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4 <-- 시체의 산, 검은 진액의 강 -->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잘 된 것 아닌가?’
두 번 다시 두 가문은 드낙을 두고 각을 벌이며 서로의 이득을 추켜올리지 않을 것이다. 건방지게 두 명이 미리 이야기를 해놓고 싸우다니 괘씸한 기분도 들었지만 드낙은 딱 3일 지나자마자 잊었다.
그는 군자가 아니었다. 그처럼 오랫동안 복수심을 유지할 그릇이 되지 못했다. 기분이라는 것은 며칠이 지나면 사라졌다.
‘파이룬 가문의 전신갑주는 언제 오려나···’
드낙은 무료함 속에서 이스핀을 봐주고, 일부러라도 시체의 산을 돌아다니며 업을 쌓기 위해서 언데드를 사냥했다. 한바탕 칼춤을 추고, 돌아오는 길에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퍽!
뭉툭한 메이스로 두개골을 부순 시체를 다른 병사들이 수레에 담았다. 십여 구를 싣고, 수레가 움직였다. 구덩이에서는 끝도 없이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왔네. 빨리도 온다.”
“개자식들, 입만 털기는.”
수레를 밀고 온 병사들 중 2명이 양옆에서 밀어주다가 멈추고 나서는 뒤로 이동했다.
“허으!”
힘을 주면서 수레를 들어 올려 시체를 엎었다. 시체가 우르르 불타는 구덩이 속으로 밀려들어갔고, 철로 된 길쭉한 작대기로 시체를 화력이 깊은 곳으로 적당히 밀었다. 이것이 모든 시체가 재가 될 때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구울에 대한 흉흉한 소문 덕에 도적마저 〈왕국 야영지〉 근처의 치안은 좋다고 할 정도였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굳이 〈구울 토벌〉이 해결되었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의 텀이 길었다.
토벌 완료 소식은 점점 퍼지겠지만, 치안을 좀먹는 것들에게는 가장 늦게 도착할 터였다.
“드낙 님. 오셨습니까.”
땀으로 흠뻑 젖은 이스핀이 웃음을 지으며 드낙을 맞이했다. 비전 중에서도 비전답지 않은 것이 칠주였다. 두 개의 묘리를 전수받기 시작하면서 이스핀은 드낙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고 여기게 될 정도였다.
의리가 없는 것으로 치면 뒷골목 깡패가 최고였지만, 이스핀은 점점 진정으로 드낙을 따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호위기사가 수련만 하네?”
드낙은 농담을 걸면서 저녁 전에 수련을 봐주었다. 이스핀은 둔재(鈍才)였지만 드낙은 능숙하게 그를 성장시켰다. 머리가 나쁜 것은 그도 매한가지였기에 더 잘 가르칠 줄 알았다.
“저녁거리를 받아오겠습니다.”
“그래라.”
이스핀이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드낙은 홀로 남아 불을 지폈다. 이스핀보고 불을 지피고 가라고 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그도 할 수 있었고, 딱히 지금 상황에서 그를 부려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호위 기사로서 그를 키우고 싶은 것이지, 모닥불 지필 하인을 키우고 싶은 건 아니었다. 서로 분담해서 일을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무슨 야채가 그렇게 많아?”
이스핀은 고기도 가져왔지만 야채도 많이 가져왔다.
“아주 싱싱한 것들이 보급되었습니다. 인근 마을에서 어음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그래?”
물로 씻어내고, 순식간에 썰어서 옥수숫가루를 잔뜩 넣은 걸쭉한 수프에 야채들을 넣었다. 고기도 한 번 볶아내어 기름을 걷어내고 수프에 넣었다. 마지막에는 아삭한 식감이 나는 채소를 넣었다.
그 과정을 보며 이스핀 또한 열중해서 식사 준비를 했다.
“음···”
드낙은 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가 멕히는군.’
역시 수프는 자신이 직접 해야 제맛이 났다. 드낙은 결코 국자를 다른 이에게 안 줄 것이라 생각했다.
후루르릅!
“허~. 좋다.”
이스핀이 수프의 진득한 고기 향과 고소함 그리고 말랑하게 잘 부서지는 야채와 마지막에 넣은 채소들의 아삭함을 느끼며 흥겨워했다. 먹는 것에 있어서 요리의 순서가 있는 드낙의 요리는 식감이 대단히 뛰어났다.
한 번 구워 기름을 뺀 고기였기에 기름 둥둥도 없어서 고소하여 입이 짧은 사람도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는 요리였다.
“끄억.”
기분 좋게 소리를 내며 이스핀이 배를 두드렸다. 남김없이 먹지는 못했다. 그만큼 양이 많았다.
한가로운 때였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서도 드낙은 곳곳을 돌아다녔다. 냄비를 들고,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드낙 님. 언제나 감사합니다.”
“변변찮은 것도 못 먹고 계속 망루에 잡혀있는데, 이런 거라도 해줘야지. 어서들 먹어. 그동안 내가 망루를 볼 테니.”
파이룬에게 임시로 빌려준 개인 사병이라고 속인 순찰자 2명은 망루 하나를 두고 살다시피하고 있었다.
활 솜씨가 대단히 뛰어나다는 것을 말하였기에 파이룬이 적극적으로 드낙의 말을 들어 그들을 〈망루지기〉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죽을 지경입니다.”
망루에는 살림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드낙은 웃으면서 그들을 적당히 도와주었다. 식사가 끝나도 드낙은 두 명에게 2시간 정도 여유를 주었다.
“수고하고.”
“예!”
드낙이 망루에서 내려갔다. 시체가 가득한 이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대체로 이러한 일의 반복이었다.
‘출퇴근하던 옛날이 생각나네.’
학생 때이든, 다른 때이든 여유 하나 없이 쳇바퀴처럼 달려야 했던 현대에 비하면 달라진 것도 없었다.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것이 드낙이었다.
성장하면서 한숨을 휴식하지 않고 달려왔다.
지금도 전신갑주를 기다린다고 대기한다고 여겨지지만 실상은 달랐다. 언데드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순간도 가볍게 보내지 않았다.
‘더 고생해야 해.’
돌아오는 것이 있었기에 이런 고생도 즐거웠다. 눈앞에 보상이 기다리는데 안 달리는 것이 이상했다. 마치 경주마처럼 눈이 검게 변한 것이 드낙이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빠르게 흐르고 있어.’
세상에 나온 지 이제 1년도 안 되었음에도 상황이 크게 변하고 있었다. 드낙이 원하지 않은 결과였다. 불파겐의 이름이 너무 빨리 귀족들에게 알려졌다. 그 덕에 그는 더욱 조급했다.
‘전신갑주를 받고 곧바로 쌍둥이 성채로 향한다.’
트롤 토벌이 한 번 무너졌다고 하지만 아크온은 다른 방도를 준비 중일 터였다. 아무리 위험해도 드낙은 그곳으로 뛰어들 것이다.
드러누운 드낙이 눈을 감았다.
검은 연기가 그를 뒤덮었다.
끼리리리릭!
기계 소리가 들려왔다. 전에 없던 소리였지만 이미 며칠 전부터 그러한 소리가 검은 꿈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검은 꿈〉 또한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꿈을 주는 존재가 지금도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꿈이 변한다는 것은 드낙을 위해서 맞춤 형식으로 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시기가 늦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건 드낙의 활동력에 비해서 늦는다는 것이지, 결코 늦은 것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검은 꿈이 늦게 변할 뿐이었다.
검은 꿈의 왼편의 구석진 곳에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여과기〉로 보이는 물체였고, 사람 머리가 들어갈만한 큰 통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 모여드는 검고, 회색인 덩어리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검은 여과기〉에 모인 그것들을 드낙은 〈언데드의 업〉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 큰 통에서 아래로 쭉 나온 줄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새하얀 물이었다. 밑에 받치는 그릇이 있었는데, 이제 거의 전부 다 차있었다.
매번 그 양이 달랐기에 언데드의 것임을 알 수 있었던 것.
드낙이 하얀 물이 든 그릇을 집어들자 짜릿한 감각이 전신을 타고 흘러나왔다. 〈검은 문〉과 마찬가지로 원초적인 쾌락이 드낙을 훑고 지나갔다. 드낙은 그 짜릿함을 즐겼다.
환상이 그를 덮치고 흉악한 언데드 해골의 고함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키아아!”
그런 해골이 좀비의 가슴을 망치로 후려쳤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 과정이 느리게 흐르면서 드낙의 시야가 가슴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충격량이 살을 출렁거리고, 뼈에 금을 내고, 금이 간 뼈의 파편이 하나 작은 혈관을 찔러 내출혈을 냈다.
하지만 그 내출혈은 금방 치유가 되었다.
〈불사혈관(不死血管)〉
드낙의 눈이 커졌다. 부작용 따위 없고, 무엇보다도 큰 힘을 주는 것이었다. 물론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패시브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여나 생기는 내출혈을 막을 방도가 생긴다는 뜻이기도 했다.
환상에서 깨어난 드낙이 그릇에 있는 하얀 물을 그대로 들이켰다.
꿀꺽. 꿀꺽.
꽃향기와 달달한 맛이었기에 무리 없이 삼킬 수 있었다.
‘앞으로 검은 문과 검은 여과기가 나누어져서 나오는 건가?’
물량은 검은 여과기로, 단일 개체는 검은 문으로 마주할지도 몰랐다. 또한 드낙은 점점 바닥에 튀어나온 손이 팔목까지 튀어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많은 언데드를 죽인 것이 드낙이었다.
일단 검은 꿈에서 할 일을 다한 드낙은 〈흰여우 세린〉과 마주 보았다.
“안녕?”
그녀의 태도는 처음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왜 그런지는 드낙 또한 몰랐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세린은 그를 위해서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전수해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었다.
“오늘은 북쪽 노드와 서쪽 노드에 대해서 말하겠어.”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행성이라 불리지도 않는 것이지만, 그래도 점성술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어떤 행성과 마주하느냐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확실하게 점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별의 이름과 위치, 특성은 꾸준히 공부하고 있지?”
그 물음에 드낙은 입을 다물었다. 반복학습의 중요성을 알았지만 밤에 공부해야 하는 점성술은 사실 가장 피곤할 때 해야 하는 것이라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알기만 해서는 점성술을 백분 사용하지 못하는 것만은 알아둬.”
“그저 방어하는 목적으로 사용만 하면 돼.”
“그게 사용을 해야 한다는 소리야.”
점성술은 하루가 다르게 점이 바뀌는 점이 있어서 부지런함을 요구했다. 당연히 세린은 안정된 삶에 취해서 꾸준하지 못했다. 매번 평온한데 좀비 바이러스를 대비하는 것과 비슷했다.
“북쪽 노드는 그림자 행성이라 불리고 있어. 어느 그림자를 받느냐에 따라 속성이 달라지고, 굳이 행성의 힘만 받지 않아. 충분히 큰 별자리나 큰 힘을 지닌 별의 힘도 따라 받거든.”
“살성(殺星)을 예를 들면?”
“좋은 예지. 살성은 사실 북쪽 노드와 마주한다고 해서 힘이 커지거나 그러지는 않아. 솔직히 상성이 안 좋지. 대신 남쪽 노드와는 상성이 좋아. 〈죽인다〉는 것은 변태적인 것보다는 금기시되는 것이잖아?”
“무슨 의미야?”
세린이 키득거렸다.
“남쪽 노드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네. 남쪽 노드는 거꾸로 행성이라고 불려. 〈금기시된 사랑〉 혹은 그러한 것들에 대한 행성이지. 북쪽 노드는 변태적인 것들이야. 정말 변태적인 놈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 북쪽 노드지.”
“그럼 나쁜 행성이네.”
세린이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부정했다.
“그림자 행성인 북쪽 노드는 어떤 행성과 별자리, 별과 마주하느냐에 따라 다 달라져. 그래서 아주 변덕스럽고, 변칙적이지. 그래서 이것만 공부해도 다른 것은 오히려 쉬운 정도일걸?”
“하나만 알아도 다른 것을 잘 볼 수 있다는 거네.”
드낙에게 딱이었다. 세린은 오늘의 점세를 드낙에게 내어주었다.
“길성(吉星)은 저 멀리 가버렸어. 적어도 남부 대륙을 비추는 길성은 없어.”
그다지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살성이 도래했고, 달은 가을을 맞이하여 새로운 별자리로 옮겨가는 도중이라 〈공허의 달(void-of-Course Moon)〉인 상태야.”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처녀자리가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은 그 힘이 온전치 못하지. 사실 12사인(sign)으로 뭔가를 추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까, 별로 할 말이 없네. 별자리는 보름달에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거든.”
드낙이 경청했다.
“처녀자리는 수성과도 연관이 있지. 수성은 전달, 소통, 변화를 의미하지만 아쉽게도 수성은 딱히 길흉을 뜻한 적이 없어. 근처에 있는 행성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달라지거든.”
“지금은 무슨 행성이랑 같이 있는데?”
“화성.”
흰여우가 그렇게 말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화성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행성이었다.
“투쟁과 갈등. 불의 행성이며 남자를 뜻하고 있으며 폭력, 전쟁을 의미해.”
드낙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흉흉하고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지? 태양의 부인은 공허하고, 살성이 남부 대륙에 있어. 거기에 처녀자리가 다가왔는데 수성의 곁에는 화성이 가장 가까이 있지.”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길하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듣는 이들 중 대다수가 흉하다고 여길 것이다.
“······”
드낙은 그런 흉한 점궤에도 자신도 모르게 히죽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세린은 아래쪽이 달아오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잔혹함은 〈흰여우 세린〉에게 쾌락이나 다름없었다.
========== 작품 후기 ==========
6098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 감사합니다.
점성술의 경우 각도, 거리, 날에 따라서 뜻이 다달라지기 때문에 매번 그 뜻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감안하시고 그냥 신비롭게 보시면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