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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55화 (254/1,239)

0255 <-- 원시 네크로맨서 -->

위에서 들려오는 에르모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세파리아스에게는 눈앞에서 흘러 지나가는 거친 바람의 소리만 들려왔다.

‘드낙의 육체는 이런 면에서는 인간을 초월했군.’

본래라면 귀가 일시적으로 멀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맹위를 떨쳐도 맹독에 죽어나자빠지는 것이 기사였고, 때로는 허망하게 낙마해서 목이 부러지는 고위 기사도 존재했다.

하늘을 부수고, 태산을 쪼갤 것 같은 맹장(猛將)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곳이 이 바닥이었다.

결국에 인간은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그 돌파구는 〈전신갑주〉에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정체되어 있었다.

인간의 신체능력은 단련을 해도 단련을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신갑주〉가 꼭 필요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드낙은 여러 개의 찌꺼기를 통해서 인간이라 하기에 어정쩡한 존재였다.

‘음. 피하는 것은 무리인가.’

〈깃털 투구〉의 바람의 가호도 무색할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 에르모의 발차기였다. 감당하기 힘든 대적자(對敵者)를 마주하여 자신이 지닌 역량을 한참이나 뛰어넘은 일격이었다.

악귀들조차 에르모의 거친 감정과 악바리 근성에 이끌리고, 사령마력에 휘어잡혀서 그 일격에 힘을 주고 있을 정도로 포텐셜이 터진 상태의 일격이었다.

이 이상의 공격을 그는 사지가 멀쩡한 상황에서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먼지가 되어라! 핏물이 되어서 대지에 누워라!!’

그것을 마주한 인간은 그야말로 먼지나 다름없었다. 발에 걷어차이는 매미. 그 끝은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터지는 것뿐이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그렇겠지.’

세파리아스는 드낙의 육신에 깃든 잠재력, 그 뿌리를 재확인했다. 마치 강화 마법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만큼이나 그의 육신은 최상급의 육체였다. 단련이 되지 않는 신체의 장기나 그 외의 특정 부위도 내구력이 인간을 뛰어넘어 있었다.

‘부딪친다.’

회피하는 것은 무리였기에 부딪치는 일만 남았다.

세파리아스가 단단히 다리를 벌려 섰다. 양손으로 검을 쥐고, 중단에 취했다가 정확하게 정수리와 위치를 맞추어 어깨 위로 검을 들려올렸다. 무시무시한 기세에 에르모가 움찔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허세다! 이 폭풍을 버티면 이미 인간이 아니다! 저 작은 몸으로 어찌 폭풍을 가를 생각을 하는 거냐! 허세가 틀림없다!’

더욱 반발심이 생겨서 온 힘을 다하여 놈을 걷어차기 위해 힘을 더하였다. 기술 하나 없는 조잡한 발차기였지만 크기가 크기 나름이었다.

바람에 돌과 흙이 날아가고, 뼈가 휘몰아치더니 서로 부딪쳐서 부러져 세파리아스의 투구를 스쳐 지나갔다.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목 밑으로는 바위처럼 굳건했다.

〈에인 리지가르베그 코런 할퉁(Ein riesiger Berg Krone Haltung, 泰山頂勢)〉

오로지 파괴력을 위한 자세로 나오는 내려치기가 시체를 가르며 쩍 갈라지며 공간을 만들어냈다.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정적이 찰나의 순간에 일어났고, 발이 지나가며 어두컴컴한 것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흐으!’

소리 하나 내지 않으면서 이를 악문 세파리아스가 검을 떨어뜨렸다.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에 축 늘어졌다. 덜덜 떨리는 왼팔로 〈액체 치료봉〉을 꺼내어 마력을 모조리 집어넣고, 본래 치료봉에 있던 잔재 마력 또한 모조리 사용했다.

두 번을 꿀떡 꿀떡 먹었는데, 내구력이 다한 〈액체 치료봉〉이 그대로 바스러져서는 가루로 변했다. 마법 아이템의 수명이 다한 것이다.

그는 신경도 안 쓰고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며 투구 밑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후아···”

그제서야 숨을 한 번 내뱉었다. 끔찍한 격통에 숨조차 쉬지 못했다. 신체 장기가 제대로 말을 안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성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태산정세(泰山頂勢)가 아니었다면, 자세를 굳건하게 고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위치는 주르륵 미끄러져 있었다.

쿵!

멀쩡해 보이던 가슴 방어구가 한 걸음을 옮기자마자 떨어졌다. 세파리아스가 피식 웃음을 냈다. 유일하게 아직도 쓸만한 것은 〈깃털 투구〉 뿐이었다. 깃털 투구의 내구력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머리에 대한 타격이 거의 없었다.

한 걸음 내디딘 세파리아스가 휘청거렸다. 하지만 결코 쓰러지지는 않았다. 전신갑주가 부서지지만 않았어도 이 정도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신갑주〉를 과대평가해서 생긴 피해였다.

그 피해를 단 세 호흡만에 정돈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무시무시한 절제력이었다. 보통이라면 저리는 팔 때문이라도 무기를 손에 놓았을 것이거나 끔찍함에 몸서리를 치며 기절하였을 터였다.

쿠구구구···

빌딩이 붕괴하는 것처럼 무너지는 구울 묘지기의 거대한 육체에서 〈구울 에르모〉가 시체를 헤집고 밖으로 나왔다.

검은 연기가 매캐하게 피어올랐다.

“끄응···”

기어 나온 그가 몸을 일으켰을 때, 불과 30걸음을 놔두고 세파리아스의 목소리가 에르모에게 들려왔다.

“죽어 나자빠졌으면 그대로 죽으면 그만이거늘. 어찌하여 생을 도모하려고 하느냐? 이미 죽어버린 것아.”

세파리아스가 어리석다고 말했다. 죽은 것이 살려고 했으니, 부질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킥.”

그 말은 언데드가 되었으면 자살이나 하지 뭘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을 쳤냐는 뜻이기도 했다. 오만해도, 이렇게 오만할 수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 그 흙탕물에서 버둥거려보지 않은 자의 말이기도 했다. 평생을 살아남기 위해서보다는 그 위에 것을 쌓아올린 자의 말이기도 했다.

목숨이라는 것을 초개처럼 여기는 괴물 같은 생각이 깃들어져 있었다. 자신의 목숨마저 〈결단〉만 있다면 능히 실행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자살을 위해서 수백 번 인내해도 결국 못하는 평범한 사람의 행동력과는 궤가 달랐다.

그것을 에르모 또한 작게나마 발을 걸쳤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헛웃음 소리를 냈다. 결국 이딴 미친놈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적당히 취했다면, 이런 놈과 만나기 전에 일을 접었다면···’

권력보다 강한 것이 일신의 강함의 증가였다. 자신이라는 것이 상승하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물처럼 흘러간 것이다. 이런 후회조차도 어리석었다. 급류에 휩쓸리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킥킥킥. 미친놈.”

그 저열한 욕지거리에 세파리아스의 분노가 꽂혔다. 하지만 그것은 되려 에르모를 흥겹게 만들었다. 이미 죽은 목숨이었기 때문이었다.

에르모를 〈악령 구울(Evil spirit Ghoul)〉로 만들었던 악령들도 모두 도망쳐버렸다. 그는 그저 〈구울 에르모〉일 뿐이었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하자 에르모가 돌연 웃음소리를 크게 냈다. 그리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정말로 빌어먹을 세상이다.’

약자로 살았을 때, 이리처럼 뜯으러 오던 것들. 그것들을 짓밟으려 했더니 이제는 호랑이가 나타나서 자신을 물었기 때문이다.

개 같은 세상이었다.

‘불합리해.’

세파리아스가 모든 것을 잃은 에르모에게 다가갔다. 그의 검이 휘둘러지기 전에 에르모가 그래도 잡초처럼 일어나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악!”

“쯧쯧. 벌레처럼 발악하는 꼴을 보니 꼭 짓밟아도 다시 자라는 잡초와 같구나.”

한 번의 휘두름에 양팔이 날아가고, 두 번의 휘두름에 무릎이 박살나며 세파리아스의 롱소드가 있는 쪽으로 기울었다. 마지막 세 번의 휘두름에서 세파리아스가 더욱 거리를 두며 옆으로 한 걸음을 옮겼다.

원체 큰 놈이라 리치의 이점을 극대화해야지만 깔끔했다.

꽝!

그대로 골반이 있는 곳에 굉음이 일어나며 에르모의 상반신이 붕 떠서 땅에 처박혀서 한 번 굴렀다.

“크, 크카카카카! 카카카카카카!!!!”

실성한 것처럼 웃는 에르모의 두개골이 쩌적 갈라지면서 수박처럼 쪼개지며 뇌수과 콸콸 흘러내렸다. 이미 세 번째의 탄력의 극대화를 통한 파괴력으로 골반을 터트리면서 순식간에 검의 궤적이 올라가 회수하며 허공을 나는 에르모의 두개골을 쪼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눈에는 그저 빛의 궤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고, 1초도 걸리지 않는 검의 궤적이었다.

웃는 상으로 죽어버린 에르모를 보며 세파리아스가 고함을 질렀다.

“모두 모여라! 내 명을 받아 이행하라!!!”

오만한 명령에도 사람들이 헐레벌떡 땀을 흘리며 달려왔다.

〈성기사 케이슨〉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든 언데드가 그를 노렸다. 아니, 그의 기세가 모든 적대하는 자들을 끌어모았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소리 없는 외침을 퍼뜨렸다.

그 기세를 〈적〉은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그리고 드낙은 그것을 훌륭하게 분쇄시켰다.

‘버팔로 나이트와 비견될 수 있는 힘.’

트롤 토벌의 경험까지 있는 것이 버팔로 나이트였다. 남부 왕국에서 현존하는 고위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힘이 세다고 말해지는 것이 아크온 몽펠리에였다.

그가 만들어낸 무수한 무훈(武勳)조차도 빛을 바라게 만드는 광경을 케이슨은 볼 수 있었다.

‘저 자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연히 그 흉포한 면에 두려움도 가지게 되었고, 의심 또한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만큼 믿음직한 사람도 없었다. 그 강함은 하자가 있더라도 함께하고 싶은 마력이 있었다.

공성병기를 준비하고, 함정을 파고, 지형지물을 이용해야만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것이 〈구울 묘지기(Ghoul Grave keeper)〉였다. 10미터라는 거체는 일반 기사는 압살할 힘이 있었다.

〈왕국 야영지〉에 스스로 걸어들어가지 않는 이상 토벌이 질척거릴 정도로 늦어졌을 터였다. 이를 소수 병력으로··· 아니, 홀로 해결한 드낙의 강함을 목도한 케이슨은 오금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자신으로는 막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저런 힘을 가지고도 평상시에는 그렇게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니.’

믿기 힘든 자제력 또한 지니고 있을 터였다. 케이슨이 드낙의 거친 목소리에 서둘러 달려나갔다.

〈몽펠리에의 기수〉 5명과 이스핀은 멀찍하게 후퇴해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이스핀의 옆에는 늑대 도노 또한 있었다.

그들이 후퇴한 것은 결코 그들이 겁쟁이라서가 아니었다.

인간은 복잡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뒤떨어졌다. 육체의 붕괴가 일어나며 분위기가 혼란스럽게 변하자 예상하지 못하는 사태 때문에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 후퇴한 것이다.

또 도울 수 있는 것이 없기도 했다.

당초 전술은 〈지연 전투〉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어긴 것은 사실 드낙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파리아스 불파겐〉이었다.

그의 자존심에 〈언데드 건축물〉때문에 도망갈 수 없었고, 무엇보다 그런 놈을 상대로 지연전을 펼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불만은 일절 없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숨 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드낙이 보여주는 무위를 보며 때때로 주먹을 불끈 쥐거나, 진땀을 흘러내리기도 했다.

그의 영웅적인 면모에 모두 심취해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이입한 것이다.

남자라면 태산을 무너뜨리기 위해 달려가는 상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바지에 질질 싸기 마련이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보여준 전투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이 있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일생을 바쳐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기수들과는 다르게 〈바루익 블라인스〉의 입술은 파리해졌고, 덜덜 떨려왔다. 다른 이들보다 시야가 넓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그였다. 거친 움직임 속에서도 붉은색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을 볼 수 있었다.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가문의 이름이 생각났다.

‘부, 불파겐···’

남부 왕국의 왕족.

남부의 귀족.

북부의 귀족.

모두가 그에게 칼을 겨누었다. 그중에서 오직 12개의 북부 가문만이 침묵하거나 그를 도왔다. 물론 〈거사(巨事)〉가 끝나고 해당 가문 또한 모조리 멸문 당했다.

대전사를 죽인 것을 들어서 오크 쪽에서 〈삼목 히드라의 독〉까지 제공했지만 그때의 싸움으로 기사 228명이 모조리 떼죽음을 당하고, 전투에 참가한 고위기사 8명의 목이 날아갔다.

그 수치도 마지막 영주성에서 이루어진 전투의 피해였다.

괜히 불파겐 가문이 〈귀신의 가문〉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 결과 어부지리로 〈남부 왕국의 왕가〉가 〈백금 왕가〉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귀족들의 힘이 엄청나게 쇠락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제대로 걷어지지도 않았던 북부에 중앙의 여력이 끝까지 뻗치게 되는 결과까지 되고 말았다.

‘아!’

그리고 그제서야 바루익은 자신 가문의 가주에 오를 아크온이 드낙을 초청한 이유를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을 예상하셨구나. 그리고 더 먼 곳을 바라보고 계시는구나.’

〈중앙 제국〉처럼 점점 권력이 〈백금 왕가〉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과거의 망령을 끌어온 것임을 바루익이 드낙의 맹위(猛威)를 보고 깨달았다.

무시무시한 폭풍이 다가오는 기분에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에 바루익은 안색이 크게 나빠졌다. 하지만 이내 그게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럴 리가. 지나친 생각이다.’

========== 작품 후기 ==========

6149자

평추코! 늦어서 죄송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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