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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68화 (267/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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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은 다음날 곧바로 출발을 준비했다. 많은 것들이 주어졌다. 모두, 파이룬 가문의 것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것을 드낙은 거절했다. 너무 받는 것도 안 좋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게실리안은 그것도 좋다며 넘어갔다.

이미 충분히 내어줬기 때문이다. 선두를 달렸으니 그것으로 족했다.

“번쩍번쩍하십니다.”

이스핀 부대장이 다가와서 드낙의 새로운 전신갑주와 투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드낙이 쓰던 〈깃털 투구〉는 이스핀에게 주어졌다. 또 그는 드낙의 호위답게 게실리안 파이룬에게서 흉갑을 하사받았다.

푸르뎅뎅한 흉갑은 뭔가 멍이 든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흉갑이었다. 색이 이상하다고 여기는 자는 드낙 혼자만의 생각이기도 했다.

‘내가 드디어 흉갑과 마법 투구를 써보는구나!’

이스핀은 희희낙락했다. 중고품이라도 마법 투구였다. 경량화가 깃든 깃털 투구는 정말로 가벼웠고, 때때로 쓰고 있다는 기분도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투구를 써도 안 쓴 것처럼 모든 것이 더 잘 보였다.

사실 그냥 눈으로 보는 것보다 시야각이 넓은 것이 〈마법 시야〉였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몽펠리에 기수〉들은 특별히 받은 것이 없었다. 바루익 블라인스가 게실리안의 덫을 밟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저 눈감아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었다.

순찰자들은 양질의 화살을 15발씩 총 30발을 받았다. 전에 쓰던 화살의 화살촉이 금이 가도 양질의 철을 구하지 못해서 그대로 쓰고 있었는데, 큰 다행이었다. 물론 〈특수 목적용 화살〉은 보유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순찰자인 것을 숨겨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 인원은 〈세 개의 강가〉의 초입인 〈봄녘 마을〉로 향하였다. 〈세 개의 강가〉를 그대로 경유하면 몽펠리에의 중심인 영주성으로 향하지만, 게실리안의 조언을 들어 계곡으로 빠져서 동북으로 향하여 곧바로 〈쌍둥이 성채〉에 도달하는 것이 드낙의 선택이었다.

길을 걸은지 2일이 지났을 무렵, 도노가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적이 없었으므로 무언가 흔적을 발견한 것이 분명했다.

“대기!”

몽펠리에의 기수들만 남고, 순찰자를 좌우로 이동시킨 다음에 이스핀과 함께 드낙이 도노를 따라갔다.

길을 벗어나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투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유인당했군.’

인간이 내몰렸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혈흔의 거리가 시체로부터 짧았다. 순식간에 전투가 결정 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기습.’

기습은 일반 짐승도 가능하지만, 유인하는 것은 어렵다. 휴머노이드 종족 혹은 도적들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시체들의 부산물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아서 휴머노이드 종족과 도적들은 아니었다.

약탈자들이 물건을 놔두고 간 것이기 때문이다.

“시체를 확인하라. 사병들은 주위를 경계하고!”

대답은 일절 없었다. 혹여나 자신들의 위치를 들킬까 봐서였다.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멍청한 것들은 전신갑주를 보고도 몽둥이 하나 들고 덤벼들 수 있었다.

방심은 곧 죽음이다.

“민병대 같아 보입니다.”

이스핀이 바닥에 떨어진 붉은색의 깃발을 들었다. 지금은 오크의 손에 떨어졌지만, 북부 메디오 지방의 〈메디오 인(人)〉들의 깃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붉은색의 깃발이었다.

서툰 솜씨로 자수가 되어있었는데, 붉은색으로 된 독수리였다. 독수리의 모습을 따기 위해서 하얀색 실이 쓰인 것이 전부인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자수였다.

“민병대의 깃발은 붉은색의 독수리인가?”

드낙의 말에 이스핀이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가 지웠다. 역사를 몰라도 이렇게 모르다니, 충격이었다.

“〈돌로랑 가문〉의 깃발 아닙니까. 멸문 당한 이후로 민병들의 깃발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 신기하네.”

“이걸 모르는 드낙 님이 전 더 신기합니다.”

드낙이 이스핀을 노려보자 그가 찔끔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오크의 손에 떨어졌지만 백설산맥의 초입을 단단히 틀어막았던 가문이 돌로랑 가문이 아닙니까? 그때만 해도 오크의 그림자도 못 봤다고 하더군요.”

“잘도 아네.”

“이야기꾼들이 가장 돈 벌기 좋은 것이 돌로랑 가문의 일화들입니다. 하하. 현실과 극명하게 갈리지 않습니까.”

그들이 잡담을 떠들 때, 순찰자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뜯어먹은 흔적도 없고. 대체 무슨 경우인지···”

드낙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체를 자세히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한데?’

아무 시체나 다름없었다. 평범한 차림새에 단검 하나가 무기의 전부였고, 손에 쥐고 있던 것이라 여겨지는 물 먹인 곤봉이 끝이다. 하지만 그런 민병대가 가지기에는 큰돈이 품에 있었다.

은화였다.

“은화가 나왔어. 다른 놈들의 품을 뒤져봐.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예.”

이스핀 또한 건드리는 시체마다 은화를 발견했다. 혹은 동화가 잔뜩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가 발견되었다. 모아놓고 보니 은화만 해도 25닢이 넘었고, 동화는 1200닢에 달하였다.

가진 무기에 비하면 과할 정도의 소지금이었다.

‘대체 뭐지?’

의심이 들었지만 무엇도 알 수 없었다. 일단은 시체를 모으고, 그 사이에 장작을 넣고 마른 똥을 모은 곳부터 불을 질렀다. 빠르게 불이 타올랐다. 드낙이 그 불꽃을 보고 있는 사이에 다른 이들은 불이 번지지 않게 주변을 밟거나 치웠다.

바람이 제법 부는 가을 날씨였다.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봄녘 마을로 향했다.

“아이고! 기사님!”

도중에 피난민들을 만나기도 했다. 한적한 곳에 정착한지 1년밖에 안 된 이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오솔길 산골 마을〉의 사람들이라고 자신들을 말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숫자는 50여 명으로 많다면 많았고, 적다면 적은 숫자였다.

“어디로 가는 길인가?”

드낙의 말에 그들 중 촌장이 나와서 말했다.

“봄녘 마을로 가는 중입니다. 그곳에 기사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허둥지둥 짐을 싸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 나도 그곳으로 가는 중이니, 함께 가지.”

드낙의 말에 촌장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드낙은 그의 이름조차 알고 싶지 않았기에 통성명도 하지 않았다. 무례했지만, 귀찮은 것이 사실이었다.

인원이 많아졌기에 일행은 일시적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물론 드낙, 이스핀, 도노, 카이야는 항상 붙어있는 게 일반적이었다.

저녁 시간이 되었고, 이스핀이 돈을 주고 식자재를 피난민들에게서 구하러 간 사이에 드낙은 빠르게 숲에 들어가 도노와 카이야의 도움을 받아서 새 2마리와 여우를 하나 잡아왔다.

드낙은 새 2마리를 촌장에게 건네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어찌 이런 걸 다···”

굽신거리는 그에게 드낙이 웃으며 말했다.

“피난길이 힘든데, 너무 작게 줘서 미안할 지경이다.”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감사히 나눠먹겠습니다!”

고개를 드낙이 갈 때까지도 숙이고 있던 촌장이었다. 드낙은 헤어질 때는 멧돼지라도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비루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니 동정심이 생긴 것이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기도 했다.

곳곳에 〈싸이클롭스의 기운〉으로 일반 들짐승조차 나무를 처박고 광분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이지 않게 되어버린 북부였다. 그것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악마의 혈통을 깨운 〈외눈 다크 트롤〉을 토벌해야 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드낙이 화를 내자 이스핀이 크게 사과하면서 서둘러 가져온 채소를 여럿 꺼냈다. 걸으면서 먹을 수 있을만한 건 죄다 뜯어왔는데, 그중에서도 상태가 좋은 것들이었다.

“고르다 보니 늦었습니다. 그리고 드낙님. 대박입니다. 대박!”

그가 호들갑을 떨었다.

“왜?”

이스핀이 싱글벙글해서는 말했다.

“정말 예쁜 여자를 봤는데, 갑자기 제 손을 잡으면서 ‘손이 정말 크네요.’라고 하는 겁니다. 이거 저한테 마음이 있는 것 아닙니까?”

여자 하면 사족을 못 쓰는 것이 이스핀이었다. 공과 사, 구분 없이 찝쩍거리는 것이 이스핀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쁜 여자가 왜 널 좋아하겠어? 네가 보기에만 이쁜 여자인 거 아니야?”

그 말에 이스핀이 펄떡 뛰었다.

“제 눈이 동태입니까? 횃불 성채에서도 얼마나 많은 여자를 봤는데요.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지 생각도 순수하고···”

어느새 이야기도 많이 나눈 듯했다. 그 말에 단박에 드낙이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말했다.

“그래서 늦은 거냐? 엉?”

“그게 말을 하다 보니··· 죄송합니다. 하지만 진짜 제 인연이 다가왔습니다!”

드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폭한 기질이 있는 이스핀은 여자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학대받는 것을 즐기는 여자가 아니라면 길어봤자 1개월이었다.

순찰자들도 웃었다. 몽펠리에의 기수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자를 찾다니, 대단했다. 특히 기수들의 경우에는 정신무장이 실로 대단하여 성욕이 들끓어도 우직하게 욱여넣을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드낙은 곧장 촌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해보라.”

“예.”

촌장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의 마을은 거의 화전민에 가까웠다. 산에 불을 내고 이리 농사하고, 저리 농사를 하는 식으로 매번 이주하면서 살아왔다. 그 덕에 세금 징수원을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였지만 드낙은 그냥 가볍게 넘어갔다.

‘괜히 들쑤셔서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지.’

죽여서 뭘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최단기간 내에 쌍둥이 성채로 향하고 싶은 것이 드낙이었다.

‘화전민으로 살다가 수틀리니까 관리되는 마을로 도망치다니. 재미나게 사는군.’

비아냥거리는 생각을 지니기는 했지만, 겉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별다른 위협은 없었나?”

“예? 예. 짐승이 덤벼들긴 했지만 작대기나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합심해서 불을 들이밀면 대개 지나갔었습니다.”

그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50명이나 되는 인원이었다. 자연히 그렇게 작은 위협은 넘어갈 수 있어 보였다.

그럴듯했다.

“다른 마을에 대한 정보는 〈봄녘 마을〉에 대한 것이 전부인가?”

“몇몇 피난민들과 만났었는데, 민병대를 만들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도 난리통이라 자유기사도 죽었다는 흉흉한 소문을 접한 피난민들이었습니다.”

드낙이 귀를 쫑긋했다. 민병대하면 전에 죽었던 자들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허허. 저희들이 무슨 남을 위해서 싸우겠습니까. 겁이 나서 웃어넘겼습니다. 제법 기세가 흉흉한 자들이라 겨울에 사용하려던 독주를 내어줄 정도였습니다.”

“그래? 인원은 그때 어땠지?”

“글쎄요··· 아마 열댓 명은 넘어갔던 것으로 압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것저것을 물었다. 촌장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와의 이야기를 끝내고, 일행이 있는 모닥불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드낙은 순시하던 버릇을 그대로 보였는데,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뭔가 좀 이상한데. 뭔지는 잘 모르겠네.’

께름칙한 기분에 휩싸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돌아와 있었을 때, 이스핀은 어찌 된 영문인지 골아떨어있었고, 기수들이 옆에 검을 뽑아둔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소? 검은 왜 뽑아들고 있소.”

드낙이 자연스레 앉으면서 말했다. 바루익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피난민들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도 그런 기분을 느꼈지만 딱히 뭔지를 잘 모르겠소.”

이에 바루익이 대답했다.

“늙은 자들이 하나 없습니다.”

“어린애가 있지 않소.”

“네. 하지만···”

기수 하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아까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저희는 괜찮지만, 피난민들의 식량 사정이 좋지 않은 것 같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피골이 상접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혈색도 좋지 않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여자들도 몇 보였다. 그것이 안타까워 드낙 또한 새를 2마리 더 사냥하여 내어주었다.

“그래서 제가 아주 큰 우엉을 찾아내서 한 소녀에게 건네주었는데, 그 반응이 실로 기괴했습니다.”

드낙은 좀 오싹한 기분에 휩싸였다. 뒷말을 기다렸다.

“고기가 더 좋다면서 팔뚝만 한 우엉을 바닥에 팽개쳤다가 제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것을 보고는 배가 너무 고프다면서 감사하다고 다시 줍는 것 아닙니까?”

“······”

드낙이 말을 잊지 못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배고픈 시절에는 어려도 철이 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우엉을 분별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화전민에서 고기를 그렇게 즐길 리가 없지 않습니까?”

“구경하기가 힘들지··· 그리고 고기가 좋다고 우엉을 패대기치는 것은 더더욱···”

웅성거림이 조금 일어나자 드낙이 모두 입을 다물도록 제스처를 취했다.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인가?”

그 말에 입을 열지 않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란 말인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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