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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47화 (246/1,239)

0247 <-- 원시 네크로맨서 -->

드낙의 일행은 곧바로 〈왕국 야영지〉를 벗어나 수색을 시작했다. 그것은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했지만, 〈까마귀 카이야〉가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는 빠르게 끝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구울 에르모〉가 벌린 일은 상상을 초월했다.

곳곳에서 흔적이 발견되었고, 흔적이 없는 곳이 드물었다.

“까악!”

카이야가 또 울자 모든 이들의 표정이 찌푸러졌다. 이놈의 구울 새끼가 얼마나 일을 벌이고 다녔는지, 시체 찌꺼기 혹은 신체의 일부분이나 도망친 자들의 찢긴 옷 등등. 제대로 된 정보는 없었기 때문이다.

드낙은 빠르게 말을 몰았고, 길에서 내려 나무와 수풀을 헤치고 길에서 벗어나 걸었다. 그 속도는 다른 이들이 보기에 매우 민첩했다. 전신갑주를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반짝.

햇빛에 반사되는 금속의 빛이 드낙의 눈에도 들어왔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목걸이였다. 비싸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집어 들어서 흙을 턴 다음에 꼼꼼히 살폈다.

오른손은 〈상승〉을 뜻하듯이 위로 향하고 있었고, 왼손은 〈하락〉을 뜻하듯이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자세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얼굴은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리고 얼굴 상(相) 자체가 흐릿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누구인지 모를 인물이 새겨진 청동 목걸이의 뒤를 살폈다. 그곳에는 담백한 필체로 글씨가 써져 있었다.

[언제나 바닥을 바라보며, 그곳으로 향할지어다.]

종교적인 문구였다. 하지만 이름이나 그런 것은 전혀 적혀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드낙은 정밀 수색을 할 마음이 생겼다.

〈신성력(神聖力)〉은 지독한 생명력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살아있을 공산이 컸다.

“이곳을 좀 더 수색해 봅시다. 생존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뒤따라온 이들에게 목걸이를 보여주자 〈바루익 블라인스〉가 깜짝 놀랐다.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굴었다.

“성기사의 목걸이입니다. 피를 묻혀야 하는 자들이기에, 선과 악. 그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 담긴 문양입니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색을 진행했다. 굳이 흩어질 필요가 없었다. 목걸이의 냄새를 맡은 도노가 단번에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늑대의 후각은 인간을 초월한 힘이나 다름없었다.

단번에 방향을 잡았고, 드낙은 크게 흩어지게 하여 사람들을 이끌었다. 도노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기다려주었다.

거칠게 깎아내려진 절벽과도 같은 곳에 섰는데, 밧줄을 이용해서 내려가야 했다. 도노는 드낙이 허리에 둘러매고 내려갔다. 기수 여섯이 힘을 주고 천천히 내렸다. 모양새가 돌덩어리를 내리는 모습처럼 보였다.

내려간 그는 곧바로 흔적을 찾았다. 피였지만 흙으로 대충 덮어서 동글동글 흙이 작게 많이 뭉쳐져 있었다. 살아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래로 더욱 내려가니 수풀에 기절해있는 성기사를 볼 수 있었다. 금속으로 된 장비는 하나 없고, 짙은 녹색으로 칠한 가죽 장비를 하고 있었다. 검도 잃어버렸는지 무기 하나 쥐고 있지 않았다.

‘무인이 검을 놓치다니.’

드낙의 평가가 내려가려고 했지만 이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른 손목이 흉측하게 뜯겨져 나가서 피를 계속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상태로 어떻게 도망칠 수 있었는지 몰랐지만, 서둘러 품에서 〈액체 치료봉〉을 꺼내어 쭉 짜내서 치료를 했다.

이스핀이 다가오자 치료봉을 건네주고는 기도를 확보했다. 기절한 상태였기에 혹시 몰랐다. 숨은 똑바로 쉬고 있었다.

성기사를 옮기는 일은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힘들다고 보았다. 돌아서 가기에도 험한 지형이 이 주변이었다.

콰직! 콱!

나무를 벌목하고, 쓰러뜨린 뒤에 그곳에 나뭇잎을 얹어서 지낼 곳을 순식간에 만들었다. 또한 잔가지를 주워와서는 곧바로 불을 피웠고, 기수들은 말을 지키러 다시 되돌아갔다.

모닥불에서 저녁을 먹으며 이스핀과 드낙은 대화를 나누었다.

“드낙 님처럼 굉장히 어린 성기사 아닙니까?”

“난 저렇게 덩치가 작지 않아.”

그의 말대로 성기사는 매우 어렸다. 소년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한국으로 치면 중학생 정도에 불과했다. 드낙처럼 유목민족의 굵직굵직한 몸이 아니라 아직 덜 성장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밝은 갈색에 약간 주홍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는 소년 성기사는 어째서 피난민들을 홀로 이끌었을까.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해도 구울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건가.’

웃기는 일이었다. 체중으로도 밀렸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신성력을 지녔다는 뜻이었다.

“으으···”

소리를 내며 성기사가 눈을 떴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버둥거렸다. 이스핀이 그를 잡았지만 그 움직임을 막지 못했는데, 신성력이 터져나가며 성기사가 자신의 몸에 누적된 피해를 단번에 치료하며, 이스핀의 손목을 꺾어버렸기 때문이다.

“악!”

불의의 습격이나 다름없었고, 얇은 손목으로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이스핀은 소년 성기사의 완력을 우습게 보다가 그대로 제압되었다.

“너희들은 누구···”

말을 하려다 전신갑주로 완전히 무장한 드낙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 부대장은 놓아주게.”

드낙의 말에 성기사가 서둘러 손을 놓았다. 이스핀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손을 털었다.

“무슨 힘이 그렇게 강하십니까?”

소년이라고 해도 성기사였다. 이스핀이 하대를 할 존재는 아니었다.

“모두 중립신의 가호 덕분입니다. 그분은 만인을 살피시고 싶지만 갈가리 찢긴 몸을 하고 있는 분. 그분의 가호를 집중적으로 받는 것이 사제들이고 성기사입니다.”

“나는 드낙이라고 하고, 일단은 자유기사지만 토치라이트 가문에게서 전신갑주와 토지를 받았지. 이쪽은 이스핀 부대장이고.”

드낙의 말에 소년 성기사가 고개를 한 번 숙였다. 푸른 눈동자가 모닥불의 주홍빛에 반짝거렸다. 눈망울이 크지 않고, 날카로웠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반대되는 날카로운 눈매였기에 분위기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고 있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케이슨이라고 합니다.”

중상을 입었던 모습이 하나 없었다. 신성력의 무서움이었다. 드낙은 그에게 자세한 것을 물었다. 본심은 바로 구울의 전력에 대해서 묻고 싶었지만, 일단 그의 사정을 들으며 친밀감부터 얻고자 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평범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듣는 내내 드낙은 이 성기사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마을의 50명이 넘는 피난민들을 이끌었던 재능 있는 성기사의 고군분투기는 팝콘을 불러오기보다는 숨을 죽이게 만드는 절박함과 버둥거림이 있었다.

이스핀 또한 이야기를 들으며 농담 하나 던지지 못했다.

감자 하나로 싸움이 일어날 정도로 악화된 상황까지 가는 모습과 그에 대한 고행을 이야기할 때는 자신이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호흡을 의식적으로 하기도 했다.

현실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착각마저도 들 정도로 케이슨의 이야기는 긴박함이 있었다.

“지역 신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지 않았습니까?”

“진퇴양난의 경우였습니다. 횃불 성채가 가장 안전했지만, 그곳으로 가는 이들이 많은 것이라 여겨져 더 많은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서 〈남부 황금 평야〉로 향했지만··· 설마 이곳에 구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가 눈물을 주륵 흘러내렸다. 50명이 넘는 목숨이 자신의 선택으로 죽어갔기 때문이었다.

“······”

누구 하나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대신 드낙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잃어버린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아···”

케이슨은 그것을 받아들이며 뒷면을 바라보았다. 8살에 신성력을 받게 된 그는 평생, 죽을 때까지 그 글귀 하나를 지키고 살겠다고 맹세했다. 수많은 죽음과 고난이 그를 기다려도 중립신이 자신에게 힘을 주는 이상 계속 그 가시밭을 걸어가겠다고 기도한 기억이 있었다.

단 하나의 말을 평생 지키는 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힘든 일임을 아는 드낙은 그 신념이 서려있는 눈을 보며 형연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변덕이 많은 드낙이기 때문에 존경심마저 마음속에 깃들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서 생각을 달리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그 본성을 거부하는 케이슨의 행보는 위인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기사님은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우리는 본래 〈버려진 영지〉를 개척하고 있었지만, 버팔로 나이트의 소집을 받고, 〈외눈 다크 트롤〉을 토벌하러 향하고 있었는데 〈왕국 야영지〉의 게실리안 지휘관의 요청에 구울을 토벌하게 되었지.”

그 말에 케이슨이 자신도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드낙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성기사의 엘리트로 보이는 것이 케이슨이었다.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고 버려진 영지에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상대한 구울에 대해서 말해보게.”

“예. 그는 자신을 〈에르모〉라고 칭하는 자였습니다. 30구가 넘는 언데드를 이끌고 있었고, 저희들을 공격했습니다. 기습을 하려고 했지만 언데드의 썩은 내를 생각하지 않았기에 많은 이들이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케이슨은 그때 당시를 상기했다.

언데드의 썩은 내를 맡은 케이슨은 모두에게 도망치라고 소리를 질렀다.

“도망치십시오! 어디로든! 어서!”

어린 목소리였지만 피난민들은 그를 중심으로 단단히 뭉쳐있었다. 누구 하나 그 명을 거스르는 자가 없었다. 아기를 둘러업은 여자와 식량을 챙겨서 함께 뛰는 젊은 부부. 늙은이를 업고 허둥지둥 움직이는 중년까지.

피난민의 모습은 다양했다.

케이슨이 검을 뽑았다. 단 5년 만에 〈지역 신전〉에서 가르침을 모조리 흡수한 그였고, 〈남부 왕국 수도〉의 〈중앙 신전〉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했지만 중앙 신전의 사제와 불화를 겪고, 좌천되듯이 외딴 마을에 배정된 것이 케이슨이었다. 하지만 그는 불만 하나 가지지 않았고, 그것을 〈좌천〉이라 여기지도 않았다.

〈언제나 바닥을 바라보며, 그곳으로 향할지어다.〉라는 자신이 평생을 지킬 구절을 모르는 자가 없었기 때문에 중앙 신전은 이를 이용하여 잘 포장해서 그를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사악한 것들아! 빛이 여기에 있다!”

신성력을 가득 뿜자 피난민들을 쫓으려는 언데드가 눈을 가리며 주춤했다. 단번에 관심이 성기사에게로 몰렸지만 〈구울 에르모〉가 고함을 질렀다.

“반은 놈들을 쫓고 반은 성기사를 죽인다! 어린놈이다!!”

에르모의 명령은 그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고작 12구의 원시 언데드만 피난민을 쫓았고, 20구가 성기사를 노렸다. 편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명령 또한 두루뭉술했기 때문이다.

할퀴고, 물려도 케이슨은 전투를 끝없이 이어나갔다. 목이 잘리지 않는 한 고통 속에서 뿜어지는 신성력은 모든 상처를 회복시켰기 때문이다.

그러한 〈희생〉을 막힘없이 결정할 수 있었기에, 그런 기질을 보유했기에 신성력을 자연히 얻어낸 것이 케이슨이었다.

보통은 그러한 기질을 얻기 위해서 신전에서 오랫동안 기도하며, 교육받으며 변화해야 했다.

“하지만 워낙 다수를 상대해야 했기에 신성력이 금방 바닥이 났고, 오른손이 구울에게 물어뜯기면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주한 것이었다.

“구울의 독은 괜찮습니까?”

이스핀의 물음에 케이슨이 바로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중립신의 도움으로 제가 살아있는 것이겠죠.”

끝마무리는 언제나처럼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었다.

“구울이 언데드를 이끌다니. 네크로맨서가 분명 있다는 소리군.”

드낙이 결론을 내렸다.

‘구울로 흔들고, 시체는 딴 곳에 모으고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그 진원지를 찾지 못하면 구울을 죽여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저 구울만 쫓는 것은 하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5512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은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은 일일연재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매주 일요일은 11연재로 하겠습니다.

사유 : 범어 도서관에서 글쟁이 레벨업을 위한 공부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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