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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65화 (264/1,239)

0265 <-- 몽펠리에 령 -->

1주일이 흘러 파이룬 가문의 선물이 도착했다. 도착한 마차는 당연히 〈기사 마차〉처럼 꽁꽁 숨겨지고 길쭉하며 큰 마차였다. 두 필의 말이 끄는 것치고는 컸지만 당연히 마법적 처리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마차의 양옆으로는 가문 문장이 찍혀있었고, 양쪽 뒤에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푸른색 바탕에 날개를 편 독수리가 중앙에 그러져 있었고, 테두리는 하얀색으로 된 얼음결정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참고로 게실리안 지휘관의 개인 인장과 깃발은 하늘색 바탕에 테두리 없이 날개를 접은 독수리가 중앙에 있고, 양옆 밑으로 검집에 든 검과 책이 그려져 있다.

“아니, 형님이 왜?”

게실리안의 눈이 커졌다.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심부름을 하러 자신의 형이 온 것이다. 물론 둘째 형 또한 기사였다. 무인이 아니면 아예 가계 구도에서 빼버리고 새로운 성을 주어 방계로 돌리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일반적이라면 검을 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여자도 그 고된 길을 걷고 싶으면 걷게 해주었다. 남녀 구분이 딱히 없었고, 본인의 선택에 따라서 가주도 될 수 있기도 했다.

힘과 역량 그리고 재능과 열정만 있으면 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다. 동생아. 하하하!”

투구를 벗으며 짜잔~하고 나타난 〈리오넬 파이룬(Lionel Faerun)〉은 쾌활한 사내였다. 그는 〈기사의 의무〉를 위하여 5년을 파이룬 령(領)을 살폈고, 그 이후로도 민생 안전을 위해 밖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남들은 다 끝낸 일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보기가 힘들었다. 준다는 성조차 거부하고 〈기사 마차〉나 더 강화해달라고 한 것이 그였다.

리오넬이 게실리안을 강하게 끌어안아서 등을 쓰다듬었다. 게실리안도 거칠게 그에게 힘을 주었다. 이에 리오넬이 웃음을 터트렸다.

“왕국 야영지가 힘들다고 들었다. 언데드라니, 네크로맨서는 놓쳤지만 〈언데드 구조물〉을 터트린 것만 해도 네크로맨서를 토벌한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렇긴 하지만, 나중에 어차피 다른 곳에서 궐기할 네크로맨서라, 걱정이 좀 있어서.”

서로 친분을 과시하며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다.

네크로맨서는 사실 〈시체 자원〉이 없으면 아무런 힘을 못쓰는 자들이었다. 스스로 언데드가 되더라도 힘을 회복할 수단은 시체를 통해서 사령마력을 섭취해야 했다. 그렇기에 떠돌이 네크로맨서로 보이는 적의 언데드 구조물을 터트린 것만 해도 큰 업적이었다.

그 시체를 다시 0부터 모으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할 터였다.

“네가 그렇게 좋다고 말하던 불파겐의 후예는 어디에 있느냐?”

게실리안의 서신에서 그렇게 잡아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기에 리오넬이 관심을 가졌다. 물론 안 좋은 감정도 조금 있었다. 첫인상으로 결코 사람을 바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리오넬이었다.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기에 리오넬을 따르는 가신들은 하나같이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언데드를 잡고 다니고 있어.”

그 말에 리오넬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병사들이 해야 할 일을 기사가 몸소 나서서 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래? 적당히 저녁이나 함께하면서 전신갑주를 전해주면 되겠군.”

그러면서도 은근히 그의 무력에 대해서도 물었다.

“전신갑주를 다 박살 냈다며? 대체 어떻게 굴렀기에 그렇게 되는지 한 번 보고 싶은데.”

“부서진 갑주의 잔해라면 모아놓았는데. 그거라도 볼래?”

게실리안의 말에 리오넬이 서둘러 그를 재촉했다. 얌전하게 보관되어 있는 파편이 자물쇠가 걸린 두꺼운 나무 상자 속에 있었다.

완전히 일그러진 어깨 견갑을 살폈다. 그리고는 리오넬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목격한 자들의 여러 증언을 토대로 말하자면 멀리서부터 속도를 높여서 그대로 어깨로 부딪쳐 구울 묘지기의 발을 뚫었다고 하더라.”

“크하하!”

그 소리를 듣자마자 리오넬이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목숨을 내놓은 싸움 아닌가? 요즘 스타일은 아닌데.”

전신갑주가 감당할 수 있는 보호력 이상의 충돌은 기사에게 극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인간의 싸움은 지구력 싸움이 보통이다. 하지만 마치 짐승처럼 돌진을 하다니. 웃음이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

하지만 다른 부위들을 확인하면서 그 웃음은 싹 사라져갔다.

‘강철에 마감까지 잘 처리된 전신갑주의 발바닥이···’

열에 의해서 녹아있는 흔적이 보였다. 닳아서 마모가 된 곳도 있었다. 인간이 닿아서는 안 되는 스피드를 순간적이나마 보여주었다는 뜻이다.

미친놈의 헛짓은 조롱이지만 미친놈이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는 사람의 기를 질리게 하는 법이다.

“이게, 불파겐이라는 것인가.”

무인(武人). 그것도 전신갑주를 오래 다루는 것이 운명이나 다름없는 기사였기에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놀랍군. 다리가 멀쩡하던가?”

“하루도 안 되어서 언데드를 잡고 다녔어.”

리오넬이 혀를 내둘렀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불파겐 가문의 역사는 〈백금 왕가〉보다도 이전이었다. 그 혈통이 지닌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하고 깊은 호수와도 같을 터였다.

“할 이야기가 많아. 오히려 형이 와서 다행일 정도네.”

아낌없이 정보를 전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고, 게실리안 자신의 주관 또한 확실하게 전하기에 좋았다.

저녁이 될 때까지 게실리안과 리오넬은 군막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가장 먼저 향후 불파겐과 몽펠리에에 대한 것을 매듭을 짓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이야기했다. 물론 그전에는 드낙의 행보가 게실리안의 입으로 리오넬에게 전해졌다.

“용병 단장이었다고? 자존심을 크게 버리는 선택인데.”

그중에서도 용병질을 한 것은 아주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었다. 귀족이 칼밥을 먹는다는 뜻은 보통 소리가 아니었다.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지. 또 불파겐은 다른 가문의 지원을 무조건적으로 받을 거야. 닥치는 대로 성장하겠다는 뜻이고, 실제로 그러한 움직임이 보였어."

왕따 당하던 문인을 포섭하고, 방계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브릴리언트 가문의 자유기사를 등용했다. 그것만 봐도 불파겐의 현재 방향성을 읽는 것은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성장〉만 보겠다는 소리다. 정리는 그다음에 하겠다는 뜻이지.”

“무슨 가문이든 이미 기반이 있어도 그 판에 뛰어들면 공신에 들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불파겐 철도 사업이나 다름없었다. 무조건 뛰어들면 이득인 셈이다.

“··· 하지만 그렇게 판을 키우는 이유가 대체 뭐냐? 난 이해가 안 되는데.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불파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백금 왕가의 압박이 반드시 들어올 것이다.”

그 말에 게실리안이 대답했다.

“북부의 귀족이 있잖아. 불파겐은 애초에 동북부에 있던 영주였어. 지금도 그곳에 터를 잡았고. 그 말은 북부와 함께하겠다는 뜻이야.”

“일부러 그 척박한 곳에 간 거라고?”

“힘이 있다면 어느 곳에서든 성공하는데 왜 그런 산골로 들어갔겠어? 정치적으로든 무엇으로든 북부 가문들의 도움을 받겠다는 것이야. 과거를 청산할 기회를 준다는 거고.”

리오넬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백금 왕가와 붙으면 불파겐이 승리할 것 같다고 생각해? 그는 혼자야.”

“기사를 죽이는 비전이 넘쳐났던 불파겐이잖아. 그 비전을 손에 넣은 자는 하나도 없고. 고문해서 미쳐버릴지언정 불파겐의 방계였던 기사들은 모두 죽음을 선택했지.”

유명한 이야기였다. 수도의 지하 감옥에서 흘러나온 소문은 그 옛날 전국을 강타했다. 광인이 되어서도 비전에 대한 것은 말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날아가 버려도 불파겐에 대한 충성심이 실로 대단하였다.

그만큼 패(覇)로 우두머리가 된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카리스마는 강력했다.

“홀로 기사단을 상대할 수 있을까?”

“언젠간 해야 할 일이야. 이대로 제국처럼 간다면 결국 영지를 지닌 귀족도 사라져버려. 남부 귀족들은 연합도 못 이루고 백금 왕가에 굴복했지. 하지만 그들도 지금 뼈저리게 후회를 하고 있을 거고.”

“한 번을 막아내면 다시는 북부를 노리지 못한다는 뜻?”

“한 번도 못 노리지. 형이라면 쳐들어오겠어? 그때야말로 북부의 모든 힘이 하나로 뭉치게 될 거야. 백금 왕가는 야금야금 이권을 먹는 것을 수백 년 동안 느리게 진행해왔어. 단순히 불파겐의 후예가 나타났다고 섣불리 움직이지 않겠지.”

쳐도 모든 역량을 모아서 후려칠 것이다. 백금 왕가는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돕는다면, 불파겐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데? 뭘 생각하고 있는데?”

“〈귀족정(貴族政, Aristocracy)〉. 제국과는 완전히 다른 길.”

오로지 황제를 주축으로 관료제로 이루어진 것이 〈중앙 제국〉이었다. 귀족이라는 말도 이제는 무색할 정도였고, 그 어떤 혜택도 없었다. 직책에 따라서 위아래를 구분할 뿐이었다.

“가능성이 있을까?”

“이미 아무렇게나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이고 있는 게 드낙 불파겐인데, 무슨 걱정이야?”

리오넬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일단은 납득했다. 드낙의 행보는 크게 보면 일관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심을 하나 집어넣었다.

“방어기제는 하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불파겐이 백금 왕가에게 화해를 하자고 해도 절대 듣지 않겠지. 힘의 차이가 있으니까.”

한 번 틀어진 사이면 그냥 죽이는 것이 나았다. 나중에 서로 힘이 비슷해져서 뒤통수를 후려갈길 수 있었다. 아니라고 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 속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다른 가문들과도 많은 대화를 통해서 불파겐이 다른 짓을 안 하는지 서로 정보 공유도 하겠지.”

불파겐의 혈통은 잔혹한 성질이 있었다. 마신장(魔神將)을 자주 잡다 보니 생긴 업보였다. 물론 마력 저항을 얻어냈지만 그 잔혹한 성질은 어디 안 갈 것이다. 함께하면서도 경계를 하지 않아서는 안 되었다.

저녁은 조금 늦게 이루어졌다. 준비를 크게 한다고 했지만 구실이었다. 게실리안과 리오넬의 이야기가 길어진 것이 진짜 이유였다. 하지만 드낙은 의심 없이 그들의 말을 믿었다.

전신갑주를 받을 생각이 가득 차있었다.

“반갑소. 〈드낙 불파겐〉이라고 하오.”

“보게 되어 기쁘오. 〈리오넬 파이룬〉이라 하고, 게실리안 경의 형 되는 사람이오.”

드낙과 리오넬이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저녁식사 전에 선물부터 게실리안이 건넸다. 가장 먼저 풀 플레이트 아머였다.

‘오.’

드낙이 눈을 빛냈다. 약간 자원을 아낀 〈72년식 전신갑주〉와는 다르게, 파이룬 가문이 준비한 전신갑주는 심미안(審美眼)이 없어도 아름다운 것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세련되었고, 딱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목 밑에 반월처럼 박혀 있는 블루 사파이어가 다섯 개 있었고, 보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부에 짙은 심해색의 무언가가 천천히 돌고 있었다.

〈마력핵(魔力核)〉이었다.

“겉으로 보면 작아보이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오. 갑옷 안쪽으로 주먹만한 블루 사파이어가 박혀있지.”

그 말에 드낙이 감탄했다. 그 직접적인 흥에 리오넬과 게실리안이 웃음을 지었다. 자부심 또한 가졌다.

“총 4개의 마법이 내장되어있소. 추가로 마법진을 넣기보다는 효율을 중시하고, 효과를 크게 보는 것이 요즘 전신갑주요.”

“전신갑주의 이름은 무엇이오? 어떻게 불리고 있소?”

“〈얼음의 파이룬 전신갑주(Ice Faerun Full Plate Armor)〉고, 3년 전부터 직계 쪽부터 지급이 시작되어 이제 방계들도 몇 벌 가지고 있소. 다음 것은 아직 개발 중이라···”

“고맙소. 이렇게 대단한 물건을···”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직계들이 사용한다면 말 그대로 최상품이었다. 동시에 토치라이트 가문이 괘씸해졌다.

‘호로 상놈의 새끼들. 네놈들은 내 단단히 기억해둔다.’

군사적 목적을 이유로 일각수의 고기를 강매하도록 협박한 것이 그들이었다. 여기서 이렇게보니 괜히 더 열불이 났다. 비교대상이 생기니까 더욱 극명하게 비교가 되었다.

“첫 번째 마법은 대인 마법이오. 가장 중앙에 박혀있는 블루 사파이어를 사용하고 있소. 가장 크기가 큰 마력핵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마법이오.”

드낙이 게실리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게실리안은 그때, 기침을 하며 물을 찾았다.

‘이런 씨?’

마치 중요한 순간에 광고로 돌리는 tv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다. 드낙이 안달이 난 표정을 지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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