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273화 (272/1,239)

0273 <-- 구불 계곡을 지나 -->

강약 강약 중간약!

신명나게 줄타기를 하는 촌장의 화법은 연륜이 깃들어 있었다. 특히나 남녀노소 구분 없이 온갖 이야기를 즐겨 하는 것이 〈촌장 멕안스〉였다. 그래서 몸은 가누지 못하면서 말은 빨랐다.

수다를 좋아한다고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골골거릴 때까지 하면 기술이 되는 법이었다.

그 덕에 드낙은 재미없는 이야기와 귀가 쫑긋거리는 정보를 내뱉는 촌장의 주둥아리가 철저하게 그의 뒤통수를 후리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미친놈이든 정신 나간 놈이든 바보 같은 놈이든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람이었기에 그러려니 넘어갈 수가 있었다.

‘끔찍한 화법이었어.’

촌장의 이야기는 늦은 점심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박호훈은 마음 같아서는 현대 장르소설의 사이다 3연타로 두들겨패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점심을 하시고 계십시오. 다른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불러주십시오.”

촌장의 말에 드낙이 냉큼 말했다. 아예 자신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일이 빠르게 진행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촌장은 성질이 급해 보이면서도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기에 바로 결론을 내뱉었다.

“3일 동안 그렘린 녀석들을 추격하겠소. 놈들이 공격했을 때, 자세히 그 상황을 말할 사람을 다섯 내외로 꾸려서 점심 이후에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오.”

그 말에 주위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다. 가장 실망을 한 것은 방계, 바루익 블라인스였다.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쯧. 그렇게 말렸는데도 결국 도와주는구나.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명예와 직결된다고 여기는 자유기사들이 많은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그 남이라는 작자가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지에 따라서 그들이 쥘 수 있는 명예가 달라진다.

모순된 소리였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자를 도와주면 한 번에 높이 뜰 수 있었다. 이런 촌구석의 시골을 도와주는 것은 〈기사의 의무〉에 달린 것이지 명예와는 하등 상관없었다.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이곳이 드낙의 영지가 아니고, 장원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크온 몽펠리에의 서신을 받고 도와주러 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의 행보는 바루익의 증언과 다른 기수들의 증언으로 크고 작은 공을 만들 것이다.

말로 한 줄 죽 그어지는 정도에 불과한 소공(小功)에 불과한 것이다.

몽펠리에 정도의 가문이었기에 그렇게라도 공으로 쳐주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논공행상 때 한 줄로 슥 지나가는 것에 불과한 공이었다.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논공행상이었기에 드낙의 행동은 사실 불필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마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고맙다는 말 한마디뿐이거늘.’

도와줘도 마을에서 내어줄 것이 하나 없었고, 없는 살림을 보상으로 달라고 하는 것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굴을 파서 살아가고, 움막에 사는 마을이었다.

그런 마을에서 무엇을 받는단 말인가? 받는다고 해도 경우가 우스웠고, 드낙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정도였다. 〈청혈 기사〉가 아니라 〈곡물 기사〉가 될 수도 있었다. 혹은 더 흉하기 위해서 뒤에서는 〈탈곡 기사〉라고 할지도 몰랐다.

‘그렘린의 부산물이라도 얻을 생각은 아닐 테고.’

그 정도로 구두쇠로 보이지는 않았다.

‘불파겐의 멸문에 대한 역사에 대한 반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는 되지만···’

오로지 힘을 숭상하며, 감정 없이 사람들을 다루었던 불파겐 가문은 모든 이들의 적이 되었다. 명예고 나발이고 철저한 자신의 영지만 생각한 자령주의를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또한 극심한 엘리트주의이기도 했다.

다른 이들을 살피는 것에 생각 이상으로 민감해할 수도 있었다.

이스핀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애초에 이런 양반임을 잘 알았다. 용병한테도 균등 배분을 외쳤던 사람 아닌가? 나중에 현실을 알고는 알아서 바꾸었다지만, 드낙의 본모습을 잘 알았다.

“흐흑.”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은 촌장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드낙의 거침없는 모습과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늙어서 그런지 눈물은 잘 나지 않았지만 눈이 충혈되고 햇빛을 잘 받지 못하게 되며 새하얘진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기사님의 명성과 성함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반지하의 굴에서 살아가는 〈낮은 계곡 마을〉이었다. 드낙의 선언은 그야말로 무료 봉사나 다름없었다. 촌장이 이렇게 크게 반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강가에 앉아, 넥타이를 풀고 소주 한 병을 까서 마시는데 평소 친하지도 않았던 이사님이 오셔서는 자신의 빚을 갚아주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바루익이 그 모습을 보고는 기가 차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이스핀도 마찬가지였는데, 누가 봐도 혓바닥을 신명나게 흔들어젖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하시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 겸사겸사하는 것이오.”

드낙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렘린을 쳐죽일 생각을 했다. 사실 몬스터라는 것은 보기가 제법 힘든 것이었다. 홍두깨처럼 나타나서 깽판을 치는 것들이라, 잡는 것은 빠르지만 쫓아가는 것은 세월이었다.

당장 〈외눈 다크 트롤〉만해도 그러했다.

“저 붉은 머리카락을 보고도 누구인지 모르는가? 〈청혈기사〉라 불리는 〈드낙 불파겐〉 경이시다.”

이스핀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오열하던 촌장이 딸꾹질을 했다.

“끅. 끅!”

그가 입을 가렸지만 어깨가 크게 들썩했다. 우는 것도 뚝 그쳤다.

“부, 불파겐. 끅!”

딸꾹질하면서 노인의 눈에 공포감이 스며들었다. 그저 귀족의 말이라면 들어야 했던 수백 년 전의 불파겐에 대한 이야기는 소문까지 곁들어져서 더 흉포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강제 이주는 덤이고, 잡도둑도 평생 하늘을 못 보며 광산에서 죽어야 한다는 등.

무서운 소문이 많았다.

우는 늙은이도 뚝 그치게 만드는 것이 불파겐의 악명이었다. 물론 드낙의 앞에서 싫은 티를 낼 수 없었기에 경악하는 표정도 빠르게 잦아들었다.

“겨, 결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잘 달리다가 불파겐이라는 큰 바위에 걸려 넘어진 촌장이 허둥지둥했다. 드낙은 그를 진정시켰다. 도둑이 제발 저리는 모습이었지만, 드낙은 불파겐이라는 이름이 당황한 것이라 여겼다.

사실 이렇게 세월이 지나서 붉은 머리카락을 보고 불파겐이라고 연관시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진정하시고, 내 말대로 하시오.”

“예, 예!”

촌장이 서둘러 굴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 드낙은 곧바로 〈외눈 다크 트롤〉에 대해서 언급했다.

“놈이 계곡으로 들어왔는데, 그럼 〈쌍둥이 성채〉는 어떻게 된 거요?”

“아크온 경께서 혼쭐을 내어서 도망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소. 그것도 보름 전이니, 지금은 여기에 없을 것이오.”

모두 추측뿐이었다. 드낙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북부에서 뛰어놀던 놈이 남쪽으로 크게 내려왔다라··· 그리고 지금은 없다?”

드낙의 의심에 바루익이 단정 지었다.

“있었다면 이 마을이 살아있었겠소?”

“그건 그렇소만. 행동이 이상하지 않소?”

“행동이···”

바루익이 생각에 빠지자 드낙이 바닥에 손가락으로 대충 지도를 그렸다.

“보시오. 보통 몬스터라는 것은 떠돌아다녀도 정도가 있지 않소?”

드낙이 지도를 엉망으로 대충 그리자 바루익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조금 새어나갔다. 그도 도와서 그럴듯한 흙지도를 만들어냈다.

“내가 출발하기 전의 트롤은 〈횃불 성채〉에서 서쪽 부근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했소. 아시다시피 평범함보다는 조금 덜떨어지던 〈외눈 트롤〉이 그놈이오.”

그곳에서 시작되어 토성을 무너뜨렸다. 정서 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후 방향을 중구난방으로 잡으며 개난동을 부리며 마을 여럿을 부수었다.

“여기 이후로는 모르고, 보름 전에는 몽펠리에의 동북쪽 계곡까지 내려왔다는 것을 정리하면···”

방향성 없는 것은 둘째치고, 괴이할 정도로 이동한 범위가 넓었다.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거겠소?”

드낙의 물음에 누구 하나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추측이라도 해보시오.”

그렇게 말하며 자신부터 의견을 대충 던졌다.

“〈악마의 기운〉을 더 뻗어나가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소.”

드낙의 상상력이 빚어낸 그럴듯한 소리였다. 특히 돼지 멱따는 소리를 하면서 난동을 부린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었기에 생각해낸 것이었다.

“확실히 그럴 수 있소만, 그렇다면 놈이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소? 이것은 극히 위험한 결론이오. 악마의 힘을 이용할 줄 안다는 소리이기 때문이오.”

혼혈 주제에 악마의 힘에 지배당하지 않고, 이겨냈다는 뜻이었다. 때를 놓친다면 혹은 놈에게 큰 경험이 쌓인다면 〈트롤 토벌〉이 아니라 〈악마 토벌〉이 될 수도 있었다.

그 때가 되면 귀족이 싫어해도 성전대(聖戰隊)가 꾸려질 것이다.

“아니면 간악한 존재들이 그 트롤을 조종하는 것일 수도 있소. 계획적으로 트롤을 이용하는 것이오.”

“흑마법사!”

바루익의 말에 드낙이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찰떡같이 경우가 맞아떨어졌다. 횃불 성채의 근처에서 암약했던 존재들 아닌가? 그 그림자조차 잡지 못했지만 이번 일 또한 그들의 소행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싸이클롭스〉에 트롤 아니오? 그들이 감당이 가능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소.”

“암시 정도는 걸 수 있었을 거요. 야만적인 몬스터 아니오? 가을이 다가오니 남쪽으로 이동하려는 습성일 수도 있소.”

“어째서 그렇소?”

“털이 적은 것이 트롤이오. 북쪽보다는 남쪽이 살기에 좋소.”

들어보니 그것도 그럴듯했다. 하지만 북쪽에서 크게 난동을 부렸던 것이 있었기에 깊게 수긍하기란 힘들었다.

온갖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대부분 뇌피셜뿐이었다. 드낙은 뭔가 몬스터 전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있잖아? 몬스터 전문가.’

던전 속에서 온갖 존재들을 부하로 삼아 자신만의 던전을 꾸리고 마신(魔神)을 숭상하는 〈마신장(魔神將) 오우거(Ogre)〉를 토벌하여 그 업으로 강력한 혈통을 탄생시킨 가문의 가주가 드낙에게 있었다.

‘세파리아스에게 물어보면 되는 것을 왜 지금까지 안 물어봤지?’

드낙은 자존심 따위도 없었기에 막힘없이 물어볼 수 있었다. 지금은 물어보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많지만, 지금도 물어보면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법이었다.

하물며 이런 세상에서는 질문이라는 것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드낙이 이렇게 스스로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묻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보통은 귓속말로 자기 파벌끼리 싸고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혹은 독대를 통해서 따로따로 다 묻고, 조율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의견을 나누면 싸우기 때문이다.

똑 똑 똑.

그때 밖에서 매우 정중하게 노크 소리가 천천히 들려왔다. 순찰자 하나가 문을 열어주니 장정들이 다섯이나 우르르 들어왔다.

“그렘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드낙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풀어질 기색이 전혀 없었다. 촌장 맥안스가 불파겐이 이곳에 있음을 말했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담이 작은 사람은 손이 저려와서 계속 주무르고 있을 지경이었다.

“이거 왜 이렇게 긴장하였나?”

“죄, 죄송합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는 모습에 드낙이 광대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미소를 지었다.

‘뭘 그렇게 쫄아?’

드낙이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보며 두려움에 떤다는 것은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통수를 안 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물을 한 잔씩 돌리고, 조용한 시간을 한 번 보내고 나서야 드낙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렘린의 공격은 대개 어떤 식으로 시작이 되었는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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