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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80화 (279/1,239)

0280 <-- 조용한 계곡 성채 -->

그는 자신을 〈선임병사 카일던〉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몽펠리에의 기수들에게 눈을 돌렸다가 다시 드낙에게로 향했다.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절로 보이는 흔들리는 눈을 보며 바루익이 말했다.

“우리 몽펠리에의 기수들은 〈드낙 불파겐〉 경을 안내하여 〈쌍둥이 성채〉로 향하여 〈외눈 다크 트롤〉을 토벌하려고 하고 있다. 내 이름은 바루익 블라인스다.”

“헉!”

드낙의 성을 듣자마자 선임병사가 깜짝 놀랐다. 투구와 갑옷 속에 머리카락을 숨긴 것이 드낙이었기에 척 보고는 깨닫지 못했다. 아무리 거칠어도 일단 욱여넣으면 끝이었다.

“에드윈 성주께서는 잘 계시나?"

“방금 전투로 휴식을 하러 가셨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오는 것이 헤드스 하이에 나들이라··· 많이 지쳐계십니다.”

몽펠리에 령에 소속된 방계였고, 몽펠리에의 깃발을 펄럭였기에 카일던은 거침없이 중요한 정보들을 읊었다. 드낙은 귀를 기울여서 그 말을 세심하게 들었다.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카일던이 앞장을 섰다. 시체를 치우던 병사들이 경례를 올렸다. 비록 10명에 불과한 인원이었지만 지금 상황이 나쁜지 큰 지원군으로 보는 듯이 굴었다.

‘병사들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군.’

노역을 하기 위해서 나온 병사들은 장비다운 장비를 입지 않았고, 대부분 웃통을 벗고, 시체를 옮기고 있었다. 몸 곳곳에 피멍이 잔뜩 나있었음에도 동원된다는 것은 그만큼 성채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경상자를 동원해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진짜 전투가 가능한 자들은 휴식하고 있을지도.’

정확한 정황은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 수 있을 터였다. 성채를 지나자 여실 없이 궁핍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식수조차도 조절되고 있는 것인지 씻지 못한 이들이 많이 보였다.

대부분 피난민들로 보였다. 길 곳곳에 짐이 실어진 수레들이 많았다. 기수들이 지나가자 모두가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준마 위에 탄 그들은 피난민들을 내려다보며 스쳐 지나갔다.

‘상황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병사들은 보이지 않고, 피난민들만 보였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치안도 유지되어 보이지 않았다. 제법 힘 있는 장정 몇몇이 골목길에서 드낙을 노려보기도 했는데, 드낙의 투구가 조금만 돌아가도 바로 눈을 내리깔았다가 그가 지나가자 다시 드낙의 뒤통수를 노려보기도 했다.

치안이 안 좋다는 뜻이었다.

그냥 화가 나고, 짜증이 솟구치며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는 뜻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있는 것이 전체적으로 느껴졌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외성지역의 상황은 드낙에게 확실하게 인지되었다. 대로만 거늘어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잘 들려오지 않았고, 칭얼거리는 소리가 간혹 들려오기도 했다.

골목길로 언뜻 보이는 화덕에서는 진흙과 마른 풀을 섞어서 굽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드낙은 주춤거릴 정도로 마음의 동요가 심했다.

세상에서 유례없는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것이 현대인이였다. 유목민 혈통으로 목장마저 운영하면서 마을에서도 제법 잘 살았던 집안에서 태어난 드낙이다.

진흙을 굴리고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

모두 굳어진 얼굴로 혹은 무표정한 얼굴로 외성지역을 지나갔다. 〈선임병사 카일던〉 또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마치 죽은 자들을 위한 길을 걷는 것처럼 엄숙했다.

내성 입구에서는 병사 둘과 청년 여럿이 대치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무기를 뽑았기에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지만 청년들은 말로 병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식량은 매일 일정량만 배급될 뿐이다!”

“못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거요!”

“규정이다! 돌아가라.”

“내 어머니가 삼 일째 끓인 물만 마시고 있습니다! 그건 대체 누가, 어떻게, 해결을 해줄 수 있습니까?”

식량 문제로 싸우고 있었다. 시스템이 열악한 곳에서 소외되는 이들은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말의 걸음 소리에 청년들이 머리만 돌렸다가 몸까지 모두 돌렸다.

청색으로 물든 전신갑주의 목 밑에 있는 선명한 블루 사파이어가 반짝거리며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척 봐도 평범한 물건이 아닌 전신갑주였다. 상등품 중의 상등품이었다. 파이룬 가문의 재력으로 만들어진 〈얼음의 파이룬 전신갑주(Ice Faerun Full Plate Armor)〉는 세련되며 비싼 맛도 조금 곁들인 물건이었다.

위아래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뿜어내는 갑옷이었다.

“비켜라! 성주님을 만나러 오신 드낙 불파겐 경과 바루익 블라인스 경이시다!”

그 말에 병사 두 명이 크게 경례를 하며 무기를 하늘로 높이 올렸다. 드낙은 가볍게 그들을 지나갔다. 청년들 또한 감히 입을 놀리지 못했다.

내성문을 지나 내성지역에 들어선 드낙은 내성지역이 매우 작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아봤자 30채에 불과한 건물들이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사람이 적을 것이고,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영주성은 없었다. 내성지역에 돌담을 놓고 대문이 있는 대저택이 성주의 저택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곳에는 병사도 없었다. 늙은 노병이 졸고 있었고, 늑대 귀를 가진 개가 목줄을 한 채 노병의 곁에 딱 붙어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귀가 쫑긋거리더니 짖기 시작하자 노병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카일던이 입만 뻐끔거리면서 〈예절〉을 말했고, 노병이 허둥지둥 투구를 찾았다. 새하얀 백발이 절로 보였다. 바루익은 그 형편없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드낙은 기분 좋게 웃었다.

선임병사의 소개에 노병 또한 그들을 크게 대우해주며 대문을 열었는데, 한쪽 문은 카일던이 열어 발 빠르게 움직여 양쪽에 돌을 놓아서 고정했다. 가을이라 바람이 많이 불었기 때문이었다.

“말에서 내리셔야 합니다.”

그 말에 모두 말에서 내렸다. 짐마차는 대저택의 내부, 빈 공터에 대기 시켰다. 바루익은 자신과 함께할 기수를 대동하기로 했고, 드낙은 이스핀을 대동했다. 선임병사를 포함해서 5명이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 싸늘하네.’

화덕은 텅텅 비어져 있었고, 로비는 넓기만 넓었다. 양탄자에는 먼지가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니 사람을 쓰지 않은지 꽤 되어 보였다.

양옆에 놓여 있는 계단은 다시 하나로 만나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큰 벽이 있었지만 그림 하나 없는 삭막한 곳이었다.

“선임병사, 고용인은 아무도 없나?”

드낙의 말에 카일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상인 놈들이 하도 가격을 후려쳐대어서 내년까지는 고용인을 고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근근이 도와주시던 분들도 이제는···”

‘상태가 많이 안 좋네.’

계곡에 있는 성채라서 그런지 귀족이라고 해도 못 사는 듯했다.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 아마 이곳의 가문은 몽펠리에 가문에게 직접적으로 봉급을 따로 더 받을 듯하였다.

집만 넓은 대저택의 2층 복도를 걸어가 큰 문을 맞이했는데, 회의실로 쓸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그에 비견될 정도로 큰 원탁이 있었다. 먼지가 가라앉아 있는 것을 보니 쓰지 한참이나 되어 보였다.

“영주님을 모셔오겠습니다.”

“그러시오.”

드낙이 대답하면서 방을 돌아다녔다. 대저택은 ㅁ자 형태의 구조로 되어있었다. 안쪽은 정원이 꾸며져 있었기에 유리창문으로 내려다보면 정원이 보였다. 정원은 잘 관리가 되어있었지만, 크게 아름답지는 않았다.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정도였다.

“조용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렇네.”

이스핀의 말에 드낙이 대답하며 자리를 털며 먼지를 걷어내고 앉았다. 점점 쇠락하는 가문을 방문한 기분이었다.

성주는 30분이 넘게 지나서야 들어왔다. 따뜻하게 끓인 주전자를 하나 들고 왔는데,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기지 않았다. 조용히 지내는 산골 아저씨를 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왼쪽에는 숏소드(Short sword) 오른쪽에는 스틸레토(Stiletto)를 차고 있어서 확실히 무인으로 보였다.

드낙이 그 손을 보았는데,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의 눈길을 느껴서인지 성주는 옷에 손을 닦으며 말했다.

“멀리서 오는 이들을 보니, 기분이 좋소. 힘든 길이었을 터인데, 안전하게 도착해서 실로 다행이오. 나는 〈조용한 계곡 성채〉의 성주 〈발그 에드윈(Bulg Edwin)〉이오.”

목소리는 적당했지만 카리스마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냥 조용조용했다. 적당한 성량이기도 해서 멀리 있는 자는 못 들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바루익이 드낙에게 눈길을 주었고 드낙이 대답했다.

“드낙 불파겐입니다. 성주님을 뵈어서 영광입니다.”

그는 투구를 벗었는데, 척 봐도 사람 머리카락이 아닌 굵고 산발이 된 적발(赤髮)이 크게 눈에 들어왔다. 발그 에드윈이 침을 삼켰다. 꿀꺽 거리는 소리가 옆에 들릴 정도였다.

헛기침을 하며 바루익이 그 소리를 숨기며 자신 또한 소개했다. 따라온 기수 다음에는 이스핀이 마지막이었다.

“오면서 이야기는 카일던에게 들었소. 〈쌍둥이 성채〉로 가신다고.”

“그렇소.”

드낙이 담백하게 대답했다. 굳이 이곳에서 시간을 크게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잡을 놈이 있다면 〈헤드스 하이에나(Heads Hyena)〉였는데, 놈들이 매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에 비해서 잡는 것이 느려질 수밖에 없지.’

도망치는 놈들을 사냥하는 것은 귀찮고 긴 시간을 봐야 했다.

“지금 몽펠리에 령은 물론이고, 북쪽도 괴이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아시오?”

“모르오. 자세히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소?”

드낙이 그렇게 말하자 발그가 턱에 난 수염을 긁으며 입을 열었다.

“오면서 헤드스 하이에나들의 치밀한 움직임을 보았을 것이오.”

“영악한 놈들이었소. 우두머리는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았고, 계곡 위에서 돌을 던지거나, 바위를 굴러떨어뜨리고 길을 막아놓기까지 했소.”

그 말에 카일던은 물론이고 발그 에드윈조차도 혀를 내둘렀다. 성채를 빠져나가지 않았기에 길이 그런 상황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맞소. 놈들은 보통 이상으로 영악하고, 그 비밀은 놈들의 우두머리에게 있소. 보통 난 놈이 아니오. 그리고 이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소.”

“영악한 우두머리가 여럿이라는 것이오?”

발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문에 북부는 더욱 〈외눈 다크 트롤〉을 토벌하지 못하고 자기 영지를 지키는데 급급하고 있었다. 우두머리가 잡히지 않으니 소소한 전과는 나와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말에 드낙이 그 이면 속에 흑마법사 혹은 외눈 다크 트롤이 있다고 여겼다. 지금 상황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쌍둥이 성채〉에 지원 요청을 봉화로 여러 번 보냈지만 소식이 없었소. 아마 그곳도 힘든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오.”

“아니, 그 정도로 유린당하고 있다는 것이오?”

드낙이 깜짝 놀라자 발그가 손사래를 쳤다.

“아직 초반이니 적의 전력을 가늠하고 있을 뿐이오. 웅크린다고 졌다는 뜻은 아니잖소?”

전략적 선택이라는 말에 드낙이 놀란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하기야 인간의 전략과 전술은 지구력과 크게 어울리는 면이 있었다. 상대의 힘을 가늠하고, 체력을 소진시킨 다음에 후드려패는 것이 이득이었다.

“여기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던데, 괜찮소?”

바루익이 주제를 돌렸다. 이곳 성채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아직은 버틸만 하오. 지하에서 이끼와 버섯을 많이 재배하고 있어서 한 달은 너끈하오. 대로로 와서 그런 걱정을 하시는 것 같은데, 대부분 주민들은 대저택의 지하에 있소.”

“아하···”

바루익도 〈조용한 계곡 성채〉의 자세한 것을 모르는지 그제서야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못 먹는 이들이 있어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여기 병사는 몇이나 되오?”

드낙이 궁금해서 말하자 발그 에드윈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30명이 조금 넘소. 헤드스 하이에나 녀석들이 돌팔매질을 잘해서 그중에 반이 멍투성이지만 겁쟁이 놈들이오. 성채를 넘지는 못할 것이오.”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드낙은 괜히 불안했지만 헤드스 하이에나에 대한 평가는 드낙 또한 동의하는 바였다. 겁쟁이 같은 놈들이었다. 그저 말려 죽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여독을 풀고, 바로 〈쌍둥이 성채〉로 가시오. 추가적으로 보급은 해주겠지만, 그리 큰 기대는 하지 마시오.”

“작은 것이라도 크게 받아들이겠소.”

드낙의 말에 발그 에드윈이 시원하게 웃었다. 그와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지만 드낙은 큰 정보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성주 발드 에드윈〉은 그저 버티는 것이 최고인 것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우직하다면 우직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너무 바위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드낙처럼 행동력이 대단한 사람에게 발드의 성향은 지나치게 미련하게 보이기도 했다.

〈이름모를 뛰어난 몬스터 우두머리의 등장〉이 가장 핫이슈였다.

또한 여기서 3일 거리에 있고, 봉화로 서로 연락이 가능한 〈쌍둥이 성채〉와의 교류가 끊어진 것도 중요한 정보였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드낙이 뒷머리를 긁었다. 전략, 전술에 대한 가방끈이 짧은 드낙은 도통 사태를 크게 보지 못했다.

휴식은 대저택에서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낙에게 방문자가 문을 두드리며 찾아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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