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8 <-- 몽펠리에의 기수들 -->
드낙은 돌아오자마자 대충 정리를 한 다음에 그대로 잠에 빠져들어갔다. 하루가 지나고 일찍 자는 것이라 될까 싶었지만 그는 검은 연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놈!”
검은 꿈에 입장하자마자 드낙은 서슬 퍼런 욕을 들을 수 있었다. 옆에 있던 〈변종 키메라 포낙서스〉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는 왜 그가 그렇게 웃는지 알 수 없었다.
[저딴 멍청한 년도 세상을 저주하며 살더니 이렇게 형체를 갖추는군.]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신기해했다.
드낙은 그제서야 세린이 〈검은 꿈〉에 들어온 것이 방금이라서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기야. 나라도 정신 못 차리겠지.’
죽고 나니 뜬금없이 검은 연기가 자욱한 곳에 있는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고, 글로써도 막막함에 점만 주룩 나열할 것이다.
“다 죽여버리겠어! 다 죽여버리겠다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세린이 표독스러운 눈을 하며 검은 연기를 걷어내며 입장한 드낙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여긴 어디지? 그켁! 헉?!”
말을 하다가 갑자기 입에서 검은 연기를 자욱하게 토해낸 세린이 놀라서 펄쩍 뛰었다. 기괴한 현상에 세린이 미친년처럼 주위를 훑었다.
“세파리아스 너도 저랬어?”
[지금 누굴 비교하느냐?]
불쾌한 감정이 잔뜩 토해졌다. 해골기사의 말은 메아리처럼 울렁거렸다.
드낙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세린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인상을 팍 찌푸렸다. 1절만 해야지 계속 저러면 짜증만 날 뿐이었다.
“어!”
하지만 그런 드낙도 깜짝 놀랐다. 세린이 갑자기 연기에 휩싸여서 그대로 휩쓸려져서는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멍청한 년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세파리아스가 뭔가를 안다는 듯이 굴었지만 드낙은 아리송할 뿐이었다. 그는 세린을 기다렸지만 그녀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결국 검은 문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찌꺼기〉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검은문〉 자체는 얻을 수 있었다. 세파리아스에게서 숙달된 비전을 막힘없이 단번에 숙련한 것과 같았고, 포낙서스에게서 흑마법 하나를 숙련한 것과 일맥상통했다.
전후 관계만 바뀌었을 뿐, 검은 문을 선택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중위 연금술〉.
소리 하나 없이 지나가는 푸른빛을 내는 액체가 드낙의 눈을 지나갔다. 〈마력의 액체화〉는 연금술의 하위와 중위를 나누는 가장 큰 구간이었다. 그것을 성공한 연금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위(中位)에 속할 수 있었다.
〈초월에 닿은 연금술〉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액체화된 〈범용성의 마력〉, 만변(萬變)하는 힘이 만들어내는 광경은 잔혹했으며, 광기에 물들어있었고 인간의 입에서는 그저 피울음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초월적인 효력을 지닌 물약은 대부분이 저런 것들이라는 소리네.’
드낙이 혀를 찼다. 하지만 그래도 수준이 낮더라도 마력액체를 이용해서 치료와 질병을 걷어내는 물약을 만들 수 있음을 깨달았다.
〈기본 화학〉.
증류기가 보글보글 끓었다. 구리관을 지나 정제기로 이어졌다. 가장 기본적인 〈증류〉와 〈정제〉 기술. 그리고 그에 대한 기초적인 실험 도구의 제작이었다.
‘그렇게 와닿지는 않네.’
워낙 기초적인 것이라 실험과 실패를 통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기도 했고, 금화로 구매도 가능할 것 같았다. 경위는 어찌 되었든 〈토치라이트〉 가문의 계륵 같은 땅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횃불 성채〉에서 필요하다면 합당한 가격에 구매가 가능할 터였다.
‘패스.’
〈상급 약초학〉.
수많은 약초와 그것에 대한 효능, 맛이 순식간에 드낙을 지나쳐갔다. 방대한 지식이었고, 몇몇 약초를 직접 실전적으로 확인한 경우도 있었다.
‘와우.’
드낙이 혀를 내둘렀다. 연금술사가 지닌 약초학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는데,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밖을 나돌아다녔던 〈흰여우 세린〉이었다.
연금술보다는 약초학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뿌리부터 나뭇잎까지. 나무속부터 겉까지.
모르는 것이 없다고 말해질 정도였다.
〈고위 점성술〉.
별을 점치는 기술이었다. 이것이 왜 높은지 드낙은 알지 못했다. 밤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의 위치는 매번 바뀌기 마련이고, 그것을 점치는 데는 높은 수준의 점성술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걸 알아서 뭐 하지?’
드낙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살성(殺星)이 자신의 정수리 위로 움직였음에도 태평했다. 왜냐하면 별의 수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검은문을 확인했을 때, 세린이 검은 연기에서 튕겨져 나오듯이 튀어나와 바닥을 굴렀다.
“으···”
그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세린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며 드낙을 두려움에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갑자기 또 조용해졌네. 무슨 일을 당한 거야?”
“······”
그녀는 입도 벙끗하지 못했다. 침묵이 가라앉았지만 그 침묵은 세린의 입으로 지워졌다.
“내 〈찌꺼기〉를 받아라. 네가 잘 되어야 우리가 잘 된다.”
“뭐?”
드낙은 혼란스러운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연금술사로서 〈흰여우 세린〉이 지닌 찌꺼기를 받아먹었다.
또 그가 검은 문에서 선택할 것은 당연히 아주 어려워 보이는 〈마력의 액체화〉를 숙련할 수 있는 〈중위 연금술〉이었다.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모든 것을 가리며 드낙은 잠에서 깨어났다.
쪽잠을 자고 일어난 드낙은 이미 중천에 뜬 해를 볼 수 있었다.
한 달은커녕 단기전으로 끝난 전투였기에 모두가 들뜬 표정을 지었는데, 특히 손목이 날아간 병사는 〈사제 제롬〉 덕분에 손목이 붙어있음에 감사하며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으며 봉헌할 것이다.
마적 중에 살아남은 자는 불과 20명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 돌산에 숨어있던 놈들이었고, 모조리 노예로 삼아졌다. 3년 뒤의 정상참작 따위는 없었는데, 그래도 생업에 종사했던 토성민들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다 쳐죽여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노동력을 위해서 평생 노예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마적들에게 혹사당하였던 여자들이 구조되었다. 모두 험하게 굴러져서 끔찍한 몰골이었는데, 혀가 잘려 있는 여성도 있었다.
마적들이 이들을 어떻게 대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흰여우 세린〉이 같은 여자들을 보살펴줬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보다 예쁜 여자가 보이면 그대로 끌고 자신의 방으로 데려와 고문 끝에 죽여버렸다.
“개새끼들.”
병사 하나가 한곳에 모여있는 작은 두개골을 주워 담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예지만 빠른 자는 오는 도중에 정(情)이 맞아 아기가 딸린 과부와도 연결이 되기도 했는데, 〈병사 발리안〉이 그러한 경우였다.
비록 남의 자식이지만 그 고사리 같은 손이 자신의 손가락을 꼭 쥘 때면 형연할 수 없는 기쁨에 휩싸였던 기억이 생생한 발리안이었다.
여기에 쌓인 유골들은 아기의 유골도 있었지만 여자의 유골도 많았다.
그 수가 수백 구가 넘었다.
모두 양지바른 곳에 한곳에 묻기 위해서 빼내고 있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사제 제롬〉은 그 작업장 한편에 천을 바닥에 깔고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읊고 있었다. 약한 자들이 무엇을 기쁨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기도문은 끝도 없이 읊어졌다.
다양한 재물 또한 드러났다.
금부터 시작해서 은을 구겨 모은 것이나 석상부터 시작해서 온갖 사치품들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녹이 슬었지만 무기도 많았다.
그중에는 흉갑도 있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녹여서 새로 써야 했다.
〈엘라한 가문〉의 식솔들은 치료를 위해서 이송을 준비해야 했지만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사제 제롬〉의 신성력을 받으며 이곳에 잔류하게 되었다.
그들의 유전병은 백내장 같은 눈의 질병이고 시력이었으며 근손실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신성력으로 치유될 수 있었지만 〈기사〉의 몸을 구축하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때문에 드낙은 그들의 〈계승〉 정도를 확인하고 문인 가문으로 살아가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옹골찬 물의 정령〉이 있었기에 다양한 곳에서 활약을 할 수 있기도 했다.
“일단은 노력은 하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원을 지킬 힘을 키웠을 때에는 기사 가문으로 대우를 해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그들은 여지를 남겨두기를 원했고, 드낙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워낙 왜소하게 보이고 병약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돌산을 정리하는 데에만 무려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그것을 운송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일주일 동안 신성력을 통해서 최소한의 체력을 확보한 〈엘라한의 식솔〉들은 〈호수 마을〉로 이송됐다.
군막에서 지내는 것은 장기적으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고, 장작 또한 구하기가 힘들어서였다.
“이런 곳에 광산이 있을 텐데.”
드낙은 순시를 돌고, 일이 돌아가는 것을 틈틈이 확인하면서도 돌산을 이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광맥이 있을까 싶어였다. 하지만 엘라한 가문의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무엇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한다면 석재가 전부였다.
아쉬움이 컸지만 광맥이라는 것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깔끔하게 버리기는 무슨, 일주일 내내 뒤지고 다니고, 곡괭이로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다닐 정도로 드낙은 욕심을 부렸다.
물론 허탕으로 끝났다. 구리는 물론이고 석탄도 하나 건지지 못했다. 돌덩어리뿐이었다. 그 돌도 하나로 일관되지 않았고 중구난방이라 석재로의 가치도 없었다.
한 번 내려치면 그저 후두둑 조각나 떨어질 뿐이었다.
밖으로 나온 먼지투성이의 드낙은 이실레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발룬의 머리를 그냥 한 아름 안고 있었는데 발룬은 멍청하게 뒷걸음질을 실실대고 있었고, 오히려 그것이 그녀의 흥을 돋우고 있었다.
“안보인다~, 보인다!”
이실레아가 눈을 가렸다가 떼다가를 반복하며 아기 다루듯이 발룬을 다루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 속에서 드낙은 여기사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발룬의 높은 체온과 짧은 털은 감촉이 실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죽이는 것을 반대하더니, 저렇게 놀고 있었구나.’
그때, 뿔나팔이 울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울리는 뿔나팔 소리에 이실레아가 기민하게 놓아놓은 특수장검을 쥐고, 레이피어를 덜렁거리며 돌담 위로 올라갔다. 그곳은 비계를 설치하고, 발판을 놓았기에 안정적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었다.
드낙 또한 거침없이 올라섰다.
멀리서부터 달려오고 있는 다섯의 기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신원을 알 수 없었지만 흉갑을 착용하고 있었고, 녹색의 깃발에 뭔가 문양이 쓰여 있었는데 보이지는 않았다.
“발룬!”
드낙이 발룬을 부르다가 이내 이실레아와 죽이 잘 맞는 모습을 보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실레아 경, 그대가 한 번 발룬을 타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예? 제가··· 괜찮으십니까?”
“방금 서로 그렇게 장난을 치던데, 한 번 타보시지요.”
이실레아는 볼을 긁적거리면서 얼굴을 붉혔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그걸 지켜보는 병사들도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입이 쓰리슬쩍 올라가 있었다.
시야가 넓은 그녀는 그것도 모른 채 냉큼 발룬의 위에 올라탔다. 드낙은 그녀가 타던 말을 잡았는데 말은 푸레질을 하면서 물러나다가 드낙이 소리를 내며 기세를 내자 이내 얌전해졌다.
성깔 있는 말이 아니면 이실레아의 독기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발룬은 이실레아가 올라타자 갑자기 콧김을 내뿜으면서 한껏 가슴을 드러내 보이며 뿔을 하늘 높이 세웠다.
그 모습에 드낙의 표정이 찡그러졌다. 꼴에 수사슴이라고 나대는 꼴을 보니 배알이 꼴렸다. 이내 발룬은 열리지도 않은 성문을 박살 내더니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구우우우!!!”
콰앙!!
드낙은 호쾌한 그 모습에 소리를 질렀다.
“저런 미친 자식을 봤나!”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었다.
겁보 중의 겁보인 발룬은 이실레아를 태우더니 맹호처럼 돌진하기 시작했다. 이실레아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드낙은 서둘러 말을 몰아서 박살이 나서 무너진 성문을 지나 뒤쫓아갔다.
서서히 거리가 서로 가까워지면서 속도를 늦추었는데, 발룬도 이실레아가 천천히라고 말하자 금세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언제 난폭한 모습을 보였냐는 듯 고분고분했다.
드낙은 기수 다섯이 하나씩 말에 꽂은 깃발을 비교적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녹색 바탕에 은색 혹은 금색의 테두리가 있었고, 하나의 망치가 크게 중앙에 그려져 있었다. 또한 그 망치를 감싸는 덩굴이 눈에 들어왔다.
‘몽펠리에···!’
여기서는 결코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한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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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감사합니다. 다양한 의견 고맙습니다.