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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43화 (242/1,239)

0243 <-- 몽펠리에 영지로 -->

‘실패했다.’

게페락스는 그날의 기억을 회상했다.

생생했다.

흑마법사들이 빠르게 후퇴했었던 기억이었다.

콰드득, 콰아앙!!

그들의 뒤에 있는 나무가 단번에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우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황소 같은 하체를 가지고, 뱀과 비슷하지만 더 굵은 목을 지녔으며 머리가 사자인 키메라의 머리통이 날아가 〈흑마법사 게페락스〉의 옆에 쿵 하고 떨어졌다.

“키에에···”

검은 피를 쏟아내며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지만 흑마법사들 중 누구 하나 그것을 보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놈〉은 평범한 트롤이 아니었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어졌고, 되돌릴 수 없다.

크아아아아아-!

게페락스의 손이 덜덜 떨렸다. 수백 년 묵은 노괴(老怪)였기에 더더욱 두려움을 잘 알았다.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죽기 싫은 것이고, 힘들게 살면 살수록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절실한 법이다.

‘크크···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몇 년 동안은 골방에 처박혀 있어야겠다.’

되는 일이 없었다. 거대한 업(業)이 남부 왕국을 뒤흔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운명의 소용돌이가 점점 게페락스의 눈에 들어왔다.

‘흐···’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동시에 기회라는 생각을 접지 못했다.

‘방심한 이유. 그것은 트롤이 허접이라서 그랬던 것인데. 그게 자충수였다니.’

〈외눈 트롤〉의 이물질이 크게 들어간 눈은 계속 회복되었지만 끝없이 덧났다. 자유기사가 트롤의 눈에 박아놓은 투창의 조각들은 재생을 방해하기에 최적이었다.

부서졌지만 날카로운 투창은 재생하는 눈을 계속해서 상처 입혔다. 이 말은 트롤이 반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트롤의 습성〉은 머리와 심장의 보호였다. 벼락이 치면 얼굴을 가리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팔꿈치는 자연히 상체를 보호한다. 워낙 팔이 길기 때문에 접어도 닿기 때문이다.

자연히 그런 습성이 없는 트롤도 있다. 제대로 된 트롤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반푼이 트롤이 바로 〈외눈 트롤〉이었다.

그것이 흑마법사들을 방심하게 했다.

‘수많은 가능성 중에 가장 낮은 확률을 지니고 있었다니.’

트롤의 습성과 습관이 낮다는 것은 반대로 〈다른 피〉가 섞였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의 힘〉과 연관이 있는 피였다.

‘마족 중에서도 가장 종족치가 높다고 여겨지는 거인의 혈통.’

〈싸이클롭스(Cyclops)〉.

발을 구르며 땅이 흔들리고, 주먹을 내려치면 작은 산이 무너진다는 악마들의 권세 중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마족 중에서 최상위급 존재가 바로 싸이클롭스였다. 그런 놈들의 피가 시대를 뛰어넘어 외딴곳의 트롤에게서 개화한 것이다.

물론 보통이라면 그저 〈반푼이 트롤〉로 끝났을 것이다.

싸이클롭스의 피를 일깨운 것은 흑마법사들이 지니고 있는 〈악마의 힘〉이었다.

백설산맥에서 오크의 세대 교차가 일어나고 하고 있었고, 당연히 순찰자들이 개입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기사들도 모일 수 있었다.

오크들을 개박살 낼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막아주는 대가를 약속받을 수 있었고(그것을 정말로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기사들의 역량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 트롤을 〈다크 트롤〉로 만들려고 했다.

트롤은 몬스터다. 그리고 몬스터는 엄연히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의 피로 만들어진 악(惡)의 종족이다. 중립신은 선과 악 모두를 포옹하였기 때문이다. 그 또한 이 세상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세월을 통해서 악마 침공 당시 그 피를 이어받은 트롤이 있었고, 그 씨앗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다크 트롤〉로 개조되면서 그 피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과 눈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거대한 눈이 자리 잡았다. 완벽한 외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흑마법사들이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예상을 벗어나고 너무나도 강력해져 버린 것이다.

보통의 〈다크 트롤(Dark Troll)〉이 아니라 〈외눈 다크 트롤(One eye Dark Troll)〉이 되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흑마법사들의 암시도 받지 않았다. 죽어라 도망쳐야 했다.

악마의 피를 받았기에 인간만 골라잡겠지만, 잘못하면 죽을 뻔한 것이다.

“······”

모두가 침묵한 채 조용히 원탁에서 생각을 정리하기 바빴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기에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럴 것이 아니라, 하루 뒤에 다시 봅시다.”

〈흑마법사 게페락스〉의 말에 대답 하나 없이 모두가 흩어졌다.

다음 날에 다시 얼굴을 본 이들이 낸 의견은 하나로 쉽게 뭉쳐졌다.

“남부 왕국에서의 완전한 철수. 이제 남은 것 그것밖에 없소.”

예상 이상의 존재를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피부가 검었고, 입에서 유황내가 번들거리는 화염을 토해낼 〈외눈 다크 트롤〉이었다.

무조건 흑마법사들의 짓거리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준비를 할 정도로 남부 왕국에 깊게 뿌리를 박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흑마법사들로서는 억울한 면이 있었다. 말 그대로 기연이었기 때문이다. 무협지로 치면 사냥 끝나고 주인 없는 동굴에 불을 지폈는데, 다 죽어가는 절세 미녀를 구한 것이 되었다.

그 여파는 흉험하게 다가올 것이다. 남부 왕국에서의 완전한 철수는 동의했지만 그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북부가 쑥대밭이 될 것인데, 오크에게 빌붙는 것이 좋지 않나?”

〈던전마스터 골굼〉의 말에 주변에 짐을 잔뜩 놓고 있는 〈흉화(凶禍)의 산베로스〉가 이죽거렸다.

“그쪽이 오크를 그렇게 믿을 줄은 몰랐군. 우리가 〈히드라의 오크〉와 거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서로의 이해가 일치해서 일 뿐이다. 당당히 그가 우리를 맞이할 것이라고 보나?”

“뭐? 그럼, 산베로스. 넌 어디로 가고 싶은 거냐?”

“당연히 〈드워프 제국〉과 〈남부 왕국〉의 국경지역이다.”

〈강철 사막〉. 겉으로는 사막이었고, 보이는 것은 질 좋은 강철을 채굴하는 드워프들의 기지만 있을 뿐이었다. 숨기엔 가장 적합한 곳이었고, 무엇보다 〈던전〉이 많았다. 인간은 감히 추적해오지 못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보유한 전력으로는 그곳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내가 〈마신장(魔神將)〉을 하나 알고 있다. 그의 던전을 악마의 힘과 우리의 지식으로 일구어주면 능히 식객이 될 수 있다.”

그 말에 〈키메라의 알파던〉이 콧소리를 냈다.

“흥. 오거에게 붙자고?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진정하시오. 모두들. 객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산베로스의 말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키메라의 알파던〉이 퇴짜를 놓았다.

“던전의 하수인으로 들어간다면 나가고 싶을 때 못 나간다. 나는 차라리 남부에 숨어들겠다.”

게페락스가 그 말을 듣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미치셨소?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보시는가?”

“흑의 양피지를 버린다고 해도 마력은 숨길 수 없는 법이다. 의심을 받고, 평생 구금 당할 것이다.”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자가 다량의 마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는 증거가 없어도 끌려가기 충분했다.

“내 키메라 지식을 뭘로 보는 것이냐? 능히 피해 갈 수 있다.”

하지만 산베로스는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게페락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신장의 치맛자락에 숨는다면 키메라 제작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는 알파던은 매우 중요한 전력이었다.

“그러지 말고 갑시다. 도망은 언제든지 힘을 합치면 도망칠 수 있지 않은가. 오만한 마신장이니 허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듭되는 설득에 알파던이 고개를 끄덕였다. 골굼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던전마스터〉인 그는 생각할 것이 많았다.

흑마법사들은 서쪽으로 도망가기로 결정했다.

드낙의 일행은 〈둥근 언덕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에 있는 순찰자들은 모두 〈전투 로브〉를 입고 있지 않았고, 장궁이 아니라 사냥용 단궁을 장비하고 있었다.

영락없이 사냥꾼의 모습이었다.

케샤스가 마중을 나오며 고개를 푹 숙였다.

“촌장 케샤스라고 합니다. 드낙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 케샤스 촌장, 정말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고블린이 문제지만 살 만합니다.”

두 사람은 적당히 인사를 나누었다. 포옹이나 친밀감을 드러내는 짓은 하지 않았다. 토지가 있는 기사와 촌장의 사이였다. 케샤스는 넙죽 고개를 숙였고, 드낙은 어깨를 두드리는 정도에 그쳤다.

“들어오십시오!”

케샤스가 몽펠리에의 기수들에게도 굽신거렸다. 그들은 의심 하나 없어 보였다.

환대를 위해서 닭을 몇 마리 잡았다. 푹 삶아진 닭은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후릅!

“캬! 녹는다, 녹아!”

이스핀이 어깨를 들썩였다.

모두 만족스러운 저녁이 되었다.

바삭!

“감질납니다.”

디저트로는 바짝 구워진 닭 껍질을 먹으며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외눈 다크 트롤〉에 대한 존재를 기수가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엄청난 놈이군요.”

드낙이 긴장하며 정보를 취득했다.

밤이 내려앉고, 케샤스가 드낙의 방으로 창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드낙은 잠을 자지 않고, 침대에 앉아있었다.

“기수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순찰자라는 것이 들키지는 않은 듯한데.”

“예. 저희들보다 눈이 좋은 기수가 없었습니다. 손쉬운 일이었습니다.”

드낙은 곧바로 필요한 보고를 들었다.

〈둥근 언덕 마을〉은 잘 굴러가고 있었다. 특히나 고블린들이 수백 마리가 죽었기에 남겨진 암컷과 새끼를 죽여 그 부산물을 얻었고, 선선한 지하창고에 모두 보관되고 있었다.

“이미 〈깊은 녹색 숲〉은 사람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걱정을 안 하셔도 됩니다.”

도망친 놈들이 있겠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훌륭하다.”

“트롤 토벌을 위해서 가시는 것이라면 추적에 능한 순찰자를 몇 붙여드리겠습니다. 〈수색 순찰자〉들이라 전투 로브가 없어도 잘 싸울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드낙인 손사래를 쳤다.

“매우 위험한 일이다.”

“드낙 님. 저와 저희 순찰자들은 당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제가 왜 도망쳤는지도 묻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많은 은혜를 입었는데, 보답할 길도 안 주시니 저희들이 너무 힘이 듭니다.”

그 말에 드낙은 어쩔 수 없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수색 순찰자〉 두 명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사냥꾼 중에서도 호랑이를 잡는다고 하면 큰 의심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궁을 쓸 생각인가?”

“예. 하지만 특수 화살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니, 의심을 해도 집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아크온 몽펠리에의 초대를 받은 기사가 바로 드낙이었다. 시비를 걸면 아크온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벼운 가죽 방어구를 입은 〈수색 순찰자〉 2명 합류했다. 제법 인원이 많아졌다. 필요한 보급은 마치고, 다음 날에 곧바로 마을을 나섰다.

멀리 모이는 폐허가 된 〈사냥꾼 마을〉을 지나쳤는데, 이스핀이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며 시간을 때웠다. 드낙을 보는 기수들의 눈이 변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 큰 무례였기 때문이다.

사람 없이 텅텅 빈 〈바세안 토성(土城)〉의 집 하나를 골라 야영을 할 준비를 했다. 버려진 가구를 부수고, 장작으로 삼았고, 창문이나 문을 대충 막았다. 혹시 몰랐기 때문이다.

드낙은 뭔가가 자신의 정신을 건드리는 감각에 눈을 떴다. 검은 꿈을 꾸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막혀진 창문 틈 사이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을 가늠하니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으으···”

이스핀이 벌벌 떨면서 사색이 된 채 가위에 눌려있었는데,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드낙이 서둘러 일어나서 그들을 크게 흔들며 일깨웠다.

“으, 허헉!”

이스핀이 버둥거리면서 눈을 떴다. 몇몇 기수들은 너무 힘을 주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끙끙거렸다.

‘귀신? 악령인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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