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9 <-- 몽펠리에 령 -->
다양한 추측들이 오고 갔다. 자고 있던 이스핀도 벌떡 일어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수인족 아닙니까?”
“짐승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수인족의 짐승 냄새는 인간의 모습에서도 풍기는 냄새였다. 또 애초에 그들은 남부 왕국에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문헌으로 혹은 이야기꾼으로 정보가 나돌 뿐이었다.
“식인종 아닙니까?”
“식인종은 다른 거 안 먹습니까?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더더욱 자신들을 숨기는데 능숙할 겁니다.”
우엉을 싫어하는 화전민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나무껍질도 배고프면 먹는 것이 화전민들의 삶이었다.
“늙은 사람이 없으니, 흡혈귀나 그런 계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고위 몬스터가 혈색이 저리 파리합니까? 행색은 또 어떻고···”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드낙은 실로 풍부한 판타지 지식을 맛볼 수 있었다. 온갖 것들이 거론됐다. 〈도플갱어〉 또한 이야기 되었는데, 모두 코웃음쳤다. 모습을 훔쳐도 화전민들의 모습을 훔쳤다는 것이 이유였다.
“혹, 네크로맨서의 농간이 아닙니까?”
“반 시체(half dead body) 라면 가능성이 있지만, 식재료를 들고 다니지 않았습니까?”
“미리 준비하면 됩니다. 인간을 사냥하려면 그 정도의 위장을 네크로맨서는 쉽게 생각할 것입니다.”
〈구울 묘지기〉의 토벌에 있어서 네크로맨서의 그림자도 못 보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네크로맨서의 소행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인간의 의심은 사람 하나 만들어내는 것도 쉬웠다.
하지만 결국 증거를 얻기 위해서는 족쳐야 했다.
‘중세의 맛이 난 참 좋아.’
검은 탐욕이 드낙의 눈에서 들끓었다.
“정황상 의심스러우니, 심문을 해야겠소.”
드낙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촌장을 불러오는 게 좋겠군.”
드낙은 그리 말하며 스스로 몸을 일으켜서 제법 떨어진 모닥불로 향했다. 그곳에도 곤히 자고 있는 자들 중에 남자를 깨웠다.
“으, 으응?”
멍청한 소리를 내며 일어난 남자는 모닥불에 비치는 전신갑주를 보며 까무러쳤다.
“어헉!”
지극히 평범한 반응에 드낙은 이들이 진짜 몬스터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가서 촌장을 불러와라.”
“예? 지금 시간에 말씀이십니까?”
드낙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자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다음에 몸을 돌려 허둥지둥 촌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돌아온 드낙은 다른 일행들에게 물었다.
“또 수상한 점은 없었는가?”
뭐라도 더 건져야 했다. 하지만 모두 그 외의 수상한 점은 딱히 못 봤다고 했다.
“애초에 피난민 중에 노모 하나 없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미 충분하다고 봅니다.”
족쳐보면 될 일이었다. 말이 심문이지 사실상 고문에 가까웠지만, 기득권층, 칼을 쥔 자들의 방식은 그게 일반적이었다. 의심스러우면 쳐죽이고 보면 될 일이었다.
드낙은 그 방식에 토를 달지 않았다. 지문이니 뭐니 그딴 게 없는 세상이다. 더군다나 〈외눈 다크 트롤〉의 악마의 기운으로 온갖 것들이 날뛰고 있는 것이 현재 북부의 상황이기도 했다.
보기 힘든 것들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더더욱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드낙 외에는 모두 그러한 배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안 오는 것을 보니, 확실히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가 봅니다.”
드낙이 촌장을 이런 야심한 밤에, 그것도 서로 독대가 끝나고 불렀다는 것만으로도 도둑이 제발 저리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켕기는 것이 있었기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답게 촌장은 사람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남녀 구분 없고, 어린 소녀나 소년도 있었다. 모두 두툼한 돌덩이를 쥐고 있거나 물 먹인 곤봉을 손에 들고 있었다. 롱소드로 강하게 내려쳐도 절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물 먹인 곤봉이었다.
저렴하고, 훌륭한 무기였다.
흩어질 수 없었으므로 뭉쳐있던 드낙의 무리 또한 일어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닥불의 형편없는 시야거리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윤곽만으로 볼 수 있었고,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올 때 튀어 오른 불씨에 언뜻 확실하게 보일 뿐이다.
“이거, 왜 이렇게 사람들을 몰고 왔나? 당황스럽네.”
드낙의 말에 촌장이 흘흘 거리며 웃었다. 30대 중반의 나이로 보였지만 웃는 소리를 보면 늙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촌장을 불러라라는 전략이 제대로 통했는지,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정체를 숨길 생각조차 안 하는 듯했다.
“전신갑주 속에 꽁꽁 숨어있어서 그리 당당하느냐?”
“뭣?!”
드낙이 그 발언에 리액션을 취해주면서 맞장구를 찰지게 쳐주었다. 리액션 하면 현대인이었다. 흥이 돌았는지 촌장이 구구절절 떠들어대었다.
“너희들은 우리를 몬스터라고 부르지만, 우리에게도 너희들은 몬스터다. 모든 것을 인간의 잣대로 생각하지 않느냐?”
그 말을 하면서 촌장이 들고 있는 횃불을 휙 하고 던졌다. 그나마 그들을 가리고 있던 횃불의 불빛마저 사라지고, 그들에게 어둠이 가라앉았다.
“···!”
드낙의 눈이 조금 커졌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피난민들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기 때문이다. 마치 야시경으로 보는 동물의 눈처럼 빛이 났다.
키키킥.
샤아악!!
짐승처럼 소리를 내고, 겁을 주려는 듯이 흉악한 소리를 내는 자들이 휙휙 움직이면서 포위를 하기 시작했다. 네발로 달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두발로 뛰는 자도 있었다.
이스핀이 모닥불에 불이 붙은 장작 하나를 집어 들어서 훌쩍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불이 주변을 조금 밝혔다.
쩌즈즉.
손목에서부터 피부가 쩍 갈라지면서 길쭉하고 날카로운 뼈를 뽑아내는 여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시발.’
자신과 떡을 쳤던 여자였다. 드낙은 왜 이렇게 늦었냐고 하겠지만, 그 짓(?)을 한다고 늦은 것이었다. 여자는 이스핀과 눈이 마주치더니 입을 헤하고 벌렸는데 혓바닥이 두 개는 더 있었다.
위장용 혓바닥은 평범하게 있었지만 나머지 두 개의 혓바닥은 마치 날카로운 가시를 다닥다닥 붙인 채 길쭉하게 늘어나서는 서로 뒤엉켰다.
“우읍.”
이스핀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러더니 기어코 안에 것을 게워냈다.
“클클! 꼬락서니 하고는!”
촌장이 그것을 비웃었다. 드낙은 그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면서 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뭔데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느냐? 기사를 감당할 놈들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그 말에 촌장을 비롯한 다른 자들이 낄낄거렸다. 진흙 속에서 질척거리는 저질스러운 웃음이었다.
“너와 함께 맛있게 술을 마시지 않았더냐? 그 술잔에 독이 있는 줄은 몰랐겠지. 이제 곧 약효가 올라올 것이다. 해독제를 마실 시간은 주지 않을 것이다.”
드낙이 납득했다. 먼저 선수를 친 것은 저쪽인 것이었다. 그때, 바루익이 정보를 흘렀다.
“뱀피(Bampi)라는 것들이오. 흡혈귀에 물렸지만 그들에게 버려진 뱀파이어라고 보시면 되오. 수준 낮은 것들이지만, 독을 먹이다니···”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모두에게만 먹이지 않고, 희생이 조금 있더라도 확실하게 드낙만 노린 것만 해도 아주 간악했다. 완벽한 계략보다는 성공한 계략을 원하는 모습은 실로 음흉하기 짝이 없었다.
“독은··· 괜찮으시오? 목함에 해독제가 있는데, 먹어야 하는 것 아니오?”
“걱정 마시오.”
‘열등한 뱀파이어라.’
〈뱀파이어 클랜〉에 들어가지 못하고 버려진 것들이었다. 클랜에 따라서 흡혈귀들의 노예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아예 클랜에 들이지 못하는 뱀파이어들도 있었다.
사람마다 흡혈귀에게 물려도 뱀파이어가 되지 못하고 열화 된 인자가 꽃피워져서 뱀피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은 뱀피들의 무리였다.
“처음 보는 놈들이라, 조심해야 할 것이 뭐가 있소?”
뱀피들은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있었다. 기사가 독에 중독되어 쓰러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혈력(血力)의 사용이 자유롭지는 못해도 행동에 녹여져 있습니다. 보통 사람보다는 힘이 강합니다. 또 양쪽 손목에서 뼈로 된 검이 튀어나와있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손에는 무기를 쥐고 있으면서도 손목에서 툭 튀어나온 날카로운 뼈는 리치도 길었다. 그들과 싸워보지 않으면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싸우는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매우 조심해야 했다.
“자기 동족들에게도 버려진 놈들이 인간이 놓은 길에 나타나다니. 싸이클롭스의 기운이 실로 대단한 것 같소.”
“그렇기에 토벌도 쉽지 않은 상황이오.”
트롤 토벌이 괜히 엎어진 것이 아니었다.
드낙은 숨을 들이켜며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남들은 모르는 소리를 외쳤다.
“우르사아아아!!!!”
“버텨라! 기사와 맞상대하지 마라!”
그렇게 소리를 친 촌장 또한 골검(骨劍)을 손목에서 툭 튀어나오게 한 뒤에 빠르게 도망쳤다. 수면제를 치사량 이상으로 집어넣었다. 잠에 빠져들면 투구를 벗겨서 죽이면 끝이었다.
“〈교차하는 결빙 구역(Crossing Frost Zone)〉.”
사아아···
하지만 숨을 거칠게 들이쉰 촌장이 기침을 쿨럭했다. 지나칠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속으로 들어왔고, 거칠게 기침하면서 몸이 순간적으로 비틀거렸다.
쩌저적!
얼음이 튀어나와서 그의 허벅지를 날카롭게 찌르고, 발밑부터 얼음이 차오르며 달라붙었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서 얼음을 부셨지만 눈썹에 서리가 끼였다. 입술이 새파래지면서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덜덜 떨렸다.
“윽?!”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로 차갑게 식은 공기가 그를 뒤덮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 있는 8마리의 뱀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으···”
굵직한 얼음이 허벅지를 꿰뚫었지만 소리도 크게 내뱉지 못할 정도였다. 폐가 단단히 얼어버렸다. 심장 또한 느릿느릿하게 뛰기 시작했다. 피가 돌아도 산소가 없으니 손발이 저려왔다.
눈이 아찔해질려는 순간에 단단히 솟아오른 얼음의 파편이 사방팔방으로 깨어져나갔다.
파자자작!
촌장은 머리 밑의 꽁꽁 얼음으로 뒤덮힌 몸이 박살이 나는 것을 느끼며 드낙을 노려보았다.
‘어째서, 독이 듣지 않은거지?’
“끄악!”
얼음 파편 중 엄지손가락만 한 것에 뱀피 하나의 눈에 그대로 박혔다. 박히자마자 뱀피가 소리를 지르면서 상체를 숙여서 괴로워했다.
퍽!
그런 놈의 머리통을 그대로 무릎으로 받아버린 드낙이 롱소드를 휘둘러서 목을 취했다.
서걱!
목이 잘렸지만 피는 쏟아지지 않았다. 죽은 시체처럼 피가 없었다는 것이 맞았다. 혈액의 대부분이 〈혈력(血力)〉으로 변환되기 때문이었다. 혈색이 파리한 것도 흐르는 피가 최소한으로 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심장에 몰려있는 혈력이었기에 심장을 도려내면 피가 쏟아져 나오겠지만 목이 잘렸기에 시체가 목 잘리는 광경과 비슷했다.
얼음 구역에는 8마리가 휘말렸고, 얼음 파편에 경중상을 입은 뱀피들은 15마리가 넘었다. 다수 마법 하나로 23마리를 처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좋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무엇보다 생각보다 공기가 먼저 얼어붙었기에 효과가 매우 빨랐다. 공기부터 얼고 나서 얼음 송곳이 튀어나오기에 회피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며 더불어 얼음 송곳 외에도 얼음이 발부터 감싸면서 묶었기에 아주 강력한 다수마법이었다.
‘역시 마법은 써봐야 한다니까. 생각보다 최상급 마법이네.’
차드득!
드낙이 덤벼들자 피하기는 글렀다고 판단한 뱀피가 서둘러 곤봉을 휘둘렀다. 손목에서 돌출된 골검의 끝이 드낙의 강철 목 보호대를 긁었다. 하지만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콰직!
“크아!”
그가 뱀피의 발을 밟아버리자 뱀피가 온몸을 크게 들썩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경직된 뱀피의 머리채를 잡아서 그대로 무릎이 있는 곳으로 잡아당기며 무릎을 순간적으로 폭발적으로 발로 박차며 들어 올렸다.
퍼석!
두개골이 그대로 박살이 나며 액체가 별로 없는 새하얀 뇌수가 터져나갔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이었다. 한 손으로 잡아내리고, 무릎으로는 올려 찼으니 그 충격량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파이터들도 감히 사람에게 쓰지 못하는 짓을 드낙은 서슴없이 행하였다.
“언제 쓰러지는 거야! 이 빌어먹을 촌장 새끼야!”
뱀피들이 단번에 예기가 꺾여서 소리를 질러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드낙이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추격해서 섬멸하라!”
“와아아아!!!”
다수 마법으로 23명을 전투불능으로 빠뜨리고, 8명을 순식간에 격살하여 31명을 잡아 쳐죽인 드낙이 도망치는 뱀피들을 보며 대인마법은 쓰지 못했다. 아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음 파편은 피아 구분이 없었다.
드낙이 무시무시한 신체능력을 위시하며 도망치는 뱀피들의 등을 베고, 허벅지를 찔렀다. 도노는 그대로 도약하여 목을 물며 자신의 체중으로 쓰러뜨리며 고개를 털어대었다.
낚시에 성공한 대어가 펄떡거리듯이 뱀피가 버둥거렸지만 뒤로 엎어졌기에 속수무책이었다. 팔이 360도로 꺾이지 않는다면 도노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카이야는 곳곳을 날아다니며 도망자가 있는 곳에서 소리를 질러대었다.
“저 개 같은 까마귀가!!”
뱀피 하나가 수풀 속에 숨어있다가 카이야가 나뭇가지 위에서 카악 거리면서 소리를 질러대자 이스핀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욕을 하며 돌을 이스핀에게 던지며 도망쳤다. 이스핀은 어둠 속에서도 돌을 가볍게 검으로 쳐내고 뱀피를 쫓았다.
허망할 정도로 죽어버렸지만 평범한 기사였다면 당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바루익은 특히나 독이 듣지 않는 드낙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몽펠리에 또한 파이룬 가문의 갑옷 성능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독에도 저항이 있나? 무슨 혈통이 저래?’
인간 같지 않은 드낙의 모습에 두려움보다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사냥은 허망할 정도로 쉽게 끝이 났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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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다양한 의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