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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74화 (273/1,239)

0274 <-- 구불 계곡을 지나 -->

그렘린의 습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그것을 들으며 드낙은 마을을 순시 나갔다. 보다 더 확실하게 지형지물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게 된 행동은 오늘 혹은 내일에 그렘린들의 무리가 쳐들어온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기, 기사님을 뵙습니다!”

주제도 모른 채 정규군처럼 경례를 하는 것을 보니,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 보였다. 바루익은 그 경례에 담겨진 수많은 의무를 떠올렸기에 기세가 자연히 흉흉해졌다.

기사의 명령 한 마디에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는 것이 정규병이었다. 남부 왕국의 병사들은 강군(强軍)이며 정병(精兵)이었다. 그렇기에 자경단 수준의 마을 청년들이 정규군처럼 구는 것은 보는 것이 힘들었다.

“수고하네. 그렘린의 침입의 시작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하나도 거짓 없이 이야기해야 하네. 다르게 이야기해서 계획한 전략이 허사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도록.”

드낙의 경고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드낙이 보지 않는 사람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그날은 해가 저물고, 달빛이 가득, 굴 깊은 곳까지 내려앉았었던 날이었습니다.”

보름달은 아니었다. 크게 기울어진 달의 빛이 반지하처럼 굽어져서 들어가는 마을의 입구로 대단히 깊게 스며들어왔다.

야습을 하기에는 좋지 않은 날이지만, 그렘린들은 그런 평범한 날을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당직을 서던 자경단은 하품을 하며 일상처럼 의자에 앉았다. 시작부터 졸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깊이 들어오는 달빛에 취해서 술을 한 병 홀짝이면서 달을 멍하게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하나의 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검은 먹구름이 되었죠. 가까이 와서야 저는 냄비를 두드렸습니다. 아주 거칠게 두드렸었습니다.”

우당탕!

의자가 엎어지고, 뒤로 넘어간 그는 서둘러 냄비를 찾았다. 그것을 찾는데만 십초가 넘게 걸렸다. 먹구름은 어느새 안개처럼 틈이 보이며 날갯짓을 하는 무언가 엄청난 숫자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땅땅땅!!! 따당! 땅!

“몬스터다아아아!!!!”

거칠게 소리를 지르면서 사방팔방 뛰어갔다. 이것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입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한 훈련을 받지 못해 〈다음 행동〉을 염두 해주지 않은 것이다.

“몬스터라고?!”

“뭔가가 날아온다! 날아오고 있어!”

“그게 뭐냐고! 씨발놈아!”

자다가 깬 사람들이 물었지만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입구에 놓인 제법 높은 망루에서 내려와버렸기 때문이다. 허둥지둥 다시 사다리로 올라가려는 청년을 누군가 뒷목을 낚아챘다.

“그렘린들이다아아!!! 모두 집으로 도망쳐!!!”

자경단이었던 잭슨 또한 그렇게 아무개의 손에 이끌려 도망쳤다. 어둠 속에서 그렇게 집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엄청난 숫자의 박쥐 떼였다.

“그렘린 놈들은 박쥐들을 조종합니다. 박쥐들 때문에 도망치고 집에서 숨었을 때도 그렘린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렘린들은 겁이 많았기에 박쥐부터 보낸 것이었다. 엄청난 떼의 박쥐들이 굴을 헤집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렘린들이 나타나서는 지붕을 나무나 돌을 묶은 무기로 후려패며 온갖 것을 파괴하며 다녔다.

“그때 다친 사람이 몇 있습니다. 지금도 병실에 누워서 간호를 받고 있습니다.”

드낙은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입구를 자세히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흠. 방어마법, 〈솟구쳐 오르는 빙산(Rising Iceberg)〉을 몇 번 사용하면 입구를 막을 수 있겠는데?’

그는 매우 흉악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뿐이었다. 그렘린들이 쳐들어온다면 놈들을 모조리 일망타진··· 아니, 냠냠하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생포하듯이 가둬놓는다는 발상부터 먼저 했다.

나는 놈들이니 도망을 잘 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다친 사람들을 보러 가고 싶은데.”

“예!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들은 굴의 가장 안쪽에 있었다. 아주 낮은 곳이라 상체를 숙이고 들어가야 했다. 그렘린이 자주 쳐들어와서 궁여지책으로 놓은 비밀 굴이기도 했다. 화덕이 많이 있었고, 열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모닥불은 없었다. 숯으로 열기만 잔뜩 토해내고 있었다.

“보노! 여기, 소문의···”

“아, 흐, 예!”

신음소리를 내면서 딱딱한 침대에서 일어서려는 것을 드낙이 한 손으로 다시 짓눌렀다. 그는 인상을 와락 구기면서 다시 누웠다.

“괜찮다. 그렘린에게서 살아남았다고? 그때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예···”

병실에 있는 보노의 몸 상태는 결코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다. 크게 중상을 입은 곳이 적은데 반하여 얕게 당한 상처가 많았다. 경상만 전신을 덮고 있었다.

“몬스터라는 소리에 밖으로 나갔다가 미친 듯이 들어오는 박쥐들을 보고, 그대로 움막으로 도망쳤습니다. 굴로 도망치는 것보다는 집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습니다."

파다다다닥!

거친 날갯짓 소리와 움막에 부딪치는 소리에 가볍게 만들어진 움막이 거칠게 흔들거렸다. 그러다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탁 트인 곳에 갑자기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키야아아악! 나따라둠!”

당연히 그렘린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움막 속에 숨은 인간이 자신을 노리고 기습을 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보노는 화덕에 장작을 하나 쑤셔 넣어 불을 붙이고 양손으로 휘적거리면서 굴 하나를 향해서 달려나갔다.

“마구잡이로 마아아아악 이렇게 휘두르면서 도망쳤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허벅지에 그렘린이 던진 나무창이 박혔었습니다.”

“그 창은 아직도 가지고 있나?”

드낙의 말에 보노의 시선이 자경단들에게로 향했다. 그들 중 하나가 냉큼 말했다.

“가져오겠습니다!”

그가 사라지자 드낙은 보노의 몸을 살폈다. 붕대를 풀기도 했다. 그가 움찔했지만 드낙은 거침없었다.

‘얕군. 그렘린 놈들은 별 시답잖은 놈들인가.’

대부분이 베이거나 찔린 상처였는데, 그것도 형편없다고 할 정도였다. 사람을 죽이기에는 한참 적은 힘으로 찔렀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두 다리를 탄탄하게 내려있지 않고 찌르니 이렇게 얕은 상처밖에 못 주지.’

급소가 아니라면 능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불붙인 장작을 휘두르며 발악한 것이 아주 좋은 판단이었다. 그렘린들은 구워서 먹지 않았고, 생식을 즐기는 놈들이었다. 불을 획득하지 못한 야만스러운 몬스터였다.

〈원시 주술〉을 보유한 것이 아니라면 휴머노이드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가져왔습니다!”

상처를 확인하고 그렘린의 전투 스타일을 확인한 드낙이 그들이 쓰던 무기들을 바라보았다. 나무창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돌도끼도 있었고, 날카롭게 공을 들인 돌창도 있었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나 다름없었다. 특이한 것은 창이나 다른 것에도 온갖 주술적인 뭔가가 있다는 점이었다.

나무창의 경우에는 홈을 파서는 문양을 만들었고, 돌도끼에 묶여진 밧줄은 색이 다채로웠다. 돌창의 경우에는 소동물의 새끼 같은 것들의 두개골이 묶여져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기괴하고, 의미 불명의 것들이었다.

드낙은 시험 삼아서 마력을 뿜어냈다. 푸른빛이 굴 속에서 터져 나오자 환자들이 크게 놀라 했다. 마력의 빛에 닿은 주술의 흔적은 말끔하게 부딪쳤고, 스파크를 일으키며 그대로 부서졌다.

‘흠.’

드낙은 그것을 보고는 대뜸 환자들 모두의 상처를 확인했다. 하지만 딱히 특별한 것은 볼 수 없었다. 특별한 것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드낙의 눈이 의사 수준이 아닐 뿐이었다.

그들의 상처는 명백하게 천천히 아물고 있었지만 딱지도 내려앉고 있었고, 회복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처 치유 속도가 워낙 느리기 때문에 드낙의 눈으로도, 다른 사람의 눈으로도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뭔가 수를 썼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네.’

드낙이 그렇게 생각하며 결국 오늘 밤을 기다리기로 했다. 세파리아스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놈들은 후퇴할 때 온갖 오물을 싸고는 가버렸습니다. 집이 부서지긴 해도, 다친 사람도 있어도 죽은 사람이 없어서 아주 큰 다행입니다. 요즘에는 그렘린들이 나타나면 너도나도 좁은 굴로 도망쳐서는 작대기 같은 것으로 반항하면 도망가기를 만복하고 있습니다.”

서로 싸움이 지지부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오늘 아니면 내일 끝나겠지.’

그날 저녁에는 드낙의 주도로 전략이 수립되었다.

“가두고 모조리 죽이겠소. 박쥐들은 몰라도 그렘린은 하나도 살려두지 않으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오.”

“하지만 어떻게 그들을 막을 생각이오?”

바루익의 말에 드낙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얼음방벽으로 입구를 봉쇄할 생각이오.”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었고, 무식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모두 그런 생각을 한 드낙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위험하지 않겠소?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켜도 오늘 아니면 내일인데, 그럴 시간이 없지 않소.”

“굴 하나에 몰아넣고 기다리면 되오. 숨구멍을 제외하고 입구를 나무 따위로 단단히 막아놓으면 되지 않소.”

무식한 대처 방법이었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날아다니는 그렘린이었다. 나무로 막아두면 끝이었다. 추가적인 방법이 무색할 정도로 그렘린은 드낙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죽여도 별것 안 나올 것 같지만, 일단 잡는다고 했으니. 별 수 없지.’

〈그렘린 감옥 전략〉은 간단했고, 그렇기에 드낙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드낙이 시선을 크게 끌면 굴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다른 이들이 합심해서 천천히 드낙을 도우러 향하기로 했다.

아무리 간단한 전략이라도 양동(陽動)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불을 질러 검은 연기를 짧은 시간 동안 내보내겠소.”

생나무를 조금 잘라 10분 정도 매캐한 연기를 미친 듯이 낼 생각을 가졌다. 그렘린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함이었다. 바루익의 말에 드낙이 크게 찬성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법이었다.

‘역시, 방계야. 쓸만하군.’

너무 오래 태우면 자멸할 수 있었기에 딱 10분만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는 방법은 아주 좋은 작전이었다.

“그렘린이라니. 놈들이 뭘 주겠느냐? 버러지 같은 것들이다. 지금이라도 대의를 위해서 가야 한다고 말하며 출발해라.”

말의 번복이라니. 드낙은 절대로 그런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의 부하인 이스핀과 순찰자들이 마을 여자들과 살을 섞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고 생각했다.

바루익의 입으로 몽펠리에에게 전해질 것도 분명했다. 드낙의 그런 말에도 세파리아스는 시큰둥했다.

“시민 몇 명의 불만으로 널 칠 수 있다는 선택을 한다면 아크온은 사생아 아니면 이상론자다. 오래 같이 갈 놈은 아니고, 오히려 잘 된 것이다. 파이룬에게 붙으면 그만이지.”

“뭐?”

드낙이 기가 막혀 했지만 듣고 보니 그러했다.

‘아. 세파리아스는 이런 녀석이었지.’

민중은 잡초 혹은 개돼지로 비유하는 것이 권력자들이었다. 그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 때에 따라서 적당히 엉덩이 좀 쳐주고, 대우해주면 그만이고, 그 외에는 무시하면 그만인 것이다.

굶어죽어가는 이들이 있어도 세금으로 받은 것을 다른 곳에 쓰는 것이 귀족들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명예는 외부의 적을 잡아서 얻을 뿐. 국민을 돌보는 자는 리오넬 파이룬 정도였다. 아예 가주직에서 멀어진 자들이나 할 법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런 촌구석 마을 따위, 드낙에게 어떠한 가해도 주지 못했다. 몽펠리에 또한 불파겐과 척을 지고 싶어 하지 않음으로 알고 있어도 나무라지 않을 것이고, 걸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드낙은 그래도 꺼림칙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자신은 박호훈이기 때문이었다.

짓밟힌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슨 대단한 위인처럼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인간은 간사하고, 변덕스러워서 나중에 똑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그들을 버릴 선택을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아.”

“머저리 같은 놈. 정(情) 따위는 아무것도 보답해주지 않는 것을 모르다니.”

“누가 모른대? 〈검은 여과기〉가 있잖아. 이번에도 많이 죽이면 하얀 물을 주겠지.”

세파리아스가 손사래를 쳤다. 듣기도 싫었다.

“고블린 일천을 상대로 하늘을 쳐부수고, 땅을 갈라낸 기세는 어디 가고 쥐X만한 것을 찾으려고 하느냐?”

“아~ 알았다니까. 그래도 한 번 얻은 명성인데, 자꾸 검은 칠을 하면 되겠어? 한 번 나도 위인 소리 좀 들어보자.”

“겉멋에 빠져서는. 기사는 손에 피를 묻히며 살아가는 백정이다! 명예니 뭐니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세파리아스는 거칠게 화를 냈지만 드낙은 듣지를 않았다. 남들의 칭찬과 경외심 그리고 존경심을 받으며 그의 마음은 이미 붕 떠있었다.

“그렘린을 상대로 해줄 조언 따위 없다. 네 녀석의 전신갑주를 뚫을 수 있는 것은 〈저주〉 정도지만 불파겐의 〈붉은털〉이 각성했으니, 통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살육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몰랐다. 진정으로 민심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진정으로 자신을 믿게 만들고, 신뢰하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칼보다는 물렁한 살결이었음을.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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