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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56화 (255/1,239)

0256 <-- 시체의 산, 검은 진액의 강 -->

모든 이들이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곁으로 모였다. 바루익은 〈전신갑주〉를 입은 모습밖에 보지 못했기에, 드낙의 앳된 얼굴을 보며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어렸었나?’

드낙은 자신의 나이가 확연히 보이는 얼굴 때문에 식사를 함께 나누는 경우가 잘 없었다. 이미 얼굴을 아는 이들도 조심해야 할 사람에게는 함께 하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분위기 때문에 어려 보이지 않기도 했다.

가까이서 직접적으로 본 드낙은 〈애송이〉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눈매는 날카로웠고, 입은 고집스럽게 다물어져 있었다. 또한 분위기 자체가 무서웠다.

“흐음.”

드낙과는 달리 세파리아스는 거침없이 투구를 벗었다. 시체 냄새가 풍기지만 그러한 것도 〈현실〉의 맛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고 싶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것임을 죽어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순적이게도 에르모에게 한 말과 반대되는 감정이었다.

인간은 간사한 법이었다.

서로 경우의 차이는 있겠지만, 행동과 마음이 같은 사람은 몇 없다. 사람마다 태도가 달라지고, 자신과 타인을 재는 잣대도 달랐다. 그것을 사람들은 혐오하지만, 자신 또한 그렇게 하고 있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영웅(大英雄)조차도 그러했고, 마피아 두목도 자신의 가족에게는 사랑을 베푼다.

세파리아스의 고등한 정신은 포악한 것이었고, 그것은 남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의 복수는 사람을 잡초로 여길 정도로 악독하게 보이기도 하였다. 그 흉흉한 별이 인간에게서 탄생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바루익 블라인스! 〈왕국 야영지〉로 향하여 게실리안 지휘관을 데려와라! 추가적인 언데드를 막아야 한다. 기수들을 모두 데려가라. 가는 길이 힘들 수 있다.”

“예!”

거침없는 말에 거부란 없었다. 말 자체에 힘이 들어있었고, 그것을 듣는 순간 이미 따라야 할 것으로 들려왔다. 드낙이 사사건건 부딪친 것과는 전혀 달랐다.

카리스마.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잘생긴 사람이 맛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못생긴 사람이 맛있다라고 말했을 때의 주변 반응이 다른 것처럼, 내용이 같아도 사람이 다르면 반응도 달라지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 있다. 명예, 힘, 돈, 권력을 가진 자의 말이다. 드낙의 경우에는 〈힘〉이었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그 힘을 매우 위력적으로 사용할 줄 알았다.

아무리 하자가 많은 명령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언데드 구조물〉을 홀로 토벌한 것이 세파리아스였다. 그 기세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으니, 방계지만 귀족 취급을 받는 바루익에게 거침없이 하대를 해도 찍 소리도 못했다.

‘사람이 달라진 것 같다.’

바루익 블라인스는 드낙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 것을 인지하고는 수치심을 느끼기보다는 더 큰 두려움을 느꼈다.

“가자!”

그는 서둘러 기수들을 데리고 〈왕국 야영지〉로 향했다. 이 주변의 지형은 이미 변형되어 있었는데, 에르모가 쓰러진 곳에 시체로 된 언덕이 생성되어있었고, 흙이 잔뜩 쌓여져 있는 새로운 언덕도 생겨있었다.

나무가 곳곳에 한쪽 방향으로만 쓰러져 있기도 했다. 그곳에는 ( 형태의 옆쪽으로 치우친 반원형의 절벽이 만들어졌다.

10미터가 넘는 구울 묘지기가 발악을 한 곳에는 구덩이가 크게 패어져 있었으며, 그런 구덩이 속에는 시체가 가득해서 구덩이를 가리고 있었다.

또, 일그러진 곤봉이 박살이 나며 검은 진액을 대량으로 생성된 곳에는 질척한 강이 되어있었다. 검은 진액은 땅으로 흡수되지 못한 채 그렇게 널브러져 있었다.

구덩이가 있었음에도 시체로 가려져 있었으므로, 세파리아스는 이스핀에게 소각장을 만들도록 하였다.

“구덩이를 최대한 넓고, 깊게 파라.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

이스핀이 손을 덜덜 떨었다. 가까이서 느끼는 드낙의 기세는 뒷골목에서 구르며 기감이 제법 날카롭게 버려진 이스핀의 피부로 크게 스며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못 느낄 그 흉포함을 느꼈다.

목소리마저 떨어야 했다.

꼴사납지만, 오히려 이스핀의 그런 재능은 〈호위〉에 특출난 재능이었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세파리아스가 훈수를 두었다.

“너는 앞으로 이실레아보다는 내 옆을 지키는 호위 기사가 되어라. 어차피 비전도 나에게 전수받는 것 아니더냐?”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순식간에 동아줄이 변경되었다.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인재 하나 부족한 곳이었지만 세파리아스가 그런 것에 연연할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써야지. 하여간 아둔한 놈. 쯧쯧.’

일단 바쁜 것에 써야지! 일단은 여기부터 막아야지!

하나하나 눈에 닥치는 것부터 결정하는 것은 중간 관리직이나 할 법한 짓이었다. 영주라 함은, 군주라 함은 성벽이 무너져도 내년을 생각하는 법이었다. 인재가 부족하다고 해서 능력이 다른 곳에 인재를 투입하는 짓거리는 세파리아스에게 있어서 개소리였다.

“케이슨 성기사! 그대는 사령마력의 정화는 아직 하지 마시오.”

세파리아스는 케이슨에게는 제법 대우를 해주었다. 그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강해질 사람이었기에 대우를 해주는 것이었다.

“예? 하지만 지금 정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그럼 지금 정화를 시작하면 모든 사령마력을 정화할 수 있소?”

“그건 아니지만 완화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구울 묘지기(Ghoul Grave keeper)〉는 살아 움직이는 놈이었다. 〈자아〉가 있다는 것을 전투로 깨달은 세파리아스였다. 그가 쥔 〈일그러진 곤봉(Distorted Club)〉은 수많은 언데드를 불러일으켰다.

땅에 골반만 남은 유골도 알찬 하위 언데드로 변모했다. 그러면서 1천 구가 넘는 시체로 이루어진 그 육신은 수천 구가 되었고, 이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의 숫자만 해도 그 숫자만큼 많았다.

1만 구는 안 되겠지만 그 미만의 시체가 득실거리는데 엘리트 성기사 홀로 감당할 수는 없었다.

“정규병들이 올 때까지 시체의 사령마력을 흡수하여 일으켜지는 언데드를 처리하는 것이 먼저요. 정화는 그 이후에 해야 하오.”

그 말을 들어서야 케이슨이 납득했다. 한 마디로 놓치지 않겠다는 세파리아스의 생각을 읽은 것이다.

“기병이 온다고 해도 5일은 걸릴 텐데··· 위험한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고개를 저었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매우 뛰어난 젊은 지휘관이었다. 준마 몇 필을 초주검으로 만들거나 버려서라도 3일 안에 도착할 것이다.

“일단은 그렇게 따라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케이슨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드낙을 믿었다.

‘무엇이 중한지 아는 놈이지.’

“일단은 두 사람 모두 쉬고, 일어나서 할 일을 하도록 하시오.”

“드낙 님은 안 쉬십니까?”

“지휘관이 상황이 끝나지 않았는데 어찌 잠을 자겠소?”

케이슨은 입을 달싹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스핀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의 옆에는 늑대 도노 또한 턱을 괴며 있었는데, 세파리아스의 시선을 느끼고는 이빨을 드러냈다.

“그르르···”

“흥. 짐승 놈이 지 주인은 누군지 아는구나.”

세파리아스가 코웃음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노에게 다가가서 털을 만졌다. 도노가 물었고 피가 났지만 세파리아스는 웃기만 했다. 무는 것도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다. 늑대는 제법 멋이 나서 싫은 짓을 해도 싫지는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털의 감촉이 좋군.”

그리고는 시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신력이 높거나 알게 모르게 언데드에 재능이 있는 놈들부터 먼저 언데드가 될 것이다.

“이랴! 하!”

거칠게 기수들이 달려나갔다.

“푸르륵! 푸흐!”

말의 코에서 콧물이 쑤욱 나와서는 땅으로 떨어졌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쉬지 않는 강행군이었지만, 몽펠리에의 말들은 그것을 견뎌냈다. 당연히 우월한 종마이기도 했지만, 비싸디 비싼 연금술사의 회복 물약을 말들에게 먹였기 때문이다.

1명에 1병씩 까진 물약을 모조리 쓰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댕댕댕댕!!!

청명하고 규칙적인 종소리가 울렸다. 몽펠리에의 깃발을 휘날리며 미친 듯이 도착한 기수들의 말들이 그대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게실리안 지휘관에게 안내해라!”

“용무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바루익이 화난 표정을 지었다.

“빨리! 두 번 말하면 늦을 수 있다! 몽펠리에 가문의 깃발을 보고도 이딴 검문을 해야 하나! 나를 몇 번이나 봐놓고도!”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에 정규병이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다면···”

“알았으니, 안내하라! 책임을 회피하는 귀족이 어디에 있나!”

그 말에 정규병이 걸어나가자 바루익이 뛰라고 지시했다. 정규병이 뛰었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바루익 블라인스 경. 무슨 일이오? 이렇게 급하게···”

피난민 무리를 몽펠리에 령으로 보내기 위해서 최소한의 보급품을 전해줄 문서작업을 하던 게실리안 지휘관이 군막에서 그를 맞이했다.

바루익은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구울 토벌〉을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구울 묘지기(Ghoul Grave keeper)〉가 되어있었습니다. 악독한 아티팩트 또한 휘둘렀고, 놈을 토벌했지만 시체가 산을 이루고, 검은 진액이 강을 이루었습니다. 서둘러 가야 합니다.”

게실리안 지휘관이 그 말을 듣고는 전신갑주를 빠르게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래 걸렸다.

“시체의 숫자는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겠소?”

“못해도 1만 구는 될 겁니다. 사악한 아티팩트를 통해서 땅속에 있는 온갖 뼈들이 새로이 언데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게실리안 지휘관이 장비를 입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밖에 누구 없느냐!!”

“예! 지휘관님!”

“지금 당장 보유하고 있는 말 150필을 데려가라! 경기병이다! 기수는 오직 50명으로! 선임 병사가 이 야영지를 맡는다! 나도 간다!”

“예!!”

병사가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휴식을 취하고 따라오시오. 선임병사에게 가면 안내를 해줄 것이오.”

게실리안 지휘관이 서둘러 움직였다. 그러다가 몸을 돌려서는 목함을 하나 챙겼다. 그는 기사로서 온 것이 아니었기에 〈기사 마차〉가 없었다. 또 고위 기사도 아니었기에 그 정도의 여력을 자신에게 쏟지도 않았다.

있는 것이라곤 허리에 끼고 달릴 수 있을 정도의 목함 하나가 전부였다.

마법이 걸린 망토를 부탁하여 부착하는 것으로 완전무장을 한 그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지휘관님!”

선임병사 불세벤이었다. 가면서 게실리안 지휘관이 사정을 설명했다.

“······, 이런 상황이니 넌 곧바로 소각할 연료를 수송할 준비를 해라!”

“예!”

다른 말보다 1.5배는 크고 단단한 이미지의 전투마에 올라탄 게실리안 지휘관이 열린 성문으로 그대로 달려나갔다.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경기병들이 타지 않은 말 100필을 이끌며 뒤따라갔다.

그들의 뒤로 불세펜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시체를 소각할 준비를 갖춰라!!”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

〈파이룬 기수〉 50기.

〈준마〉 100필.

그들은 빠르게 내달렸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5명씩 지치는 말들을 관리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지치면 말을 교체하며 끝도 없이 달렸다. 전투마는 마갑을 입고 있었기에 회복 물약을 먹여야 했다.

“크아아앙!”

밤에 달리다 보면 길목에서 버티고 있는 야수가 이빨을 들이댈 때도 있었다. 어둠을 믿고, 까부는 짓이었다.

콰직!

게실리안 지휘관이 헤비 렌스를 투창하여 야수의 머리가 관통되어 저만치 날아갔다. 그때마다 하마(下馬)하여 렌스를 회수해야 했지만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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