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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51화 (250/1,239)

0251 <-- 원시 네크로맨서 -->

〈시체 언덕굴〉에서 나오는 사령마력 덕분에 숙식이 필요 없는 〈좀비 울반〉은 5일 만에 깊은 곳으로 달려나갔다.

‘토, 토벌대다!’

햇빛에 번쩍이는 전신갑주는 보는 것만으로도 간이 콩알만 해졌다. 이야기 속에서 그 용맹함이 대단한 기사였다. 겁을 먹기에 충분했다.

“반모스! 에르모! 게리스!!”

울반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파놓은 굴에 놓인 나무삽 따위를 발로 걷어차며 곳곳을 뒤졌지만 언데드 하나 볼 수 없었다.

‘뭐지? 어디에 따로 모여있나?’

자신의 본분을 그냥 무식하게 한 울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좀비 울반〉은 거침없이 내달리며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

차갑게 식은 모닥불을 확인하고 나서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기도 했다.

“에르모?”

결국 그가 도착한 곳은 〈시체 언덕굴〉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시체 구더기〉로 향하는 통로였다. 통로에 서서 긴장된 모습으로 소리를 냈지만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통로는 조용하기만 조용했다.

“에르모! 거기에 있어?”

울반이 소리를 질렀지만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좀비 울반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어.’

이곳에 통로는 자신이 지키고 있던 곳뿐이었다. 결국 언데드들은 모두 저곳에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결론을 내고서 저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그에게 없었다. 몸을 돌린 그가 그대로 깜짝 놀라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키키키.]

악령 수십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어느새 울반은 둘러싸여 있었다.

“저, 저리 꺼져!”

〈원시 언데드〉인만큼 감정이 풍부하고 자아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울반이 발악했지만 악령들이 그를 공격했다.

“끄, 끄아악?!”

울반이 펄떡 뛰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 언데드였는데,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끔찍한 환각통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피부를 타고 흐르며 영혼과 정신을 괴롭혔다. 그에 시달리며 울반이 허둥지둥 방향도 못 잡은 채 도망쳤다.

“젠장!”

뭔가에 걸려 넘어졌지만 고통은 없었다. 벌떡 일어난 울반이 순간 발을 멈추었다.

거대한 뭔가가 그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응? 아! 하하하! 〈울반〉! 네가 남아있었구나?”

시체로 쌓아올린 육체였다. 굴이 좁아서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홀로 툭 튀어나온 얼굴은 분명 〈구울 에르모〉의 얼굴이었지만 울반은 그 머리가 에르모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다른 얼굴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면 전혀 모르는 얼굴이기도 했다. 비슷하지만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에르모의 얼굴이 아닌 것〉을 보며 울반이 말했다.

“에르모? 이게 무슨 일이야?”

“난 게몬드인데?”

에르모가 그렇게 뜬금없이 말하자마자 얼굴을 불같이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포효했다. 오래된 나무처럼 굵은 팔이 그대로 땅을 내려치고, 벽을 후려갈겼다.

“아니야아아아!!!! 나는 에르모다! 에르모!!!”

천장이 드드거리며 돌과 흙이 떨어져내렸다. 그의 몸 곳곳에 있는 머리통이 비웃음을 흘러내렸다. 에르모가 귀를 막았다. 큰 손으로 막았지만 그 손에도 아무개의 입이 달려있어서 조곤조곤 거렸다.

“난 세리아야.”

“시끄러워! 닥쳐!!!!”

그 모습을 본 울반이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그는 아예 주저앉았다. 모든 것을 포기했다. 친하게 지내던 언데드들의 얼굴을 그 몸에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다 먹어치워버렸구나. 이 개새끼야.”

“아니야. 우리는 함께하고 있다고. 울반! 너도 여기에 들어와! 엄청난 힘이 끓어오르고 있다고! 하하하!”

〈스켈레톤 반모스〉의 머리는 사타구니에 달려있었는데, 아래턱을 딱딱 거리며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했다.

“미친놈. 흐흐흐.”

울반이 자조적인 웃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에르모가 소리쳐서 그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봐라! 울반! 이 힘을! 이 육체를!!”

그 소리를 들은 울반은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어버린 거냐. 적당한 힘을 갖추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태평하게 살다가 가겠다고 하지 않았어? 동료를 모으고, 이 지독한 세상에서···”

“멍청한 놈! 이 힘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성이고, 귀족이고, 상인이고, 뭐든지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죽이자!

복수!

날 짓밟은 놈들!

그 목소리는 한데 뒤엉켜서 들려왔다. 이미, 그것은 하나의 개체가 아니었다. 〈정신 집단〉이라고 말해도 무방했다.

하나의 강력한 구심점을 가지지 못한 그저 덩어리에 불과한 존재였다. 실패작이라면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것 또한 다른 방식의 길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난 걸어 다니는 무덤(walking Graveyard)이다. 죽을 수도 없어. 시체를 이렇게 한곳에 모을 필요도 없지. 내가 먹어치우는 것으로 난 계속 강해질 수 있다. 나중에는 성채보다 크고, 더 나중에는 남부 왕국의 〈강철 성벽〉도 무너뜨릴 것이다.”

“······”

입을 다문 에반에게 흥미를 잃었는지 〈구울 묘지기(Ghoul Grave keeper)〉가 자신의 무기를 자랑하듯이 꺼내들어올렸다. 공간이 좁아서 엎드려있었음에도 팔이 워낙 굵고 길어서 상관없었다.

“봐라! 이 일그러진 해골들을! 이것으로 만든 곤봉을!”

〈일그러진 곤봉(Distorted Club)〉은 원한으로 가득 차있었다. 검은 진액이 줄줄 흘려내렸고, 악령들이 때때로 튀어나와서는 허공을 맴돌다가 다시 곤봉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잔기술도 들어가지 않은 그저 만들어진 뭉툭한 것이었다.

“미친놈. 기사가 왔다. 이 짓도 너무 오래 했어. 우린 진작에 도망쳤어야 했다고. 강철의 전사가 여기에 왔다. 너도 죽을 거고, 모두 죽을 거다. 빌어먹을 놈아!!”

“그래. 그만 내 것의 일부가 되어라, 이···마튼의···아니야아아아아!!!! 에르모의 것이 되어라!!!”

곤봉으로 죽이지는 않았다. 그의 손이 우악스럽게 저항을 포기한 울반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있는 입들이 그의 신체를 뜯어먹었다. 서서히 울반이 구울 묘지기의 일부가 되었다.

“기사가 나타났어. 도망쳐야 해.”

“왜? 그냥 죽여. 뭘 망설여?”

“우리는 강해! 그리고 얼마든지 도망칠 수도 있지!”

곳곳에서 말해지는 의견들을 들은 에르모가 씨익 웃었다.

‘맞다. 나는 강하다. 그리고 더욱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기사는 강해. 놈을 이곳으로 끌어들여서 죽이자! 굴을 무너뜨리면 놈은 죽을 수밖에 없어.”

“기사도 인간. 숨을 쉬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겠지.”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인데?”

“나도 좋다고 생각해. 기다리자.”

몸을 일으키려던 에르모 또한 멈추었다. 악령들을 집어삼켰지만 그것은 제대로 된 과정이 아니었다. 그는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기에 수많은 시체로 만들어진 육신을 홀로 통제하고 있었다.

악령들과 많은 다른 것들 또한 그것이 효율적이기에 내버려 두고 있었다.

에르모의 승리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먹혔다고 생각한 악령들도 은근히 다시 튀어나와 재잘거렸다.

말 그대로 에르모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하루를 기다린 에르모는 성을 냈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사가 토벌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빨리 나가서 놈을 죽이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자!”

“성기사와 사제가 올지도 모른다!”

“이 기다림은 우리가 유리한 게 아니야!”

조금만 위기감을 말했을 뿐인데도 순식간에 의견이 바뀌었다. 그 감정은 한 몸으로 연결된 에르모 또한 영향을 받았다. 그것은 팔랑귀라고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다른 이들의 감정이 흘러들어와 그의 감정까지 변화되는 작업이었다.

그 기괴함은 실로 끔찍했다. 자신(自身)이라는 것이 없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경계가 무너져버린 존재가 〈구울 묘지기(Ghoul Grave keeper)〉라는 〈언데드 구조물〉이었다.

에르모는 그릇된 판단과 손에 쥐지 못한 네크로맨서 지식으로 〈언데드 구조물〉이 되어버렸다. 이름은 그럴듯했지만 실상은 그가 자연스럽게 말한 것처럼 〈걸어다니는 무덤(walking Graveyard)〉이었다.

방랑생활을 하는 고위 네크로맨서가 작성하는 건물이 바로 구울 묘지기였다. 자체적인 전투가 가능할뿐더러, 시체 자원의 수납도 뛰어났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굴이 무너져내렸다.

쿠구구구!!

지진이 일어났다. 드낙은 기민하게 후퇴를 명령했다. 땅이 울리는 소리는 정찰을 나간 기수들을 모으게 만들었다.

“최소한의 식량! 기름 주머니를 챙겨라!”

드낙이 기름 주머니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말 하나에 올렸다. 거기에 올라탄 기수가 서둘러 도망쳤다. 드낙은 자신의 준마에게 기름 주머니를 올리고 발로 뛰었다.

기름 주머니까지 올렸는데, 준마에 올라탄다면 주저앉을 수 있었다. 속도를 내는 것도 힘들 터였다.

“히히힝!”

준마가 소리를 내며 허둥지둥 내달렸다. 진동이 점점 심해졌다. 그들의 짐과 애써만든 장애물이 박살이 나며 사라져갔다.

구어어어어어어어-!!!!

흙을 파헤치며 나타난 10미터가 넘는 시체로 이루어진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두개골이 여드름처럼 툭 튀어나와있었다.

〈성기사 케이슨〉이 경악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신전의 막대한 양의 지식을 단 5년 만에 익힌 것이 그였다.

“구울 묘지기!!”

“어떤 놈입니까!”

아는 것처럼 보이자 드낙이 소리를 내지르며 서둘러 물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언데드 구조물〉입니다! 네크로맨서를 잡든 잡지 않든 시체 자원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움직이는 놈입니다! 우리로서는 잡을 수 없습니다! 퇴각해야 합니다!”

저 모든 시체를 무너뜨리지 못하면 계속해서 움직이는 존재였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시체에서 나오는 사령마력을 없앤다면 움직임이 느려질 수 있겠지만, 못해도 30명~50명 분의 신성력을 쏟아내야 합니다! 마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기를 보아하니, 못해도 500구가 넘습니다!”

어마어마한 시체들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놈이 어디로 갈 줄 알고?’

차아앙!

검을 뽑았다.

“지금 여기서 놈을 놓친다면 다시 기회를 잡기까지 몇 개월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토벌을 위한 준비조차 못 할 수도 있다!”

그 결정에 모두가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기지 못할 싸움은 개죽음일 뿐이었다.

“드낙 경! 방법이 없다면 싸우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 말에 드낙이 말했다.

“결국 계속해서 타격을 주다 보면 무너지는 놈 아닌가? 내가 놈의 이목을 끌 테니, 다른 자들도 기회가 된다면 날 도와주시오!”

그가 준마에서 뛰어내렸다. 기름 주머니를 하나 챙겼다. 평범한 기승 능력으로는 놈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여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력으로 뚫어낸다!’

드낙이 못해도 3층 높이는 될 것 같은 놈에게 홀로 달려나갔고, 그 모습에 〈바루익 블라인스〉가 깃발을 들어 올렸다.

“여기서 후일을 도모한다면, 우리들의 명예는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가자! 몽펠리에의 기수들이여!!!”

“와아아아!!!!”

5명에 불과한 투창 경기병이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 올려진 먼지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적을 토벌하는 것이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정규군이었다.

케이슨은 말이 없었지만 기름 주머니 하나만 짊어진 드낙의 준마에 올라탔다.

부대장 이스핀이 그 옆에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우리는 기회를 봐서 기름 주머니를 놈에게 뿌려서 시체를 단번에 불태웁시다!”

“아닙니다. 이것을 받아 주세요, 드낙 경보다는 내가 놈의 이목을 이끄는 것이 더 좋습니다. 신성력을 지녔기에 몇 방 정도는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드낙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하려 케이슨이 그대로 말을 몰고 달려나갔다. 거침없는 그 모습을 보며 이스핀은 기름 주머니를 양손으로 쥔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콰아앙!!!!

끔찍한 타격음이 땅을 내려쳤고, 산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흙이 3미터 이상을 피어올라 거대한 해일을 만들어냈다.

‘허미, 시발.’

이스핀은 도저히 저 싸움에 덤벼들 수가 없었다. 일각수는 네 발 달린 놈이라 두 발로 벌떡 섰을 때나 무서웠지 그리 크지 않았는데, 구울 묘지기는 전혀 달랐다. 양팔은 리치가 대단히 길었고,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는 곤봉을 쥐고 있었다.

끼아아아아아!!!

끔찍한 귀곡성을 내는 악령도 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가긴 가야 하는데. 하, 젠장!’

이스핀이 갈등하다가 이내 천천히 말을 몰기 시작했다. 아예 말에서 내리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흙먼지 속으로 그가 그림자가 되어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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