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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53화 (252/1,239)

0253 <-- 원시 네크로맨서 -->

그는 거세게 느껴지는 바람을 느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뜨자 〈마법 시야〉를 통해서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투구를 쓰고 있음에도 시야가 넓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이점이었다.

눈매가 흉포해지고, 광폭한 광기가 번들거렸다. 드낙이 지닌 기세가 변모(變貌)했다. 그것은 이미 다른 사람의 기세였다.

패기(覇氣)만으로도 악령들이 감히 떨어지는 그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기가 강한 사람에게 귀신이 들러붙지 못하는 것과 비슷했다.

“하하하!”

거칠게 웃음을 터트렸다. 범(虎) 한 마리가 웃음을 터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진중함이 있었고, 질척거리는 광폭함이 깃들어있었다. 패왕(覇王)의 웃음이 그러할 것이다.

살아 숨 쉬는 육체, 오랜만에 느끼는 세상의 호흡을 느끼며 쾌감에 절어있는 것도 잠시였다.

‘심연을 들여다보았다면, 심연 또한 너를 봤다는 것이지.’

〈검은 꿈〉은 다리와도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드낙이 정신을 잃었을 때, 그 몸을 소유할 수 있었다.

피비린내가 나는 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이런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내가 살다 살다 대리전을 뛰다니. 머저리 같은 겁쟁이 놈이, 건방지게 나를 부리려 들어? 괘씸해도 이렇게 괘씸할 수가 있나?’

귀족의 일원은 대부분 무(武)를 닦는다. 그런 이들이 결투에서 다른 이의 검을 사용한다는 것만큼 쪽팔리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수긍하여 검을 뽑아드는 이도 불명예스러운 말을 듣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는 드낙의 싸움에 대신 참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허리를 코어로 뒤로 밀려나며 빠르게 낙하하는 대각선의 힘을 이용하여 세파리아스가 순식간에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공처럼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거친 바람 소리와 맞물리며 귀가 먹먹해졌다. 아무래도 〈깃털 투구〉의 성능은 생각보다 좋지 않은 듯했다. 하기야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멈추지 않았다. 충격을 줄이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다.

‘겁쟁이 녀석.’

드낙은 기사의 싸움법을 몰랐다. 아크온 몽펠리에는 고작 〈일각수〉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전신갑주를 입은 자는 결코 평범하게 싸우지 않는다. 단지 그 싸움을 할 때와 안 할 때를 구분할 뿐이었다.

일각수는 그런 싸움을 하기에는 부족한 놈이었을 뿐이다. 평범한 무인처럼 싸운 것도 그러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놈의 싸움법은 겁쟁이의 싸움법이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단언했다. 뒷골목, 용병 세계에서는 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싸움법이다. 치사한 놈이 원래 가장 잘하는 법이다. 항상 승리하는 놈은 치사할 정도로 이득을 챙기는 놈이다.

적에게는 10의 피해를, 자신은 1의 피해를. 이 공식은 치사하지만 그만큼 확실하다.

하지만 인간과 괴물의 싸움에서는 통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었다. 인간이 1만 가지고 있다면, 괴물은 일백, 일천, 일만, 십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득과 실을 두고 싸워서는 괴물을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콰르드드드득!

땅에 부딪친 드낙의 몸이 공처럼 굴러가며 충격을 땅으로 전하며 육체의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여나갔다. 끝도 없이 굴렀고, 때때로 다시 허공으로 솟구치기도 했다. 그 속에서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놀라울 정도로 상황을 통제했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곳에서도 주변을 인지하고, 스쳐가는 짧은 순간의 찢긴 이미지조차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최소한의 피해를 입은 채 그대로 몸을 펴서 네 발 달린 짐승처럼 주르륵 미끄러진 그의 전신에서 열이 피워올라 왔다.

“〈오아시스의 활력(The vitality of the oasis)〉. 〈수리 망치(Repair hammer)〉.”

찬물이 전신을 휘몰아 돌았고, 곳곳이 무식한 충격량에 당한 전신갑주의 구부러진 곳이 펴졌다. 전신갑주의 방어 마법과는 다르게 이루어져 있는 곳의 마력 장치에 있는 마력이 그것으로 동이 났다.

드낙의 체내에 있는 마력은 아껴둔 채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호흡을 골랐다. 눈을 감으며 체내를 관조(觀照)하며 조용히 몸의 기세를 끌어올렸다. 팔, 다리, 머리, 허벅지, 팔뚝, 손목··· 세포 하나하나 일깨우기 위해서 정신력을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히 〈앞으로 크게 싸운다〉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곧 심(心)의 경지이기도 했다.

인간에 대한 정신론은 언제나 있어왔고, 정사(正史)에도 때때로 기록되곤 했다.

삼류의 무인은 육(肉)을 단련하고 이류의 무인은 기(技)를 쌓아올리고 일류의 무인은 심(心)을 단조한다.

이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단단하게 육체를 조여오는 세파리아스의 정신이 드낙의 육체를 강하게 움켜쥐기 시작했다.

“드낙 겨어어엉!!! 어디에 있소!”

〈성기사 케이슨〉이 드낙을 부르며 온 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에 〈구울 묘지기(Ghoul Grave keeper)〉는 기수들을 잡으려고 애를 썼다.

“산개!”

단박에 말들의 머리가 돌아가며 순식간에 다섯 갈래로 뻗어나갔다. 에르모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자 몽펠리에 기수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높은 곳에서 사위를 훑어보는 에르모가 혀를 찼다. 발을 쿵쿵 굴러대었다.

“성기사를 놓쳤잖아! 갑자기 무슨 기병이야!”

“시끄럽다! 머저리 같은 놈들!!”

꽝! 꽈릉!

〈일그러진 곤봉(Distorted Club)〉을 땅에 내려치며 닥치는 대로 〈하위 언데드〉를 일으켰다. 땅 깊은 곳도 엎어졌기 때문에 온갖 언데드가 튀어나왔다.

“어디에 숨었느냐! 날 죽인다고 했던 놈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이냐!!!! 하하, 하하하하!!!!”

크게 소리를 지르는 에르모에게 악령들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가 얌전해져야지 주변의 시야가 트이기 때문이었다.

“후우욱!”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깊게 숨을 들이켜고 그대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가 조금 욱신거렸지만, 상관없었다. 강력한 정신이라면 부러진 다리로도 걸어서 병실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마력이 조금 전신갑주로 흘러들어갔다. 속도를 내기 위한 〈호랑이 질주(Tiger Scamper)였다. 다리에 힘을 푼 세파리아스의 몸이 단번에 최고 속도로 높아졌다. 3초 이후에 정확하게 바톤을 터치 받아서 요령 좋게 뻗어나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감히 인간이라고 말하지 못할 정도의 속력을 냈다.

쾅!

땅을 찍는 것도 한순간이었지만 발이 크게 땅에 자국을 남겼다. 파공성을 들은 케이슨이 뭔가가 옆을 훅 지나가자 척추가 저릿해짐을 느꼈다. 강렬한 바람이 한 타이밍 늦게 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케이슨 또한 평범한 자는 아니었다. 그 찰나의 순간 속에서도 신성력이 반응했다.

파아앗!

황금빛이 그 손에서 뻗어나가 드낙의 몸으로 흡수됐다. 순식간에 컨디션이 좋아진 세파리아스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숨도 쉬지 않고 기합을 내질렀다. 여기서부터는 더욱 힘을 내야 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드낙은 호랑이 질주의 속력을 〈가속〉이라고 생각했지만, 세파리아스는 〈도움닫기〉로 여겼다. 그것의 차이는 오직 소프트웨어의 차이였다.

육체의 운용에 있어서 서로 상한치가 다른 것이다.

드낙이 100의 상한치를 지니고 있다면, 세파리아스는 그것보다 아득히 높은 곳에 있었다. 같은 하드웨어를 사용해도 그 운용이 차원이 달랐다.

“으억!”

강풍은 흙먼지로 이루어진 구름을 따라오게 만들었다. 세파리아스가 지나가자 돌풍이 불며 그가 향한 방향으로 바람이 크게 쏠렸다. 그리고는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는데, 마치 화살이 쏘아지는 것을 바람의 모습을 통해서 보는 것 같았다.

그것에 휘말린 이스핀이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었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몸이 강풍에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류 무인에 닿은 이스핀이 이럴진대 하급 언데드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누구 하나 그를 막아내지 못했다.

“온다! 저길 보라고!! 뭔가가 온다!”

흙먼지의 거대한 대기의 흐름.

그것은 위에서 볼 때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세파리아스의 끝없이 이어지는 고함 소리도 확연하게 들려왔기에 이미 에르모도 그곳을 보고 있었다.

일직선으로 깔끔하게 치고 들어오는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속력은 높은 곳에서 보더라도 매우 빨랐다. 뭔가를 생각하고 판단을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에르모가 단번에 팔을 내려쳤다.

일그러진 곤봉까지 합쳐서 십여 미터가 넘는 길쭉한 것이 내려쳐졌다. 하지만 그 모습에도 세파리아스는 거침없었다. 옆으로 순식간에 옮겨갔다. 내려쳐지면서 흙이 해일처럼 솟구쳐 올랐지만 동시에 뛰어오른 세파리아스가 에르모와 정확하게 눈을 마주했다.

‘윽.’

에르모가 순간 공포를 느꼈다. 왜라는 이유는 없었다. 그저 눈구멍 없는 투구를 쓴 기사와 시선이 마주한 기분이 들었고, 그저 그것만으로도 섬뜩했다.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것은 다른 의미로 공포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토사물에 휩쓸리는 척하면서 그 흐름에 편승한 세파리아스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물보다 밀도가 높은 흙의 파도 속에서도 그 상황을 통제했다.

안전하게 착지를 하고, 그대로 그 속력을 이어나갔다. 바로 구울 묘지기의 왼쪽 다리로 향했다.

“어딜!!!!”

에르모가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짓밟아버릴 심산이었지만, 그 시도는 약간 틀어졌다.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작은 방해가 들어왔다.

퍼버버벅!

몽펠리에 기수들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그의 다리 밑에 나타나서는 투창을 쏘고는 다시 멀어져 갔다. 에르모의 발이 어정쩡한 곳을 짓밟았다. 세파리아스가 올라오는 것 같아 손을 위로 향했지만 세파리아스는 그러지 않았다.

그대로 투포환처럼 자신의 몸으로 말의 세 배나 빠른 속력으로 그대로 〈구울 묘지기(Ghoul Grave keeper)〉의 다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으으으으음!!!!”

에르모가 순식간에 균형이 무너지며 주저앉았다.

촤르르르륵!

속력을 멈추려고 한 드낙의 양다리가 땅 깊은 곳까지 올라가서는 허벅지 위까지 들어갔다. 단번에 발을 뽑아 지상에 선 세파리아스가 주저앉은 구울 묘지기를 보며 자신의 애검 〈강철이 흐르는 강(Steel flowing river)〉을 좌우로 흔들었다.

따앙!

청명한 소리가 나며 있던 피와 기름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분무기처럼 작은 입자로 흩어져내렸는데, 그것은 대단한 묘기로 보였다. 적어도 드낙이 사용했던 〈엘라스티쉬 제스트렁(Elastisch Zerstorung, 탄력적인 파괴)〉와는 격이 달랐다.

원심력을 이용하는 타격점의 완벽함. 그것이 세파리아스에게 있었다.

정권을 정타로 맞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와 같았다. 하나는 돌마저 부술 수 있지만 다른 하나는 나무토막 하나 부수기도 힘들었다.

작은 차이는 원심력을 지나면 큰 차이로 남기 마련이었다.

공을 던질 때, 어깨를 돌리는 것과 돌리지 않는 것의 차이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내 세파리아스는 인상을 잔뜩 쓰면서 〈액체 치료봉〉을 꺼냈다.

‘생각보다 전신갑주의 성능이 쓰레기군.’

쩌적

쿵!

어깨 견갑이 그대로 박살이 나서는 바닥에 떨어졌다. 구울 묘지기의 다리를 뻥 뚫을 때, 그 충격량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곧 충격 분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전신갑주의 제작자는 화를 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세파리아스가 벌였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런 성능은 제국 전신갑주도 간당간당했다.

〈액체 치료봉〉을 꺼내어 쭉 짠 세파리아스는 남은 마력을 통해서 두 번이나 더 복용했다. 충격이 전신에 퍼져 있었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도 주변은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기만 했다.

고작 2m도 안 되는 자그마한 존재가 10m가 넘는 거체(巨體)를 무너뜨렸다. 그가 뚫고 지나간 곳의 구멍은 메워지지도 않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누구도 몰랐다.

다시 움직이려고 한 세파리아스는 시야에 보이는 붉은 머리카락을 보고는 멈추어 섰다. 투구를 항상 쓰고 다녔기에 드낙의 머리카락은 항상 매우 짧았다. 하지만 지금은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었으며, 허리까지 오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변화가? 이것은 단순히 업(業)을 쌓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내 세파리아스가 하늘을 보며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과 상성이 아주 좋은 별이 그의 정수리에 놓여 있었다.

살성(殺星).

드낙이 〈검은 꿈〉과 〈검은 문〉을 통해서 업을 엄청난 속도로 쌓은 것과는 다르게 오직 홀로 쌓아올려 살성을 획득한 것이 세파리아스였다. 그는 죽었을 때, 다섯 종류의 흉성(凶星)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살성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기이할 정도로 운이 따라주는구나. 대체 〈그 존재〉는 누구인가. 무엇이길래 세계의 법칙을 바둑돌 두듯이 두드리고 있는 건가.”

두려움은 잠시였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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