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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61화 (260/1,239)

0261 <-- 시체의 산, 검은 진액의 강 -->

큰 사건 없이 게실리안 지휘관과의 저녁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드낙은 딱히 그것을 몽펠리에의 기수들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괜히 진흙탕이 될까 봐서였다.

복잡한 상황에서 수를 읽는 것은 드낙에게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라?’

군막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실리안 파이룬이 눈에 들어왔다. 그 또한 드낙을 봤는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기다리고 있었소.”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오?”

“모닥불을 피워놓고, 야외에서 저녁 식사를 해야 하니, 그런 것이오.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은 괜히 번거로울까봐 그랬소.”

가을의 선선함을 느끼고 싶은 듯했다.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드낙의 개방성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천막 안이 아니라 밖에서 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또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드낙은 눈을 찌푸렸다. 눈이 있는데, 독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썩 좋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게실리안 지휘관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몽펠리에 가문이 가기 전에, 방계 놈을 끌어와서 한 번 짓누른다.’

그 계획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크온 몽펠리에, 〈버팔로 나이트(Buffalo knight)〉가 선택한 자였다. 눈과 귀를 달아놓았을 터였다.

“오늘, 이렇게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하오.”

“고맙소.”

드낙은 담백하게 상투적인 말을 받았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갑자기 기가 확 꺾여있네.’

식사 장소를 바꾸었다는 것을 빌미로 마중까지 나와있었다. 거기에 앉자마자 칭찬이라니? 게실리안 지휘관과 맞지 않았다. 마치 틀에 박힌 것 같은 아부였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드낙이 누구인가?

상사의 후장 닦이라면 이론 마스터였다. 군대에서부터 배운 것이 아부였고, 그곳에서 이미 마스터를 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삽질도 많이 했기 때문에 더욱더 빛을 발했다.

단번에 드낙은 게실리안의 태도를 꿰뚫어볼 수 있었다.

그간 게실리안의 태도와는 확연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드낙 또한 전략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파이룬 백작 가문은 나에게 우호적이다. 물론 방심은 하면 안 되지만.’

항상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이었다. 증거, 증인 모두 더러운 수작질을 부리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우호적이면서 나에게 칼부리를 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드낙의 머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었다.

“전신갑주가 부서졌다고 들었는데, 아주 새로 해야 하지 않겠소?”

“그렇소. 하지만 어디 가문에서 받아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오.”

익숙하지 않은 말투를 하며 드낙이 말하자 게실리안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가문의 전신갑주를 받으시는 건 어떻소? 어차피 수리를 한다고 내 말 했는데, 날 도우려다 부서졌으니. 그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 아니오?”

“괜찮소? 보통 물건이 아닐 텐데.”

“신품으로 가져다주겠소. 본가에 소식을 알렸으니, 곧 올 것이오. 그것을 받고 〈외눈 다크 트롤〉의 토벌을 위해 쌍둥이 성채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소?”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을 건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다른 것이 끼어들 틈이 없는 확실한 거래 조건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런 당연한 것도 의심하기 마련이었다.

“이번 공은 게실리안 지휘관의 것으로 하시오. 그대가 불렀으니, 내가 온 것 아니오?”

“그것은 그렇지만 그래도 되겠소?”

“내 생각은 하지 마시오. 파이룬 가문과 돈독해졌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오.”

세파리아스는 악을 내질렀겠지만, 드낙은 코웃음칠 뿐이었다. 그의 복수를 대신해서 남부 왕국을 피바다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서둘러 〈버려진 영지〉를 안정화하고, 마탑을 건설하여 모든 것이 충족된 삶을 살고 싶을 뿐이었다.

“음! 말씀은 참 고맙소. 구울 묘지기를 토벌한 것은 그대가 한 것으로 하겠지만, 부른 것과 사후 처리에 대한 것을 크게 쓰도록 하겠소.”

드낙은 그 말에 수긍했다. 짧은 한 줄로 그어질 자신의 공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파이룬 가문과 관계를 높이는 것은 꼭 취해야 할 것이었다.

‘역시. 드낙 경도 마찬가지 생각이로군.’

손쉽게 공을 먹은 게실리안 지휘관은 먼저 그것을 베풀어준 드낙을 보며 그 대담함에 혀를 내둘렀다. 여기서 입을 싹 닫으면 끝이었다. 한순간에 드낙은 호구 드낙이 될 수 있었다.

‘그럴 수는 없지.’

불파겐의 머리카락이 사자의 갈기처럼 뻗쳐서 보이는데, 그딴 짓을 할 놈은 세상 천지에 없을 것이다. 양보하는 사자를 보며 정말로 그냥 고기를 가져가기만 한다면, 앞발보다 먼저 아가리가 자신의 목을 물지도 몰랐다.

드낙의 손에서 땀이 조금 나왔다. 게실리안의 태도를 보고 수를 던졌다. 하지만 그 반응이 빠르게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게실리안의 판단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드낙이 순식간에 단기전으로 가면서 먼저 선수를 쳤다. 주도권은 그에게 있었지만 그 분기점을 터트리는 것은 게실리안의 판단이었다.

‘어떻게 나올 거냐.’

긴장한 드낙과는 다르게 게실리안 또한 능숙하게 입을 놀렸다. 받았으니, 주는 것이다. 얄팍하다고 하기에는 드낙이 그냥 먼저 내어주었기에 그런 그림이 된 것이고, 게실리안은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다.

사실 여러 경우의 수를 준비하며 일이 안 풀리면 되려 자신이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드낙이었다. 두 가문의 싸움이 격화되기 전에 하나씩 원만하게 처리하는 것이 옳았다.

“파이룬 가문은 북부로 뻗어나가는 상인들의 요충지요. 당연히 여기에서 〈버려진 영지〉로도 향할 수 있소. 아직 많은 것이 필요한 곳이 아니오? 공을 이렇게 양보했으니 이 정도는 받아주셨으면 하오.”

“말씀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사정이 사정인지라 받도록 하겠소.”

두 사람이 술을 한 잔 돌렸다. 그리고 몇 입 먹고 다양한 이야기로 뻗어나갔다. 드낙은 내친김에 대장장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죄를 저지른 대장장이? 허, 있어도 못 주는 것이 대장 기술이오. 아마 그것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해야 할 것이오.”

“어떻게 안 되겠소? 내 가진 토지에 대장장이 하나 없으니.”

“마을을 찾아다니다 보면 농기구 정도는 만들 놈이 있지 않겠소? 아쉽게도 그것까지는 도와주지는 못할 듯하오. 가문의 것이라,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소.”

게실리안은 딱 잘라 거절했다. 그 분위기를 지우기 위해서 술잔을 들어 올렸다. 드낙은 거부하지 않았다.

“외눈 다크 트롤이 그렇게 활개를 치는데, 수도에서는 뭔가 다른 움직임이 없소? 아직까지 들은 것이 없고, 듣는 귀도 멀리까지 못 나가서···”

게실리안이 그 말을 듣고는 씨익 웃었다. 척 봐도 〈백금 왕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무엇이 백금 왕가인지··· 시민이 죽어가고, 귀족들이 바스러지고 있는데도 그놈의 왕권 타령은 벌써 300년이 넘도록 이어져오고 있소. 남부 왕국에 몰락한 귀족 가문이 넘쳐나오. 그중에 반절은 제국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소.”

드낙이 귀를 기울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왕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아는가 보오. 귀족이 없으면 이 넓은 땅을 어떻게 관리를 하려고 하겠소?”

“〈메디오 영주〉가 하는 꼴을 보시오. 영락없이 외세의 〈내정관〉이라는 것을 따온 것 아니겠소? 그것 또한 친인척으로만 중용되고 있으니··· 백금 왕가는 절대 왕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오. 하지만 제국과 남부 왕국은 달라도 아주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있소. 웃기는 소리고, 기가 막힌 소리요.”

왕권의 강화는 곧 귀족 역량의 감소와 같았다. 호족들이 강하면 왕권이 약하고, 왕권이 강하면 호족들이 약해지는 것과 같았다. 지방 세금의 수세(收稅)에 있어서도 지방의 세력이 강하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 남부 왕국은 그 과도기에 있었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해주었는데, 드낙이 진정으로 모르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제까지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독하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숨어야 했을 터였다. 가족들도, 가신들도 뿔뿔이 흩어졌을지도 몰랐다.

모르는 것이 당연했고, 게실리안은 이 기회를 통해 은혜를 베푸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미 남부의 귀족들은 사병을 거느리는데 제한이 들어갔다고 하오. 〈백금 기사단(Platinum Knightage)〉이 있으니 반항조차 못하는 것이겠지. 유명한 〈골고단 광산〉 또한 넘아갔는데···”

‘기사단!’

드낙이 눈을 빛냈다. 무시무시한 지방 세금을 통해서 왕가는 기사단을 만들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 숫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분위기였다.

“서둘러 가야 한다!”

바루익 블라인스는 서둘러 4명의 기수들을 이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파이룬 가문이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미친놈들! 버젓이 몽펠리에 가문의 일원이 있음에도 이딴 같잖은 수를 벌여?’

정신 나간 짓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꺼내면 찍도 못 쓰고 뭐라도 내놓아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고 벌인 짓이라는 소리였다.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잘못이 있더라도 지금이 적기고 그것을 안 놓치겠다는 소리였다.

‘빨리 훼방을 놓아야 한다.’

〈드낙 불파겐〉이 가진 것은 쥐꼬리 만했다. 그렇기에 은혜를 베풀기에도 좋았다. 작은 것이 크게 돌아올 것이다. 〈버려진 영지〉에 반드시 상단을 놓아주고 관계도를 높일 수 있었다.

선수를 친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남들은 나중에 100을 주고 1을 얻어야 하지만 그들은 1을 주고 10을 얻을 수 있었다.

“바루익 님. 하지만 그 자리에 끼어들어도 괜찮겠습니까? 역풍이라도 불어오면···”

“드낙 경은 어찌 되었든 몽펠리에와 한 번 토벌을 함께하게 된다. 파이룬 녀석의 편을 들어줄 리가 없다. 그 또한 그 자리는 불편할 수 있으니, 삼자대면의 형식이라도 자리를 함께 해야 한다.”

일이 잘못되어도 이 행동 자체는 최선이었다. 벌을 받아도 가문을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행동력 없는 책임보다 부끄러운 죄는 없었다. 달려가면 구할 수 있었을 것도 걸어가면 못 구하고 후회만 남을 뿐이었다.

‘두 가문이 열을 올리면 드낙 경은 후퇴를 할 수밖에 없다.’

바루익에게 있어서 그리고 몽펠리에 가문에게 있어서 그 자리를 파토를 내거나 흐지부지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몽펠리에의 가문의 일원이 저녁을 함께 먹고 싶어서 왔소!”

거침없이 소리를 지르자 파이룬 가문 소속의 정규병들이 단번에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거침없이 그들을 지나갔다.

“드낙 경! 드낙 경!”

믿을 만한 것은 드낙뿐이었다. 그가 불편하다면 빠르게 응답해줄 것이었다.

“길을 내어주어라!”

게실리안 지휘관이 소리치자 몸으로 막고 있단 정규병 몇몇이 길을 터주었다.

퍽.

기수들은 그들의 어깨를 일부러 치면서 지나갔다. 정규병들의 기세가 흉흉해졌다.

싸움, 죽음, 전투, 끝없는 고행과도 같은 훈련들을 겪는 정규병들의 자존감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는데, 그런 시비에 걸리니 주체를 못 할 정도로 분노가 샘솟은 것이다.

“저녁식사를 크게 하신다고 들었는데, 어찌 저희들을 빼놓고 하시오?”

“이게 그렇게 큰 식사일까 싶소.”

남작 가문의 방계. 백작 가문의 직계였지만 서로 간의 존중이 말에 깔려있었다. 무엇보다 두 가문은 인근에 붙어있어서 크고 작은 충돌이 많이 있었다. 서로 힘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들끼리 큰 존대를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앉으시지요.”

게실리안은 거침없이 자리를 권했다. 이것 또한 덫이었지만, 그는 전혀 몰랐다.

‘〈외눈 다크 트롤〉의 토벌전을 겪으며 아크온 경과 드낙 경은 반드시 큰 감정의 교류를 가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찍어 눌러야 한다.’

바루익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기수들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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