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6 <-- 몽펠리에 령 -->
게실리안 지휘관이 든 양피지는 매우 길었다. 또한 고풍스럽게 양피지를 돌돌 말 수 있도록 양쪽 끝에 부착된 작대기가 있었는데, 새하얀 색으로 도색이 되어있기도 했다.
일종의 제품 인증서와 설명서가 함께 있는 양피지였고, 매우 중요하였다.
물을 마신 게실리안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얼음의 파이룬 전신갑주(Ice Faerun Full Plate Armor)〉는 전체적으로 푸른색을 지닌 갑옷이었지만 목 밑에 박혀있는 다섯 개의 블루 사파이어보다는 그 채도가 약했다. 보석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적인 채도의 저하였다.
하늘색과 바다색의 중간 정도의 색을 지닌 전신갑주와는 다르게 아름답고 선명한 바다색을 지닌 것이 블루 사파이어였다.
“대인마법으로는 〈얼어붙은 표적 독수리(Frozen Target Eagle)〉라는 마법입니다.”
크기는 사람보다 3배는 크고, 날개는 6m가 넘는 대인마법이었다.
“다수마법처럼 들리는데, 대인마법이 맞소?”
그 말에 게실리안이 웃었다.
“〈얼음과 물의 대정령〉, 〈볼라논 분지〉의 위대한 존재인 〈푸른 눈의 독수리〉의 모습을 본뜬 마법입니다. 그래서 효율이 조금 좋습니다.”
〈초월적 존재〉의 모습을 〈초월의 힘〉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었으니 효율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보다 현실에서 마법이 발현하는데 보정을 받는 것이다. 그제서야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 크기 그대로 적을 향해 쏘아지면 다수 마법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소? 날갯짓하면서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스피드가 확 살아나고, 그 뒤로는 날개를 접어 단번에 내려꽂히는 것이 FTE요.”
“거리적 여유가 있다면 회피가 가능한 것 아니오?”
드낙이 그에 대한 성능을 기대하며 물었다. 당연히 대책이 있었다.
“110도가 넘지 않는 이상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소. 또 거리가 멀어질수록 접혀진 날개가 하나로 뭉쳐져서 독수리의 머리를 지닌 창처럼 변하오. 당연히 거리가 멀수록 더욱 관통력이 강해지는 마법이오.”
드낙이 실로 감탄했다. 말 그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는 마법이었다. 섣불리 상대가 회피하려고 해도 110도 이상의 각도 변화를 주지 않으면 추적이 계속 이루어진다. 무시무시한 마법이었다.
물론 보통 마력 소비가 드는 것이 아니었다.
“소비마력이 크지만(大), 그 대상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소.”
몽펠리에 가문의 터프한 혈통을 견제하기 위해서 파이룬 가문의 마법은 자연스럽게 파괴력 하나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또한 다수 마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인마법은 보통 기사, 중대형 몬스터를 노리고 만들어졌다.
유행까지 사로잡은 대인마법이었다.
“시범 삼아서 사용해도 되겠소?”
“나쁠 것 없지만 나중에 하시오. 저녁 식사 준비도 다 되었으니···”
게실리안 지휘관이 드낙을 진정시켰다.
“다음 마법은 다수마법이오. 〈교차하는 결빙 구역(Crossing Frost Zone)〉으로 십자 형태 혹은 마름모꼴로 생성되는 구역을 만드는 것이오. 얼음이 바닥에서 솟구치고, 혹한의 기후가 휘몰아 닥치는 마법이오.”
구역을 완전히 얼어버리는데 중요한 것은 바닥의 얼음 또한 살상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얼음보다 먼저 공기가 꽁꽁 얼어버린다는 점이었다.
“그 뒤에는 얼음 파편이 터져나가 사방팔방으로 퍼뜨려지기 때문에 화력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소.”
드낙이 크게 마음에 들어 했다. 적어도 FFF보다는 화력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진정한 의미의 광역 마법이었다.
‘15개의 불화살보다는 이거지.’
“마력소비는 어느 정도요?”
“적당하여(中), 나쁘지 않은 정도요. 파괴력에 비해서는 상당한 효율을 가지고 있소. 얼음 마법의 특징이 마력 효율이 좋다는 것이오.”
파괴력은 파이어볼보다 약간 아래였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십여 명을 죽일 수 있는 마법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또 파이어볼보다 효율이 좋았으며 특히 위치에 있는 병사들이 회피하기 전에 공기 같은 환경이 변화한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날아가는 화염구보다는 바닥에서부터 시작되는 마법이 성공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파이어볼의 경우에는 마법 자체의 단점으로 마력회로가 〈가열〉 된다는 단점이 있소. 많은 마법사들이 그 단점을 고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았지. 제국의 경우 다른 방식을 알아냈다고는 하지만 남부 왕국은 아직이오.”
단발성인 것이 파이어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파괴력, 그 명성을 생각해서 많은 기사 가문이 파이어볼을 다수 마법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방어마법은 〈솟구쳐오르는 빙산(Rising Iceberg)〉라는 마법이오. 바닥에서 계속 빙판이 솟구쳐 오르는 방식이라 밑에서 솟구쳐 오르는 공격에 취약하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많이 없소.”
계속해서 빙판이 튀어나오는 마법이었다.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 마법이었기에 공격적으로도 사용이 가능하였다.
“방어마법이지만 독특한 방식이라, 몇 번 사용을 해봐야 할 것이오.”
사용하기 까다로운 것이었는데, 집어넣다니 이상했다.
“쓰기 어려운 방어마법을 왜 넣은 것인지 이유가 있소?”
“달려드는 황소를 밀어내려면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물건이라도 좀 던지고, 막는 것이 좋지 않겠소? 하하하.”
게실리안이 비유를 하며 넘어갔다. 버팔로 나이트뿐만 아니라 체격과 근력이 장사 집안인 몽펠리에 가문을 노리고 만든 것이었다.
“강화마법은 사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오. 〈액체 파도(liquid Wave)〉라 불리는 것인데, 몸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관절의 부위마다 물이 대량으로 뿜어져 나와 도와주는 것 정도요.”
“굉장히 오래 유지 가능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고, 몸에 부담이 적으며 무엇보다 물 자체가 체온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에 지구력적인 면에서도 장기전을 노리기 좋소.”
극소(極小)의 마력소비를 가진 것이 액체 파도였다. 때에 따라서는 손으로도 방출시킬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연습을 제법 해야 한다고 했다.
“체온을 유지시켜준다는 것이 좀 단어가 이상하구려.”
그 말에 게실리안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부분이 얼음 마법이기 때문에 오한이 들기 좋소. 그래서 액체 파도로 주변의 낮아진 온도를 걷어내고,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오. 불로하기에는 인간의 피부나 그런 것들이 장애가 될뿐더러 〈마법 불꽃〉의 무슨 다양한 이유 때문에 가문의 마법사들이 포기했소.”
수냉(水冷)이 아니라 수유(水維)였다. 희한한 방법이었지만 속도가 빠르게 뿜어진다면 능히 가능해 보였다. 또한 왜 소비마력이 극히 적음에도 액체 파도가 블루 사파이어 하나를 통째로 가진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거의 상시 유지네.’
너는 얼지만 나는 안 얼기 위한 방도였다.
드낙이 얼음의 파이룬 전신갑주를 훑어보았다.
정중앙의 마력핵(魔力核)이 대인마법의 핵이었고, 오른쪽이 다수 마법. 왼쪽이 방어마법이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은 강화마법이었다.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은 예비 마력핵이었고, 모든 마력핵과 연결이 되어있었다.
“마음에 드시오?”
“마음에 들다마다요. 이제야 제대로 된 전신갑주를 얻은 기분입니다.”
그 말에 보던 두 사람이 웃었다. 물론 따로 투구 또한 내어주었다. 〈깃털투구〉보다 상위의 것이 분명했다.
〈냉혈 투구(Cold blood Helmet)〉
〈마법 시야(Magic sight)〉
〈반동 파도(Rebound Wave)〉
〈빙결 저항(Freezing Resistance)〉
〈쾌적한 호흡(Pleasant Breath)〉
〈위기극복의 얼음화살(Ice Arrow Overcoming Crisis)〉
깃털 투구보다 하나 더 많은 기능을 지녔다. 반동 파도는 상쇄 바람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게실리안이 설명해주었다.
“위기극복의 얼음화살은 머리를 노리고 타격하러 오는 공격을 사전에 파악하여 주먹만 한 얼음화살이 쏘아지는 것이오.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마법이지. 하지만 이마에 박혀있는 블루 사파이어에 있는 마력이 동나면 사용할 수 없으니 유의하시오.”
“투구에 있는 마력핵은 크기가 작아서 많아봤자 얼음화살의 기능은 3번이 한계일 것이오.”
드낙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즉흥적으로 한 번 써보았다. 깃털 투구보다 무거움이 대단히 컸다.
‘오우야···’
전신갑주에 쓸 법한 무거운 투구였다. 마력핵까지 들어있으니 보통이 아닌 듯했다.
다시 투구를 벗어서 둔 드낙이 전신갑주와 세트인 투구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각이 탁탁 잡혀 있는 〈냉혈 투구〉는 눈구멍이 실처럼 가늘어 보였지만 사실 구멍이 없었다.
페이크 눈금이었다. 냉혈 투구에도 마법 시야가 있었기 때문에 구멍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그 덕에 세련미가 돋보였다. 밋밋한 깃털 투구의 투구와는 다르게 눈구멍과 입구멍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좋은 눈속임이다.’
있을 게 있어서 투구다운 멋도 있었다. 찔러보니 막혀있다면 누구든지 당황할 터였다. 실로 현실적인 제작이었다. 무인의 가문이니 작은 투구마저 그 노련함이 엿보였다.
“이제 저녁 식사를 하러 가면 될 것 같소.”
드낙이 웃는 모습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파이룬 가문의 배포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하. 그냥 전신갑주만 주면 저희가 어떻게 되겠소? 구울 묘지기를 토벌하면서 부서졌으니 이것은 선물이라고도 할 수 없소.”
그렇게 말하며 병사를 호출하자 병사 한 명이 허리에 끼고 달릴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크기를 지닌 목함을 가져왔다.
테두리가 은박으로 되어있었고, 자물쇠 부분에는 독수리가 양각(陽刻)되었다.
“〈은박 독수리 목함(Silver foil Eagle Crate)〉이라고, 금으로 된 것보다는 등급이 낮지만, 제가 당장 동원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뿐이었소. 내용물 또한 변변찮아도 이해해주시오.”
“전혀 아니오!”
드낙이 손사래를 쳤다. 딱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목함이었다. 여는 방법은 간단했다. 열쇠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독수리를 꾹 누르고, 잠깐 있다가 다시 뗀 다음에 다시 눌러 곧바로 돌리면 되오. 두 번째 누를 때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영영 잠긴 채로 억지로 뜯으려 하면 〈자물쇠 폭발〉이 일어나니 조심하시오.”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며 사용법을 익혔다. 실제로 열어보기도 했다. 신기한 상자였다.
안에는 3종류의 물약이 있었고, 두루마리 하나에 길쭉한 작은 목함이 또 하나 있었다. 작은 목함은 매우 짙은 갈색을 지니고 있어서 어두침침했다.
“노랑색의 물약은 〈엘나의 치유물약〉이오. 언제 어디서 쓰든지 효과를 볼 정도로 좋소. 하지만 내상보다는 외상에 탁월하오.”
〈엘나의 치유물약〉은 다섯 병이나 들어있었다. 모두 유리병에 들어있었다. 유리병의 바닥에는 뭔가가 새겨져 있었는데, 〈남을 위해서 흘리는 피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 엘나〉라고 새겨져 있었다.
“진초록색의 물약은 〈침투 해독물약〉이오. 몸에 독이 침투하면 바로 복용하시오.”
드낙은 그것 또한 바닥을 확인했다. 〈본 가루스 ? 정력과 건강과 관련 X〉라고 새겨져 있었다. 조금 웃음이 나왔다. 침투 해독물약은 세 병이 들어있었다.
“보라색의 물약은 강화물약이오.”
이번에 드낙이 바닥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게실리안이 손으로 잡았다.
“우리 둘이 없을 때 해주시오. 본 가루스 연금술사는 좀 독특한 사람이라···”
“아하···”
드낙이 강화물약의 바닥을 확인하려는 것을 그만두었다.
두루마리는 〈순백의 치유깃털 두루마리〉였다. 광역형 치유의 마법이며 가치가 매우 높은 마법 스크롤이었다. 척 봐도 양피지의 테두리가 뭔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짙은 갈색의 길쭉하고 작은 목함을 꺼내들었다. 한 손으로도 들기 딱 좋았지만 튀어나온 부분이 많았다.
“보통은 혁대에 두르고 있거나 따로 보관하는 것이오.”
“안에 무엇이 들었습니까?”
드낙이 크게 흥미를 가졌다. 게실리안이 그것을 열어 보이자 15개의 손톱만 한 유리병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가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것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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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다양한 의견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