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278화 (277/1,239)

0278 <-- 조용한 계곡 성채 -->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아니. 없다. 사실 난 악마에 대해서 잘 모른다.”

모르쇠로 일관했다.

“엉? 모른다고?”

드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 보이는 것이 그였다. 오만하기 때문에 더더욱 엘리트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 거대만 태도 때문에 몰라도 아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대화를 나누어도 딱 엘리트 포스가 풍기는 것이 세파리아스였다. 말투 자체가 오만하기 짝이 없었고, 자신감이 대단했다. 또 사람을 하찮게 보는 듯한 뉘앙스도 곁들어져 있었다.

지금이 딱 그러했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그런 기대에 코웃음쳤다. 모르는 주제에 할 말은 어찌 그리 많은지 입을 놀려대었다.

“당연한 것을 왜 묻나? 내가 가문을 이끌었던 시대에서 적이라고 할 것은 엘프나 드워프 같은 이종족이나 〈중앙 제국〉이었다. 결국 끝에는 인간이 가장 큰 적이 되었고.”

말 같지 않은 소리에 드낙이 어처구니없어했다.

“흑마법사라도 그때는 있었잖아?”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대범하고 오만한 웃음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확실한 주관이 들어있는 말이 그 입에서 흘러나왔다.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감히 내 눈앞에 궐기(蹶起)를 하겠어? 암약은 물론이고 음모조차 접어버리고 지하 속으로 숨어버리기 바빴다. 그때는 유례없는 태평성대의 시대였다.”

태산조차도 무너뜨릴 위세를 지닌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가지는 이름값은 실로 대단했다. 제국조차도 남부 왕국의 왕가를 압박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 이름값은 한 시대를 풍미했었다.

작은 나라에 튀어나온 대영웅은 광폭함은 물론이고, 제국의 점성술사들이 하나 모여 제국을 무너뜨릴 재목이라고 매일 소리를 질러대었다.

제국기사 중에서도 뛰어난 군단장이었던 〈본데리아 온 마르코시오(Bonderia On Marcosio)〉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단 3합만에 목을 베어내어 엄청난 위기감을 준 것이 세파리아스 불파겐이었다.

동부 엘프마저 깎아내리며 그들에 대한 우상을 접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존재가 있는 시대에 어둠의 세력은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악마고 나발이고 인간이 엘프에게도 막말을 하는데, 다음 시대를 기다리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웃기게도 세파리아스는 흑마법사와 네크로맨서와 제대로 붙어본 적이 없었다.

“힘없는 것들이나 자주 싸우지. 난 가주가 되고 제대로 크게 싸워본 적이 많이 없다. 양 떼 속의 늑대였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뭔가 쓰디쓴 약을 먹은 표정을 지었다. 드낙은 딴죽을 걸지 못했다. 세파리아스의 독백 속에 깃들어진 형연할 수 없는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자신에게 스며들어왔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감정의 공유가 일부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세파리아스의 영혼이 직접적으로 드낙의 육체를 조종했던 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드낙은 혀를 내둘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저런 상황에서라면 그도 제대로 판세를 읽기 힘들었을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하찮게 여겨지고, 나약해 보이는 그에게 있어서 그 물컹거리는 것이 하나로 뭉쳐서 그를 죽일 거대한 단두대가 되었을 때서야 약자들의 강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깨닫고 난 뒤에는 이미 늦었을 것이고.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드낙은 세파리아스가 지닌 감정의 파편을 느끼면서 혀를 내둘렀다. 헛소리, 허풍이라기에는 수백 년이 지나도 멸문한 가문을 대부분이 알고 있었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네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이다. 괜한 잡기 얻으려고 시간 허비하지 말고, 비전이나 수련해라.”

드낙의 표정이 뒤틀렸다.

‘저놈의 오만함. 자기가 다 옳다는 듯한 태도. 죽어서도 안 바뀌네.’

드낙이 혀를 찼다. 아주 건방졌기 때문이다. 죽어서도 저 성격이 안 바뀌는 것을 대단하다고 여겼다.

〈조용한 계곡 성채〉로 향하는 길은 평탄하지는 않았다.

“흐아압!!!”

우지지직. 드득, 터어엉! 후두두둑!

험한 계곡의 길을 드낙은 마주해야 했는데, 가을을 맞이해 그리 큰 비가 내리지 않았음에도 길에 나무나 쓰러져 방치되어 있기도 했다. 그래서 그것을 치워야 했는데, 빨리 가고 싶은 드낙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기에 단번에 별다른 작업 없이 나무가 치워졌다.

혹은 나무 밑에 가지만 치고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있었다. 당연히 짐마차가 있었기에 모두 걷어내야 했다.

“정지!!”

선두에 있던 바루익과 이스핀이 비슷하게 소리를 질렀다. 구덩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퍽퍽!

움푹 파여진 구덩이는 흙과 돌로 메꿔야 했다. 이스핀이 파여진 작은 구덩이에 돌과 흙을 퍼붓자 드낙이 올라서서는 쾅쾅 뛰었다. 말발굽보다 넓은 발을 지닌 것이 인간이었다.

특히 전신갑주를 입은 드낙은 땅을 평탄하게 만드는데 탁월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일이 착착 진행되어도 드낙은 좋은 표정을 짓지 못했다.

‘이거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는데.’

지름길이라도 이렇게 시간이 지연되면 거기서 거기였다. 하지만 바루익이 말을 끌고 와서는 드낙에게 말했다.

“드낙 경, 아무리 봐도 이상하오.”

“무엇이 말이오?”

“길이 이렇게까지 막혀있을 수 있겠소? 벌써 9번째요. 인위적인 방해나 다름없소. 드낙 경의 개인 사병들 또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했소.”

드낙은 후방에 있었기에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곳에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흙을 만지고 있는 순찰자들이 보였다.

“무엇이 이상하더냐?”

“길을 중심으로 짐승 배변이 너무 많고, 계속 눈에 밟힙니다. 또 배변이 있는 곳에는 확실하게 땅이 크게 패어있거나 나무가 쓰러져 있고 혹은 돌무더기가 있었습니다.”

드낙의 눈이 다른 순찰자에게도 향했는데 그 또한 수긍한다는 투로 말하였다.

“몬스터인가?”

“이런 함정을 놓을 정도면 고블린 같은 것들일 겁니다.”

순찰자의 말에 따라와있던 바루익이 추가로 말했다.

“계곡에서 고블린은 힘을 못 쓰는 것이 보통이오. 그렇다고 그렘린이 하기에는 〈짐승 배변〉이 걸리니, 다른 놈이 분명하오.”

험난한 계곡은 고블린이 살기에는 힘든 곳이었다. 체고(體高). 몸의 키가 낮기 때문에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매우 힘들뿐더러,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낮은 턱도 밧줄을 써야 했다.

당연히 이런 곳에서는 고블린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고블린같이 조그만 녀석들은 살기가 힘들었다. 계곡이 넓고, 동굴이 많으면 몰랐지만 조용한 계곡은 말 그대로 몬스터도 살기 힘들었다.

인간처럼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 했지만, 체격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것도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고블린보다 더 험지에서 잘 사는 것이 인간이었다. 드낙은 몬스터에 대한 대단한 지식이 없었기에 물었다.

“어떤 몬스터가 있겠소? 예를 들자면?”

“······ 마땅히 기억에 나는 몬스터가 없소.”

하지만 무엇인지는 다른 이들도 당장 생각나지 않았다. 힌트가 너무 적었고, 사실 이러한 〈색적〉은 용병들이 잘하는 것이었다.

정규병의 경우에는 적이 확인되었을 때, 후려치는 망치이며 시민을 지키는 방패였다. 수색, 색적, 추적과도 같은 일은 매우 위험천만했기에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병사 하나가 죽어도 크게 장례를 치러주는 것이 남부 왕국이었다.

용병들의 목숨을 돈으로 싸게 사서 뿌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순찰자들은 국경지역에 있지만, 그들은 만나던 놈들을 계속 만나는 것이었기에 자식이 바다처럼 넓지 않았다. 우물처럼 깊었다.

또 몬스터만 해도 수십수백 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배변은 어떠냐?”

“소똥처럼 질퍽하기도 하고, 육식동물의 똥처럼 뚝뚝 떨어져 있기도 해서 분간이 잘 안됩니다. 일반적이지 않지만 뭘 먹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똥의 질감으로는 확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육식 동물도 때로는 풀을 뜯어먹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두 가지 모두 발견되었기에 단정할 수도 없었다.

“특이한 점은 없는가?”

“악취가 나지 않습니다. 냄새가 옅다고 해야 할까, 영역 표시나 그런 것에 특화된 종은 아닌 듯합니다.”

그 말을 들은 드낙은 적이 강한 놈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하면 강할수록 강렬하고 독특한 냄새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몬스터라고 다 강한 것이 아니지.’

일반인에게나 두렵고, 무서운 것이 몬스터였다. 숫자만 있고, 경험이 있다면 고블린도 척척 잡아내는 것이 용병단이었다. 그렇기에 차라리 〈휴머노이드 종족〉이라는 것만 알 수 있어도 그리 무섭지 않아 보였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휴머노이드 몬스터〉라는 것은 분명하군.”

“예.”

어떤 몬스터인지 몰라도 계곡의 길에 훼방을 놓는 것은 확실시 되었다.

그 뒤로도 의도적인 흔적이 다수 발견되었다. 특히 〈이름 모를 짐승의 배변〉은 매번 그 특징이 달라서 순찰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마치 언제든지 배변을 미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그닥. 다그닥.

덜그럭. 덜그럭.

침묵에 휩싸인 채로 일행은 계속 이동했다. 힘이 장사인 드낙이 있었기에 장애물은 빠르게 해치울 수 있었고, 일부러 파괴하기 위해 파놓은 곳은 그리 크지 않아 덮기도 용이했다.

“인내심이 없는 놈들입니다. 만약 기습을 한다면, 사전에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순찰자의 말에 드낙은 그들을 중간에 배치시켰다. 앞에 배치시키지 않고, 중간으로 보내어 안전하게 멀리 내다보라고 명령했다.

순찰자들 중 한 명은 짐마차 위에 올라가기까지 했다. 높은 시야를 위해서라면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하는데, 이동하는 중에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밀포대를 여럿 옮겨서 발판을 단단히 만들었다.

그러한 노력 속에서도 2일을 조용히 보냈다.

타닥.

마른 똥으로 빠르게 불을 내고, 미리 보관했던 장작을 여럿 꺼내들어 불을 지폈다. 이스핀의 등 뒤로 흙이 후두둑 떨어졌는데, 모두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경계심이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횃불의 불빛이 가까이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어두컴컴한 곳을 더욱 보기가 힘들었다.

“겁이 많은 놈들일 수 있으니, 긴장 풀고 먹고 불침번을 서면 될 일이오.”

드낙이 그렇게 말했지만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까악! 까아악!”

그때 카이야가 하늘에서 빠르게 내려앉으며 소리를 질러대었다. 계곡 위의 염탐을 맡은 것이 카이야였다.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초저녁이었지만 가을이었기에 해는 벌써 저물었고, 달빛은 계곡의 깊게 들어오지 못해서 칠흑처럼 어두웠다. 달이 매우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달빛이 들어올 각이 나오지 않았다.

끄엉엉! 엉! 크엉엉!!!

독특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귀로 들리는 짐승의 울음소리는 〈천박〉하게 느껴졌다. 그 정도로 듣기 싫은 소리였다.

계곡을 휘몰아치면서 들어오는 강풍 속에서 드낙은 진득한 노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그것은 육식동물의 진한 노린내였다. 맡기만 해도 초식동물은 호다닥 도망을 칠 것이다.

‘호랑이인가?’

“휴머노이드 종족 중에 호랑이가 있소?”

“있다면 수인족 뿐이오. 하지만 그들을 남부 왕국에서 본 자는 없소.”

멀리서 들려오던 짐승소리가 드낙의 위에서 들려왔다. 계곡의 높은 곳에서 달빛에 선명하게 비치는 놈들이 보였다.

그것은 점박이 하이에나와 비슷했다. 하지만 머리가 아래에도 있었고, 위에도 있었다.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종족인 켄타우르스와 비슷한 계열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두 개인 점과 하이에나의 모습을 한 것이 전혀 달랐다.

아래에는 완전한 하이에나였고, 척추에 뿌리처럼 인간의 상체가 들러붙어있었다. 하지만 새까맣게 탄 인간의 상체와는 다르게 머리는 또 하이에나의 머리였다.

“뜨로올! 뜨롤!”

그들은 금속으로 된 창을 땅에 팍팍 찍으면서 소리를 질러대었는데, 그 수가 많아 보였다. 바루익이 그 시끄러운 와중에 소리를 질러대었다. 몬스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이 드낙인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놈들은 〈헤드스 하이에나(Heads Hyena)〉들이오! 천박한 놈들이고, 시체를 찾아다니는 겁쟁이 놈들이오! 이런 계곡에 놈들이 있다는 것은 못 들었는데, 괴이한 일이오!”

“무엇을 조심하면 되오?”

그 말에 바루익이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서 그렇게 해야만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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