럼 언제 제국으로가서 불파겐 가문의 진짜 후손을 찾을 거야!”
세파리아스 또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서로 한바탕 검을 부딪치고 나서야 화를 식힐 수 있었다. 물론 드낙이 패배했다. 흥분한 상태의 싸움이라면 세파리아스가 백전백승이었다.
“좋아. 트롤 토벌만 완수하고 1년이나 2년 내로 아예 제국으로 갈게. 내가 직접! 그럼 되잖아?”
“흠. ”
“그럼 다른 안을 내봐.”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최고다. 다른 건 자잘하고 귀찮은 것 투성이야. 너한테도 안 어울리고.”
드낙은 잠깐 손을 들어 올려 세파리아스의 입을 막고, 세파리아스의 판단을 통해서 문제를 파악했다.
1번. 몽펠리에와 파이룬의 결혼 문제.(명예와 부의 선택.)
2번. 후계자 문제.(외척 유입의 명분)
3번. 외척에 대한 판단.(성장 촉진제)
4번. 두 가문의 영향력 및 자원의 버려진 영지로의 성공적인 유입.(10년 영지 정상화)
5번. 버려진 영지의 드낙 영향력 안정화 작업.(암살, 독살 등등)
‘대충 이 정도인가?’
정리를 해도 답은 안 나왔다. 결국 드낙은 세파리아스에게 되려 질문을 했다.
“결혼을 뒤로 미루면 정말로 안 되는 거야?”
“그러면 두 가문은 너에게 상투적이고, 겉만 번지르르한 지원만 하다가 1년도 안 되어서 끊을 공산이 크다.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
“아니, 얼추 가문의 세가 비슷할 때 한다고 하면 되잖아.”
세파리아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찬가지로, 너한테만 이득이니까 두 가문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알지? 이번 소란이 끝나면 백금 왕가가 움직일 것이다. 불파겐의 후예가 나타났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넌 지금 북부의 보호막이 필요해.”
기사단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드낙의 수준이 약했다. 드낙은 그 말을 듣고 그제서야 사태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급한 건 오히려 나라는 소리인가? 하지만 북부 또한 백금 왕가에게 칼을 겨누긴 겨눠야 한다.’
급한 것은 자신뿐만이 아닌 것이다. 세파리아스의 그 판단은 드낙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북부 또한 남부 꼴이 나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토지를 빼앗긴 귀족은 귀족이 아니었다.
“······ 이렇게 하면 어때? 내가 횃불 성채 때 썼던 것처럼. 공을 몽펠리에나 파이룬 가문에게 나눠바치는 거야.”
“파이룬 가문에게는 왜 줘? 미쳤어?”
세파리아스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트롤 토벌은 몽펠리에와 드낙의 것이었다. 파이룬 가문이 기사를 보낸다면 명분이 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었다.
“그걸로 일단 퉁치자는 거지.”
세파리아스가 매우 깊은 분노를 표정으로 보여주었다.
“이 개새끼야. 호구짓도 정도껏 해야지. 네놈 밑에 있는 것들에게 뭘 주는 건 난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놈들이 활약을 하면 네놈 토지가 이득이고, 네가 지닌 세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강렬한 기세에 드낙이 침을 삼켰다. 이실레아에게 발룬을 줘도 세파리아스에게는 욕은 해도 분노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그녀가 활약하면 그 덕은 드낙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 배를 탔기 때문이다.
“네 세력을 위한 것이고, 결국 네가 준 자원 또한 결국 다른 형태로 너에게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하지만 두 놈은 다르다! 몽펠리에든 파이룬이든 서로 영지를 지니고 있고, 직계와 방계가 건재하다! 아예 남이라고 봐도 무방해!”
“그, 그럼 브릴리언트 가문은?”
드낙이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브릴리언트 가문을 언급했다. 세파리아스는 그럼에도 으르렁거렸다.
“버려진 영지의 정상화를 위해서 몰락한 가문 한 둘 품에 껴안는 것은 경우가 다르다. 필요하기도 하고, 왜냐하면 네놈은 변변찮은 가문의 일원 하나 없으니까. 나중에 불파겐 가문이 부흥했을 때, 오직 그 피로 버려진 영지 전체를 채울 수 있을 때, 그때 놈들을 도축해도 상관없다.”
세파리아스가 드낙에게 검지를 들어 올려 흔들며 단단히 경고했다.
“또 네 녀석은 버러지 같고 불명예스러운 생각을 하겠지. 대충 두 가문 사이에서 간보면서 이득만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아니냐?”
“······”
“놈들이 네놈 생각을 모를 줄 아는가? 천만의 소리! 추잡스럽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그딴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만! 알았으니까!”
드낙이 버티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서로 거친 숨이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고 있는 공간에 들려왔다.
‘······어쩌지.’
세파리아스의 말대로 몽펠리에 남작 가문과 파이룬 백작 가문은 결코 허접한 가문이 아니었다. 드낙이 그들을 오직 이용만 하려 한다면 그에 응당한 대가를 줄 것이다.
“만약 몽펠리에만 선택한다면?”
“파이룬이 훼방을 놓겠지. 모든 거래마다 네 놈의 머리든 게제라스의 머리든 스스로 쥐어뜯게 만들 것이다.”
남부와 북부 최고 상업 영지다운 면모를 확실하게 드낙에게 보여줄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들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조그마한 보부상마저 돈으로 지랄병을 떨 것이다. 그것은 드낙 혼자서 막아낼 공세가 아니었다.
“파이룬만 선택한다면?”
“몽펠리에가 훼방을 놓겠지. 북부가 안정되어도 넌 결코 대국적으로 활동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북부 귀족이 널 목각인형처럼 대할 수도 있어. 특히 파이룬 가문은 북부의 많은 가문과 친하지 않아.”
파이룬 가문만 선택한 것으로 드낙 또한 기회주의적 성향을 지닌 것으로 찍힐 수 있고, 남부와 북부 사이에서 간을 본다고 여겨질지도 몰랐다. 자연스럽게 상황은 더욱 혼란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백금 왕가는 더욱 수월하게 드낙을 고립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머리 아프다.’
두통을 느끼는 드낙에게 세파리아스가 더욱 신경을 긁었다.
“둘 다 먹으라니까. 남아가 태어나서 대가문 두 개의 지원 하나 못 다스릴 것 같아서 쩔쩔매는 게 말이 돼? 그냥 팍 땡겨서 10년만 버티면 되는 거잖아? 뭐가 어려워?”
‘이 미친놈, 진짜.’
곧 죽어도 쓰리고를 외칠 남자가 세파리아스였다. 먹고 죽더라도 먹고 죽겠다는 마인드였고, 먹었는데 또 먹겠다고 소리치는 남자가 세파리아스였다. 그에게 있어서 〈위기〉는 위기가 아니었다.
그저 기회일 뿐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아니었다. 그의 고민이 길어졌다. 하지만 그는 이 고민이 트롤 토벌이 끝나고 나서는 답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답답함을 느꼈다.
*
〈세 개의 강가〉
〈봄녁 마을 외곽〉
문양 없는 평범한 마차가 세대가 길을 벗어나 갓길에 멈추어 섰다. 마차에서 내리기 전에 수정구를 통해서 주변에 인간 정도의 크기를 지닌 생명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노기사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밖에는 이미 그를 호위하기 위한 기사가 둘이나 있었다. 트롤이 날뛰는 상황 속에서 기사를 두 명이나 호위로 둔 것은 이번 〈만남〉이 평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쯧쯧. 이득이 있는 곳에는 발에 불난 듯이 움직인다더니, 정말로 그런가 보군. 벌써 도착했다니.”
“파이룬 녀석들의 탐욕은 유명한 것이 아닙니까. 젝팔론 님.”
〈젝팔론 몽펠리에〉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기사가 대답했다. 곧 죽을 나이가 되었음에도 은퇴한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낮도깨비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몽펠리에 가문의 〈지하 창고〉로 들어갔다.
이미 그곳에는 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데워진 차를 마시며 젝팔론과 비슷한 연배의 파이룬 가문의 노기사가 돌로 된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젝팔론이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내자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편히 앉았다.
“늦게 오신 분들에게 차를 내어주어라.”
기사가 아닌 수행원이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이며 차를 따랐지만 젝팔론은 일부러 그 컵을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
“차를 마시려고 모인 것은 아니지 않나?”
젝팔론의 턱짓에 몽펠리에 가문의 기사가 아닌 수행원이 거침없이 떡하니 술병을 한 병 내려놓았다. 단번에 술병의 뚜껑을 연 젝팔론이 술을 들이켰다.
두 노기사가 눈을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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