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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83화 (282/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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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성채〉로의 도착을 앞두고 세파리아스는 드낙에게 훈수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검은 꿈이 아니라면 제법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드낙이었는데, 거진 중요한 일은 검은 꿈이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순위를 매겨줘야겠다.’

게제라스 총관이 할 일이었지만, 그에 대한 것은 이미 희석된 지 오래였다. 현대인 특유의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 탓이다. 자기성찰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특히 배울 것이 한참 많은 드낙은 앞에 것을 배우기 급급하고 있었다.

행동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생긴 단점이었다.

한숨 쉬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 대련은 없다. 대신에 앞으로 우선순위를 집고 넘어가기로 하자.”

몽펠리에 가문이 코앞에 있었기에 드낙도 세파리아스의 말을 듣어보기로 했다. 물론 세파리아스는 게제라스 총관과는 확연하게 다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었다.

귀족 가문과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세력의 이득에 대한 것이 윗줄이었다.

“1순위는 누가 뭐라고 해도 철과 대장장이를 요구하는 것이다. 트롤 토벌의 공으로 퉁치기 좋고, 현 상황에서는 몽펠리에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미리 준비해 있을지도 모르지.”

게제라스가 말했던 것이었기에 드낙이 그날을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근데 너무 욕심부리지 말라고 했잖아?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하라고?”

게제라스 총관은 대장장이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철만 가져와도 된다고 말했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철보다는 대장장이를 선택하라고 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네 수준이 지금 고위 기사급인데, 그 정도는 받아내야지. 전신갑주 기술이 유출된다~ 뭐라고 하는데, 대장장이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전신갑주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마법사가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에 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우습다.”

“내가 마력을 운용할 줄 알잖아? 마법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그래도 생산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또 불파겐이 부흥하는데, 도와주는 게 낫지 견제하는 게 좋겠냐? 북부는 그래서는 안 돼. 그 개새끼들은, 속죄를 해야만 한다. 난 마음 같아서는 왕가와 남부를 쳐부수고 북쪽의 가문도 쳐부수고 싶지만···”

드낙은 그 흉포한 기세에 혀를 내둘렀다. 저런 복수심을 이토록 오래 간직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 결국 시간이 흐르면 복수도 희석되는 법이었다.

끔찍한 나날을 평생 잊지 못해도 〈포기〉할 수 있는 것처럼. 그저 헛된 희망을 안고 삶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족속들이었다. 저렇게 강렬한 복수심을 활활 태우는 모습이 수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은 기괴했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너무 요구했다가 망하는 거 아니야?”

드낙의 의심에 세파리아스가 한심한 눈으로 드낙을 바라보았다.

“네 수준에 맞는 보상을 달라고 하는 건데, 무슨 망하고 말고가 있나? 어리석은 놈아! 제발 좀 네 수준을 이제는 자각해라. 거기에 〈적발(赤髮)〉을 각성해놓았으니, 전과 또 다를 것이다.”

드낙은 그 말에 갈등하는 표정을 지었다. 귀가 팔랑팔랑했다. 확실히 그럴듯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전에는 전신갑주도 아니라 가죽 갑옷이었다. 이제는 전신갑주도 있고, 거기에 확실한 혈통의 증거 또한 있다.

또 파이룬 가문에게서 직계에게 보급된 최신형 전신갑주를 받았다. 블루 사파이어가 목 밑에서 반짝였다.

이런 상황에서 몽펠리에는 두 가지를 모두 트롤 토벌의 보상으로 준비할지도 몰랐다.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세파리아스의 말이 실로 진실로 들려와졌다. 하지만 갈등하는 것은 아크온 몽펠리에 때문이었다.

그는 깃털 투구부터 다양한 것을 내어준 적이 있었다. 횃불 성채의 고기 강매 사건 때에는 도와주지 못했지만, 추천서를 내어주어서 적어도 〈거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준 것이 아크온 몽펠리에였다. 대단히 해줬다고는 못하겠지만, 그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드낙은 그때 일개 자유기사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어휴!”

세파리아스가 드낙의 모습을 보고는 답답해서 가슴을 두드렸다. 자신이라면 패악질을 쳐서라도 보상을 뜯어냈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드낙은 세력을 가장 크게 추켜올려 세워야 했다.

못해도 500명의 정규병을 갖춰야 하는 것이 드낙의 상황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과 대장장이는 필수였다.

“일단 고민해볼게. 2순위는 뭔데? 역시 검은 꿈이겠지?”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가 쏘아붙였다. 그놈의 검은 꿈. 다른 존재의 능력을 핥아먹는 것에 미쳐버린 드낙이었다. 마약 중독자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검은 꿈은 가장 밑으로 두어라. 어차피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요했던 일 중에 검은 꿈을 못 먹은 적이 있느냐?”

“그건··· 잘 없지.”

“그러니까 가장 하순으로 옮기는 것이 옳다. 항상 그 점을 생각해라.”

“말이 쉽지. 그런 좋은 능력을 어떻게 가장 마지막에 생각하냐? 차라리 미인이 지나가도 보지 말라고 말해라.”

남자라도 잘생긴 남자를 보면 눈이 가는 법이었다. 그게 미녀라면 더더욱 시선이 가는 게 정상이었다. 검은 꿈을 본능으로 치부하는 것을 본 세파리아스는 드낙을 쥐어패고 싶었다.

몇 마디를 더하고 나서야 드낙이 수긍하는 척이라도 했다. 잔소리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2순위는 북부 귀족들을 빠르게 규합시키기 위해서 트롤 토벌을 반드시 완수하는 것이다. 못해도 내년 봄 이전에는 트롤을 네 검이든 아크온의 망치로든 골통을 부숴놓아야 한다.”

“북부 귀족들을 규합시키기 위해서?”

드낙의 물음에 세파리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이유를 드낙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

드낙은 머리를 굴렸다. 검은 꿈 때문에 홰까닥하는 것은 있었지만 드낙은 어리석다가도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갈 때도 있었다.

“북부와 내가 손을 잡았으니, 북부를 빠르게 안정화 시키면 나한테 이득이니까.”

“더.”

“누구누구 씨 때문에 불파겐의 혈통 증거가 남들에게 보였으니까?"

세파리아스의 눈이 좁아졌다. 호로상놈의 자식이 〈마신장(魔神將) 오우거〉의 능력을 손에 넣은 주제에 불평을 했기 때문이다. 드낙이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백금 왕가 때문이지. 내 소식이 들어가면 죽이려고 발악을 할걸? 기사단도 가지고 있다며.”

“맞다. 거기서는 북부 가문들의 힘으로 위기를 넘어가야 한다. 아무리 너라도 많은 기사를 상대하기는 어려우니까.”

그 말에 드낙은 〈구울 묘지기〉를 상대하던 때를 기억해냈다.

“네가 대리를 뛰면 되지 않을까?”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크게 분노했다.

“절대로 대리전은 하지 않는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했을 뿐이다! 그런 불명예를 또 하라고? 미쳤구나!”

“미친놈이 되어도 기사 100명 죽이면 이득 아니야?”

세파리아스는 아예 무시를 했다. 드낙은 입맛을 다셨다. 꼴리는 대로 세파리아스를 빙의할 수 있으면 최고였다. 수련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장기간으로 트롤 토벌을 완수하지 못하면 북부의 역량이 하나로 뭉치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네 목이 날아가겠지.”

그 말에 드낙이 수긍했다. 남부 영주들의 상태를 바루익에게서 충분히 들었기 때문이다. 〈토지(土地)〉가 없는 귀족들이 남부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백금 왕가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가장 큰 기반을 잃게 된 것이다.

아주 느리게 야금야금 먹고 있는 백금 왕가는 자신들의 전력을 소모시키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 잡은 승기를 절대로 귀족들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북부가 안정화 들어갔을 때, 그들은 이제 싹이 튼 불파겐 가문을 지켜줄 것이다. 전면전을 안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다수의 기사를 단번에 투입 가능할 정도로 기사의 수가 많은 〈백금 왕가〉였지만, 〈혈통〉이 없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그 말은 〈고위 기사〉의 숫자가 적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북부 가문의 경우는 수백 년이 흘러 고위 기사의 숫자는 예전처럼 돌아가 있었다.

그 덕에 전쟁을 하면 누가 승리할지 점치기가 힘들어졌다.

〈고위 기사〉의 무서움은 혈통이기 때문이었다. 북부 가문은 방계조차도 혈통의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쌍수(雙手)의 에드윈(Edwinn)〉 가문의 경우에는 〈다수의 눈〉이라는 혈통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두 개의 검을 사용하는 에드윈 가문의 동체시력을 따라올 기사가 없었다.

압도적인 순발력을 지닐 수 있게 해주었기에 에드윈 가문의 기사를 상대하는 기사는 마치 3명과 싸우는 기분이 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게 바로 북부가 가진 힘이었다. 결국 그것은 반드시 도와준다는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세파리아스가 괜히 철과 대장장이를 요구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드낙의 수준, 현재의 상황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드낙에게는 욕심을 부리는 것으로 느껴졌다. 큰 그림을 보는 것 자체가 서로 시야가 달랐다. 그것을 설명해줘도 서로 〈체감(體感)〉하는 것이 달라서 다른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롤러코스터를 타도 한 명은 무섭다고 느낀 것에 반면에 다른 사람은 심심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았다.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어. 그래도 한 배를 탔고, 백금 왕가와 척을 지게 되는 일인데,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

너무 막장으로 나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세파리아스가 그렇게 말하니 드낙으로서는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네 맘대로 해라.”

“3순위는?”

“당연히 트롤 부산물의 처리다. 일정 지분이 있지 않겠나.”

“아···”

하나부터 열까지 칼같이 먹으려는 세파리아스였다. 드낙은 트롤 토벌의 공에 그런 부산물 지분도 함께 생각했는데, 세파리아스는 따로 계산했다. 사실 그게 맞았다. 드낙 또한 수긍했다.

“식량과 노예로 바꾸면 그만이다. 피난민 중에서는 노예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니, 오히려 식량으로 많이 바꾸고, 노예 지원자를 받아라.”

“???”

드낙이 물음표를 띄우며 얼척없는 표정을 지었다. 노예가 되고 싶어 한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겨울을 자신들의 힘으로 보낼 수 없는 놈들이 수두룩할 거다. 남들에게 의탁을 할 텐데, 다른 사람들도 역량이 부족하겠지. 가을에 이 사달이 났으니."

드낙은 절로 그림이 그려졌다. 혼자서 겨울을 날 수 없고, 가족들에게 양식을 못 구한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수단이 노예일 수밖에 없었다.

“3년 노예 이후에는 시민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면 더 좋겠지. 게제라스의 제안은 실로 뛰어난 점이 많아. 아랫놈들을 다루기에 참 좋아.”

“더 생각할 것이 있을까?”

드낙의 물음에 세파리아스는 하나를 물어보았다. 드낙의 눈을 넓히기 위함이었고, 경험을 주기 위해서였다.

“토벌이 길어진다면 넌 어떻게 할래?”

“나? 나라면···”

토벌이 길어진다면,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판단을 드낙이 고민했다. 그것만으로도 뒤를 돌아보고, 자신이 가진 것과 못 가진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장고 끝에 드낙이 입을 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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