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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60화 (259/1,239)

0260 <-- 시체의 산, 검은 진액의 강 -->

〈동부 엘프(Eastern Elf)〉의 도시 〈칼와 엔다(Calwa Enda)〉

〈카라 가문(cala 家門)〉의 도시.

그곳에 있는 〈하늘의 천문대〉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별의 관측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해당 정보를 출력 중에 있습니다!”

불로(不老)가 기본적인 것이 엘프였다. 크게 친밀하지 않으면 존댓말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서로 오래 사는 만큼 반말을 하며 생기는 마음의 작은 앙금이 어마 무시하게 커져서 문제가 된 뒤로 그러한 〈율법〉이 생겨있었다.

수만 명은 수용 가능할 정도로 거대한 천문대 내부는 벽 하나 없이 말끔했고, 원통형 계단을 통하여 끝도 없이 높아져 있었으며, 하나의 돔이 다시 차단을 막고 있었다.

그 신비로운 곳에서 엘프들은 마력을 통한 정보 데이터를 마력구로 옮기고 있었다. 흑요석에서부터 루비까지 다양한 유색 보석을 세공하여 만들어지고, 금이나 은 따위로 테두리로 엮어 만들어진 곳에서는 빛이 터져나갔지만, 그 빛은 그대로 굴절되어 다시 내부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펄쩍 뛴 것은 단순한 〈별의 움직임〉이 아니라 별이 스스로 하나의 객체에게 힘을 내려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주기는 정확히 427년 전에 한 번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위치가 대륙의 남부였고, 이번에도 남부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관측이 되었다.

그것은 충분히 규칙성이 있다고 여겨졌기에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열기는 밖으로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냉정한 엘프의 특징상 아무리 흥분해도 포커페이스였고, 또 그런 흥분은 채 몇 분을 가지 못했다.

순식간에 열기가 식었지만 움직임은 놀랍도록 빨랐다. 때때로 몸보다 영혼이 튀어나와서 그곳으로 향했는데, 괴이쩍게도 그럼에도 사물을 만질 수 있었다. 마치 잔상처럼 마력을 통한 정보 데이터가 들어가고 난 뒤로 순식간에 공문서를 작성했다.

말끔하고 팡팡 소리가 나는 찰진 종이에 주르륵 써내려나갔다.

한 천문대의 일원이 다가와서 말했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감히 별의 힘을 받을 정도로 업을 쌓다니. 제 명에 못 죽을 팔자 아니겠습니까?”

업(業)에 대한 시스템을 가장 먼저 구축하고, 규정한 것은 엘프들이었다. 영원토록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것들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영혼과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남달랐다. 그리고 알아낸 것은 엘프들은 그러한 업(業)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공교롭게도 태어나면서부터 마력을 지니고 있으며 영혼과 정신이 육체를 아득하게 뛰어넘은 엘프라는 종족은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종족〉이었다.

똑같은 대량살인을 저질러도 살성(殺星)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별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감정〉 또한 대단히 풍부해야 하는데 엘프들은 감성적으로 메말라있는 면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천문대〉를 만들어 직접적으로 별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엘프들이 점성술을 기본 소양으로 매우 깊이 있게 익혀야 하는 규율 또한 존재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 힘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살성입니다. 피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사단을 파견하기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중앙 제국〉이라면 몰라도 남부 왕국이라니. 그곳에서 별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조사단을 파견해야 합니다.”

“인간에 대한 조사단 파견은 1천 년에 한 번씩 규정되어있습니다. 어긋납니다.”

“제국은 이미 〈마력〉의 탑을 쌓고 있는데, 남부 왕국이 별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먼저 그것을 손에 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에 대한 것은 〈천문대의 일원〉이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두 명의 엘프는 서로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자체는 살벌했지만 분위기는 조용했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단순히 살성의 선택을 받았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별이 직접적으로 힘을 내어줬습니다. 고작 인간한테 말입니다.”

살성(殺星)의 선택은 물론이고 그 살성이 힘을 내려준 인간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저희 엘프가 언제 봤다고 인간을 그렇게 경계하게 된 겁니까? 태어나면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태어나는 인간이 뭐가 두렵습니까?”

“인간은 착실하게 저희를 따라잡으려고 달려오고 있습니다. 〈전신갑주〉의 태동기가 그러했고, 이제는 〈마법〉에 닿고 있습니다.”

“그래봤자 미물(微物). 덧없이 작고, 하찮을 정도로 변변찮은 존재입니다. 제국이 보유한 마법이라고 해도 마법사가 몇 만명 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그중에서 대가(大家)라고 할 자는 손으로도 꼽을 정도뿐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천문대에서의 대화는 끊겼다. 정보 데이터가 마력을 타고 도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위원회가 소집되었다. 각구의 선택을 받은 엘프들의 모임이기도 했다. 대리자라면 대리자였다. 대부분 나이가 보다 어리고 유능한 엘프들이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세월을 많이 먹은 엘프들은 결론이 나면 판단하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 자리에는 〈파르카 헤루카르모(Parka Herucalmo)〉 또한 있었다.

괴팍하다고 유명했지만, 그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하는 엘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거칠지만 쓰기 좋은 말이었다. 오히려 성격이 있어서 좋아하는 엘프도 많았다.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엘프들이었다.

그의 엘프답지 않는 기질은 위원회의 일원이 되기에 딱 좋았다. 구성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기에 적합하다고 판단되어졌다.

“······”

파르카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유색 보석과 금속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마력구에 손을 올리며 마력을 통하여 정보 데이터를 순식간에 자신의 뇌로 때려 박았다.

높이가 1500m에 달하는 극강의 천체 건축물에서 나오는 관측 정보는 인간의 뇌가 녹아버릴 정도의 정보량을 지니고 있었지만, 엘프에게는 손쉬운 일이었다.

“하하하!”

파르카가 웃었다. 측정 수치를 통해서 살성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흉폭한 기질을 지니고 잔혹한 자가 최소 5만 명을 죽여야 한다. 그 사람의 기질에 따라서 10만 명 혹은 20만 명이 될 수 있었다.

업이라는 것은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달랐다.

똑같은 교통사고라도 그 과정에 있어서 업이 결정되는 것과 비슷했다.

“왜 그렇게 웃는 것입니까?”

가만히 정보를 다시 읽던 〈란테 헤루카르모(lant'e Herucalmo)〉가 긴 황금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실로 아름다운 미인이었지만 파르카에게는 감흥을 주지 못했다.

“427년 만에 재실험을 통해서 성공했으니, 웃을 수밖에. 꼴등하던 국가가 갑자기 일등을 했는데 즐거울 수밖에.”

그의 반말에 란테가 고운 눈썹을 찡그렸지만 파르카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의 흥분은 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엘프들은 아주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지진으로 428명이 죽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짤막한 글귀보다 그것을 현장에서 확인한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부 왕국이 못해도 1천 년 전부터 〈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보고서가 작성됐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위험했다. 아무리 나약한 인간이라도 별의 선택을 받는 것만으로도 중형 혹은 대형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별이 이제는 힘까지 내려주고 있었다.

“앞으로 그 주기는 더 빨라질 거다. 별의 선택을 받은 군대가 나타날지도?”

“억측입니다.”

파르카의 말을 일축시킨 엘프 위원들이었지만 못해도 별의 선택을 받은 기사를 양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양산되어 나온다는 것은 계속해서 효율이 좋아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프로토 타입에 비해서 규격도 알맞게 되고, 더 적은 자원을 통해서 선택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료〉를 획득하는 자는 남부 왕국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엘프가 되어야 했다. 물론 엘프는 그 자료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앙 제국〉에게 가서는 안 될 터였다.

〈전신갑주〉로도 엘프를 좇을 수 없자 〈마법〉에 집착하게 된 것이 제국이었다. 그들에게 별의 선택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들어간다면 향후가 어찌 될지 몰랐다.

아직까지도 위협은 되지 않는 것이 인간들이었지만, 〈위협〉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냉철한 엘프들은 그에 대한 소견 또한 썼다. 그러나 한동안 탁상공론이 이루어졌다.

수백, 수천 개가 넘는 규율과 그 개수와 같은 율법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일은 그에게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운 것이며, 자주 해 본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았다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는 제법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만만하게 볼 자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의 이미지와 지금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자신의 진면목을 숨기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한 결코 숨길 수 없는 불파겐 가문의 특징적인 혈통이 만들어낸 갈기털처럼 거친 붉은 머리카락도 그러한 판단을 하게 해주었다.

‘수백 년이 흐르면서 불파겐 가문의 기질도 변하긴 변했군.’

바위터에 앉아서 가만히 있는 것이 불파겐이었다면 드낙의 경우에는 암사자와도 같았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며 살려고 버둥거리고, 새끼들을 챙기거나 곳곳에 자신이 얻은 것을 나누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버러지 같은 용병 따위를 두 명이나 거두어들여 부대장으로 삼은 드낙이다. 게실리안의 입장에서는 드낙을 판단할 근거로 쓰일 정도로 중요한 행보로 여겨졌다.

‘그는 타협과 협력을 안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불파겐이라는 것을 알기 전의 판단이라면, 적발(赤髮)을 보고 난 뒤로는 본능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렇기에 더욱 고민이다.’

유하게 나올지, 강하게 나올지. 어느 것이든지 선택 가능한 것이 드낙이었다. 그 변화무쌍함은 아주 강력한 무기였다.

게실리안 지휘관의 최상의 목적은 몽펠리에 남작 가문보다 자신의 가문이 드낙과 더 친해지는 것이었다.

차선의 성과는 몽펠리에 남작 가문과 비슷한 수준의 관계를 쌓는 것이었다. 또한 드낙을 이용할 생각도 했다.

‘이용은 차근차근 진행해도 나쁘지 않아. 드낙은 훌륭한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그가 〈저녁식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미 드낙과 게실리안는 서로 협력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게실리안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녁식사를 거절했을 것이다.

서로 좋은 거래를 하기 위해서 다투기도 다투겠지만 저녁식사를 허락했다는 것은 합의를 보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내일이 기대되는군.’

빌어처먹을 〈백금 왕가〉를 쳐부술 검이 출토되었다. 게실리안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밤잠을 설쳤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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