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240화 (239/1,239)

0240 <-- 몽펠리에의 기수들 -->

〈게제라스 총관〉은 드낙이 자신의 본심을 앞뒤를 재지 않고 바로 자신에게 털어놓자 감회가 새로웠다.

‘이렇게 마음을 얻고 아니고의 차이가 심한데, 나는 그동안 뭘 했는지.’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말해주는 것에 관한 드낙의 변화된 모습은 게제라스 눈에 줄자로 재어보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변화였다.

이미 〈이실레아 브릴리언트〉와 〈게제라스 총관〉은 드낙이 〈불파겐의 후손〉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엘라한의 가문명〉을 소리치지 않았을 리가 없었고, 그 특징을 진흙이 범벅 된 상황에서 홀로 외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땅에 대한 적법한 권리는 이미 드낙 님에게 있다.’

충성을 맹세하기에 과분한 이름이었다.

귀신의 가문이니 뭐니 흉흉한 이야기뿐이지만, 현실적으로 따지면 〈불파겐〉만큼 과실이 큰 것이 없었다. 그 과실은 능히 서로 나눠먹기도 좋았고, 먹다 남은 씨앗을 땅에 심기도 좋았다.

모두 쓰기 나름이었다. 그리고 그 과실은 혼자 따먹으려다가는 지키고 있는 뱀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일기당천(一騎當千)의 맹장(猛將)이 바로 드낙이었다.

“왜 말을 안 하는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드낙이 괜히 마음을 졸였다. 곳곳에서 개척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제라스가 손사래를 쳤다. 이렇게 극명하게 드낙의 태도가 바뀐 것을 본 것은 사실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이 〈그때〉 이후 처음의 독대였다.

“문제는 몇 가지 있지만 대부분 처리가 가능한 것들입니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주변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인데, 이미 드낙 님께서 곳곳을 돌아다니며 떠돌이 몬스터나 야수 혹은 멧돼지들을 사냥했으니 걱정은 없습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체수를 줄였으니 자원이 남아돌 것이고, 그 덕에 민가로 내려오는 것들이 적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저희 세력의 무력이 약합니다. 이스핀 부대장에게서 구두 보고를 받았는데, 녹슨 흉갑의 녹을 대충 벗겨내고 사용한다고 해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재액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법이었다. 드낙이 자리를 비우면 위험이 컸다. 그렇다고 전신갑주가 하나 더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치안이 뭉개질 수 있었다.

“부대장들에게 더 많은 비전을 전수하면 자유 기사 정도는 성장할 수 있을 텐데.”

드낙의 말에도 게제라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드낙이 아! 하고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발룬을 이실레아에게 주었는데, 그 겁쟁이가 그녀 앞에서는 호랑이처럼 대범하기 그지없으니, 이걸로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말에 게제라스가 입을 떡 벌렸다. 자신도 모르게 의자를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이런 미친!’

갑자기 목의 근육이 찌릿하며 근육이 놀라 큰 통증을 주자 게제라스가 말을 하려다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워낙 안 움직여서 갑작스러운 큰 움직임에 근육이 놀란 것이다.

“어어억···.”

그가 목을 잡으며 왼쪽 뒷목의 근육 부분을 문질렀다. 드낙이 크게 놀라서 다가갔다. 당황스러움이 잔뜩 묻어난 말이 튀어나왔다.

“괘, 괜찮아?!”

드낙이 목을 문지르는 게제라스의 손을 보고 서둘러 문질러주었다.

“아, 근육이 놀랬나 봅니다. 괘, 괜찮습니다.”

그제서야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해. 총관이 없으면 이 세력이 어떻게 되겠나. 공중분해될 거다.”

게제라스가 기분 좋게 웃음소리를 냈다. 크게 당황한 드낙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절로 자부심이 생겼다. 그는 생각보다 자신이 드낙에게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을 보며 착실하게 쌓아나가자. 과거의 나를 밤마다 반성하자.’

게제라스는 그 깨달음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범인(凡人)과는 달랐다.

“근데 왜 그렇게 놀랐는지 알 수 있을까?”

“당연히 놀라 수밖에 없지요. 어떤 큰 거래를 했기에 발룬을 빌려주셨습니까? 그것도 저 몰래 말입니다. 혹, 브릴리언트 가문이 방계로 들어가겠다고 말을 했습니까?”

그 말에 드낙이 땀을 흘렸다.

“그, 그냥 발룬과 이실레아 경이 죽이 잘 맞길래 한 번 타보라고 하다가··· 그렇게 되었지.”

탁.

게제라스가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쳤다.

“〈흰사슴 발룬〉은 못해도 일각수는 되는 영물입니다.”

그가 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걸 그냥 주시는 것은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받아오십시오. 얼굴에 철판을 깔든 똥물을 묻히든 받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인데, 왜냐하면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게제라스의 말을 듣고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냉큼 돌려받고 와야지!”

그리고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존심보다 중요한 것이 자신의 월급이었던 시절을 겪은 박호훈이다. 하지만 그 모습에 되려 게제라스가 펄쩍 뛰었다.

“그, 그렇다고 정말로 가시면 제가 곤란합니다!”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일어나 드낙의 손을 잡은 게제라스를 보며 드낙이 깨끗한 웃음을 냈다. 이미 그는 게제라스에게 마음을 열어놓았기에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감정 하나 상하는 일이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말해보게.”

드낙이 거드름을 피우며 앉자 게제라스가 미소를 지었다. 방금 한 행동이 농임을 알게 되었다. 서로 웃음을 지었다.

훈훈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짓궂으십니다."

이제는 서로 장난을 할 정도로 급격한 관계의 발전을 이루어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감투를 씌워 그 감투에 따라오는 것이 〈발룬〉이라는 것을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실레아 경이 그 감투를 벗을 때, 자연히 발룬을 내놓게 될 것입니다.”

미리 주는 것은 상관없었다. 모든 이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말하면 그게 오피셜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군사령관(軍司令官)〉으로 임명하십시오. 어차피 지금도 군권을 잡고 있고 훈련부터 관리까지 도맡아서 하고 있고 이스핀 부대장을 부하처럼 부리니 이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의견 같았다. 감투를 벗을 때, 발룬도 반납한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이실레아 또한 그렇게 알아들을 것이다.

그 말을 한 게제라스는 서슬퍼런 눈을 했는데, 그 감투가 바로 이실레아의 목줄이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지금까지 군권을 휘두른 것에 대한 직위를 이제야 내려주는 것이며 발룬을 그 감투에 묶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다른 이유도 많이 있었다.

‘이실레아 경은 결코 불파겐의 방계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방계로 시작한 가문이었다면 거리낄 것이 없겠지만 브릴리언트 가문은 영지를 가지고 성도 가졌었던 가문이었다. 가문의 부흥을 생각하는 그녀로서는 방계에 들어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므로 그녀와 드낙을 묶기 위한 또 하나의 장치가 〈군사령관〉이라는 직책이었다. 언제까지 드낙의 무력을 두려워할지는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게제라스는 이실레아가 한 번은 거세게 반항할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물론 추측일 뿐이었지만 드낙은 그녀를 너무나도 믿고 있었다.

맹목적인 것은 언제나 그릇되기 쉽다.

“〈호수 마을〉에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벌이는데, 〈산지기 산골마을〉의 사람들도 모으는 게 좋겠습니다. 5일 동안 준비를 하고 잔치를 벌인 뒤에 트롤 토벌에 대한 것도 공표하십시오.”

“단숨에 두 가지 일을 하겠다는 거네.”

게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낙은 쉬이 넘어갔지만 이것 또한 중요한 일이었다.

트롤 토벌은 만인(萬人)을 위한 것이며, 몽펠리에의 이름은 북부에서 유명했다. 자연스럽게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드낙의 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또 빈집을 확 잡으려는 이실레아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불명예스럽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만약을 대비한 것이고, 게제라스는 드낙의 명성을 높일 기회로 삼는 것이 주목표였다.

“마지막으로는 몽펠리에의 기수들을 위한 환영 잔치이기도 합니다.”

“그것까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몽펠리에 가문과는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게제라스의 말에 드낙은 반대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아크온 몽펠리에는 자신을 잊지 않고, 불러주었다. 아무래도 트롤 추적을 위해서라고 여겨졌지만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기수 다섯을 동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대우하기에 용병단이 아닌 〈몽펠리에 기병단〉 소속의 기수들이 찾아온 것이다.

그것이 경기병인지 중기병인지는 상관없었다.

윙드 후사르조차도 초반에는 경기병으로 시작한 정예 기병이었다. 그들의 창은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속이 파여있어서 중보병에게 밥이었다. 물론 초기에만 그랬던 것뿐이었지만 기병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정예를 뜻했다.

드낙은 여기에 대해서 몰랐지만 이 세계에 살면서 정규군의 기병을 본 적이 매우 드물었기에 자연히 기병을 정예로 여기고 있었다.

“자신의 가문 기수를 다섯이나 보냈고, 보내온 서신의 양피지 또한 상품 중의 상품입니다. 드낙 님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니, 그 기수들에게라도 잘 대해줘야 합니다.”

그 말에 드낙이 명심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게제라스는 이것이 딱 3일만 간다는 것을 잘 알았다. 드낙은 생각 외로 멍청한 면이 많았다. 때때로 보면 맹장 특유의 기질로 보였지만 어떻게 보면 범부(凡夫)로 보였다.

“몽펠리에로 향하는 것은 나 혼자로도 충분하겠지?”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트롤을 상대하는데 드낙 혼자만 가도 괜찮았다.

“아크온 몽펠리에 님께서 별다른 말을 넣지 않았으니, 혼자서 가셔도 충분하실 겁니다.”

“그럼 도노와 카이야에 짐꾼으로 쓸 말 한 필이면 되겠네?”

게제라스는 드낙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수행원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스핀 부대장을 데려가시지요.”

“그럴 필요가 있으려나···”

드낙이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는데, 게제라스는 거듭 청하였다.

“하시는 일에 하나하나 모두 하실 생각입니까? 번거로운 것은 이스핀에게 맡기는 것이 좋으실 겁니다.”

온갖 귀찮은 일들을 게제라스가 이야기하자 드낙의 귀가 팔랑거렸다.

“이스핀 부대장은 성채에서 태어나서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까? 반드시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산골 출신의 드낙이었다. 코가 베일 수도 있었다.

물론 게제라스의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 〈발룬〉 덕분에 이실레아의 무력이 높아졌으니 자연히 드낙이 자리를 비웠을 때, 그녀의 오른팔 행세를 하는 이스핀을 빼내야 했다.

이스핀에게 드낙과 이실레아 중 누구를 선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드낙이었지만, 게제라스와 이실레아 중 선택하라고 하면 이실레아를 선택할 것이다.

“그럼 이제 더 물어볼 것도 없는 것 같으니, 이대로 진행하면 되겠나?”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가 웃었다.

“몽펠리에 가문에서 군공을 세우면 넉넉하게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엇을 받아오실 생각입니까?”

그 말에 드낙이 멈칫했다.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전신갑주?”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저희는 광물이 부족하니 철을 달라고 하십시오.”

그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많이 달라고 하십시오.”

“알았다. 왜 두 번이나 말하는가?”

“혹 귀가 팔랑거리실까 봐 그렇습니다. 무조건 철입니다. 철!”

게제라스가 당부 또 당부했다.

잔치가 빠르게 준비됐고,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곳에 있는 〈산지기 산골 마을〉의 사람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드낙은 그 사이에 큰 곰을 하나 잡아왔다. 온몸이 새까만 〈변이 야수〉였다. 그 사체를 들고 오는데 준마만 10마리가 동원되었다.

집채만 한 놈이었다.

드낙은 놈에게서 〈검은 문〉도 얻을 수 있었다. 〈검은 곰의 두번째 간〉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간 하나가 더 생기는 엄청난 능력이었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혹은 이미 〈일각수의 간〉을 가지고 있어서 파생되어 더 발전된 능력이 나온 것인지도 몰랐다.

간이 하나 추가되고, 해독 능력과 피로 회복 속도가 증가하며 간 기능이 더욱 증가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5682자

평추코 감사합니다. 당양한 의견 항상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