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281화 (280/1,239)

0281 <-- 조용한 계곡 성채 -->

〈이름 모를 깊은 동굴〉

후으으으···

쉬이이이···

후으으으···

거칠기 짝이 없는 숨소리가 깊은 굴 속에서 울려 퍼졌다. 이글거리는 〈마법 불꽃〉이 괴이하게도 〈외눈 다크 트롤〉의 옆구리에 선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꽃은 마치 〈낙인〉처럼 찍혀져 있었는데 그 형상이 망치에 찍힌 것처럼 각진 원형을 닮아있었다.

고위 기사 중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엄청난 신력을 뿜어낸 아크온 몽펠리에의 망치에 당한 단 일격.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었다.

뿌찍.

철퍽!

방귀소리가 나며 사타구니에서 질퍽한 양수와 함께 얇은 껍데기에 싸여진 생명체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버둥거리면서 스스로 껍데기를 쥐어뜯고 입으로 물어서 먹기 시작했다.

쩝쩝!

크아에!

눈을 꿈뻑이는 노랑색 눈동자는 흉악한 악어의 눈을 닮았다. 하지만 얼굴은 생뚱맞게도 고블린이었다. 지나치게 비대한 코는 〈숲고블린〉의 가장 큰 특징이었고, 귀가 힘없이 접혀져 있으면서도 토끼처럼 큰 것은 〈동굴 고블린〉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하지만 체격은 오크처럼 180cm가 넘었다.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장대한 고블린은 괴이하게도 꼬리가 살아있었다. 털이 없고, 가죽이 아니라 고블린의 피부로 되어있는 꼬리는 길쭉했다. 퇴화된 고블린의 우월인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세한 인자임에도 열성인자라서 우성인자에 밀려 퇴화된 꼬리였다. 그것이 끝없는 세월을 뒤엎고 다시 나타났다.

“키이아아!!!”

큰 공격성을 토해내다가도 자기 어미는 아는지 〈외눈 다크 트롤〉을 보더니 그 품으로 올라갔다. 트롤의 두툼한 손이 물이 묻은 몸을 쓰다듬으면서 덜어가며 온기를 내어주었다.

기괴한 현상이었지만, 트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트롤은 중립신의 파편으로 태어난 종족들 중에서도 순위권의 혈통을 지닌 엄연한 신의 아들이었다. 엘프가 신의 첫 번째 자손이라고 큰소리치지만 트롤 또한 엄연히 중립신에게서 잉태된 존재였다.

중립신의 아들을 자처하는 인간이었지만 실상은 신의 힘을 가장 받지 못한 존재들이 인간이었다.

수많은 인신(人神)들이 〈신들의 땅〉에서 피난길에 올랐고 그 도중에 빛의 인신(人神)이자 중립신의 여동생이었던 프레이가 중립신을 배신, 상신(上神)의 자리를 가로챈다. 중립신은 모든 몸이 찢겨서 이 행성에 떨어진 중립신의 파편들이 모든 종족의 기초가 되었다.

선(善)과 악(惡). 그 모든 것을 양손에 쥔 중립신의 존재는 다른 인신들에게도 위협적이었고, 그의 여동생에게는 혐오감만 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신들을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이 중립신이었기에 하나의 행성을 통째로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신들의 상신으로서 유일신으로 대접받으며 공평하게 모든 인신들을 다루었던 중립신의 존재는 큰 두려움을 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간의 입장에서나 엘프의 입장에서나 〈몬스터〉에 불과한 트롤은 존재, 하나의 개체로써 본다면 중립신의 혈통 중에서도 엘프와 비견될 정도의 혈통을 지니고 있었고, 〈악마의 힘〉에 노출되었음에도 자신의 뿌리가 바뀌지는 않았다.

결국 일부의 변화만 있을 뿐, 악마의 힘에 종(種) 자체가 변하지는 못한 것이다. 민족성이 매우 뛰어난 나라에 외세가 쳐들어온다고 해도 언젠가는 몰아내는 것과 같았다.

〈싸이클롭스〉의 강력한 특징인 〈소악마 토악질〉의 능력이 변형되어서 트롤에게 나타났다. 그것은 트롤이 지닌 모든 인자들의 변형과 변이였다. 자웅동체가 된 〈외눈 다크 트롤〉은 그렇게 온갖 혼혈 몬스터를 출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그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우성인자와 열성인자의 차이는 무엇이 먼저인지의 차이일 뿐 무엇이 우위에 있는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끝없이 변형과 변이를 하게 된 트롤의 인자는 〈우월인자의 우성인자로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결국 엘리트 몬스터가 100%의 확률로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제각각 흩어져서 작은 부락을 휘어잡고,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그 상황이 지금 북부의 상황이었다.

후으으으···.

쉬이이이···.

깊고 큰 소리를 내는 〈외눈 다크 트롤〉이 끙끙 앓았다. 하지만 죽지만은 않았는데, 엄청난 수준의 재생력이 팽팽 돌고 있었으며, 그의 자식들이 끝없이 보살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흰자위 하나 없이 검게 변모된 눈동자에 증오가 깃들어있었다.

황소처럼 달려들어 자신의 옆구리에 지금까지도 큰 고통을 준 강철의 전사가 선명하게 그 눈동자에 담겨있었다.

드낙은 방문자를 맞이했다. 그는 몽펠리에 가문의 방계인 에드윈 가문의 장남이었다. 32세로 제법 젊은 축에 속해있었고, 의무를 마치고 나서는 조용한 계곡을 관리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아버지와는 다르게 눈동자에 검은 점들이 다닥다닥 있어서 이질감을 주었다. 아무래도 〈혈통〉인 듯했다.

“〈랄프 에드윈(Ralph Edwin)〉이라고 하오. 조용한 계곡 성채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드낙 불파겐〉이오. 환대해주셔서 고맙소.”

드낙은 빠르게 테이블에 자리를 권했다. 두 사람은 비슷하게 눈치를 보며 동시에 자리에 앉았다. 드낙이 멀뚱히 그를 보고 있자 먼저 찾아온 입장에서 랄프가 헛기침하면서 입을 열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몰락한 불파겐 가문의 생존자였고, 후예였다. 투구를 벗은 저 붉은 머리카락에 시선이 꽂혀서 그의 앳된 얼굴은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곳 상황이 많이 안 좋소. 가주께서는 조용조용하게 넘어가셨겠지만, 상황은 매일 악화되고 있소.”

그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속마음은 달랐다.

‘도와달라는 소리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저번과 달랐다. 아주 극명하게 반대되는 일이었다. 랄프가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자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도와주실 수 있으시오?”

“어려운 고민이오. 나는 아크온 몽펠리에 경의 서신을 받고 트롤 토벌을 하루라도 빨리하기 위해서 온 몸이오.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걱정이오.”

부정적인 말이 먼저 나왔다. 그저 도와달라는데 고개를 끄덕일 드낙이 아니었다. 검은 꿈이라고 해도 저번에는 〈파이룬 백작 가문〉이라서 큰 말 없어도 대차게 주는 것이라 여겨서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가 게실리안 지휘관처럼 대단한 뭔가를 줄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확답이 필요했다. 하지만 랄프는 그것조차 못 알아들었다. 셈에 서툰 시골 사람이었다. 기사 마차조차도 몽펠리에 가문의 덕을 보아 대여하기도 할 정도였다.

계곡은 재정적으로 파탄이 나는 것이 정상이었다. 쌍둥이 성채의 동쪽을 담당하고 있기에 지원이 오고 있을 뿐이었다. 전략적인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드낙은 남에게 그걸 들었으면 바로 이해했겠지만, 그런 전략적 고민을 할 양반이 아니었기에 전혀 몰랐음에도 성채의 상황만 봐도 딱 거지 가문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똑똑똑.

그것을 짐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랄프 뒤로 바루익이 드낙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뒤로는 차녀 〈안젤리카 에드윈(Angelica Edwin)〉 또한 들어왔다. 여자였음에도 인력이 적은 곳이라 그런지 무기를 차고 있었다.

그녀 또한 눈동자에 검은 점들이 조금 있었다. 확실하게 〈혈통〉임을 알 수 있었다. 무슨 능력인지는 잘 몰랐다.

“구울 토벌에도 큰 도움을 주신 것이 드낙 경 아니오? 이번에는 경우가 더 험하고, 어찌 될지 모르오. 그러니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이 어떻소? 이것은 특히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하오. 계곡이 몬스터에게 쥐어지면 다시 탈환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오.”

바루익은 구울 토벌에서는 드낙을 마땅치 않게 봤지만, 이번에는 되려 토벌에 찬성표를 던졌다. 드낙은 그 변화에도 그를 혐오하지 않았다.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다르면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 인간이었다.

상황을 변하게 만들 정도의 힘이 없다면, 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주관을 움켜쥐고 갈 정도의 담대한 뜻이 없다면, 자신이 변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바루익 경께서는 하루빨리 쌍둥이 성채로 가야 한다고 그때 재촉하지 않으셨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요?”

드낙의 거침없는 직구에 바루익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른 이들의 앞에서 그렇게 말하다니, 무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부분을 집고 넘어가기에는 드낙의 위세와 위명이 대단했다.

떠오르는 신성은 궤도에 오른 오래된 별 보다 더욱 밝게 주변을 밝히는 법이었다.

특히 〈구울 토벌〉과 비교하는 드낙의 화법은 치명적이기도 했다. 가장 서로 비교가 잘 되어서 선택한 것에 불과했지만, 듣는 이는 달랐다.

〈파이룬 백작 가문〉에게 도움을 준 드낙이었다. 그는 두 가문을 조율해서 관계성을 비슷하게 쌓아가야 하는 형편이다. 바루익은 함께 여행을 하면서 그것을 깨닫고 있는 상태였다.

드낙은 강하지만, 그의 세력은 약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드낙은 이곳을 도와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트롤 토벌만 하는 것만으로도 몽펠리에 쪽으로 기울어지는데, 잘못하다가는 파이룬 가문에게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음···”

거기까지 닿은 바루익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드낙은 그 모습에 꾸준히 입을 놀렸다. 대부분이 변명에 가까운 소리였다. 물론 근거는 있었다.

“오면서도 보지 않았소? 놈은 보통 영악한 것이 아니오. 정예(Elite)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간악했소. 결코 덤벼들지 않았고, 고지를 내어준 적도 없소. 우두머리의 모습조차 보지 못하지 않았소?”

영악함을 첫째로 들었다. 언데드 건축물을 상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싸움이 될 것이고, 그것은 〈강함〉보다는 〈숫자〉가 더 중요한 싸움이 될 것이다.

돌격대장을 잡는 것과 전략가를 잡는 것이 크게 다른 것과 같았다.

“지금 우리의 형편을 보시오. 모두 이 성채 밖으로 나가서 경기병을 상대로 싸워나갈 수 있소? 그것도 계곡에서?”

드낙이 원하는 것은 단기전이었다. 그것을 방금의 말로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오래 걸리면 아크온 경에게 실례였다.

“그렇기에 한다면 기만술을 써야 하오. 놈들은 성채로 덤벼들겠지만, 모든 것이 끝나도 우두머리가 안 나타날 수 있소. 외성을 내어줘도 안 나타난다면 큰 피해를 겪어야 할 것이오.”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었다. 〈쌍둥이 성채〉에서 군량도, 사람도 보내주지 않고 있었기에 버티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음을 알 수 없었기에 꼭꼭 웅크려야 했다. 그래야 기회가 올 수 있었다.

“기회를 기다리려면 적어도 며칠을 기다려야 하겠소? 랄프 경께서 말해보시오.”

“최소 보름에서 최대 한 달은 걸릴 것이오. 드낙 경께서 말했다시피 헤드스 하이에나의 우두머리는 기이할 정도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소.”

하지만 드낙은 그 정도까지 기다려 줄 수가 없었다. 바루익 또한 드낙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드낙은 검은 꿈이 목적이기도 했지만 보름 이상을 대기할 정도로 헤드스 하이에나가 멋진 검은 꿈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북부의 상황이 크게 안 좋으니, 하루빨리 아크온 경을 만나 상황을 더 직접적으로 들어봐야 하오. 한시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오. 그러니 단기전으로 놈의 우두머리를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난 도와줄 수 없소.”

세 사람이 모두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드낙은 정말로 그들이 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으므로 약을 쳤다.

“내 마력을 운용할 수 있으니, 전신갑주에 마력을 채워줄 수는 있소. 그것만으로도 나 없이 적의 우두머리를 죽일 수 있지 않겠소?”

이에 랄프와 안젤리카가 크게 좋아했다. 전략적 요충지라서 구형, 신형 모두 합쳐서 전신갑주가 다섯 벌이나 있는 것이 그들이었다.

‘다, 다섯 벌?’

그 말에 드낙의 귀가 팔랑거렸다.

“허흠, 그럼 쌍둥이 성채에서 상황을 잠깐 확인하고, 다시 여기로 와서 놈들의 우두머리를 잡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어떠시오?”

“저희야 환영할 만한 일이오.”

장남 랄프 에드윈의 말에 드낙이 웃었다. 즉흥적으로 말했지만 정말 대박이었다.

‘오히려 이게 최곤데?’

소모된 전신갑주의 마력을 채워주고, 쌍둥이 성채를 들러 상황을 파악하고 그다음에 다시 여기로 와서 우두머리를 죽이는 것이었다. 헤드스 하이에나들의 검은 꿈이나 검은 여과기의 하얀 물을 받아마시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이득이었다.

전후 관계만 바꾸었을 뿐인데, 일타쌍피가 되어버렸다.

팔랑거리는 귀와 다시 탐욕으로 물든 드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드낙이 크게 원하는 태도로 변하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서둘러 드낙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불파겐의 후예가 팔을 걷어붙쳤는데, 그냥 고개만 끄덕일 수 없었다. 신명 나게 탈춤이라도 춰야 했다.

그렇게 드낙은 나중에 다시 와서 도와주겠다는 약조를 덜컥해버렸다. 전신갑주를 여벌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북부의 급박한 상황을 하다가 순식간에 검은 꿈의 탐욕에 홀라당 넘어가버린 드낙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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