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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90화 (289/1,239)

0290 <-- 쌍둥이 성채 -->

전투는 두 명의 기사로 모든 것이 끝이 났다. 홀로 날뛰는 드낙과 쐐기 진형으로 적의 예기를 꺾으며 넓은 시야로 본능적으로 뭉치는 적군이 크게 뭉치기 전에 박살 내는 아크온의 상반된 행동 때문이었다.

성질이 다른 두 가지의 무기에 찔린 몬스터 군대는 삽시간에 무너져내렸다.

라바는 무참하게 포위되어 죽음을 당했고, 콥 고블린은 콧물을 질질 흘리며 머리를 땅에 박은 채 살려달라 빌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포위되어서 죽는 모습은 많이 연출되었는데, 아크온의 용병술 덕분이었다.

분명 똑같은 전장이었지만, 병사의 숫자도 몬스터 쪽이 많았음에도 몬스터는 포위당해서 살육을 당해야 했다. 드낙의 흔들기와 아크온의 쐐기 박기 전술이 만들어낸 모순된 상황이었다.

〈다수의 적을 상대함에 있어서 항상 다수로 싸운다〉는 것은 수많은 전술가가 가장 원하는 경지이기도 했다. 용병술의 극의(極意), 수많은 전략을 쳐부수고 불패하는 전술가의 끝물에 존재하는 전술이었다.

물론 상대가 지휘관이라 부를 자가 없었기에 가능했다. 손쉬운 상대였기에 상반된 방향성의 전술로도 능히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노련한 지휘관이 지휘봉을 잡았다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의 전술적 역량이 매우 낮은 경우였지만, 드낙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신기하네.’

감상은 한 줄에 불과했다. 군사학이 미천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전투는 드낙 경의 공이 매우 크다!”

“블루 블러드 나이트!”

“명예로운 기사!”

병사들은 확인사살을 마치고, 인원 파악을 위해 다시 한 번 뭉쳤고, 아크온은 그것을 기회로 삼아 드낙을 높여주었다. 드낙이 손을 들어 올렸고, 곳곳에서 그를 찬양하는 말과 환호성을 지르는 병사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목숨을 대신해서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 원거리 공격만으로 수성의 중반까지 끌고 가게 해준 드낙의 존재감은 병사들에게도 크게 각인이 되었다.

마치 서슴없이 현대에서 보증을 서주며 가게를 회생시켜준 듬직한 친구 같은 존재가 드낙이었다. 병사들이 환호할 만했다.

계산적으로 생각해도 드낙은 칭송받아야 마땅했고, 감정적으로 생각해도 드낙은 환호 받아야 마땅했다.

‘공명심이 대단하네. 거기서 홀로 뛰어들 줄이야.’

포위 당하는 공포는 기사 또한 다른 병사들과 비슷했다. 전쟁의 승패는 머릿수가 가장 으뜸이다. 중대형 몬스터가 난입하면 또 달라지지만 대체로 그렇다. 아무리 기사라도 수백의 무리에 둘러싸이면 답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드낙의 모습은 기사답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크온 몽펠리에는 드낙을 무섭다고 평가했다. 맹장의 장점을 끝까지 끌어올린 것이 드낙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치킨 게임에서 항상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드낙이었다.

“마지막에 도와줘서 고맙다.”

드낙 또한 아크온에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아크온은 그 손을 거침없이 잡아서 흔들었다.

전투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전투는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따라와.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아크온은 직접적으로 드낙을 불러 그와 함께 다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외성벽에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부상자의 처치가 먼저다! 피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신전으로 옮겨라. 물론 대로의 정리도 마찬가지다! 짐마차가 오고 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라!”

부상자를 옮기고, 부서지거나 파손된 곳을 고칠 수 있는 공구가 오고 가는데 있어서 대로의 정리 또한 매우 중요했다. 당연히 물건보다는 사람이 먼저였다. 특히 정규병의 경우에는 최소 3년에서 최대 15년이 넘도록 정신무장이 이루어진 병사들이었기 때문에 그 목숨은 천금보다도 비싸게 여겨졌다.

시민을 위해서, 귀족을 위해서, 기득권층을 위하여 그리고 인간을 위해서 목숨을 초개처럼 던질 수 있을 정도로 정신무장이 이루어진 베테랑 병사는 최우선적으로 살려야 했다.

물론 5년 이상 군복무를 한 병사들에게는 보급품의 형식으로 회복 물약이 1개씩 지급되었기에 쉽게 죽는 베테랑 병사는 없었다. 죽어도 5년 미만의 정규병이 죽는 것이 보통이다.

전쟁은 언제나 그렇듯 신병들의 목숨이 가장 헐값에 땅에 뿌려지기 마련이다. 아크온은 그 부분을 알고 있음에도 추가적으로 회복 물약을 풀지 않았다. 항상 최악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체 처리는 2순위다! 한쪽에 일단 쌓아두도록!”

“예!”

전령들은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귀를 기울여서 아크온의 명령을 들었다.

“곳곳으로 흩어져서 피해를 듣고, 와야 한다. 서로 들은 것이 어디인지, 누구에게서 들은 것인지 확실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

피해 보고 또한 중요했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무엇을 먼저 고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순찰을 새로 조직하기 위해서는 부상을 입지 않은 병사들의 현황 또한 중요하다. 전령들은 베테랑 병사들에게 이 점을 상기시키도록 해라.”

“예!”

부상자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기존의 순찰 순서는 옳지 않았다. 제대로 기능되기 힘들었다. 그것을 위해서 다시 오늘 하루를 위해서라도 새로 재편해야 했고, 내일에 갑자기 당황할 수 있었기에 지금 이런 상황에서 새로 조직하는 것이 좋았다.

오늘 불침번을 선 병사가 내일에도 서야 한다면 불만이 폭발할 것이다.

그때, 곳곳에 피를 묻힌 전령이 들어왔다. 미리 부상자 처치가 가장 1순위임을 알리러 간 전령이었다.

“무슨 일이냐?”

외성벽 위에서 대화가 이루어져 있었기에 노크가 필요 없었다.

“아크온 님. 외성지역에서 작전을 펼쳤던 병사들이 성기사들이 작전에 투입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말에 아크온의 눈이 흉악하게 변했다. 순식간에 기세가 달라지자 말을 듣던 전령들이 꼴깍 침을 삼켰다. 항상 손에 피를 묻히고 다니는 기사는 기세부터가 인간 같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올베이런 사제〉는? 뭐라고 하던가?”

“부상당한 전우를 신전으로 옮기는데 어찌 제 입으로 그런 물음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듣던 드낙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신전 이것들은 매번 다르네. 사람마다 제멋대로네.’

어떤 놈은 진정 성자 취급해야 할 정도로 뚝심 있게 움직이고, 어떤 놈은 지금처럼 이권을 위해서 상황을 이용했다.

‘케이슨 성기사도 신전에 있을 텐데,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드낙은 케이슨을 걱정했다. 그는 그 장면을 보고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오직 단 하나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려고 맹세를 한 성기사였다. 부상자가 많은 이 상황을 이용하려는 쌍둥이 성채의 지역 신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는 뻔했다.

“전령들은 움직여라! 드낙, 너는···”

아크온이 고민했다. 전시 상태에서 신전의 행동은 다르게 보면 아크온 자신의 실책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을 확실하게 움켜쥐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으며 무엇보다 아크온 몽펠리에가 지닌 영향력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오해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곳에는 케이슨 성기사가 있다. 나도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아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소리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이곳의 지역 신전은 전부터 문제가 많았어. 피난민에 대한 식량 수급과 외성지역의 일정 구역을 전부 그들을 수용하는데 쓰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았건만.”

아크온이 보기 힘들게 으르렁거렸다. 드낙은 그 마음을 백분 이해했다.

떡 줬더니 돈 내놓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호로 상놈의 새끼들이었다. 이 세상은 사람마다 그 가치관이 천지차이였다.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 반면, 아주 개 같은 것들도 많았다.

아크온이 거칠고 빠른 속력으로 신전으로 향하다가 이내 천천히 속도가 느려지더니 이내 멈추었다. 드낙은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다가 그렇게 아크온이 서서히 느려지고, 이내 대로에서 뚝 멈추자 그제서야 머리를 굴렸다.

상황에 있어서 아크온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편하게 행동하려다가 아크온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보이자 기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젠장.”

욕을 작게 한 아크온이 몸을 돌렸다.

“부상자를 보살피기 바쁜 신전인데, 내가 가면 더욱 손이 바빠질 것이다. 드낙, 나는 다시 외성벽으로 가야겠다.”

“나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돕도록 하지.”

드낙은 아크온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모두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크온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드낙을 스쳐 지나갔다.

흥분했지만 결국 아크온의 판단은 옳았다.

이런 상황에서 신전과 각을 세운다는 것은 신전에게 패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고 싶어 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것은 전투력이 강하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드낙이었어도 그 쓰디쓴 약을 목으로 넘겼어야 했을 것이다.

쌍둥이 성채는 전투 요새였으며, 몽펠리에 령의 가장 북쪽에 위치했다. 당연히 연금술사가 없었다. 이런 위험한 곳에 오고 싶어 할 리가 없는 것이다.

반면 〈횃불 성채〉는 토치라이트 가문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그곳은 이곳보다 귀족에게 좋은 상황일 터였다.

눈 깜짝하면 보급이 떨어지는 현대가 아니었기에 신전의 이러한 모습은 영악했다.

드낙은 고개만 돌려서 아크온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자자! 어서 들어 올려!”

이스핀 부대장은 외성 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전신갑주를 입은 것뿐임에도 사람이 변한 것처럼 남들의 귀감이 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드낙이 웃음을 터트렸다.

“잘하고 있네.”

“드낙 님. 어찌 그렇게 빠르십니까?”

드낙은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지렛대로 사용하는 나무판에 손을 대었다. 집이 무너져서 골목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되어있었고, 아슬하게 잔해에 깔린 사람이 땀을 흘리며 침착한 표정으로 있었다. 병사가 손을 깊이 집어넣는 것을 보니 다행히 공간이 있어서 완전히 매몰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단단히 받칠 준비를 하라!”

드낙이 그렇게 소리를 치자 매몰된 사람의 곁에 있던 병사가 긴장한 표정으로 들어올려졌을 때, 안에 집어넣을 돌이나 나무 막대기를 움켜쥔 채 긴장했다.

“하나! 둘! 세에에에엣!”

드낙이 소리를 지르며 어깨까지 아래에 집어넣어 온 힘을 다했다. 다른 이들도 그것을 도왔는데, 느리지만 확실하게 들어올려지자 병사가 순식간에 물건을 집어넣고, 한 명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사람을 빼내었다.

“됐어!”

드낙이 힘을 천천히 뺏다.

한 밤의 전투로 병사는 10명이 죽었고, 25명이 다쳤다.

시민은 52명이 죽었고, 30명이 다쳤다.

내성지역의 피해는 거의 전무했고, 외성지역에서의 피해가 컸다. 내성지역보다 넓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전에서 약속했던 성기사의 지원이 없었기에 전술작전의 빈틈이 갑자기 생겼다.

사실상 시민 52명의 목숨을 버린 것은 쌍둥이 성채의 지역 신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피해 보고서를 읽는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아크온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는 못했다. 복수를 할 생각으로 단단히 숨기고, 때를 볼 생각을 가졌다. 특히나 그는 양피지에 따로 신전에 대한 것을 써놓고, 올베이런 사제의 이름을 조금 크게 적어놓았다.

‘병사 10명과 시민 52명의 명줄은 네놈의 목숨 값으로도 부족하다.’

가문의 이권을 위해서 밖에 나돌아다니던 것도 이제 거의 끝이었다. 정신 못 차린 지역 신전의 개 짓거리를 아크온은 단단히 눈에 새겼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외는 다크 트롤〉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지역 신전은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서 카드를 한 장 얻을 생각이었다. 〈포도 과수원 지분 3할〉이나 〈계단식 농장의 지분〉 등등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꾹.

보고서를 여럿 만든 아크온은 또 양피지를 하나 폈다.

‘불파겐은 건재하다. 하지만 드낙의 약점은 분명하다.’

아크온은 거침없이 펜을 놀렸다. 이 양피지는 드낙의 약점에 대한 것이고, 본가(本家)에 전해질 것이다.

‘영원한 친구는 없는 법이지.’

아크온은 우정을 믿지 않았다. 우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현실을 아는 고위 기사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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