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6 <-- 원시 네크로맨서 -->
〈왕국 야영지〉 인근을 수색하는 일에 정규 병사를 동원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지금 수많은 피난민들을 관리하고, 〈길〉의 순찰에 모든 힘을 집중하고 있었다.
또한 〈몽펠리에 가문〉의 트롤 토벌이 한 번 엎어졌기 때문에 민심이 대단히 흉흉했다.
수많은 마을에 정규군이 분산되어 배치되어 있었다. 본래라면 거기에서 그쳐야 했지만, 병력의 분산만큼 위험한 것이 없었다.
그는 실전적인 지휘관이며 이론에도 빠삭한 지휘관이었다. 자신의 돈을 풀어 용병을 고용하고, 친분이 있던 자유 기사에게 편지를 써서 마을 곳곳에 배치시켰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지닌 영향력이 감소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지역 신전〉은 기민하게 행동하지 못했다. 안과 밖으로 홍역을 앓고, 그것이 끝나고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특히나 남부의 경우 세속화가 된 지역 신전이 너무나도 많았다.
북부의 경우에는 피난민을 받고, 열매 씨앗에 신성력을 쏟아부어 그들을 굶어죽게 만들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다.
〈외눈 다크 트롤〉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고, 그 소문은 더욱 거세게 북부를 강타하고 있었다. 실제 위력보다 더 큰 여파가 민간을 휘몰아치고 있었다.
트롤보다 피난민이 더 무서울 지경인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추적에 대단히 능한 모습을 몇 번이나 보여준 드낙의 등장은 가뭄 속의 단비였다.
그가 궁색하게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드낙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흥미 있어 하는 모습을 취하면서도 파이룬 가문의 달달한 꿀을 받기를 원했다.
‘트롤을 잡으면 철이 들어오니까, 파이룬 가문에게서는 뭘 받을까?’
당연히 전신갑주였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은 것이 드낙의 또 다른 욕심이기도 했다.
‘대장장이? 한 번 말해볼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가감 없이 말해보시오. 사태는 그만큼 힘들게 가고 있어서 최대한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오.”
“혹, 뛰어난 대장장이를 받을 수 있소? 〈버려진 영지〉 중에서도 동북쪽 끝자락에 있는 것이 저의 토지라 전신갑주를 운용하는데 매번 간담이 서늘하기에 참기 힘드오.”
그 말에 게실리안 지휘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소. 〈전신갑주〉에 대한 기술은 엄격하게 교환이 불가능할 뿐더러. 귀족 가문 사이에도 지식을 교환하는 법이 없고, 방계에도 전수해주지 않는 것이오.”
드낙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수긍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른 카드도 많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문이 받은 〈버려진 영지〉의 토지문서는 어떻소?”
그 말에 드낙이 웃었다. 계륵으로 받아내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준다고 하니 우스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구가 부족해 땅이 많아봤자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 채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그가 웃어넘기자 게실리안 지휘관은 다양한 것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모두 부족한 것들뿐이었다. 결국 답답해한 것은 드낙이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빚! 빚으로 달아 두고 싶소. 명예로운 파이룬 백작 가문의 인장을 찍어서 나중에 필요하면 내 청을 들어주십시오.”
“그렇다면 양피지에 지금 상황을 자세히 기록해두고 싶소.”
드낙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머리로는 저울질을 하기에 힘들었기 때문에 그냥 뒤로 미루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게실리안 지휘관 또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제법 머리가 잘 굴러가는 자군.’
자신도 못했던 해결법을 드낙이 쥐고 찔렀기 때문이다.
이것은 드낙의 허술한 생각 때문이었다. 귀족 사회에 대해서 알아도 그것을 정말로 알고 있지 않았다. 듣고도 그것을 이용할 줄 몰랐다. 그 이유는 그가 범인(凡人)이기 때문이었다.
수학 문제지의 답안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하루 지나 똑같은 문제를 보고 슬슬 답안지로 손이 움직이는 것이다.
〈아크온 몽펠리에〉 같이 이름있는 자들은 모두 〈개인 인장〉이 존재했다. 그런데 드낙은 인장을 요구함에 있어서 〈파이룬 가문〉을 짚었다.
이번 일에 역량을 소모한 게실리안 지휘관에게 시간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의 빚을 가문에 달아 둠으로써 게실리안 파이룬이 독박을 쓰는 것을 막아준 것이다.
상대를 껴안아주고, 부드럽게 민감한 문제를 후순으로 미룸과 동시에 구울을 토벌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전신갑주가 망가지면 우리 가문으로 오게. 무상으로 수리를 해드리겠네. 몇 번이고 그렇게 해주겠네. 내 이름을 걸고 양피지에 그렇게 추가로 써주지.”
드낙이 깜짝 놀랐다. 게실리안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서 매우 호의적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쁠 것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많이 쪼들리나 보네. 나중에 받아낸다고 하니까 좋아하는 것 보소.’
이번 달에 돈을 가져가는 것과 다음 달에 돈을 가져가는 것은 확실히 다를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악수를 나누며 양피지를 두 장 똑같은 것으로 나누어 가졌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파이룬 가문〉이었기에 작성은 게실리안 지휘관이 했다.
그의 필체가 확실하게 새겨졌다.
“하루하루가 크게 다른 것을 실감하오. 전에는 용병 단장에 불과했는데, 그대만큼 빨리 성장하는 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오.”
드낙이 그 칭찬에 웃음을 머금고 자부심 있는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 게실리안 지휘관은 자신을 가볍게 보지 않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아크온 몽펠리에의 부탁을 받은 드낙이었다.
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차이를 상기하며 드낙은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확연하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었다.
“구울에 대한 것은 불세벤 선임병사에게 들으시오.”
“그러겠소.”
드낙이 밖으로 나갔다.
“드낙 기사님을 뵙습니다!”
〈선임병사 불세벤〉은 전과 다르게 군기가 바짝 든 채로 드낙을 맞이했다. 그 거침없는 모습은 실로 병사라고 할 수 있었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이 겉으로라도 바짝 들어 보였다.
그래서 그가 게실리안 지휘관의 유일한 선임병사일 것이다.
그에게서 기본적인 구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놈은 홀로 다닙니다. 그래서 그 손속에서 도망친 자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그 빈도수가 줄어들고, 더 음흉해져가고 있습니다.”
좀비 한둘은 감당이 가능했지만 〈구울〉은 달랐다. 〈중위 언데드(中位 Undead)〉는 정규병으로 상대했다가는 큰 피해를 입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게실리안 지휘관이 벗어날 길은 없었다.
그는 가장 많은 정보를 취득하고 있었기에 〈왕국 야영지〉를 중심으로 반나절 내의 거리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백설산맥(白雪山脈)〉과 관련이 있다는 정보가 수도에서 돌고 있고, 북부 가문끼리 정보 교환이 매우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위기를 수없이 겪는 〈남부 왕국〉이었다. 특히나 국경선에서 활동하는 순찰자들은 서슬퍼런 날을 쥔 표범과도 같았다. 그들은 성채 너머, 토벽의 건너 활동하는 왕국의 수호자들이었다.
오직 〈신성한 의무〉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수많은 선배 순찰자가 쌓아올린 기가 질릴 정도의 명예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 순찰자들이었다.
확실하지 않다고 말해도 이미 확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귀족들이 조용히 정보를 교환하는 이유는 순찰자들의 명예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나에게 말해도 되나?”
“예.”
불세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한 발 빨리 〈계약서〉에 대한 정보를 획득한 그였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많은 정보를 드낙에게 주라고 언질을 병사의 입을 통해서 이미 그에게 전했다.
물론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하지만 드낙은 북부가 이대로 안정될 것 같지는 않은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몇 번이나 되물었다. 그는 질척한 남자였다.
“오크와 언데드가 관계가 어떻게?”
“없지요. 하지만 다리 하나 건너면 되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하려던 선임병사 불세벤이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은 위험한 것처럼 굴었다.
‘그냥 다 말해주지.’
감칠맛이 났다.
〈구울〉이 하나뿐이라는 정보 뒤로는 의심되는 것에 대해서 말했다. 모두 가정이었지만, 그러한 것을 짚어가야 했다.
“〈왕국 야영지〉의 방어력은 낮습니다. 토성도 아니고, 목책도 아니라 그저 장애물로 지어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구울의 존재는 까다롭지만, 결코 토벌하기 어려운 놈이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에 대해서 선임병사가 말을 이어나갔다.
“이것 또한 〈기사를 위한 덫〉이라면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드낙 님의 등장을 저희 지휘관께서 크게 반겼던 것입니다.”
마중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드낙이 보여준 무위는 기사 중에서도 기사였다. 특히 아크온 몽펠리에, 그 〈버팔로 나이트(Buffalo Knight)〉가 무려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으니, 드낙에 대한 평가를 대단히 높인 귀족들이 많았다.
게실리안 지휘관도 거기에 해당되었다.
“네크로맨서가 있다고?”
“흑마법사보다 보기 힘든 사악한 존재가 있다고는 믿기 힘듭니다. 하지만 만약을 생각해야 합니다. 조금 후에 병사를 통해서 〈사령술〉을 방해하는 마법 아이템을 드리겠습니다. 〈사령마력〉에는 별 소용이 없지만, 네크로맨서가 나타나면 반드시 허를 찌를 수 있을 겁니다.”
〈잿빛 깃털〉이라 불리는 마법 아이템이었다. 〈불과 땅의 힘〉이 담겨져 있었다. 당연히 마력을 변환시킨 마법 아이템이다.
“다른 건 말할 것이 없는가?”
“예. 구울만 있다면 토벌을 하시고, 네크로맨서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도주를 생각하되, 〈잿빛 깃털〉로 허를 찌른다면 그 또한 토벌하시면 됩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선임병사와의 만남도 끝이 났다.
몽펠리에의 기수들도 이번 일에 함께 하기를 결의하였다. 기사가 있었기에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를 〈쌍둥이 성채〉까지 데리고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언데드는 둔기에 약하다던데, 메이스라도 얻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드낙이 돌아오자 이스핀이 생각하던 바를 말하였다. 드낙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롱소드로도 검면으로 치면 흉악한 둔기였다. 사실 롱소드의 날로 베는 것보다 뼈가 충격량에 부서져서 죽는 경우도 많았다.
날만 달려있을 뿐이지, 어차피 거기서 거기였다.
수준이 낮은 이들에게나 무기가 중요했다. 그렇게 냉정하게 생각하면서도 드낙의 귀가 팔랑거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혹시 모르니까.
“전에도 만났지? 선임병사.”
“예. 제가 말하고 오겠습니다.”
이스핀이 눈치 좋게 캐치해서 먼저 나서서 사라졌다. 돌아온 이스핀은 뭔가를 주렁주렁 달고 왔다. 한손 메이스를 7개나 들고 왔고, 투창용 창도 여럿 짊어지고 왔다. 몽펠리에의 기수를 위한 투창 여분이었다.
*
밤이 깊어지고, 드낙은 검은 꿈을 꾸었다.
“구울에 대해서 말해봐.”
[네가 신경 쓸 정도의 언데드는 아니다. 긴장만 한다면 손쉬운 상대지.]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구울을 가볍게 보았다. 해골 기사의 모습으로 정신파동을 토해냈다. 반면 반파(半破)된 변종 키메라의 모습을 한 포낙서스는 달랐다.
“중위 언데드는 허투루 볼 것이 아닙니다. 기사가 나서야 한다는 것은 기사 또한 잡아먹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 죽으면 죽어야지.]
드낙이 세파리아스를 째려보았다. 하는 말마다 어그로를 끄는 것이 현대에 살면 인터넷에서 여포가 되었을 상(相)이었다.
“넌 좀 다물고 있어. 모르고 가는 것보다 알고 가는 것이 더 좋은데, 왜 그래?”
[흥. 하찮다.]
세파리아스가 연기에 휘감겨서 사라졌다. 그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는 〈흰여우 세린〉이 실소(失笑)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말해주면 될 것을 왜 저럴까, 몰라.”
드낙은 세린에게 손짓하여 꺼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점성술에 대해서 배우는 거 아니었어?”
“오늘은 아니야.”
드낙의 거친 모습에도 세린은 별말 없이 사라졌다. 그 태도의 변화에는 〈무언가〉가 있었지만 그는 거기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포낙서스는 구울에 대해서 말하였다.
“중급 언데드입니다. 시체 구덩이나 전쟁터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놈들이기도 합니다. 상체가 대단히 비대하고, 하체는 짧고 굵습니다.”
드낙이 포낙서스의 말을 경청했다. 흑마법사답게 비슷한 놈들에 대해서 주워들은 것이 많았다. 물론 군데군데 기억의 소실이 일어나 말을 하다가 끝을 맺지 못하기도 했다.
기억의 조각들을 훑은 드낙은 다가올 전투를 상상하였다.
========== 작품 후기 ==========
5881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 감사합니다. 신전에 대해서도 조금 언급하였습니다. 에이담이 쫓겨난 것처럼 남부의 신전은 세속화가 많이 진행되어있습니다. 북부도 도시나 성채에 따라 사제와 성기사에 따라 다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