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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71화 (270/1,239)

0271 <-- 구불 계곡을 지나 -->

〈봄녘 마을〉에서 전폭적인 도움을 받았다. 기사가 있는 곳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받아낼 수 있었고, 무엇 하나 주지 않았다.

몽펠리에 령까지 미치고 있는 〈외눈 다크 트롤〉의 위세 때문이었다.

그것을 해결하러 멀리서 온 드낙에게 값을 받고 보급을 해주려는 생각을 지닌 자들은 없었다. 그들이 착한 것이 아니라, 그냥 드낙의 무력이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또 납득할만한 상황이기도 하였다.

강자에게도 갑질을 하거나 합리적으로 값을 내라고 하는 사람은 잘 없을 수밖에 없다.

그 이점을 드낙은 말 한마디 없이 받을 수 있었다. 알아서 잘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몽펠리에의 기수들까지 동행하고 있었으니, 코 한 번 풀지 않고, 얻어냈다.

“조심하시오. 〈구불 계곡〉은 조용한 곳이지만, 악마의 기운이 풀어헤쳐졌으니 어떻게 변해있을지 모르오.”

〈다이로 에드가(Dario Edgar)〉의 말에 드낙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소. 걱정 마시오, 다이로 경도 조심하시오.”

드낙이 선두로 향하자, 다이로가 바루익에게 눈을 돌렸다.

“위험한 길을 가는데, 철기(鐵騎)를 대동하지 않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악마의 기운이 이렇게 뻗을 줄 누가 알았겠소? 투창으로 이겨내야지 않겠소.”

속도전으로 토벌을 끝내려고 했기에 드낙을 빠르게 불러오기 위해 경기병의 무장 상태를 지닌 채 간 것이 바루익과 기수들이었다. 자연히 그 상황이 변화하여 아쉬움이 남게 되었다.

“조심하시오. 항상 고위 기사를 잘 따르시고. 분열된 움직임보다는 잘못되었어도 하나 되는 움직임이 최선임을 기억하시오.”

“걱정 마시오. 드낙 경은 믿을만한 인물이오.”

짧은 악수를 나누고 바루익이 말에 올라타서 움직였다. 다른 기수들이 고개를 숙이며 다이로 경에게 예를 보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짐마차 한 대가 따라 움직였다. 짐마차의 옆에는 여분의 바퀴가 덜렁거렸다.

그들은 〈세 개의 강가〉에서 벗어나 북쪽으로 완만하게 굽어진 길을 걸어나갔다. 피난민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구불 계곡〉은 인구의 유동성이 아주 낮은 지역이었다.

한적한 나날이 될 것 같았지만, 갑자기 까마귀가 계곡 위로 수백 마리가 지나가던가, 괴이한 일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우왁!”

자다가 쥐 떼가 우르르 지나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모두 흥분해서 달리다가도 나무에 부딪쳐서 그대로 죽어버리기도 해서 지나가고 나서는 죽은 쥐도 많이 보였다.

“점점 북쪽으로 가고 있으니 그런 것 같습니다.”

메디오 지방에서도 동쪽에 치우쳐진 곳에서부터 왔기 때문에, 북부의 북쪽에 들어서는 기분이 확 들어섰다. 점점 진짜 북쪽의 상황이 어떤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3일이 지나서 〈구불 계곡〉의 초입에 들어설 수 있었다.

골짜기로 길이 여럿 나있었고, 푯말이나 지름길 등 지도가 없으면 가는 길도 힘들었다. 물론 군사적 목적용 지도를 다이로에게서 받은 것이 바루익이었다. 다이로 에드가 또한 〈기사 마차〉를 대동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 도움으로 들어가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이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골짜기로 들어가면 마땅히 장소가 없기 때문이오.”

바루익이 지도를 보면서 야영할 곳을 찾았다. 바로 초입에 자연 동굴이 있었다. 깊이도 깊지 않고, 넓기도 넓어서 딱이었다. 폐쇄적이지 않은 동굴이었기에 야생 동물이나 몬스터가 살지도 않았다.

동굴은 길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었다. 누구나 잘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입구가 넓었다. 하지만 도착한 이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무슨 냄새가 이렇게 고약하지?”

이스핀이 혼잣말을 하며 서둘러 깃털 투구를 썼다. 배가 고파서 성질 급하게 바로 벗었던 그였다.

드낙은 주변을 살폈다. 바닥이 질척했는데, 오물로 가득했다.

“이게 대체 무엇이오?”

“박쥐 오물이오. 이런 동굴에는 박쥐가 안 사는데. 대단히 이상한 일이오. 한 번 동굴을 훑어보는 것이 좋겠소.”

바루익은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수색을 할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그대로 들어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나무 밀대를 만들어서 바닥을 대충 치우고, 들어가야 하오.”

드낙은 흙에 밟은 박쥐 똥을 닦아내고는 나뭇가지를 대충 뜯어서 넝쿨로 엮어 밀대처럼 만들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밑창을 직접 손이나 물로 똥을 씻고 내고 싶지 않은 이들이 많았고, 박쥐 오물 냄새는 그야말로 지독했기에 그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걸어갈 곳만 밀어서 똥을 적당히 치우고, 수색을 시작했다.

의심하고 경계심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여깁니다!!”

성질 급한 이스핀은 제대로 수색하는 둥, 마는 둥하며 돌아다녔지만 남들보다 넓은 곳을 빠르게 수색했고,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였다.

그것은 토템 같은 것이었다.

“주술 토템이오?”

“원시 토템 같기도 하고··· 굉장히 조잡하지만 의미는 담겨 있는 것 같소.”

앙상한 무언가 작은 소 동물의 뼈를 붙여서 만든 작은 옷걸이 같은 곳에 인간 두개골 3개가 걸려있고, 옷걸이의 밑, 가장 굵은 부분에는 족히 100장이 넘는 박쥐 날개가 펼쳐진 채 박제되어서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것만 해도 기괴한데, 억지로 만들어낸 굳은 피의 작은 고드름이나 손톱의 때같이 조금 올라온 피를 뭉친 점들은 일부러 그렇게 장식을 했다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본 적이 있소?”

드낙의 말에 이스핀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기수 중에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렘린(Gremlin)〉입니다. 보기 힘든 몬스터인데, 악마의 힘 때문에 여기까지 나온 듯합니다.”

“그렘린?”

드낙이 모르는 눈치를 하자 바루익이 설명했다.

“아주 큰 박쥐의 날개를 지닌 휴머노이드 종족이오. 몬스터나 다름없지만, 온갖 물건을 다루고, 생각도 하는 놈들이오. 박쥐 날개를 사용한 것을 보니, 그렘린이 확실한 것 같소.”

“그럼 〈원시 토템〉입니다. 함부로 부수어서는 안 됩니다.”

괴이쩍고, 목적 없는 〈표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원시 토템〉의 주술이었다. 그것은 부수는 자에게도 미칠 수 있었다. 가볍게는 불운부터 심하게는 병이나 상처, 현실 같은 악몽으로 뻗어나간다.

“마력으로 주력을 완전히 박살을 내야 하는데, 저희들에게 마법사가 없으니.”

바루익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무슨 목적으로 만든 것은 모르겠지만, 인간의 두개골을 사용했기에 사람들에게 안 좋은 것이 분명했다.

“마력이라면 내가 사용할 수 있소.”

드낙 또한 꺼림칙한 것이라서 파괴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양손에서 마력을 뿜어내어 단번에 원시 토템에 마력을 집어넣었는데, 스파크가 튀면서 그대로 원시 토템이 무너졌다.

“생각보다 큰 주력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었던 듯하오.”

드낙이 그 허무함에 가볍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을 본 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기사가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곧 그 마력을 손에 쥔 경우가 〈혈통〉에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불파겐. 괜히 명문가가 아니군. 그렇게 멸문을 당했는데도, 그 피는 아직도 희석되지 않았다.’

‘〈기사 살해자〉의 이면 속에는 마력의 운용이 있었나?’

‘매우 중요한 정보다. 운이 좋군.’

드낙이 지닌 무서움을 한 가지 얻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아군이었지만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었다. 항상 그러한 방어 기제를 상정해 놓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나중에 칼에 목이 따이고 나서는 늦는 것이다.

서로 앞으로는 웃어도 뒤로는 상대의 약점을 캐내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했다. 드낙은 몽펠리에에 닿은 사람이 없었기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정보 단체를 만드는 것은 극히 위험했기에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매체에서는 정보 단체를 아주 쉽게 굴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도리여 역수를 잡으면 자충수가 되어버리는 것이 정보 단체였다.

그 무서움을 드낙은 잘 알았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렇게 〈원시 토템〉을 부수고, 떨어진 곳에서 야영지를 만들었다. 동굴은 박쥐 오물 냄새가 심했기에 잠조차 못 자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투구가 무거워도 이제는 익숙해진 드낙은 상관없었지만 잘 때는 이스핀도 깃털 투구를 벗고, 흉갑을 벗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신갑주에서 아예 나오지 않으려는 드낙이 이상한 사람같이 보일 정도였다.

‘탈착이 귀찮아.’

하루에 한 번 새벽 수련을 마치고 벗어서 몸을 씻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루 두 번 씻는 것은 힘들었다.

검은 연기가 그를 덮쳤다. 매번 꾸는 검은 꿈이었다. 오늘의 스케줄은 흑마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변종 키메라 포낙서스〉가 지닌 마법 지식은 〈흑마법〉 뿐이었지만 그래도 마법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 체계를 머리에 익히는데 좋은 수단이었다.

“매직 완드와 매직 스태프는 크기로서 구분합니다. 작대기와 지팡이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사람은 수련할수록 마법을 〈간략화〉하여 빠르게 사용 가능하지만 사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크기가 크면 더 큰 마법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이군.”

“예. 맞습니다. 하지만 효율적인 마법진을 연구하면 작아도 큰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기에 방심하면 안 됩니다.”

드낙은 다양한 마법 지식을 머릿속에 넣었다. 공부할 때는 잘 기억나지 않았던 것임에도 이런 신기한 내용을 들으면 바로바로 기억이 되어서 마법 공부할 맛이 났다.

다시 하루를 걸어 그들은 〈낮은 계곡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약간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마을이었다. 자연적인 동굴에 인력을 투입하여 깊이도 깊어 보였고, 입구의 밖에는 해자처럼 빗물이 다른 지하로 흘러가도록 만든 장치도 존재했다.

“기사님이시다!!”

헤져있지만 말끔한 옷을 입고, 그럭저럭 깨끗한 모습을 한 자경단이 소리쳤다. 그리고는 잘 씻는 것 외에는 열악한 환경인 것을 보여주듯이 찌그러진 냄비 같은 것을 쥐어들어서는 땅땅 처대었다.

조잡한 종보다 더 형편없는 시스템이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수로 시스템 또한 엉망이라 사람의 힘으로 다리를 놓아야지만 반지하인 마을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깊은 구덩이가 그들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밧줄이 팽팽하게 놓이며 서서히 다리를 내려놓았다. 그곳을 통과하자 남자들이 여럿 보였다.

“저희 마을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기사님이 여기까지 오신 것은 처음입니다.”

모두가 흥분한 채 말했다. 드낙이 손을 들어 올리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촌장은 어디에 있는가?”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남자 중에서 그나마 나이가 가장 많은 이가 손을 들며 외쳤다. 반대는 없었다.

“킁킁. 킁킁킁!”

도노는 계속해서 주변 냄새를 맡았다. 그 모습에 안내를 하던 마을 사람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씻는다고 씻었지만 악취는 마을에 좀 남아있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나?”

“요즘 그렘린 녀석들이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아직 죽은 사람은 없지만, 다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럴 수가.”

드낙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눈은 흥미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촌장은 대단히 늙은 자였다. 지팡이로 근근이 움직일 정도였지만,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법도, 무엇도 없는 곳에서 수백 명을 관리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늙은 모습과는 다르게 말도 아주 빨랐고, 성질이 급해 보였다.

그는 벌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질을 주러 간 자경단이 드낙이 노크 없이 안으로 들어오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반면 촌장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가 빠르게 올리며 말했다.

“기사님을 뵙습니다. 헌데, 밑으로 오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계곡 기사〉님이 아니시군요.”

“계곡 기사?”

드낙의 의문에 바루익이 대답했다.

“〈조용한 계곡 성채〉의 성주입니다. 인망이 두텁습니다.”

“거기에 몽펠리에 영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기사님이시라니, 그런 분이 왜 이런 곳에 오셨는지···”

그 모습에 바루익이 호통을 쳤다.

“나는 몽펠리에의 기수, 바루익 블라인스다. 드낙 경은 트롤 토벌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왔는데, 그 무슨 말이냐? 죽고 싶은 것이냐?”

촌장은 그 위협에 급히 고개를 숙였다.

“겨, 결코 그런 뜻으로 말씀을 드린 것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다가 발발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것을 자경단이 받쳐주었다. 그 모습에 바루익은 그런 사람에게 성을 냈다는 것에 자연히 부끄러움이 들어서 괜히 자경단을 나무랐다.

“가서 침대에 눕혀라. 몸이 성하지 않는데, 어떻게 아직도 촌장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느냐?”

“그, 그것이 고집이 있으셔서···”

자경단이 횡설수설했다.

드낙은 기가 차지도 않았다. 말하는 것만 봐도 정정한 것인데, 바루익에게 한 소리 먹으니까 바로 액션을 취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촌장은 자경단의 부축을 받으면서 그대로 드러누워버렸다.

기가 막힌 노릇이었지만, 꾀병인 것을 알아내기도 어려웠다.

다음 날을 기약해야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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