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9 <-- 원시 네크로맨서 -->
“이봐! 에르모!”
사령마력을 통해서 몸 곳곳에 생긴 결함을 수복하던 에르모가 눈을 떴다. 사령마력은 〈생각〉, 〈정신〉, 〈감정〉에 크게 좌지우지되었기에 눈을 감고 깊게 집중하면 할수록 그 변화가 실로 무서웠다.
더 끝에는 결국 〈죽음〉에 닿을 것 같았고, 눈으로 본다면 끝없는 심해를 바라보는 것 같아 마음이 심하게 떨릴 때도 있었다. 그때면 에르모는 마치 자신이 부서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 위험함은 계속되었지만 그 강함 또한 계속되었다.
그래서 결코 놓을 수 없었다. 그게 바로 〈사령마력〉의 음흉함이었고, 그 그림자에 깃든 흉악함이었다.
〈초월의 힘〉과 〈권력〉은 비슷한 면이 많았다.
“무슨 일이야?”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있어. 〈시체 구덩이〉가 있는 곳 말이야. 멀리서도 들린다고 언데드들이 난리야!”
〈스켈레톤 반모스〉가 직접 자신을 찾아오며 외쳐대었기에 〈구울 에르모〉는 서둘러 달려나갔다.
으흐흐.
크아아!
자아를 확실하게 지니고 있으며 그 제동장치가 없는 〈원시 언데드〉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에르모가 나타나자 체급 차이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하위 언데드〉와 〈중위 언데드〉의 차이였다.
“에, 에르모!”
“큰일 났다고!”
많은 이들이 스스로 비켜서면서도 군중에 기대어 에르모를 닦달했다. 에르모는 그것을 지나쳐서 귀곡성에 귀를 기울였다. 남녀노소, 원한이 깃든 목소리였다.
몇몇 목소리는 낯이 익기도 했다.
“크크.”
에르모가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시체 위로 온갖 악령들이 득실거렸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네크로맨서는 자신의 몸을 담가 시체에 깃든 원혼들이 힘을 키우기 전에 찢어발기거나 먹어치운다.
감당이 안 되면 제를 지내는 척하면서 위로를 하다가 그대로 뒤통수를 후려갈겨서 원귀를 소멸시키기도 한다.
〈원시 사령술〉에서 〈사령술〉 사이의 과도기에 가장 중점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시체 구덩이〉 혹은 〈피 구덩이〉에 대한 관리법의 발전이었다.
이것을 실패했으니 악령들이 득실거려도 할 말이 없었다. 악령들 또한 멍청이가 아니었다. 충분히 〈반란〉을 일으킬 힘을 쌓고 나서 지랄을 떨기 시작한 것이다.
스윽.
시체들이 검은색 혹은 회색의 안광을 뿜으며 일어났다. 그들을 죽인 자가 지금 바로 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면서도 〈구울 에르모〉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다~ 죽어나자빠진 것들이, 이 세상에서 뭐 할 일이 있다고 구질구질하게 구는 거냐?”
“꺼억!”
입에서 시체 가스를 토해낸 남자가 그에 대꾸했다.
“너야말로 그럼 죽은 것 아니냐? 널 죽이고 나도 죽겠다.”
“이미 죽은 놈이 뭘 죽긴 또 죽어!”
에르모가 그대로 허리를 튕기며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그의 두툼하고 넓은 발에 그대로 깔린 남자의 갈비뼈가 으스러졌다. 버둥거리는 팔이 힘을 잃었다. 악령이 제어한다고 해도 결국 물질적인 신체. 갈비뼈가 부서질 정도의 충격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콰직!
구울에게 수많은 시체가 들러붙었다. 이내 에르모의 모습이 점점 시체에 둘러싸여 가려지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
그의 고함소리마저 시체에 묻혀갔다. 악령들은 그의 몸을 물어뜯고, 정신에 간섭하고, 영혼에 상처를 입혔다.
[죽자!! 죽어어어어어!!!]
광대뼈가 무너진 할머니의 악령이 에르모의 얼굴을 강하게 움켜쥐며 발악했다. 잡힌 양쪽 얼굴에 끔찍한 고통이 뒤따라왔다.
“끄아아아악!!!”
그 처참한 광경은 에르모가 발악하면 발악할수록 진흙처럼 뭉개져갔다. 피떡이 된 시체. 물컹물컹하게 부패된 시체는 젤리처럼 뜯겨져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졌고, 악령은 계속 그의 정신을 괴롭히다가 힘이 다하여 바스러졌다.
한 명의 영혼과 정신이 어찌 수백 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에르모 또한 수십을 잡았지만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뒤로 넘어갔다. 복수를 완수한 이들 중에 선한 이들은 그것에 만족하고 사라졌지만, 아직 생(生)에 집착하는 악령들은 그 몸을 탐했다.
289명의 악령 중 불과 47명만이 복수에 납득하며 사라졌고, 242명의 악령은 그대로 에르모의 몸을 취했다. 에르모는 주인이었지만 242명의 정신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 또한 〈일부〉가 되었다.
“햐. 하하하!”
에르모가 일어나더니 고개를 이리 돌렸다가, 다시 저리 돌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팔이 덜덜덜 떨리며 허벅지를 쥐려고 애를 썼다. 악령들이 너도나도 싸우면서 몸의 통제가 계속해서 변해갔다.
등에서는 수많은 악령들의 꼬리가 득실거렸다. 검은색으로 완전히 변질된 악령들의 꼬리는 등에 가득히 삐져나와서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조성했다.
〈중위 언데드〉 중에서도 최상급의 제작 난이도를 지닌 〈악령 구울(Evil spirit Ghoul)〉의 탄생이었다.
수준이 낮은 인간의 영혼이었지만 그래도 한(恨)으로 강화가 된 악령들이 242명이 들어가 있었기에 영혼력이 강했다.
에르모의 정신은 악령들이 몸의 통제를 가지고 싸울 때, 차근차근 악령을 하나씩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가 죽던가 악령들이 죽던가. 둘 중 하나였다.
이 과정은 며칠이고 계속되어갔다. 나중에 나서는 악령 연합이 생겨서 몸의 통제권을 두고 에르모의 정신과 부딪쳤다.
승자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에르모는 자신이 살아남았다고 생각했고, 그의 기질은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그는 나를 나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몸 곳곳에서 거무튀튀한 영혼력이 튀어나왔기에 많은 언데드들이 에르모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기 바빴다.
검은 악령의 꼬리가 원시 언데드의 두개골을 훑고 지나갔다. 고통은 없었지만 시리도록 차가운 뭔가를 느낀 언데드는 무릎까지 꿇어버렸다.
‘흐흐.’
그 모습에 〈악령 구울 에르모〉가 짜릿함을 느꼈다. 그는 수백 명이 자신을 받쳐주는 기분마저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질이 낮지만 영혼은 영혼이었다. 정신마저 깊어진 기분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감정은 더욱 격렬한 용광로처럼 변했다. 인간의 감정은 다른 종족보다 뛰어난 점이 많았다.
다른 종족은 넘어가는 것을 못 넘어가고, 보다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
〈불방망이 용병단〉은 난리가 났다. 갑작스러운 기사의 등장은 물론이고, 정예 중의 정예로 불리며 죽음 위에 명예를 쌓아올렸다고 여겨지는 불멸의 기병단인 〈몽펠리에 기병〉이 다섯이나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투창을 중심으로 대(對) 기병은 물론, 중형 몬스터도 곧잘 잡는 것이 몽펠리에 기수들이었다. 그들의 창은 속이 단단히 꽉 채워져있고, 강철도 사람에 따라 대, 중, 소로 나누어 무게를 높인 투창은 흉악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단창으로 보이지만 무게로 따지면 중창(重槍)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당연히 관통력이 무시무시했고, 뻗어나가는 길이도 길었다.
1명의 기수에 고작 3~6개의 투척용 창을 말에 싣고 있었기에 우습게 여기기 쉬웠지만 그 결과는 경보병은 다섯을 꿰뚫고, 중보병의 흉갑도 꿰뚫을 수 있었다.
〈투창 경기병〉이 바로 몽펠리에 기수였다.
“잠자는 새끼들 다 깨워서 빨리 순찰 돌려!!”
〈용병단장 키반〉이 노발대발했다. 낮술을 마셨지만 정신이 번쩍 뜨일 정도였다. 허둥지둥 움직이다가 테이블 책상에 이마를 박아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닦지도 않았다. 피난민 여자를 하나 끼고 있던 용병들이 바지를 벗은 채 허둥지둥 걸어가며 바지를 위로 올려 달려나갔다.
“허업! 다, 당장 알리겠습니다!”
키반의 분노는 무시무시했다. 그가 쥔 철가시가 달린 철곤봉에게 맞으면 불구가 될지도 몰랐다.
〈용병 야영지〉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곳에서부터 시작된 소란은 빠르게 번져나갔다. 〈불방망이 용병단〉은 그만큼 인지도가 있었다. 좋은 심부름꾼은 아니었다.
다른 의미로 인지도가 있었다.
“파르센님! 저 모른입니다! 용병 모른입니다!”
석궁을 등에 짊어지고, 부무장으로는 투척용 단검이나 대거를 혁대에 단 용병이 땀을 뻘뻘 흘리며 상인의 무리가 있는 곳 중에서도 가장 천막의 높이가 큰 곳에서 소리를 질러대었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두툼한 풍채에 가을의 쌀쌀함에도 상체를 벗은 〈상인 파르센〉이 나타났다. 그의 뒤에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 피난민 여성이 보였다. 가슴이 특히나 커서 〈용병 모른〉이 자연히 그곳으로 눈이 향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모, 몽펠리에의 기수들이 왔습니다. 준비를 하십시오!”
짜증으로 가득한 파르센이 펄쩍 뛰며 놀랐다. 뱃살이 출렁거렸다. 옆으로 휘청거리면서 꼴사납게 균형을 잃기도 했다.
“다, 다 들킨 것은 아니겠지? 아니야! 들켰을 것이 틀림없어!”
허둥지둥하는 파르센에게 모른이 소리쳤다.
“도망가면 조사가 시작될 겁니다! 정신 차리시고, 평범하게 행동하십시오.”
그 모습에 파르센이 모른의 멱살을 잡았다. 워낙 풍채가 좋은 파르센이었기에 모른은 쥐새끼처럼 옴짝달싹도 못했다.
칼밥을 먹던 놈이고 나발이고, 체급이 깡패였다.
“어억! 왜 이러십니까!”
“날 팔면, 네놈들도 다 끌어버릴 거야! 알, 알아먹었냐고!”
“알죠! 아니까 이렇게 찾아온 거 아니요!”
거칠게 모른의 멱살을 놓은 파르센이 자신의 천막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기사도 함께 왔습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정규병 셋은 거침없이 피난민을 모으고, 용병들 또한 중앙으로 모이도록 하였다. 야영지의 중앙은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 비워져 있었다. 항상 마지막을 대비하는 노련한 전술가의 역량이 스며들어있는 구조였다.
그곳에 능히 모일 수 있었다.
“몽펠리에의 영광스러운 기수들을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용병단장 키반은 언제 용병들에게 화를 냈냐는 표정으로 아주 신뢰와 존경심이 깃든 말과 태도로 〈방계 바루익 블라인스〉에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본 바루익은 실로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피난민들이 많은데, 일을 잘 처리하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군.”
“이 정도의 일, 아무것도 아닙니다아악!!!”
군기가 바짝 든 모습에 바루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훈훈하자 〈불방망이 용병단〉의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그들은 피난민들에게 욕질을 하기도 했고, 거칠게 밀기도 하였다.
자연히 드낙의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드낙이야말로 약자의 삶을 오래 살아왔기에 절로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
‘개새끼들이. 돌았나?’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때 소주병을 하나 그대로 원샷을 때리고, 자신의 양손에 잘 살라며 쌍쌍바를 쥐여준 손놈을 본 기분이었다. 물론 돈을 내지 않고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군대도 안 갔던 순수했던 20살, 가을의 일이었다.
그때의 일이 절로 생각났다.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것들은 여기에도 여전히 있었다. 물론 드낙이라고 할 말은 없었다.
그것이 모순되어있음을 잘 알았다. 가만히 있으며 때를 기다렸다.
한자리에 피난민들이 모이자 드낙은 곧바로 명령했다. 먼저 〈구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어리석었다.
“〈불방망이 용병단〉! 이미 선임병사의 증언을 받았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그 말에 용병단이 우물쭈물했다. 정규병 하나가 다가가려고 하자 무기까지 뽑았는데, 드낙이 놓칠 리가 없었다. 성큼성큼 무기를 뽑아든 용병에게 다가갔다.
“다, 단장!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기를 뽑은 용병이 이내 자신의 실책을 느끼고는 키반에게 눈이 향했지만 키반은 그를 조용히 쳐다볼 뿐이었다. 기사가 어떻게 나오는지 확인하고 용병단의 행동을 결정할 생각이었다.
“무, 무기를 버리겠습니다!”
용병이 무기를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낙의 검이 뽑혀졌다.
촤악!
그대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목 뼈가 롱소드에 베여진 것이 아니라 부서져서 그대로 목이 허공을 날아서 〈용병단장 키반〉의 밑에 떨어져 굴렀다. 명분이 있는 드낙은 거침없었다.
키반이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소리쳤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용병들이 허둥지둥 혁대를 풀었다. 걸려져 있던 무기가 후드득 땅에 떨어졌다. 키반은 그들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무릎을 꿇고 손을 번쩍 위로 들어 올렸다. 자신이 저항할 생각이 없음을 명확하게 알린 것이다.
‘미친놈이다! 까딱 잘못하면 죽는다!’
평민을 개호구로 보는 기사가 분명했다. 피난민들은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그저 바닥을 보며 고개를 처박고 뭉쳐있을 뿐이었다.
주위가 지나칠 정도로 조용해졌고, 드낙을 제외한 이들이 빠르게 용병들을 포승했다. 용병들의 등을 밟았고, 그들의 머리가 땅에 처박혔다. 하지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밧줄로 손을 묶고, 그 줄은 그대로 목까지 이어졌다. 〈남부 왕국〉의 특징적인 포승법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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