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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44화 (243/1,239)

0244 <-- 몽펠리에 영지로 -->

“까각···”

드낙은 다른 이들을 챙기다가 미세하게 들려오는 카이야의 소리에 헐레벌떡 달려갔다. 눈을 까뒤집은 채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진 카이야의 몸을 조이고 있는 검은 손 같은 것이 보였다.

스스스···

드낙의 기세를 느꼈는지 순식간에 벽으로 바퀴벌레처럼 기민하게 움직여 사라졌다.

카이야의 상태가 빠르게 좋아졌지만,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다. 드낙은 서둘러 가죽 배낭에 카이야를 넣고, 둘러매었다.

“컹컹! 으르르르!!!”

도노는 벽에서 뚝뚝 흐르는 검은 진물을 보고 거칠게 짖어대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바루익 블라인스가 무기를 뽑아들며 소리를 질렀다. 다른 기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한 곳으로 모였는데, 화덕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이 산소가 부족한 것처럼 갑자기 크게 줄어들었다.

이스핀이 눈치 빠르게 단번에 마른 똥이 든 가죽 주머니를 몽땅 털어 넣었다.

화르르!!!

불길이 다시 거세지면서 검은 기운이 타오르며 사라졌다. 그것은 연기에 뒤섞여 있었지만 지나칠 정도로 어두웠기에 확연하게 눈에 들어갔다.

“아, 악령이다!”

기수가 소리를 질렀다.

쾅쾅! 쾅쾅쾅!

그때, 막아놓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와주세요! 놈들이 쫓아와요! 모두 죽을 거예요!"

젊은 여자의 소리였고, 아기의 울음소리와 소녀가 엉엉 울며 엄마를 불렀다. 정예 기병인 〈몽펠리에의 기수〉들은 그것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안 돼!”

드낙이 소리쳤지만 장성한 남자들이었다. 문의 장애물이 치워졌는데, 단번에 문이 박살이 나며 썩은 해골이 달려들었다.

“웃!”

기수가 검을 들어 올렸다. 당황한 정신과는 다르게 끝없이 단련된 검은 정확하게 궤적을 그리며 손목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생명체〉를 상대하기 위한 검술이었다. 손목을 자르는 것만으로도 무력화할 수 있는 인간과는 전혀 달랐다.

“끼에에에에에에!!!!!”

언데드가 그대로 기수를 덮쳤지만 검은 연기가 되면서 그대로 사라졌다. 공격을 받았음에도 상처 입지 않은 기수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시 막아!!”

드낙이 소리를 지르며 가구 하나를 문에 던져버렸다. 단번에 밑이 막혔고, 옆으로 옮겨놓은 장애물을 다시 겹겹이 쌓아올렸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

“사교도들이 죽었다더니, 정말로 그러한가 봅니다. 아주 사악한 곳이 되었습니다.”

이스핀의 말에도 드낙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피의 괴물〉에게 죄 없이 건물이 무너져 죽은 이들의 넋이었다.

그들은 억울해하고 있었다.

“흐흐흑···”

창문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들으면 슬퍼해지는 것이 아니라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이한 흐느낌이었다. 〈조금 달랐다.〉

“놈들이 들어 올려고 해!”

막아놓은 창문 틈 사이로 회색으로 변질된 손가락이 들어왔다. 손톱은 새까맣게 물들어있었다.

“들여보내 주세요. 너무 추워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애걸하는 것도 잠시 창문이 덜덜 떨렸다.

“억울하다고! 억울해!!!”

화덕 주위로 뭉친 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누구도 창문으로 다가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건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죽여버리겠어!]

웅웅 울리는 정신파동이 퍼져나가며 창문의 틈으로 검은 연기가 들어와서는 그대로 드낙을 향해 달려들었다. 드낙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은 무엇 하나 피해를 주지 못했다.

“크으윽!”

드낙의 뱃가죽을 뚫고 지나간 악령이 미친 듯이 깔깔 웃었다. 끔찍한 고통이 드낙을 훑고 지나갔다. 고통으로 진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검을 다시 집어넣어!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다!”

드낙이 박박 소리를 지르자 기수들이 〈바루익 블라인스〉에게 향했다.

“기사의 명을 따라라!”

“예!”

검을 모두 집어넣었지만 기수들은 그다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규군이라도 악령과의 싸움은 처음이었기에 당황한 것이다. 지식은 자주 사용해야 노하우가 되고 몸에 익는 법이었다. 악령은 그러한 면으로 봤을 때,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낙은 답을 알고 있었다.

‘마력을 사용해야 한다!’

드득, 드드득! 퍼걱!

창문에 붙은 나무판자들이 부서지면서 바람이 크게 들어왔다.

“불을 지켜야 해!”

이스핀이 짐을 화덕에 놓으며 바람을 막으려 했고, 기수들도 빠르게 움직였다. 드낙은 그 사이에 창문에서 보이는 소년을 보며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마에 박힌 단검.

원한으로 점철된 눈.

〈킬 더 배틀〉의 능력을 연장하기 위해서 죽어버렸던 소년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드낙은 몸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짐을 느꼈다. 인간의 정신은 육체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다. 컨디션이 빠르게 감소되는 것을 느낀 드낙은 입술을 깨물며 피를 내면서까지 냉정해지려 애를 썼다.

위기 상태에서의 드낙은 항상 답을 명확하게 쫓을 수 있었다.

피를 낼 정도로 거칠게 깨물었기에 정신이 조금은 맑아졌다.

[키키키키!]

천장에 불쑥 불쑥 튀어나온 악령들이 웃기도 하고, 피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으며, 입을 헤 벌려서는 검은 진액을 쏟아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소리를 크게 지르는 놈도 있었다.

“살려줘, 살려줘!!”

하반신이 뜯겨진 마을 사람이 하나 창문을 기어서는 뚝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썩은 내가 강렬하게 풍겨왔다. 드낙은 거침없이 덤벼들어서 마력을 양손에 뿜어냈다.

푸른빛이 번쩍였다.

[끄아아아아!!]

검은 연기가 빠르게 시체와 함께 사라지며 단번에 상쇄(相殺) 되면서 오직 뼈만 남게 되었다.

“덤벼라, 죽어서도 미련을 못 버리는 하찮은 것들아!!!”

드낙이 거세게 소리를 질렀다. 악령 하나가 그 도발에 걸려들어서 그대로 드낙에게 덤벼들었다. 얼굴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기괴한 덩어리였다. 드낙이 마력을 뿜어내는 손으로 잡아챘다.

붕!

체중이 대단한 드낙이 그대로 붕떠져서는 벽에 부딪쳤다. 하지만 악령 또한 무사하지는 못했다.

[크아아아악!]

소리를 내며 그대로 갈가리 찢긴 검은 조각이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퉷!”

피를 한 번 입에서 토해낸 드낙이 주위를 돌아보아보았다.

그 터프함에 기수들은 물론이고 이스핀이 이런 상황임에도 웃음을 머금을 정도였다.

“크윽!”

악령들의 공격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이스핀은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악령을 노려보았지만 악령은 낄낄거릴 뿐이었다.

상처가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고통이 이어졌다.

동이 틀 때까지 악령들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아침해가 빛을 내자 악령들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일행은 온몸에 없던 힘이 나서는 그대로 짐을 챙겨서 〈바세안 토성〉을 떠났다. 말들은 꿈에도 모르고 잘만 잠을 자고 있었다.

‘카이야는 건드리고, 말은 안 건드렸다?’

영물이 되려고 했기에 카이야를 공격했는지도 몰랐다. 카이야는 토성을 벗어난 곳에 멈추자 그때야 깨어났다.

“까악!”

날개를 펄떡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에 반응하기에는 힘들었다.

“아그극···”

이스핀이 악령이 훑고 지나간 팔뚝에 붉은 피물집이 잡혀있자 끙끙 앓았다. 다른 이들도 몸 곳곳에 피물집이 잡혀있었다. 끔찍한 기억이었다.

드낙은 자신의 아랫배를 확인했다. 큼직한 피물집이 잡혀있었다. 끓인 물에 달군 바늘로 몇 번이나 소독하며 피물집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물로 씻어냈다. 〈샘물 단지〉가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을 많이 사용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드낙은 또한 〈액체 치료봉〉을 사용하여 빠르게 물집을 말끔하게 치료했다. 기수들 또한 그 덕을 보았다.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하고는 불만을 만들기 좋았기 때문이었다.

“고맙습니다. 귀중한 마법 아이템 같은데.”

“악령에게 다친 상처인데 허투루 남겨둘 수는 없습니다.”

“말씀 낮추십시오. 저는 방계이며, 기사도 아닙니다. 작위조차 없습니다.”

그저 귀족의 울타리 안에 있을 뿐이었다. 작위는 방계의 가주만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럼 그렇게 하지.”

치료를 마친 이들은 그대로 잠에 빠졌다. 드낙은 도노의 털을 뒤집으며 물집을 처리하여야 했기에 조금 더 늦게 쉬어야 했지만 피로가 그리 쌓이지는 않았다.

드낙은 새로이 베껴 쓴 지도를 꺼내어 〈바세인 토성〉 밑에 악령이라고 적어놓았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아마 드낙을 덮친 놈이 악령 중에서도 가장 강한 놈이었을 것이다. 그 시체에 제(祭)를 드리지 않았기에 시간이 지나면 또 나타날 것이다.

잠에 빠져든 드낙은 검은 꿈을 꾸지는 않았다.

그가 상대하기에 위협도 되지 않았고, 많이 죽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출발합시다.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악령은 저도 처음 봤습니다. 사교도들에게 얼마나 억울하게 죽었기에···”

“무고한 사람을 그렇게 죽였으니. 〈피의 괴물〉까지 나왔으니 알 법합니다.”

기수들은 바빠서 바세인 토성에 머물지 않았다고 했기에 악령과 조우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드낙과 이스핀도 악령에 대해서 끔찍하다는 표현을 했다.

물론 드낙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억울하게 죽은 소년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빌어먹을.’

늦은 점심이 되어서야 그들은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갈 길이 멀었다.

바세안 토성에서 횃불 성채로는 15일이 걸렸지만, 그들은 그곳의 길로 향하지 않았다. 더 남쪽에 있는 〈삼거리 언덕길〉을 거쳐서 〈세 개의 강가〉로 향해야 했다.

그곳을 지나면 〈몽펠리에 령(領)〉의 끝자락이었다.

북부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몽펠리에 가문이었다.

7일이 흘러 겨우 〈버려진 영지〉의 경계에서 벗어난 드낙은 다시 3일을 이동하여 〈삼거리 언덕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길을 가던 중 도노가 드낙을 살짝 밀며 눈치를 주었다. 작게 으르렁거렸다. 이에 모두 멈추어 섰는데, 수풀에서 방패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패수들의 보호를 받으며 궁수들 또한 활을 당긴 채 대기했다.

“무기를 내려라! 병사들이여!”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창을 쥐고 있었는데, 장창의 날이 햇빛을 받을 때마다 푸른빛을 토해냈다.

그 기사가 투구를 벗자 드낙도 깃털 투구를 벗었다.

서로를 확인하며 괜히 웃어 보였다.

파이룬 백작 가문의 당당한 차기 가주.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였다.

“오랜만이오.”

게실리안의 말에 드낙 또한 말을 받았다.

“여전히 기세가 대단하시오.”

서로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인사를 다했다.

“일찍이 몽펠리에 기수들에게서 말을 전달받았지. 이 주변은 흉흉하기에 검문 겸, 기다리고 있었소.”

병사들이 수풀로 나왔다. 입에 재갈이 물린 사람들이 줄줄이 목과 팔에 밧줄이 묶인 채 끌려 나왔다. 또한 은폐되었던 짐수레도 있었는데, 멧돼지부터 고블린까지 부산물이 가득했다.

〈왕국 야영지〉에서 드낙과 게실리안 파이룬은 곧바로 독대를 가졌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네. 드낙 경.”

“어떻게 돌아가고 있소?”

토지를 받았기에 드낙 또한 하오체를 썼다. 거기에 관하여 게실리안 지휘관은 딴죽을 걸지 않았다.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외눈 다크 트롤(One eye Dark Troll)〉이 북부를 뒤흔들고 있소. 놈은 성채건 마을이건 상관없이 박살을 내고 인간을 도륙하고 있으니··· 그 시체 냄새를 맡고 온갖 것들이 꼬이고 있는 상황이오.”

“으음···”

드낙이 그 광경을 상상하고는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놈을 추적하기 위해서 기사들이 모이다가 다시 흩어져 버렸소. 모두 자신들의 가문을 챙기기 바쁘기 때문이오. 피난민들이 들끓고 있고, 나는 그중에서도 이곳을 단단히 틀어막아야 하오.”

게실리안 지휘관이 뜸을 들였지만 드낙은 딱히 자신이 먼저 입을 열 생각은 없었다. 그의 가장 큰 목적은 트롤이었기 때문이다.

“방치되어 죽은 시체에서는 트롤에게 죽든, 그 피냄새에 이끌려 온 것들에게 죽든,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가득하오. 그중에서는 원한을 잊지 못하는 자들도 많은 법이라··· 〈구울 토벌〉을 도와줬으면 하는데··· 가는 길이 바쁜 것은 아니지 않소?”

이미 〈트롤 토벌〉을 위한 기사들이 해체되었다면 돕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구울이라···’

드낙은 게실리안 지휘관이 자신의 도움을 원하는 것을 보니 보통 놈이 아닌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이 검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괜찮지 않나? 파이룬 가문의 차기 당주와 연줄도 만들고.’

자기합리화가 줄줄줄 이어 나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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