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286화 (285/1,239)

0286 <-- 쌍둥이 성채 -->

“북부 전역을 트롤이 중구난방으로 예측 없이 날뛴 이유가 엘리트 몬스터의 동시다발적 등장과 맞아떨어지고 있지.”

아크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암울한 이야기가 집무실에 퍼져나갔다.

“그 덕에 토벌이 엎어졌지. 또 종군 마법사도 파견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라서 토벌은 앞에 말했듯이 겨울 전까지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해.”

다른 마법사의 가문이 직접 마법사를 전선으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확실하게 죽여야 할 존재였기에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전선에 있는 마법사를 〈종군 마법사(從軍 魔法師)〉라고 불렀다.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직책을 두고, 큰 이점을 주는 것이다. 살아서 돌아오면 큰 명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저 짧은 기간이라도 종군 마법사였던 마법사는 수많은 고위 엘리트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슈가 가라앉으면 사라졌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었다. 충성은 돈으로 살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귀족은 더 많은 돈을 원하기도 했다. 그들은 명예로움을 중시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을 손에서 놓지는 않았다.

토지를 잃은 〈남부 귀족〉들의 몰락 이후로 그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그렇기에 북부 가문들이 지닌 마법사들이 전선에 나올 일은 힘들었다.

탁.

아크온이 지휘봉을 들어 벽에 있는 큰 그림으로 향했다. 자연히 시선이 모였다.

“몽펠리에의 북쪽에 있는 〈쌍둥이 성채〉에는 현재 고블린과 라바가 극성이고.”

“동쪽에는 헤드스 하이에나가 득실거리고 있지.”

“서쪽에는 크놀들이 광산과 채석장을 두고 인간과 격전을 벌이고 있다.”

“토치라이트 가문은 성채 자체에 있는 〈마법 건축물〉 때문에 더욱 힘든 상황이 연달아서 일어나고 있으며.”

아크온은 그가 아는 모든 정보를 개방했다. 드낙은 그 모든 것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두 단어로 간략하게 저장했다. 매우 집중하고 있는 드낙을 힐끔 볼 여유는 이스핀에게 없었다.

그 또한 눈을 부릅뜬 채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나중에 드낙이 물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뒤늦은 시간임에도 열린 문을 두드리며 경장갑을 입은 병사가 들어왔다. 흙과 먼지가 제법 몸 곳곳에 묻은 자였다.

금방이라도 실전을 겪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가 건네주는 양피지를 받은 아크온에게 병사는 조용히 물러갔다.

“전령이네. 자네들이 있어서 구두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이지. 따로 집사에게 말할 것이네.”

“무슨 내용인데?”

드낙의 말에 아크온이 양피지를 드낙에게 건네주었다. 온갖 소문들이 좌르륵 적혀져 있었다. 정보꾼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쓴 것이고, 북부의 북서쪽에 있는 〈에스페란차(Esperanza) 가문〉에 대한 소문들이 주류였다. 아마 그 근방에서 소문을 모은 것이 틀림없었다. 대단히 멀어진 곳에서도 정보꾼이 있다는 뜻이다.

‘그냥 겉멋만 번지르르한 가문이 아니다. 갖출 수 있는 건 다 갖춰있군.’

믿을만한 혈연이 많으니, 거침없이 정보조직도 만든 것이다. 그들은 〈반인간(Half human)〉의 포악질에 대항하고 있었다. 눈부터 시작해서 발가락까지 검열하고 검문하는데 온 신경을 쓰고 있어서 안정화까지 못해도 반년이 걸린다고 적혀져 있었다.

그 판단의 근거는 드낙이 보기에는 부실한 것 같았지만, 그 밑으로 좌르륵 그 의견에 찬성하는 가신들의 이름과 개인 인장보다 작고, 심플한 도장이 찍혀져 있었다. 오직 단 하나의 심벌 그리고 이니셜이 강제적으로 있어야 하는 그 인(印)은 개인 인장이라고 부르기에 부끄러운 수준으로 획일적이었고, 작았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을 자신 있게 표명한 것은 드낙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단순한 보고서라도 아크온의 손에 들어갔을 즈음에는 많이 찬성한 가신들의 숫자가 있는 보고서가 있는 한편, 그러지 않은 보고서도 있을 것이다.

‘이거 좋은 것 같은데.’

괜찮아 보였다.

“반인간은 온갖 것들의 혼혈이지. 골치 아픈 것들이야.”

〈반인간(Half human)〉은 말 그대로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였다. 온갖 혼혈이며, 성격 자체도 인간과는 크게 달랐다. 괴상한 성벽, 이상한 판단력은 인간이 그들을 적대하기 만들기 충분했다.

아크온은 반인간에 대해 짧게 말하며 레드 와인을 두 병 꺼내 다시 앉았다. 이제 새로운 주제로 바꿔야 할 시기였다. 그러기 위해서 가져온 레드 와인이었다.

“딱 15년 된 〈십오 년 레드 와인(Fifteen years Red wine)〉이지. 나의 가문에서 만든 것이고, 15년째에 가장 맛이 좋은데, 겨울이 지나면 최고의 맛은 다시 느낄 수 없게 되겠지.”

거침없이 와인을 개봉해서 잔에 채웠다.

“드낙, 네 나이가 몇이라고 했더라?”

“내년이면 열여섯.”

지나칠 정도로 어린 나이였다. 한국 나이로 치면 내년에 고작 18살이었다. 12월에 태어나면 한 달 만에 2살이 되어버리는 한국 나이의 매직 한 방이면 드낙도 알 거 다 아는 어른이었다.

아크온은 나이에 대한 반감이 적었다. 그는 13살에 황소를 들어 올리고 다녔던 자였다. 괴물 중의 괴물이었고, 인간 종(種) 최고의 작품이었다.

오히려 드낙이 두각을 드러낸 것은 그보다 2년이나 늦었다. 불파겐의 계승이 그만큼 퇴화했다고 여겼을 정도였다. 그것은 몽펠리에가 불파겐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도 했다.

“앞으로 많은 일이 있을 거다. 그중에는 단순히 무력으로 해결하기 힘든 것도 있어. 많은 사람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실력이 있고 믿을 수 있는 자들이 많이 필요할 때 말이야.”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온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록시라고, 이제 13살인데 독서를 그렇게 좋아해. 사랑스러운 여동생이지.”

그 말을 들은 드낙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듣자마자 몸을 뒤척였다. 만나는 귀족마다 혼사를 넣으려고 했으니, 이제는 싫증이 날 정도였다. 거의 잔소리로 여겨졌다.

“그 아이는 달라. 친구.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발리에르 몽펠리에라고. 자네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여동생은 그 어린 나이에 외교관으로서의 기반을 마련해서 날 놀라게 했지. 난 그저 자네의 자손을 낳고, 가문의 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서 내 사랑하는 여동생을 주려는 게 아니야.”

그 기색에 아크온이 톡 쏘아서 말했다.

“그럼 어떤 의미로 나에게 그녀를 소개해주는 건데?”

드낙은 아예 대놓고 직설적인 대답을 원했다. 빨리 이 주제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네에게 좋은 파트너가 될 거야. 일각수 때 느낀 것은 자네는 보이지 않는 것의 간합을 잘 모르는 것 같아. 그건 불파겐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단숨에 와인을 마신 아크온은 다시 잔을 천천히 따르며 말했다. 쪼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느긋하게 들려왔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지. 그것을 명심하게.”

파이룬 가문과 몽펠리에 가문을 이용하며 두 가지 모두를 택할 수는 없다고 아크온은 못을 박았다. 파이룬 가문은 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아크온 가문은 드낙을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오면서 〈조용한 계곡 성채〉를 지났는데, 많이 힘들어 보이더라고.”

드낙은 그 불편한 주제에서 금방 벗어나기 위해 〈조용한 계곡 성채〉에 대해서 은근슬쩍 말을 돌렸다. 아크온은 그 의도를 받아주었다. 그는 드낙의 행동력을 믿었다. 간을 보는 것은 길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가문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능력이 출중하거든. 내가 믿는 방계 중에서도 뛰어난 가문이지.”

아크온이 변명하듯이 말했다. 귀족에게 인구는 중요한 것이기도 했지만, 위험한 상황 속에서 사람은 가차없이 버릴 수 있는 자원이기도 했다. 민초들이 생산하는 잉여 식량을 하찮게 보지는 않았지만 차선으로, 후순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몽펠리에가 에드윈 가문을 돕지 않은 것은 각각의 성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혹은 지원을 요청하더라도 〈쌍둥이 성채〉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해야 할 일이었다.

지원군을 보낸 〈쌍둥이 성채〉가 나중에 결과를 보니 더 피해가 많았다면 얼굴조차 들기 힘들 것이다. 그러한 〈판단〉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돕는다고 내가 약속을 했어. 토벌이 길어진다면, 쌍둥이 성채의 동쪽에 있는 문제는 내가 해결하고 싶은데.”

그 말에 아크온이 조금 놀란 표정을 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많이 성장했군.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정말로 기쁘겠는데.’

현명한 여동생을 드낙에게 하루빨리라도 붙이는 이유는 그의 판단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내조를 통해서 명예로움을 찾고자 했다. 그렇게 아크온이 드낙을 판단한 이유는 다른게 아니었다.

그는 용병질을 할 정도로 실리를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과거 귀족을 보는 듯했다. 그렇기에 조혼(早婚)을 통해서 방향성을 잡기 위함이었다. 결혼을 하면 어떻게든 남자는 여자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명예로운 행동이었다. 보수보다는 나중의 논공행상에서 자신의 몸을 높이는 일은 이러한 일이기도 했다. 중요한 일에 서슴없이 나서는 것이다. 〈조용한 계곡 성채〉의 문제가 해결되면 몽펠리에는 뻐근한 팔이 자유로운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런 말을 먼저 해줘서 큰 다행이군. 본래라면 어느 영지로 가야 할지 너의 의견을 들었어야 했는데. 갔다 오면 전황이 또 변해있을 것이다.”

아크온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마치 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큰 그림으로 한눈에 바라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단순히 정보만 말해도 드낙은 알 수 없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잠을 청하려던 〈쌍둥이 성채〉의 점성술사는 몸을 뒤척거렸다. 왠지 모르게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오늘 분량 봐야 할 별을 다 확인했음에도 뭔가 한구석이 찜찜했다.

‘불파겐의 후예가 와서 그런가?’

소문은 이미 다 퍼져 있었다. 귀신의 가문이 방문했다는 소문은 누구보다 빠르게 사람들의 귀로 들어갔다.

“어휴! 왜 이렇게 답답해.”

그는 술을 하나 챙겨들고 테라스로 향했다. 밤바람을 쐬면서 밤하늘을 보다가 다시 들어와서 자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거 살면서 선택한 행동 중에 가장 운이 좋은 행동이었다.

‘아니?’

술병을 뿅 따놓고도 마시지 못했다.

흉흉한 붉은빛을 내는 흉성(凶星)이 자신이 사는 쌍둥이 성채의 바로 하늘 위에 또렷하게 위치를 옮겼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별들 중에서 남부 왕국에 영향을 주는 별들만 선별하여 확인하는 것이 점성술사의 하루 일과였다. 매일 다른 별을 챙겨보기에는 밤이라는 시간 내내 철야를 할 정도로 점성술사의 체력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찾지 않아도 분명 없었던 흉성이 떡하니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 이럴 때가 아니다!’

점성술사가 허둥지둥 대충 옷을 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악마의 기운이 뻗쳐있는 북부에 흉성의 존재는 그저 불길한 징조를 내비치는 별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성벽을 점령한 적병(敵兵)의 존재였다.

그렇게 치밀하고, 영악하게 굴었던 헤드스 하이에나조차도 드낙이 계곡에 들어서자 성채를 공격해서 무의미한 사상자를 냈다. 악마의 기운이 도래한 지금 흉성은 엘리트 몬스터의 명령조차도 거부하게 만드는 거친 본능을 토해내는 기폭제나 다름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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